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부르는 노래 8(백두대간 7-1구간 : (육십령-할미봉-서봉-남덕유-월성치)
아쉬운 한 해가 저문다.
내 인생이 한 모퉁이가 이렇게 아프게 허물어지는 것이 견딜 수 없어 우린 그 많은 술을 마시며 한 해에
비로소 안녕을 고한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그녀를 차마 맨 정신으로 보낼 수 없어서 우린 반쯤 취해서 몽롱해진 눈으로 그녀를
배웅해야 한다.
아별은 원래 슬픈 것이지만 잘 살았던 한 해와의 이별은 그리 슬프지 않은 것이었다.
오늘 지는 태양이 내일 다시 떠 오르듯이 한 해가 가면 또 한 해가 오는 것이기에 우린 어쩌면 떠나가는 한
해의 아픔 때문이라기 보다는 이별의 슬픔을 빙자해서 한 잔 더 마실 구실을 찾았는지도 모른다.
어쩔시구리 !
그렇게 만만하게 흘려 보낸 세월이 몇 해인가?
눈 깜빡할 사이에 십 수년이 지났고 이젠 가파를 내리막길에서 가속도 까지 붙었다.
무슨 넘의 한 해가 한 달이 지나가듯 빠르냐?
도대체 내가 탔던 완행열차는 언제부터 황천행 초고속 열차로 바뀐 것이여?“
지난 번 후배녀석 장인이 71살에 돌아 가셔서 애석타 했는데 이번에 돌아가신 직원 부친은 69세라네
“허걱”
내 나이로 환산하면 이별의 술자리는 몇 번 이나 남은겨?
아! 한 해가 흘러가는 것은 다시 새로운 한 해가 오는 것만이 아니다.
우리에게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신체와 정신의 자유가 한 웅큼 줄어 드는 것이다.
갈 수 있는데 안가는 것이 아니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날의 비애
사지 멀쩡한 채로 갈 수 없는 나라의 꿈과 추억으로만 살아 가야 할 슬픈 날이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
오는 거란 말이다.
누가 그러데 젊어서는 열정과 사랑으로 살고 나이 들어서는 추억과 정으로 산다고…
다리심 좋은 날 부지런히 댕겨야 한다고…
그래서 난 지난해에도 여기 저기 쏘다니며 정말 신나게 살았다.
저거 한 번 해볼 껄
거기 한 번 가볼 껄
그거 한 번 먹어볼 껄
먼 훗날 껄껄걸 거리고 싶지 않아서…..
양반곰처럼 뻑하면 해외로 쏘다니지 못해도 대한민국 구석구석은 남 못지 않게 다녔다..
올해 내가 갔던 여행지와 산행지 사진 한 장씩 만 빼 놓아도 100장은 족히 넘을걸?
누구든지 뻔질거리며 싸 돌아다니는 것이 잘 살고 있는 거라고 강변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내가 무얼 하면 즐거운가 하는 기본 견적은 나오는 것 아닌가. ?
누구는 푸른 물가에 앉아 하염없이 수면을 바라보아야 행복하고 누군 일하고 돌아와서 악기를 연주하고
그림을 그려야 행복을 느낀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 대자연 속을 활보하는 여행과 산행은 기쁨을 불러 나의 주술이기에 그 횟수 만큼
희희락락하며 보낸 건 확실한 사실이다.
어쨌든 삶의 모래시계는 한 칸 더 내려왔고 올해처럼 신나게 빠대고 댕길 날의 눈금이 한 칸 줄어들었
으니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은 슬픔의 시간임에 틀림없다.
깨달음의 길이 멀어 한 해가 지날 적에 도인들은 두 다리를 펴고 통곡을 했다는데 우린 술잔이라도 부딪
히며 이별의 슬픔과 비탄을 달래고 조용히 사라져가는 우리 가장 젊은 날을 진혼해야 한다.
한 잔의 술을 마시며 우리의 남아 있는 생애와 늑대를 타고 떠난 야차의 펄럭이는 도포자락을 이야기해야 한다.
한 해가 허물어지는 소리와 그 괴로움을 잊기 위한 토악질 소리 가득한 도시 한 가운데에서…
보내야 할 날이 이제 몇 일 남지 않았다.
이제 한 해의 비탄과 슬픔 앞에 마지막 한숨과 아쉬움의 잔을 올린다.
그리고 제단에 꿇어 앉아 지난 한 해 나의 나태와 불경과 오만을 장사 지낸다.
