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일 : 2016년 3월 16일산 행 지 : 여수 돌산지맥
산행코스 : 돌산대교-소미산-대미산-본산-수죽산-봉황산-금오산-향일암
동 행 : 봉규, 태연 날 씨 : 맑고 화창 소요시간 : 11시간 30분
봉규와는 8년전 지리산에 함께 갔다.
산과 늦바람 난 태연이 하고는 계룡산 종주를 시작해서 속리산,덕유산 여기저기 많이도 쏘다녔다.
봉규와,거북이와 돌산지맥 종주를 하기로 했다.
거북이가 먼저 제안을 했는데 나는 꼭 한번 가고 싶었던 곳이었고 봉규도 돌산대교에서 일부 구간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우린 쉽게 의기투합했다.
봄바람이 살랑거리면 어차피 궁뎅이가 들썩거릴 것이다.
오랜 친구들과 남도의 봄을 먼저 마중하는 산행길 보다 신나는 게 또 있을까?
그래도 봉규와 내가 정년퇴직하고 거북이가 교수다 보니 이렇게 평일에 시간을 맞출 수 있는 거다.
고등학교 때 봉규가 3학년 3반 1번, 거북이가2번 내가,8번
6번 황찬이도 함께 가면 좋은데 12시간 걸리는 이번 구간은 황찬에게는 무리다.
40년 지기들이 모두 내노라하는 산꾼들인데 우린 인생의 황혼길에서야 셋이 함께 제대로 된 산
한번 타보게 되었다.
봉규는 백두대간종주 3번에 9정맥 완주 그리고 지맥 까지 거의 다 섭렵한 대한민국에서도 손가락
안에 꼽힐 대표 산꾼이고 나 또한 젊은날부터 줄곧 산 언저리를 맴돌면서 오지의 웬만한 산 까지다
빠대고 다닌 자타가 공인하는 무릉객이다.
거북이는 50이 넘어가면서 갑자기 늦바람이 나서 산이 내리더니 백두대간에 100대명산에 정맥도
모자라 이젠 족보도 가리지 않는 무차별 식욕으로 동네방네 엄청 나대는 중이다.
그것도 직업의 장점까지 이용해서 대대적으로…
고등학교 때 앞에서 놀던 친구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모두 산에 푹 빠진 것도 신기한 노릇이지만
그 많은 좋은 날 흘려 보내고 머리가 하얘지고 이빨이 흔들거릴 때가 되어서야 비로서 함께할 수
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한 일이다.
서로 떨어져 있고 사는 게 바빴던 탓에 우린 각자 다른 산을 그렇게 헤메고 돌아와 다시 세월의 거울
앞에 섰다.
분기별 부부모임에선 마눌들 때문에 올레길이나 걷는 봉사를 해야 하니 만나도 모두들 좀이 쑤시긴
많이 쑤셨을 것이다.
그래도 참아야 하느니라..노후의 무사안일과 평화를 위하여!
젊은 넘들도 선뜻 도전하기 힘든 코스를 가는 거다.
왜냐구?
우리는 아직 젊으니까…
32km의 먼 길이라 두 번을 왔다 갔다 하느니 귀찮구 차비도 절약할 겸 그냥 한 번에 종주를 해
버리기로 한 거다.
인터넷을 조회하니 통상 13시간 정도 걸린 것으로 나와 있다.
10시간 이상 무리한 산행을 자제하기로 해 놓구선 또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 버렸다.
거북이 꼬임에 그리고 봄처녀의 나른한 유혹에….
봄이란 그런 거다.
엉덩이가 실룩거리고 다도해의 야산 위에서 수줍은 봄처녀와 다시 만날 생각에 마음이 먼저 바빠
지는 거다.
우린 서대전발 12시 42분발 무궁화 열차를 타고 여수엑스포 역으로 갔다.
열차에서 난 불편한대로 3시간 새우잠을 잤고 봉규와 거북이는 잠을 설쳤다.
쯧쯧 …덜떨어진 녀석들 ..
그 나이에도 무에 그리 낯을 가린다냐?
인생은 살아 보니 노인들이 하던 말이 다 맞다.
인생은 짧은 것이고 사는 게 별거 아니라는 그 말 !
다른 것들 다 필요 없다.
이넘들아.잘먹고 잘싸고 잘자믄 된다.
그 속에 삶의 심오한 철학이 다 들어 있는 거다.
아무튼 아무거나 잘 먹고, 빠이프가 터지거나 막히지 않고 잘 나가구, 열차와 버스에서도 잘자면
인생이 즐거워지는 것이다.
알긋냐? 니그들도 이런 형을 본 받아야 한다.
여수 엑스포역에서 예상은 완죤 빗나갔다.
3시 50분의 여수역 풍경은 차갑고 살풍경한 게 도통 정이 안간다..
여기저기 24시간 해장국집과 음식점이 산재해 있을 걸루 생각했는데 역주변은 정내미 떨어지게
너무 깔끔하고 무슨 첨단도시라도 되는 듯 제대로 된 빌딩들과 건물들 밖에 없다.
