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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가는 대로

빈자리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했다.
만남은 이미 이별을 예정하는 일이지만 부모자식간의 인연으로 만나 돌아오지
못하는 먼 길을 떠남은 많은 사람에게 슬픔과 상처를 남긴다.
장모께서 고단한 이승의 삶을 접으시고 길게 얽힌 인연의 타래와  아직 생생한 
삶의 흔적 그리고 아쉬운  기억만을 남기신 채 아무 말씀도 없이 떠나셨다.     
자식들에게 못다한 말씀이 남으셨는지 입을 벌리신 채로 생전의 모습 그대로 
그렇게 옅은 하늘 빛 치마저고리로 단장하신 채 한줌의 연기로 하늘로 가셨다
아무런 고통과 아픔이 없을 그 곳으로 .....
생전에 다른사람에게 폐를 끼지는 것을 유독 싫어 하신 터라 돌아 가신 시간도
오후 아홉시에 맞추어 자식들이 허둥대지 않게 하시고  삼일장에서 하루를 
거두어상주들의 고단을 돌보아 주셨고 시신을  묘소에 안치하는 그 날도 
태풍과 폭우를모두 잠재워 선선한 날씨속에 상례를 마칠 수 있도록 예비하셨다.
5남1녀 중 막내 외동 딸 
그 불면 날아가 버릴세라 애지 중지하던 당신의 딸과 하나 뿐인 사위
편치 않은 몸에 그저 무엇이든 하나라도 더 주고 거두어 먹이지 못해 안스러워 
하시던장모님 
떠나시는 날  며느리들이 모두 소리높여 우는 중에도  안으로 울음을 삼키며 
슬픔을 억누르려 애쓰는 당신의 딸을 보았습니다.  
아픈 가슴과 시큰한 콧날을 타고 제 눈시울을 뜨겁게 적시는 그눈물도 그리고
소리쳐 울부짖는 며느리들의 울음도 당신이 그렇게 사랑하시던 딸의 상심과 
슬픔보다 더 클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딸의 슬픔이 아무리 크다해도 지어미를 잃은 지아비의 슬픔만 하겠습니까?  
딸이야 언제나 자랑하시던 이 사위가 있고 또 자식들이 있고 또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 내야할 많은 날들이  있으니그 북적이는 삶들이 곧 슬픔을 거두어 가겠지요?
그러다 그 딸은 바람불고 비오는 날이면 하늘 빛 옷으로 떠나가신 장모님을 기억
하며 가끔 눈물과 한숨지을 겁니다. 
 
성한 여섯자식 보다 병든 마누라에게서 더 많은 위안과 삶의 의미를 찾으시던 장인
어른 아플 망정5년만 더 살았으면 좋겠다고 딸의 손을 잡고 울먹이던 장인은 빙모님
떠난시던 날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다.
바쁜 상례에 묻혀 외로음을 느낄 새가 없으셨던 장인 어른은 이젠 라디오를 틀어 
놓은 채로 주무신다.
고요한 정적과 적막이 자꾸 장모님의 생전의 기억을 떠올려 잠을 이룰 수가 없어 
그동안 쓰지 않던 큰 녹음기 라디오를 크게 틀어 놓으시고 잠을 청하신다.
십수년을 하루 같이 병든 마누라를 간병하던 착한 남편
자식들의 동거도 마다하고 그 흔한 일하는 아줌마 하나 쓰지 않고 
손수 지은 따뜻한 밥으로 매 끼니를 거르지 않게 하시고 세상 좋다는 약은 죄 
구해다 먹여서 5년 채우기 힘드시다던 부인의 간경화를 십오년을 다스려 온 장한 
남편 그렇게 아내와 함께 세월에 닳아가고 병알이를 하던 남편은 이제 훌쩍 늙었고
그 많은 돈이 가져다 줄 편안한 노후의 의미도  둘이 해로하는 살가운 삶의 의미도
함께 잃었다.
잘 길들여진 천직처럼 수년을 낙으로 삼고 해오던 일마저 빼았긴 채 홀연히 마주한
고독과 쓸쓸함으로  남편은 밤마다 몰래 베겟닛을 적신다.
육체적 힘겨움과 고통은 사라졌어도 이젠 갑자기 많아져 버린 시간과 살아가는 
절실한 이유가 한가지 없어진 남편은 빈 옆자리의 서늘함으로 잠들고  매일아침 
허전한 옆구리를 가지고 깨어나야 한다.
그리고 얼마나 길지 모르는 그  시간을 그렇게 잠들고 깨어야한다.  
장모님 
그 좋은 시절을 투병과 고통속에서 보내신 불쌍한 장모님      
하지만 장모님은 장인어른이 계셔서 행복했습니다.
그 장구한 세월을 오롯이 장인 어른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그 사랑하는 사람의 
품 속에 잠들고 그리고 그 사람의 그리움 속에 언제나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빈자리는 모두들에게 이렇게 크게 남아 있습니다.
장모님 부디 극락왕생 하셔서 
이승에서 부디 못다한 행복 찾으시고 장모님만 바라보다 저렇게 늙어버리신 
장인어른 살아계실 때까지 건강하시고 즐겁게 남은 여생 보낼 수 있도록 굽어 
보살펴주십시요
그리고 다시 이승에서 만나시는 날 속세의 힘겨운 짐 훌훌 털어버리시고 복되고
아름답게 화합하소서      
    
고이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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