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4월18일 토요일 오전 10시 41분. 오전 8시 대전을 출발한 산악회 버스가 언양,울산방면 35번 국도변에 위치한 포석정 주차장에 도착했다. 오랫만에 포석정터를 천천히 둘러 보기로 한다.
흔히들 "겨울 11월에 포석정에 가서 잔치를 베풀고.."라는 삼국사기의 한 귀절만으로 견훤에게 피살당한 경애왕(924 ~ 927)을 조롱하며 아울러 중국의 명필 왕희지가 친구들과 함께 물 위에 잔을 띄워 술잔이 자기 앞에 오는 동안 시를 읊어야 하며 시를 읊지 못하면 벌로 술 3잔을 마시는 잔치인 유상 곡수연(流觴曲水宴)을 비웃곤 한다.
그러나, 나는 최근 일부 학자들이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포석사(鮑石祠)'를 근거로 주장하는 제사를 지내던 장소라는 의견에 귀 기울이고 싶다.
오전 11시 9분. 대부분의 산행객들이 늠비봉,금오정을 따라 금오봉까지 오르는 부엉골을 산행코스로 잡는데 반해 나는 홀로 인적이 거의 없는 우측 계곡을 따라 가파른 산행을 시작했다. 시장바닥처럼 혼잡하지 않아 좋다.
삼층석탑 580m라는 안내 팻말을 따라 산길을 오른지 20여분. 자그만 공터에 빛바랜 삼층석탑이 수줍은듯 자리하고 있다. 석탑은 목탑에서의 건축기술 뿐만 아니고 조각기술까지 덧붙여야만 완성이 되는 것으로 가장 먼저 석탑을 만든 나라는 백제이다. 서산의 마애불이나 정림사지 석탑 등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안내표지 하나 없다. 이곳 경주가 아닌 다른 지방에 있었더라면 아마도 귀하게 대접 받았으리라..
오전 11시50분. 포석정을 떠나 가파른 산길을 오른지 1시간 남짓. 해발 400m정도에 오르자 북동쪽 아래로 늠비봉 5층석탑이 한 눈에 들어 온다.
경주에서 ‘이 시대의 아사달(阿斯達·석가탑과 다보탑을 조각한 것으로 알려진 전설적 석공)’로 불린다는 ‘돌의 달인’ 윤만걸 명장의 주도로 복원된 월출 감상의 명소로 불리는 이 탑은 신라의 삼국 통일 후 이주한 백제인들의 애환이 담긴듯한 백제식 석탑이다.
멀리 북서쪽으로는 가뭄으로 바짝 타 들어간 천년고도 경주의 젓줄인 형산강과 그 너머로 김유신장군 묘,무열왕릉등이 산재한 경주국립공원 화랑지구,서악지구등도 한 눈에 들어 온다. 가뭄으로 타 들어간 대지를 바라보며 한 판 기우제라도 거하게 지내고 싶어진다.
동쪽으로 눈길을 돌리니 해발 365m에 자리 잡은 전망대인 금오정이 손에 잡힐듯 다가 온다. 무거운 300mm 망원렌즈 휴대를 위해 틈틈이 아령,덤벨과 씨름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다. 시끌벅적 혼란스러운 인간군상과 가까이 하지 않고 멀리서 내려다 보는 금오정이 훨씬 친근감이 든다. 인적없는 이름 모를 바위산위에는 바람 또한 시원하기 그지 없다.
오후12시11분. 금오봉으로 향하는 길목 상선암과의 갈림길에서 마애석가여래좌상을 지나친다. 보물 제215호인 서울시 종로구 구기동의 '북한산구기리마애석가여래좌상 (北漢山舊基里磨崖釋迦如來坐像)'과 구분하기 위해 보물보다 격이 떨어지는 경북유형문화재 제158호인 이곳을 흔히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三陵溪谷磨崖石迦如來坐像]이라 칭한다.