우린 택시운전사에게 가까운 해장국집으로 데려다 달라구 해서 봉산동 해장국집에서 뼈다귀탕
한 그릇씩 비우고 돌산 공원 들머리로 이동했다.
새벽에도 그다지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새벽 4시 42분 우린 머리에 헤드랜턴을 달고 여수 밤바다의 야경을 바라보며 32키로 돌산종주의
장도를 시작했다.
일요일 백두대간 종주의 피로가 풀리지 않은 탓인지 배낭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지고 발길이 그다지
가볍지 않았다.
한끼 밥에 , 떡 그리고 오렌지 2개 , 물 2통 , 갈아 입을 옷이 전부라 별로 든 것도 없는데...
새벽 4시 42분무수한 네온싸인에 빛나는 여수시와 돌산대교의 야경을 굽어보면서 대장정의 첫발을
내딛였다.
서늘하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어두운 산길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데 그다지 완만한 등산로가 아니었다.
해안가라 별로 높지는 않은 산들이지만 등로는 해발 제로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오르기를 어둠 속에서
무한 반복했다.
공원을 관통하고, 포장도로를 따라가기도 하고 때론 어둠 속에 군부대를 우회 했다.
가끔 능선 위에서 시원한 바람을 목에 걸고 교교한 수은등이 은은히 빛나는 칠흑의 밤 바다를 내려다
보았다.
주로 두엄 냄새가 바람결에 많이 묻어오더니 어느 밭둑길에서 암향이 흩날리는가 싶더니 하얀 매화가
흐드러 지게 피어 있었다.“봄은 어느결에 가까이 왔구나!”
제법 큰 낙차의 등로에 초장부터 조금씩 땀이 배어 나왔다.한라파크를 지나면서 여수의 아침은 그렇게
밝았고 우리는 이후부터 그림 같은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소미산 까지 산과 포장도로를 무던히도 들락
거렸다.
돌산 종주길은 한남정맥길처럼 온통 상처투성이인 채로 신음하고 있다.
도로가 관통하고,개발로 인해 산허리가 잘려 나가 건물이 들어서고, 개간으로 인해 능선 군데군데는
밭과 농장으로 변해 버렸다.
봉규가 오룩스 맵으로 길을 찾지 않고 순전 표지판에 의존해 산행을 했다면 많이 헤메야 할 그런 길
이었다.
누가 돌산대교를 산보코스라 했나 ?
일단 32km가 넘는 먼 거리가 만만치 않은 여정인데 소미산에서 율림치에 이르는 중반부 코스는 더욱
낙차가 커져서 바닥까지 떨어졌다가 솟구치기를 반복했다..
소미산에서 대미산 오르는 길 ,
237봉을 거쳐 본산을 오르는 길 ,
작곡재에서 수죽산 오르는 길,
갈미봉을 거쳐 봉황산 오르는길
그리고 율림치에서 금오산 오르는 길 까지 모두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게다가 거북이나 봉규는 모두 대표 선수들이다.
이넘들 기본 속도가 백두대간팀 선두그룹 수준이니 온갖 사진 찍으면서 후미에서 룰루랄라 산행하는
버릇이 든 내가 따라가기에는 애초부터 벅찬 상대였다.
봉규녀석 왈 우리 페이스에 맞추어 속도를 줄였다고 하지만 녀석의 페이스로 가다보면 사랍 잡을
일이다.
주기적으로 오름길은 계속되고 봄 꽃에다 봄 풍경을 몇 장 찍다보면 이넘들은 아주 횡하니 가버리는
통에 내 평소 페이스 보다는 헐씬 빨리 움직여야 했고 봉우리에서 나 도착하기를 기다리던 놈들은
내가 도착하기 무섭게 또 매정하게 발길을 재촉 했다.
사진 찍고 꽁지 빠지게 쫒아 가는 악순환은 금오산 까지 되풀이 되었다.
제법 거친 등로와 따사로운 봄 햇살 그리고 수면부족의 나른한 몸은 유유자적한 상춘 유람길의 기대를
고행 길로 바꾸어 놓았다.
수죽산 정상에는 11시에 도착했고 우린 봉우리 아래 안부에서 점심식사를 했는데 난 아얘 웃통을벗고
밥을 먹어야 했다.
낮에 다소 따뜻할 걸 예상하긴 했는데 날씨는 여름을 방불케 했고 무거운 등짐을 지고 먼 길을 가다보니
몸에서는 뜨거운 열기가 확확 솟구쳐 올랐다.
얇은바지를 입고 와야 했는데 백두대간 다녀오고 어제 마눌이 세탁을 하는 통에 채 마르지 않아서 겨울
바지를 입고 왔고 가을상의는 면이 많이 섞였는지 땀이 나면 마르지 않고 척척해진 채로 무게를 늘린다.
일단 너무 더워서 난 봉황산 정상에서부터는 아얘 상의를 벗어서 목에 걸고 맨몸으로 산행했다.
