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첫째 주
2009년 6월 2일 (화)
나비의 꿈 읽다.
나비의 꿈
함평 나비축제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나비하면 함평이 떠오른다.
적어도 그 곳에서 나비축제를 하고 전국적으로 꽤 유명한 축제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황비서가 권해 준 책인데 내용도 그다지 장황하지 않고 흡인력이 있어서 단숨에 읽어 버렸다.
그 책을 읽고 나서 무엇이 생각났을까?
한 사람의 신념과 열정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리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거
허황된 나비의 꿈은 한 실천가에 의해 구체화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심어주었다는
거
이 책은 함평에서 태어나 함평에서 자라며 함평이 나비축제를 통해 커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한 토박이에 의한 쓰여진 이야기다.
꿈꾸는 사람들이 함께 이루어 낸 작은 기적에 관한 감동의 리포트다.
성공한 지역사회 축제 정도로 여겼던 나는 두 가지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함평 나비축제의 규모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어마어마 하다는 거
함평의 나비가 날기 까지 수 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있었다는 거
근데 싸 돌아 다니기 좋아하는 내가 왜 그 축제에 가보지 않았는지 ....
함평나비 축제
2008년 전국 최우수 축제에 함평나비축제 선정
전국 최고 자치단체 상에 함평의 이석형 군수가 1위
2006년, 2007년 지방자치단체 글로벌 경영대상 지방자치단체 경영부문 2년 연속수상
2007년 대한민국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문화대상
2008년 4월 세계 나비곤충 엑스포 유치
KTX가 관람객을 유도하고 에버랜드 보다 더 많은 관광객 유치
5월 5일 65,000명 11일 86,500 / 1일 최대 방문객수 기록
입장료 수입 100억 ,외국관광객 3만 , 농산품매출액 5억 3000만
1919년 첫 번째 나비축제 이후 10년간 함평을 다녀간 사람 100만명 넘는다(4명중 1명)
각종 평가에서 받은 시상금 1044억원
나비 브랜드 지자체 중 최고
책을 읽는 동안 작은 전율과 감동이 뭉클뭉클 밀려왔다.
사실이 전하는 감동에 마치 내가 그 주인공인 것처럼 콧날이 시큰거리고 가슴이 벅찼다.
애벌레의 화려한 탈피는 이석형이라는 한 사람의 아이디어와 열정이 이루어낸 성과다.
그는 보통사람이었지만 특별했다.
수 많은 반대와 역경에도 흔들리지 않았으며 가슴으로 소통하면서 무한한 긍정적인 에너지를
퍼뜨리며 스스로도 상상하지 못한 성공을 이루어 냈다.
대물림된 패배의식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반대와 여러 번의 실패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또 그런 반대와 실패를 용인할 수 있는 조직이 얼마나 될까?
기발한 상상과 참신한 아이디어로 탄생한 브랜드
함평나비란 브랜드는
공해 없는 아름다운 자연
친환경 농산물의 함평을 함축하다.
구구절절 한 수사 없이도 ‘공해 없는 아름다운 자연’ ‘친환경 농산물’의 2가지 핵심을 아우를 수
있었고 엄청난 경제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기에 이른다.
나비의 화려한 날갯짓을 시작으로 모든 건 긍정적인 상황으로 풀려 나갔다.
함평의 나비는 긍정의 희망을 불러내는 주술이되었다..
가속도의 원리를 아는가?
성공을 맛 본 사람들은 성공으로 가는 길에서 얻은 시행착오와 경험으로 더 큰 성공을 이루어 낼 수 있다.
처음의 작은 차이는 점점 더 커져서 그 다음에는 따라 잡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차이를 만든다.
나비축제의 성공 이후에 성공바이러스에 감염된 함평 사람들은 국향대전과 갯벌체험의 축제도 성공적인 축제로 정착시킨다.
그건 한 번의 성공에 고무된 사람들이 한 계절에 국한된 축제를 다른 계절에도 연장하고자 하는 자 하는 또 따른 도전의식에서 비롯되었다.
친환경과 계절이라는 하나의 울타리 안에서 끊임없이 함평을 부각시키고 변화를 도모하려는 그들의 부단한 노력이었다.
그리고 나비의 꿈은 미래의 백년지계 까지 확장되었고 학생들이 모두 떠나던 시골 함평의 고등학교를 결국 인근에서 서로 찾아올 수 있는 명문으로 만들어 냈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하고 부자가 더 부자가 되는 논리처럼 한번 성공의 단 맛을 본 그들은 거침없이 전진하고 있다..
가식없는 그들의 고뇌와 열정 그리고 함께 노력하던 그들의 모습이 감동을 주었다.
아무 기반도 없던 시골사람들이 꾸었던 꿈이고 황량한 벌판에 그린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보통사람들이 이루어 낸 인간승리였다.
함평군수 이석형이라는 사람을 꼭 한 번 만나보고 싶고 다음엔 함평에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비 알을 깨고 나오다.