높이 7m, 너비 5m 되는 거대한 자연 암벽에 6m 높이로 새긴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작품이며 머리 부분은 8세기 이전에 조각된 것으로 추정되며, 선각으로 처리된 몸부분은 9세기의 기법으로 추정된다는 얘기들을 한다.
금오산에 2개 있는 상사바위 중 동편 상사바위를 지난다. 고려시대 동경(東京)이었던 경주의 내력을 기록한 책인 연대 미상의 동경지(東京誌)를 1669년경주부사 민주면과 진사 이채 등이 중수 간행한 동경잡기에는 이 상사바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상사바위는 금오산에 있다. 그 크기가 백여발이나 되는데 그 생김새가 가파르게 솟아 잇어 오르기가 어렵다. 상사병에 걸린 사람들은 이 바위를 위하고 빌면 병이 낫는다." "산아당(産兒堂)은 금오산에 있는데 아기를 낳는 모습을 돌에 새겨 놓았다. 신라 때 아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빌던 곳이라 전하는데 가위와 칼자국이 남아 있다."
상사바위 바로 뒷편 모습이다. 바위 아랫쪽 갈라진 작은 바위를 산아당이라 부른다 한다. 방향도 남쪽이라 따뜻하고 아늑한 곳이다. 그래서인지 더위를 식히며 환담을 나누는 중년부부의 모습에서도 편안함이 느껴진다.
낮12시38분. 정상석 뒷편에 한시를 새기고 아래에 우리말로 해석을 한 글을 읽어보며 멋드러진 자태의 소나무를 등지고 왔던 길을 되돌아 하산을 시작한다.
"금오산을 노래함
높고도 신령스런 금오산이여! 천년왕도 웅혼한 광채 품고 있구나. 주인 기다리며 보낸 세월 다시 천년 되었으니 오늘 누가 있어 능히 이 기운 받을련가? "
오후1시39분 상사바위 근처에서 점심 식사 후 휴식을 취한 후 하산길목 마애석가여래좌상 [三陵溪谷磨崖石迦如來坐像] 아래에 자리 잡은 상선암을 지난다. 천년고도 경주 남산의 사람 왕래가 빈번하다 못해 혼잡스러울 정도인 이곳 삼릉계곡에 자리 잡은 암자가 이리도 초라해 보일 수 있는지 의아스럽기조차하다. "빈익빈부익부(貧益貧富益富)"라는 문구만 머릿속으로 맴돈다.
상선암을 지나며 앙증맞은 다람쥐 한 마리를 만났다. 산행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다람쥐들은 사람을 보기가 무섭게 시야에서 사라지는데 이 다람쥐는 겁이 없는 편이다. 가까이서 바라보고만 있다. 세상 물정을 몰라서인가? 아니면 나의 인품(?)을 믿어서인가?
오후1시54분 보물 제666호인 경주삼릉계석불좌상 (慶州三陵溪石佛坐像)이다. 화강암을 조각하여 만든 것으로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근에는 큼직한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자리잡고 있다.
8각의 연화대좌에 새겨진 연꽃무늬와 안상을 비롯하여 당당하고 안정된 자세 등으로 보아 8∼9세기에 만들어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라는 설명이다. 손상 입은 안면,좌대 등 보수공사가 빨리 끝나 좀 더 정돈된 상태로 관광객을 맞을 날을 기대한다.
오후2시11분. 자연 암벽의 동서 양벽에 각각 마애삼존상을 선으로 조각한 6존상으로, 그 조각수법이 정교하고 우수하여 우리나라 선각마애불 중에서는 으뜸가는 작품으로 꼽히고 있는 선각육존불(線刻六尊佛) 이다.
오른쪽 삼존상의 본존은 석가여래좌상이며, 그 좌우의 협시보살상은 온화한 표정으로 연꽃을 밟고 본존을 향하여 서 있다. 왼쪽 삼존상의 본존 역시 석가여래로서 입상이며, 양쪽의 협시보살상은 연꽃무늬 대좌 위에 무릎을 꿇고 본존을 향해 공양하는 자세이다.