미풍양속을 해치는 외설적인 옷매무새로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불상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던 건 오늘 우리가 돌산 지맥을 온전히 전세를 내었기 때문이었다.
돌산대교에서 향일암 까지 11시간 30분 종주하는 중에 만났던 유일한 사람은 봉황산 너머 어느 봉우리
에서 산불괸리초소를 지키던 감시인 아저씨 단 한 사람 뿐이었다.
그래도 멋진 봄날이었다.
소미산의 아침 바다와 고요한 일출은 아름다웠다.
어둠 속에서 봄의 전령 매화가 손을 흔들더니 동백과 수 많은 봄 꽃이 반가운 인사를 하고 우리의 의미
있는 산행을 축하해 주었다.
봄은 히히덕 거리며 벌써 저만치 와 있었다.
현호색, 제비꽃 앵초, 양지꽃, 산자고..
봉황산을 지나 금오산으로 가는 능선 길에서 내려다본 푸른 바다와 포구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었고
금오산에서 내려다 바다는 후련하고도 아름다웠다.
우린 어쩌면 미친넘들 이었다.
한 사람도 오르지 않는 그 산 길 !아무도 돌아 보지 않는 그 먼 길을 잠도 안자고 쇠똥 빠지게 걸어 갔다.
60을 바라보는 녀석들이 쉼없이 날라가는 세월의 멱살을 잡고 무기력한 세상과 한 판 붙자는 건지….
아무래도 좋다.
하여간 우린 우리 방식으로 세상을 즐긴다.
여유롭게 한 잔 술에 살아가는 날의 기쁨을 타서 마시기도 하고 자기만족일망정 불면과 고통을 내어
주고 뿌듯한 자부심을 얻기도 한다.
무엇을 더 바라랴?
아직 이렇게 건강하게 하루 종일 걸을 수 있다.
아직 가슴은 떨리고 다리는 후들거리지 않는데….
어둠의 들창을 아무렇지도 않게 너머 남도의 봄을 마중하고 새벽 바다를 깨울 수 있을 만큼 가슴은 뜨겁고
옛 친구들과 늙어가는 노구일 망정 우리 기쁜 젊은 날을 다시 노래할 만큼 우린 아직 싱싱하다.
좀더 여유로운 여행길이 아쉽긴 했지만 인생에 황혼 길에 접어든 오랜 친구들과 젊은 날이 온건히 다
지나간 건 아니라고 소리치며 건재를 확인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우린 햇살이 서서히 황금빛으로 물드는 금오산 정상에서 남해의 아름다운 바다를 굽어보고 향일암에 들러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면서 11시간 30분에 걸친 대장정을 무사히 마무리 했다.
당초 1박의 계획을 수정했다.거부기 바쁜 일도 있고 나야 괜찮지만 밖에서 자는 잠이 불편할 수도 있고
또 오늘 너무 진을 많이 빼서 내일 하루 더 묵어도 병든 닭처러 무기력할 것이다.
우린 4시 50분 여수행 버스를 타고 나와서 진남관 거리에서 뒤풀이를 했다.
수산물을 먹고 싶었지만 1시간 남짓 남은 열차 시간으로 괜찮은 횟집을 찾아 먹기도 마땅치 않고 배도
고픈 탓에 내가 삼겹살 먹자고 우겨서 한식집으로 갔다.
수 많은 맛있는 삼겹살을 먹어보았지만 그렇게 맛있는 삼겹살을 요 몇 년에 처음인 듯하다.
엄청난 체력소모에 반응하기라도 하는 듯 우린 왕성한 식욕으로 생삼겹과 대패 삽겹살을 폭풍흡입하고
맥주 두 병에 소주 두 병을 비웠다.
늙어 갈수록 좋은 친구들이 필요할 것이다.
고향집이 푸근하고 우래 묵은 된장과 고추장이 깊은 풍미를 느끼게 하듯 우린 같은 취미와 비슷한 가치
관을 가진 오랜 친구들이니 인생 후반부에 더 좋은 친구로 남을 것이다.
세월에 휩쓸리지 말고 우리 하고 싶은 것 하면서 가끔 술 한잔 치면서 그렇게 여유롭게 늙어 가자!
수고혔다. 아우들아!!
형님 느그들 덕분에 힘들었지만 즐거운 시간 이었다.
소요비용
무궁화 열차 - 55,600원 (서대전-여수 17,000원/ 천안-여수:21,600원)
여수역 봉산동 해장국집 택시비 - 6,500
원감자탕 해장국 - 18,000원
향일암-진남관 버스비 - 5,250원
식대 - 86,000
원진남관-여수역 택시비- 3,900원
새마을 열차 - 82,700원 (여수-서대전 25,300원/ 여수-천안32,1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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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 - 257,950원 ( 열차 차액 : 11400원 제하면 246,550원)
246,550 / 3 = 82,000원/인당평균 + 천안교통추가 11,400원 (1인)
고부기가 찌근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