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2009년 8월 31일자
[강원 태백 생생 트레블]
해바라기 꽃물결 초가을을 유혹하고…
매봉산 바람개비 낭만을 부채질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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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은 늘 안타깝고 위험하다. 서로의 시선이 어긋나기만 해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스 신화 속의 짝사랑 얘기가 그렇다. 나르키소스의 사랑을 갈구한 수다쟁이 요정 에코는 짝사랑의 고통에 육신이 까맣게 타버려 목소리만 남았다. 자기 자신을 흠모하게 된 나르키소스의 아름다움 역시 산산이 흩어져 한 송이 꽃으로 변했다. 큐피드의 화살을 맞은 태양신을 짝사랑한 클리티에의 운명도 정해진 것이었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하늘의 태양신을 눈으로만 좇던 그의 사지에는 뿌리가 내렸고 살에서는 잎이 돋았다. 태양이 움직이는 대로 고개를 돌리는 꽃,해바라기 이야기다.
Take1 노랗게 물든 산허리
현실의 해바라기는 신화 속 짝사랑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은 듯하다. 강원도 태백시 황연동,암소 아홉 마리가 배불리 먹고 누워 있는 지형지세라는 구와우(九臥牛)마을의 해바라기 말이다. 백두대간의 8부 능선쯤인 해발 850m 고지에 자리한 구와우마을에는 고원자생식물원이 있다. 40만㎡(12만평) 넓이의 산구릉 16만㎡(5만평)가 샛노란 해바라기 밭으로 꾸며져 있다. 갖가지 들꽃과 어울린 해바라기 풍경이 새로워 8월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 고원자생식물원의 해바라기들이 사람을 마중하는 자세가 낯설기만 하다. 살며시 돌아서서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는 여인의 모습인데,그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일편단심 태양신만 좇아 여전히 짝사랑을 하겠다는 것일까. 이쪽에서 먼저 마음을 주고 바라보면 고개를 들고 웃어주기는 할까. 처음에는 그 속내를 짐작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곳 해바라기들이 신화 속의 짝사랑에서 벗어나 자기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한다는 사실을 아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다가서서 눈길을 건네는 것만으로도 해바라기의 그 샛노란 시선을 한몸에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고원자생식물원의 해바라기 밭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식물원 초입의 작은밭(3만3000㎡)과 얕은 구릉 너머의 큰밭(13만2000㎡)이다. 먼저 작은밭을 만난다. 고흐의 해바라기처럼 강렬한 노랑 색감에 대한 기대는 접어두는 게 좋다. 작은밭의 해바라기는 모두 등을 돌린 채 안쪽 망루 방향으로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어 노랑보다 초록 색감이 짙다. 첫 발걸음이 왠지 서먹하고 낯선 느낌이 드는 까닭이다.
Take2 들꽃과 바람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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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해바라기를 정면으로 대할 차례다. 숲에 갇힌 듯한 작은 해바라기밭이 반갑다. 파란 하늘이 갑자기 더 환해지는 것 같다. 등을 돌리고 서 있던 해바라기들이 이제 정면에서 눈을 맞추자고 해서다. 그 뒤로 망루가 서 있다. 망루 아래로 펼쳐진 해바라기밭 풍경이 시원하다. 해바라기 하나 하나가 예쁘다. 키는 크지 않고 얼굴은 조막만한 게 전형적인 동양의 미인형이다.
화장은 좀 짙은 편이지만 천박하지 않아 눈길이 더 간다. 등을 돌리고 서 있을 때와는 달리 마음이 따스해 보인다. 이제는 이루지 못할 짝사랑이 아니라 눈높이에 맞는 사랑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듯하다.
해바라기의 꽃과 키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어릴 적 기억 속의 해바라기는 종자가 달랐다. 키는 물론 꽃도 훨씬 더 컸다. 이곳의 해바라기는 다 자라면 150㎝ 정도인 선킹 품종이라는데 되도록이면 성장을 못하도록 하기 위해 비료도 안 준다고 한다.
"두 번째 해바라기축제는 시작도 하지 못했어요. 키 큰 해바라기들이 태풍에 죄다 쓰러졌기 때문이죠."
고원자생식물원의 김남표 대표(45)는 4년 전의 악몽을 떠올리며 아직도 가슴 아파한다. 그래서 택한 것이 키 작은 해바라기 종자였던 것.태백 태생으로 건축인테리어 사업을 하던 그가 이곳 고원자생식물원을 일군 것은 8년 전이다. 1970년대 목장으로 처음 개발돼 고랭지 배추밭으로 이용되던 곳을 매입해 해바라기를 심고 축제까지 연 게 올해로 5년째다.