마지막 남은 미련과 후회는 지방과 같이 촛불에 태워 훨훨 날려 보내련다.
내년에는 더 멋지게 살겠노라고…..
오늘 한 해가 무너지는 서러움과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난 다시 산으로 떠나기로 했다.
산 행 일 : 2014년 12월 28일 일
산 행 지 : 백두대간 7구간
코 스 : 육십령-할미봉-서봉-남덕유-월성치-황점
날 씨 : 온화한 날씨 그러나 후반부는 바람불고 추웠다.
거 리 : 약13.7.km
소요시간 : 약 7시간 50분(식사 약 20분)
동 행 : 귀연산우회 대간꾼들 48명
시간 |
경유지 |
비 고 |
08:23 |
육십령 출발 |
|
08:58 |
이정표 |
할미봉0.7km, 덕유삼거리3.4km , 육십령1.5km |
09:27 |
할미봉 |
|
10:34 |
바닥까지 알바 |
|
10:58 |
능선 이정표 회귀 |
서봉3.0km, 할미봉1.8km,월성치 4.0km |
12:03 |
전위봉 쉼터 |
간식 |
12:55 |
서봉(1492m) |
남덕유 1.2km |
13:30 |
서봉하산 |
|
14:12 |
남덕유산(1507m) |
|
14:28 |
남덕유 하산 |
|
15:07 |
월성치 |
황점마을 3.8km , 남덕유산 1.4km |
16:12 |
하산완료 |
|
올해의 마지막 백두대간 길이다.
9시간여 빡센 길에 덕유 능선은 눈까지 잔뜩 이고 있을 것이다.
지금 까지는 아들녀석이 잘해 왔는데 이번 구간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두 주의 공백이 걱정스러워 겨울 산행에 대한 정신교육도 할 겸 녀석을 데리고 갑사에 다녀왔다.
연천봉을 올라 자연성능을 거쳐 금잔디 고개로 하산하는 루트로 4시간 30분여 눈밭 적응훈련 이었다.
이번 덕유산 구간만 잘 마무리 하면 소백산 까지는 무난할 것이다..
생각 보다는 날씨가 많이 누그러졌다.
이번 산행은 초장에 속도를 빨리 해서 선두그룹으로 치고 나가야 한다고 지난 번 아들에게 말해 두었다.
관건은 서봉에 오르기 까지의 시간과 페이스 조절에 달려 있다.
하지만 우린 반드시 남덕유산에 올라야 한다.
내 젊은 날의 숱한 추억과 감동이 남아 있는 산
내 삶의 여울목에서 내 영혼의 혼돈과 방황을 조용히 지켜주던 그 산
비록 백두대간 마루금에서 비켜나 있지만 아들녀석이 만든 역사적인 덕유산 권 첫 발인데 남덕유 산신
령님 알현 안하고 갈 수는 없다.
몇 백 미터만 오르면 바로 거기 성스럽고 장엄한 1500고지 영봉이 있는데 어떻게 못 본 체 그냥 스쳐
지나 갈 수 있단 말인가?
영각사나 황점이나 어디서 올라도 두 세시간 족히 걸리는 그 높고 큰 산을….
그러려면 빠른 속도로 선두그룹을 유지해야 한다.
그 동안 내가 사진 찍으며 움직이는 속도에 맞추어진 아들녀석의 리듬이 좀더 템포를 빨리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번 구간의 대간길은 육십령에서 계속 오름길 능선을 따라 할미봉을 넘고 서봉에 오른다.
등로는 서봉에서 1.2km로 떨어진 곳에 있는 남덕유산의 허리를 휘돌아 월성재로 내려섰다가 다시 산세를
이르켜 삿갓봉과 무룡산을 거쳐 덕유 주릉을 따라 흐른다.
등로는 동엽령 까지 진행 한 후 칠연계곡으로 내려서서 안성 탐방지원센타에서 오늘의 여정을 마무리한다.
오늘구간의 하이라이트는 할미봉에서 서봉에서 이어지는 덕유의 장쾌한 설릉 그리고 서봉과 남덕유의 고원
망루에서 바라보는 장엄한 덕유나라
예상한 시나리오는 초반에 어이없이 빗나 갔다.
아들녀석과 나의 초반 컨디션은 좋아서 할미봉 너머 까지는 선두권을 유지했는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사단이 났다.
백두대간 현재 까지 통산 최초의 알바…
그것도 잠시 잘 못 든 길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단추가 잘 못 끼워진 대형 알바였다.