애벌레는 물었다.
“어떻하면 나비가 되죠?”
“날기를 간절히 원하면 돼
하나의 애벌레로 사는 것을 기꺼이 포기할 만큼 간절하게.”
“그럼 죽어야 한다는 뜻인가요?”
“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겉모습은 죽은 듯이 보여도 참모습은 여전히 살아 있단다.
삶의 모습은 바뀌지만, 목숨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야.
나비가 되어보지도 못하고 죽는 애벌레들하고는 다르단다.”
-트리나 트리나포올러스(Trina Paulus)
“우리는 항상 지레짐작으로 뭐든 할 수 없다고만 생각했습니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없다고 넘겨짚었습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제 발로 알아서 찾아오는 기회는 하나도 없더군요"
실무 담당자는 왼쪽 눈가에 맺힌 눈물을 얼른 오른손으로 훔쳐냈다.
“그리고 바보같이 아무런 일도 새롭게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어제가 오늘 같았고, 내일에 대한 기대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할 수 없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할 수 없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걸 해내고 싶고 자랑하고 싶습니다.
‘여봐라. 우리가 해냈다.! 우리도 이렇게 멋지게 해낼 수 있지 않느냐.하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모두들 몰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함평에서 평생을 보낸 어느 할머니는 ‘이런 장관은 처음봤다’며 혀를 내둘렀다.
축제 준비로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들 위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실 우리가 정말 해낼 수 있을지 몰랐습니다.”
누군가 입을 열자 어둠 속에서 조용한 ‘끄덕임’들이 이어졌다.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마냥 두렵기만 했습니다.
딴 나라, 딴 세상 이야기인줄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죠.
하지만 꼭 한번 해내고 싶었습니다.”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리는 기어이 해냈다.’는 자부심이 담긴 힘찬 박수였다.
세상을 향해 날아오른 나비
꿈이 있는 자는 목표가 있고 목표가 있는 자는 계획이 있고,
계획이 있는 자는 실천을 하고, 실천을 하는 자는 실적이 있고,
실적이 있으면 반성을 하게 된다.
반성을 하게 되면 또 다른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
누구에게나 머룰 것인지, 떠날 것인지, 뛰어들 것인지,
관망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세상이 변화의 거대한 용틀임을 할 때,
그것에 정면으로 뛰어드는 것,
그 결단의 원동력이 되는 것은 바로
‘최상의 삶’을 살고자 하는 열정이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다.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찾아와주는 사람들이 너무 고마워서, 그들 덕에 무럭무럭 자라나는
마을의 ‘나비의 꿈’, 이 꿈이 밟고 다니는 계단 하나하나가 믿을 수
없는 기적 같아서…
그래서 줄 수만 있다면 뭐든 주고 싶은 ‘축제의 대장님’들 이었다.
가슴 벅찬 변화는 끝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마을을 휘감아 도는 맑은 기운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을
특별한 변화였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쳤고 하는 일마다 잘 되리라는 긍정적인
아우라를 온 몸으로 발산했다.
‘꿈의 마을’을 찾아 드는 사람들과 아들을 맞이하는 사람들로 365일 북적거렸다.
그저 구경만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외롭고 쓸쓸하던 과거의 그늘 역시
그 어디에도 없었다.
함평 할아버지
“추석이나 설에도 식구들이 다 모이질 못하는데, 나비 축제 때는 5월 첫 주에 연달아
나흘,닷새를 쉬니까 모두들 모여.
내 새끼들 다 볼 수 있으니까 나는 좋지.”
한 사람의 엉뚱한 상상과 열정으로 수 많이 사람들이 행복해진 함평의 모습이다.
2009년 6월 6일 (토)
행복을 찾아서? 라는 영화를 보았다.
의료기 세일즈맨 크리스가드너
무능력한 주인공과 가난이 싫어 부인이 떠난 후
아이를 돌보아야 하고 밀린 집세도 내야 하는데 잔뜩 들여 놓은 물건은 팔리지 않는다.
남은 돈이라고는 21달러 33센트
우연한 기회에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증권회사에 인턴으로 채용되었지만 정 직원이 되기 위해서는 무보수로 일하면서 실적과 시험으로 60대 1의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삶의 마지막 희망을 붙들기 위해 없어 아들과 노숙자 시설과 지하철을 전전하면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학력과 경력이 일천한 그는 결국 그는 주식중개인의 꿈을 이루고야 마는데.
합격증을 거머진 그 순간이야 말로 그의 인생 중 최고로 행복한 순간이었다.
성공적인 월스트리트 진입을 기반으로 그는 1억 8천만 달러를 보유한 자산가가 되고 현재 ‘가드너 리치 앤드 컴퍼니’의 대표로 아들과 함께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물론 책과 강연들을 통해 부수입을 올리면서 ….