오후2시17분 지난 1964년 8월 동국대 학생들에 의해 30m 남쪽 땅 속에서 발견되었다는 머리와 손이 떨어져 나간 '삼릉계 석조여래좌상'이다. 왼쪽 어깨 아래와 오른쪽 팔꿈치 아래가 떨어져 나간 미로의 비너스보다 내 눈에는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왼쪽 어깨에서 흘러내려 매듭 지어진 가사 끈과 아래 옷을 동여 맨 끈, 그리고 무릎 아래로 드리워진 두 줄의 매듭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된 점 등으로 보아 사실적 이상주의에 입각한 8세기 중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는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불상의 목이 잘려진건 아마도 조선 후기의 폐불정책 및 이른바 풍수지리설에 근거한 명당찾기와 관련이 있을듯도 하다.
오후2시24분 산길이 끝나고 삼릉으로 향하는 평지로 들어서며 운치있는 소나무들이 진한 솔향기와 우아한 자태로 산행에 지친 길손들의 눈과 코를 자극한다. 예술적 감각이 뛰어났던 신라인들의 후예들이 사는 곳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오후2시28분 흔히 배리삼릉이라 불리는 삼릉계곡 이름의 유래인 삼릉에 도착했다. 사적 제219호인 이 능은 신라의 박씨 왕인 제8대 아달라왕(阿達羅王), 제53대 신덕왕(神德王), 제54대 경명왕(景明王)의 능이라 한다. 능(陵)의 형식은 규모가 큰 원형 토분(土墳)이며, 표식(表飾)은 하나도 없고, 상석(床石)이 하나 있으나 이것은 최근에 설치한 것이라 한다. 중앙에 위치한 신덕왕릉은 1953년과 1963년 2차례에 걸쳐 조사되어 내부 구조가 밝혀졌다는데, 8대 아달라왕의 무덤이 600여년의 차이가 나는 다른 두 왕의 무덤과 나란히 있다는 점은 의문이다. 좀 더 면민힌 조사가 필요할 것 같다.
오후2시42분. 귀가 차량 탑승 시간에 여유가 있어 부근의 자그마한 사찰인 망월사를 찾았다. 대부분의 사찰이 조계종이지만 이곳은 흔치 않은 원효종 사찰이다.
망월사의 창건 및 연혁은 자세하게 전하는 문헌 기록이 없는데, 절에서 전하기로는 신라 선덕왕(재위 632~646) 때 선방사(禪房寺)로 창건되었다 한다. 그 뒤 임진왜란으로 폐사 되었고, 1950년 무렵 옛터 위에 중건되어 오늘에 이른다. 절에서 전하기로는 망월사라는 절 이름은 대웅전을 지을 때 땅에서 옛날 초석이 나왔는데 망월사 라고 새겨져 있어 그 이름을 그대로 쓴 것이라고 한다. 망월사는 원효종의 중요한 사찰로 꼽힌다.
오후2시49분. 귀가 차량 탑승지인 서남산주차장(삼릉주차장)으로 향하는 35번 국도변에는 겹벚꽃이 한창이다. 벚나무 아래를 걸으며 사랑을 속삭이는 남녀를 보며 오래 전 젊은 날의 내 모습을 떠 올리며 주말 하루를 마감한다.
겹벚꽃은 장미과의 낙엽교목으로 주로 산지에 퍼져 있다. 일반적인 왕벚꽃보다 개화시기가 늦다. 높이 20 m에 달하고 수피(樹皮)가 옆으로 벗겨지며 검은 자갈색(紫褐色)이고 작은가지에 털이 없다. 잎. 꽃은 4∼5월에 분홍색 또는 백색으로 피며 2∼5개가 산방상(房狀) 또는 총상(總狀)으로 달린다. 꽃자루에 포(苞)가 있으며 작은꽃자루와 꽃받침통 및 암술대에는 털이 없다.
|
|
|
|
|
|
|
출처 : 김헌수 조선 온누리님 블로그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