무언엔가 홀린다는 것이 이런 것이다.
할미봉에서 서봉 길이 계속 오르막 능선으로 연결 되어 있음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 하염없이 비탈길을 계속
치고 내려 갔다.
가는 길에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내려가도 너무 많이 내려간다는 말까지 하면서 내림 길에 한층
가속도를 붙였다.
계곡물이 흐르는 갈림길을 만나고서는 당연히 계곡을 건널 일이 없으니 좌측 길이라고 생각하고 일행들을
앞질러 그 길을 따라 갔다.
“이 길이 아닌개벼 “
가는데 표지기도 한 장 없고 등로는 우리가 내려온 방향 멀지 않은 쪽으로 휘어져 오르기에 직감적으로
잘못된 등로임을 알아 채고 되돌아 내려 왔다.
앞선 산우들은 개울을 건너서 사라졌다.
산자분수령의 원리에 따르면 그 길은 분명 대간 길이 될 수 없는데…
지도를 보면서 생각하다 보니 애초부터 길을 심각하게 잘 못 들었다.
분명 갈림길은 없었는데 엄청 내려온 것도 이상했지만 앞서서 산행대장과 선두그룹이 움직여 가고 있으니
내가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따라만 간 것 또한 문제였다.
결국 앞서 가던 사람들도 돌아왔다.
우린 아득한 능선 멀리서 헛발질을 했다.
능선 갈림길을 한 무리의 산객들이 막고 있어서 선두가 보이는 길로 내려섰던 것이 화근 이었고 뒷 사람들은
별의심 없이 계속 따라 갔던 것이다.
50분이 걸려 단추를 잘 못 끼운 곳으로 되돌아 오니 참으로 헛웃음만 나온다.
그 갈림길에는 이정표도 있었다.
북적이는 사람들이 가려서 길과 이정표를 보지 못했을 뿐…
아무리 그렇다 해도 개울이 흐르는 바닥까지 어떻게 의심 없이 그토록 오래 내려 갈 수가 있나?
누군가 “백두대간 두 번째 하는 무릉객이 맞어?” 라고 할까 봐 얼굴이 화끈거린다.
도중에 갈래 길이 없었다는 생각 때문에 할미봉과 서봉으로 이어진 능선의 개념은 깨끗이 잊어버렸다.
그동안 바닥까지 떨어졌다 올라가던 무수한 지난 대간 길이 각인했던 어리석은 학습효과이기도 했다.
50분의 헛발질이면 우리가 앞서 있었다 해도 심리적인 체력소모 까지 합하면 1시간 이상 뒤쳐진 것이다.
산술적으로 지금 속도의 1.5배 속도로 선두권에 따라 붙어야 한다.
괜스레 마음이 급해져서 능선 오름 길에서 속도를 더 내는데 아들 녀석이 잘 따라오지 못한다..
앞선 길에서 한잠 기다렸다가 뒤늦게 도착한 아들녀석에게 좀더 서둘러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다시 속도를
붙여보니 여전히 힘들어 하면서 처음보다도 발길이 더 밀린다.
힘드냐고 물어보니 알바하고 나서 속도를 내려니 힘이 많이 부친다고 했다.
허기사 그럴 만도 하다.
오늘 일정이 빡빡하다고 신나게 몰아쳐 놓고 한 순간에 길 잘못 들었다고 오름 길을 뛰다시피 올라 와서는
이제 갈 길이 멀다고 다시 달리라고 하니…
내가 뭐하고 있는 거지?
즐겁자고 한 산행을 지금 억지로 고행 길로 만들고 있지 않은가?
열심히 잘 따라 온 녀석이 무슨 죄가 있다고…
원래 리더가 잘 못된 길을 가면 부하직원이 고생하는 것이다.
일에 대한 책임은 리더가 지는 것이고 판단이 잘못되었으면 신속하게 바로 잡아야 한다.
어쩌면 산신령님의 뜻인 지도 모르겠다.
해내는 산행이 아니라 즐기는 산행을 하라시는…
서봉 오름 길에 아들에게 이야기 했다.
오늘은 원래 페이스로 복귀해서 좀더 속도를 늦추어 산행하고 남덕유산을 거쳐 황점으로 하산한다고….
그리고 다음 번에 둘이 한 번 더 와서 동엽령 까지 오늘 못다한 구간을 연결하자고….