더 나빠질 수 없는 절망의 끝에서 만난 희망
다시 세상에 휘둘리지 않아도 되는 삶
그에겐 그것이 삶의 목표였고 그 것을 이루어낸 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 이었다.
나의 행복은 어디 있는가?
날아간 나의 파랑새는?
뜨거운 태양빛을 가려주는 한 낯의 오솔길 숲이 행복이었다.
그 위로 불어가는 바람을 맞으며
처음 와보는 어느 산기슭을 걸으며 보낼 수 있는 이 여유가 행복이다.
이번 마흔 한번 째 여행길은 동생들과 함께 하고자 했다.
머피의 법칙처럼 당연히 아무 문제없이 잘되어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극적으로 반전되는 동생들의 삶이 황당하고 답답해진다.
세상에 운명이란게 있을까?
아니면 수 많은 인생의 변수와 삶의 함수가 실타래처럼 엮이고 꼬여서 만들어 그 기구한 결과를 우리가 운명이라고 부르는 것인가?
한 날 한시에 태어났으니 막내들은 같은 운명을 타고 난 걸까?
공교롭게 2008년 세계적인 공황과 함께 다가온 경제위기에서 유독 둘만이 삶의 흐름이 바뀌어 버릴만한 치명타를 입었다.
그리고 섬찟하게도 지금 흘러가는 상황이 너무 닮아 있다.
별다른 복선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모든 것이 순식간에 악화되고 기분 나쁜 마찰음과 함께 파열음을 낸다..
서로에게 문제와 이유가 있겠지만 배우자에 의해 좌절과 낙담 그리고 혼돈과 체념의 질곡 속에서 허둥거리는 삶이 마치 운명이기라도 한 것처럼…
관상과 사주가 운명을 결정하는 거라면 삶이란 정말 무서운 거다.
모든 것이 운명과 유전자에 의해 되물림 되는 거라면 세상은 너무도 불공평하다.
그릇과 능력의 범주가 정해져서 태어나고 운명에 의해 그 길을 따라 가는 거라면
거기엔 노력과 희망이 끼어들 틈이 없으니 절망이다.
동생들을 보면서
그리고 2년 연속해서 계속된 나의 사고와 그 후유증을 보면서 정말 인생에는
이미 정해진 운명 같은 것이 있는 게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설령 그렇다 해도 세상에 반란을 일으킬 방법이란 없다.
그 운명을 미리 들여다 볼 수 없으니 열심히 살아가는 수밖에 …
긍정적인 사고 방식이 성공을 부른다는 진리를 믿고 따르는 수밖에…
“아무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라 했던 노통의 말처럼 설사 운명이 있더라도 아직 남아 있는 반전의 기회와 운명이 있다고 믿어볼 밖에.
우리가 걸어가는 인생길은 평탄하지만은 않다.
가파른 벼랑 길도 있고 편안한 길도 있다.
가끔 폭우를 동반한 모진 비바람을 만나야 한다.
기댈 누군가가 있긴 하지만 그건 마음의 한 모서리 일 뿐이다.
결국 우리는 늘 비바람 치는 벼랑길을 홀로 걸어가야 한다.
뒤로 돌아갈 수 없다.
뛰어내릴 수도 없다.
살아 가면서 늘여놓은 수 많은 복잡한 인연의 실타래를 외면할 수 없다..
그렇다고 우리의 생각 속에서 지레 인생을 벼랑길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 시간이 지나면 다시 꽃 향기 가득한 오솔길을 걸을 수 있으리라.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살아 가는 바른 자세 일 듯 싶다.
삶이란 아직 진행형이고 아직도 많은 시간이 남아 있으며 비탄의 숲에 남겨두기에는 너무 짧고 소중하지 않은가?
우린 함께 장안산을 올랐다.
푸른 숲이 오아시스처럼 뜨거운 태양으로부터 우리를 감싸 주었고
그 그늘과 시원한 바람 그리고 시종일관 부드럽게 이어지는 편안한 오솔길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도 넉넉한 자연 속에서 가족의 염려와 따뜻함을 전했다.
삶의 그늘은
아무나 드리우는 것이 아니다.
사나운 바람을 이겨내고
뜨거운 햇볕의 고통을 겪고 나야
비로소 그늘은 소유하는 자가 된다.
삶의 혜안을
아무나 지니는 것이 아니다.
보기 싫은 것도 헤아려 볼 줄 알고
보고 싶은 것을 참고 지나쳐야
참된 지혜의 눈을 갖춘 자가 된다.
이름은 모르겠고 어느 신문에서 만나던 싯구절 이다.
무령재에서 장안산 정상을 거쳐 범연동으로 이어지는 산행로는 4시간쯤 걸렸다.
저녁에는 비가 왔다.
어머님 모시고 정림동에서 곱창전골을 먹으며 이서방과 모처럼 술 한 잔 나누었다.
비 오는 일요일은 아무 생각 없이 집에서 책 읽고 글 쓰고 중국어도 좀 공부하면서 한가로운 하루를 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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