"해바라기는 개인적으로 그냥 좋아해서 심었어요. 예술식물원을 만들려는 구상도 갖고 있어요. 식물원 군데군데 설치한 예술작품들 보이지요. 궁극적으로는 자연을 원상태로 되돌려 놓는 작업이기도 해요. 해바라기보다 구와우마을의 꾸밈없는 자연,바람,냄새… 뭐 그런 것들을 놓치지 않고 즐기는 게 중요하지 않나요?"
관람로는 얕은 구릉 너머의 큰 밭으로 이어진다. 중간의 오른편 경사면은 초지.양떼를 방목할 계획이었는데 이런저런 공사비도 많이 들고 해서 손을 못 대고 있는 곳이다.
숲길을 산책하는 맛이 제법 쏠쏠한 관람로를 조금 더 걸으면 큰 해바라기밭이 펼쳐진다. 길목을 돌아 왼편 아래의 모든 해바라기가 일제히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추는데 정말 신화속 짝사랑의 대상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Take3 검룡소와 풍력발전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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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룡소는 1억5000만년 전 백악기에 형성된 석회암동굴 소(沼).하루 2000m가량의 지하수가 콸콸 쏟아져 나온다. 수온은 사계절 섭씨 9도를 유지한다. 이 물줄기가 폭 1~2m,깊이 1~1.5m의 꼬불꼬불한 물길을 만들었는데 그 모습이 용이 물을 차고 오르는 것 같다. 서해의 이무기가 용이 되기 위해 한강을 거슬러 검룡소에 오르다 생긴 흔적이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태백 시내의 황지는 낙동강의 발원지.태백산 함백산 백병산 매봉산 등의 물이 땅으로 스며들었다가 이곳 황지에 이르러 하루 5000m씩 뿜어져 나온다. 인색한 황부자의 집터가 연못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구문소도 찾아보자.황지에서 발원된 낙동강 물줄기가 뚫어 놓은 바위굴이다. 6억년 전 한반도 탄생의 비밀이 간직된 자연사 유물도 관찰할 수 있다.
매봉산(1303m) 정상 능선의 바람의 언덕도 필수 코스다. 구와우마을과 검룡소 사이,삼수령 맞은편에 난 산길로 올라간다. 4륜구동 차량이 아닌 보통 승용차로도 갈 수 있다. 매봉산 북쪽 산등성이는 국내 최대 규모의 고랭지 채소밭이기도 해서 농로가 잘 닦여 있기 때문이다. 짙푸른 고랭지 배추밭 풍광이 무척이나 이국적이다.
정상 능선에 설치된 8기의 풍력발전기 모습도 그림 같다. 나무로 지은 풍차와 세련된 바람개비도 어울려 낭만을 더해준다. 배추밭은 수확이 많이 된 상태라 깔끔하지는 않다. 그러나 정상을 타고 넘는 바람과 뭉게구름 핀 파란 하늘을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을 내 매봉산 정상으로 향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태백=글/사진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여행 TIP
고원식물원서 묵밥 맛보고 하이원리조트서 터비썰매 타볼까
서울에서 경부·중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여주휴게소~중부내륙고속도로~감곡나들목~38번 국도~충주~제천~영월~정선 고한~태백 화전사거리~하장방면 35번 국도~구와우마을 고원자생식물원.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태백행 버스가 하루 16회 다닌다. 태백 시내에서 구와우마을까지 택시로 10분 정도 걸린다. 고원자생식물원(033-553-9707) 입장료는 어른 5000원,학생 3000원.
구와우마을에서 나와 우회전,하장방면 35번 국도를 따르면 오른편에 삼수령이 있다. 삼수령 맞은편에 매봉산 고랭지 배추밭과 풍력단지로 가는 길이 나 있다. 35번 국도를 따라 조금 더 가면 검룡소 표지판이 보인다.
고원자생식물원에서 산채비빔밥이나 묵밥을 맛볼 수 있다. 태백 한우가 유명하다. 태성식육실비식당(033-552-5287),배달식육실비식당(033-552-3371) 등의 한우 생고기 연탄구이가 담백하다. 등심과 갈빗살이 있다. 식당에 따라 1인분(200g)에 2만원 또는 2만1000원 한다.
대규모 숙박시설로는 오투리조트(033-580-7777)가 있다. 정선 고한의 하이원리조트(1588-7789)는 온 가족이 머물기에 안성맞춤이다. 터비썰매와 쿨라이더가 인기 만점이다. 운탄길을 중심으로 만든 '하늘길'에서 가을 들꽃 트레킹의 묘미를 맛볼 수 있어 좋다. 드라마 '식객'의 세트장을 실제 식당으로 리모델링한 정통 궁중 한식당 '운암정'의 요리도 태백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태백시청 관광문화과 (033)550-2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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