그러자 듣던 중 반가운 소리에 귀가 번쩍 뜨이는 아들녀석 한다는 말이
“중간에 내려 갔어도 오늘 구간 다 한 걸로 치면 안돼요”
요놈 봐라?
“야 이 녀석아 다른 사람들은 다 마무리 한 것으로 인정해주어도 넌 그 길을 걷지 않은 걸 알지 않느냐”
속도를 빨리 하는 알바팀을 따라 가기를 포기하고 나서 산행은 갑자기 여유로워지고 마음은 편해졌다.
같은 알바조에 속하면서 동엽령 하산을 포기한 천사님과 알바를 하지 않고도 후미에 밀렸던 진달래님과
함께 4명의 여유로운 꼴지조가 결성되었다.
서봉이 바라다 보이는 중간 봉우리에서 간식과 휴식을 함께 나누며 다시 원기를 북돋은 다음 우리는 바람
도 잠잠한 고원의 봉우리 서봉에 올랐다.
“야호 !”
우린 긴 덕유 능선 한 쪽 끝 서봉에 서서 독수리의 눈으로 해일처럼 일어나는 웅장한 덕유세상을 내려다 본다.
백두대간은 육십령에서 갈기를 휘날리며 활미봉을 넘어 적토마처럼 진군한다.
그 꿈틀거리며 기운차게 흘러가는 능선의 잔등을 타고 넘었다
지난 겨울처럼 설산의 고봉은 고원의 거친 바람소리를 잠재운 채 따듯하게 우리를 맞아 주었다.
기념촬영을 하고 식사를 하려는데 한참 앞서 간 줄 알았던 알바조 산산애님과 산미남님 부부가 식사를 마치고
막 출발하려던 참이었다.
“오잉! 한참 앞서 간 줄 알았는데…”
12시 30분이 넘은 시각이라 지금 남은 거리로 보아서 남덕유에 들리지 않아도 가기 어렵다고 이야기 했는데
가는데 까지 모두들 가보겠다고 서둘러 출발들 하신다.
우리는 천천히 식사를 마치고 다시 한 번 고원의 풍경을 돌아 본 다음 남덕유 쪽으로 길을 잡았다.
남덕유 산으로 넘어가면서 왕래하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다.
남덕유산
남덕유 산에서 바라보는 장쾌한 덕유 주릉은 가슴을 후련하게 한다.
거기 서면 가슴이 다시 뜨거워지고 어디선가 진군의 북소리가 들린다.
무수히 변하는 것들 속에서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남아 있는 그 산이 노장의 가슴에 젊은 날의 추억과
감동을 되돌려 준다.
늘 끈적이는 이카루스의 욕망과 혓바늘 선 삶의 허기에 허덕이는 사람들
고독한 설산에 올라서 허허롭게 바람 한 번 맞을 일이다.
인생은 오늘의 물가에 잔영이 남고 내일의 하늘로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이라
아들과 함께 바람 길에서니 내 인생의 가장 젊은 오늘의 의미가 더 통절해 진다.
아들아 바로 저 능선이 네가 산을 좋아하게 되면 자주 오르내릴 덕유 주능선 이다.
보느냐 저 파도치는 장엄한 능선들
아빠가 보낸 젊은 날처럼 너도 가슴이 뛰고 네 뜨거운 피를 조혈하는 무언가를 만났으면 좋겠다.네 가슴에
언제나 오늘 같은 감동과 출렁이는 바다가 있었으면 좋겠다.
우린 운집한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줄을 서서 간신히 한 장 기념사진을 남겼다,
하산길
단체로온 산객들이 많아서 교행하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다
눈이 다져진 등로에서 한 발짝만 비켜서면 허벅지 까지 빠지는 눈밭이라 교행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고산의 차가운 날씨로 눈이 푸실거려서 속도가 나지 않는다..
삿갓재 대피소 까지 가려 했는데 월성치에서 세시가 넘어 간다.
대피소 까지 가서 하산해도 그리 어두어지지는 않겠지만 일행들이 황점에서 5시 넘어서 까지 우리를 기다
려야 할 것이다.
A팀이 먼저 내려와 중간 탈출로 황점에서 기다려 준 것도 고마운데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할 수는 없다.
백두대간 출정이 없는 주말을 택해 다시 한 번 오기로 한 길이니 월성치로 하산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최 후미조 천사님과 진달래님 그리고 우리는 여유롭게 황점으로 내려섰다.
우리 말고는 연락 온 사람들이 없어서 모두 동엽령으로 넘어 간 걸로 알고 차를 안성으로 돌려 한참을
가는데 산산애님의 전갈이 왔다.
산미남님과 산골타잔 일행 두 분이 삿갓재 대피소에서 하산하고 있다고….
시간상 어려울 거라는 에상이 맞긴 했는데 산미녀님은 앞서 치고 나가서 앞선 일행들을 따라 갔다고 한다.
세상에 남편은 뒤에 팽개쳐두고 후레쉬도 갖지 않고서…
출중한 체력은 이미 알고 있지만 체구에 비해 간도 보통 큰 여자 분이 아니다.
삿갓재에서 동엽령이 6.2km 동엽령에서 안성매표소까지가 4.5km
겨울이 아닌 때야 매표소 까지 4시간 정도면 내려 가겠지만 오늘처럼 눈밭에 발길이 밀리고 사람들과
교행이 많으면 능선에서만 세시간 이상이 걸린다.
게다가 후레쉬도 없는데 앞선 팀을 만나지 못한다면?
그렇다고 보면 집행부가 제시한 삿갓재 대피소 2시 30분 마지노선도 오늘 같은 눈밭 상황에선 무모한 겨울
산행이 될 수 있다.
제 시간을 지켰다 해도 동엽령에서 벌써 어둑해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4.5km 내림 길에 어둠이 깔리면 하산에 두 시간 이상 걸릴 수도 있다.
근데 많은 사람들이 정해준 시간을 넘겨서 동엽령 쪽으로 넘어 갔고 후렛쉬를 지니지 않은 산 친구들도 많이
있었다고 한다
더 심각했던 것은 혼자 떨어져서 산행한 산우도 있었다 한다.
참으로 모골이 송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산은 늘 거기 있다.
오늘 가고 나서 다시 쳐다보지 않을 산도 아니고 앞으로 남은 인생길에서도 두고 두고 만나야 할 그럴 산이다.
이런 큰 산에서 겨울에 대놓고 욕심부릴 일이 아니다.
산 친구들은 기다려 줄 것이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는 무모한 당신을 언제까지나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며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다.
산에 대한 경외심과 겸허함을 잃은 사람은 오늘 비록 무사하다 하더라도 언젠가 한 번은 큰 코 다칠 수가 있다.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겨울산에서 조난을 당하고 얼어 죽은 데 그 사람들이 모두 초보자였을까?
아님 단지 재수가 없었던 사람이었던 걸까?
어쨌든 멀고도 험한 어둠을 뚫고 7시 20분에 내려온 마지막 산우를 끝으로 모두 안전하게 하산했다.
전화위복이라 해냐 하나?
알바를 하지 않았으면 나 역시 그 길을 강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산행의 즐거움은 머리를 풀고 훨훨 날아가고 아들녀석은 엄청난 고통과 힘겨움 속에 잔뜩
주눅이 들었을 것이다.
조금씩 산행이 취미가 붙고 산을 타는 즐거움을 알아 가는데 찬물을 끼얹을 뻔 했다.
잠시 내 눈을 멀게 하신 덕유신령님께 감사 드린다.
8.6km의 능선을 잇기 위해 8.3 km의 오르내림을 다시 해야 하지만 기꺼이 즐겁게 그 길을 갈
것이다.
그 길 위에서 또 다른 날의 새로운 풍경이 인사하고 손을 흔들어 줄 테니까…
어둠과 추위에 굴하지 않고 완주를 이어간 산 친구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다음부터는 좀더 조심하는 안전산행을 당부하고 싶다.
우리는 동엽령 근처의 음식점에서 그날의 무사 귀환을 자축하는 뒤풀이를 마치고 즐거운 마음으로 귀로에 올랐다.
'아들과 백두대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들과부르는 노래 10 - 백두대간 10구간(덕산재-백수리산-박석산-삼도봉-심마골재-물한리) (0) | 2015.01.27 |
---|---|
아들과 부르는 노래 9 - 백두대간8구간(안성매표소-동엽령-백암봉-횡경재-못봉-대봉-빼재) (0) | 2015.01.12 |
아들과 부르는 노래 7 - 백두대간 제 9구간 (신풍령-삼봉산-초점산-대덕산-덕산재) (0) | 2014.12.17 |
아들과 부르는 노래 6 - 백두대간 제 6구간 (무령고개-영취산-깃대봉-육십령) (0) | 2014.11.25 |
아들과 부르는 노래 5 - 백두대간 제 5구간 (복성이재-봉화산-백운산-무령고개) (0) | 2014.1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