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슈가 고창에 정착했다.
내가 퇴직하고 대전에서 일자리 못 구하면 수도권에서 월 200만원 일자리는 만들어 줄 수 있다던 용슈가…
용역회사 사장이던 용슈는 재계약을 포기하고 꿈에그리던(?) 시골생활을 택했다.
더 늦으면 어렵다고…
불과 1년도 채 안되어 모든 걸 정리하고 시골에 정착했다.
그 짧은 기간에 마눌을 설득하고 귀농교육을 이수하고 정착 후보지 물색 까지 모두 끝내고 집 지을 곳
까지 결정했다.…
대단한 결단력과 추진력이다.
성박사가 사이비 농부라고 놀리는데는 이유가 있다.
짧은 기간에 페이스북에 사진 올라오는 걸 보면 빨간 장화를 신고 폼만 잡는단다.
어느 날은 이양길로 밭을 갈고 어는 날은 과수원 전지를 하고 꿀을 뜬다.
또 땅콩을 심는다더니 이번에는 생강을 심는단다.
“용슈야 이것저것 욕심부리지 말고 집중과 선택을 확실히 해라!”
뽑은지 얼마 안 되는 성박사 새 차를 타고 우린 고창으로 갔다.
모처럼 술 한잔 치고 여유롭게 하루을 머물다 오고 싶었는데 밖에서 잠자는 거 경끼를 이르키는 성박사
땜시 당일치기로 댕겨오기로 했다.
마을회관 옆 건물을 빌려 임시숙소로 쓰고 있는 집은 다소 서거푼 궁기가 흐르고 있었지만 빽빽한 책장에
가득한 책들과 집안 가득 퍼지는 차 향기에는 소박한 시골생활에 대한 용슈의 염원이 담겨 있었다.
어쩌면 인생은 아이러니 한 걸지도 모른다.
우리는 느티나무 아래 해먹을 걸고 시원한 바람을 즐기며 책을 읽거나 게으른 오수를 즐기는 여유로운 전원
생활을 꿈꾸지만 삶이란 시도 때도 없이 멱살을 잡고 싸움을 걸어 올 것이다.
좋은 농부가 되기 위해 교육을 받아야 하고 때론 소처럼 일을 해야 하고 읽고 싶은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읽어야만 하는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
쓸데 없는 지식과 정보는 머리에서 하나씩 지워야 살아 감이 가벼워 질 나이에 또 새로운 세상의 지식을
채우기에 골몰해야 할 수도 있다.
돈 있는 사람은 도시에 사는 것이 좋고 돈 벌 생각이라면 시골로 가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어쩌면 터무니
없이 싼 작물과 소득 창출과는 거리가 먼 노동의 대가와에 낙담할 지도 모른다,
돈이 있어도 벌써부터 손 놓고 남은 인생 놀면서 살아가기도 쉽지 않고 돈이 없으면 꿈과 자유를 쉽사리
살 수가 없다.
인생 후반부에는 일과 꿈 그리고 돈과 자유가 얽히는 삶의 함수를 현명하게 풀어야 한다.
용슈는 아침 일찍부터 생강 심기를 마치고 우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전형적인 하이트 칼러에서 그린칼러 아니 엘로우 칼러로 변신한 용슈는 약간 마르고 검게 그을려
제법 농부의 포스가 느껴진다.
우린 만나서 과일을 먹으면서 지난 이야기들과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성박사의 큰 차에 옮겨타고 꽃피는 고창 들판을 누비면서 고창읍성과 선운사를 돌아보았다.
우리는 돌아와 용슈 와이프가 손수 만든 차 (산도라지+우엉+생강+대추)와 개떡을 먹으면서 개떡 같이
변하는 우리나라와 정치인들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고창 특산 복분자 액기스도 빼 놓을 수 없었다.
삶에는 우리를 이끄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
그 힘에 이끌려 우리가 친구가되고 용슈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고창의 농부가 된 것처럼 아직 변화의
여지가 많이 남아 있고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이라 더 흥미진진한 것 아닐까?
어쩻든 나도 이젠 고창에 연고가 생겼다.
바쁠 때 가면 밭에서 일하라고 성화일 테니 겨울 농한기에 돼지고기 싸들고 찾아가 하루 이틀 묵으
면서 도시의 찌든 때를 벗길 수 있는 곳
험한 세상에서도 늘 여유와 웃음을 잃지 않고 카멜레온처럼 잘 적응하며 살았던 용슈의 마지막
새로운 변신을 기대하고 응원한다.
용슈가 고창벌에 큰 게 나무처럼 꿋꿋하게 뿌리를 내리고 새로운 세상에서 삶이 기쁨과 행복을
찾아내길 진심으로 바란다.
우린 용수의 가슴 찡한 배웅을 받으며 이젠 더 친근해질 고창을 뒤로 하고 대전으로 돌아 왔다.
아침 8시에 출발하여 8시 10분에 다시 돌아 왔으니 좋은 친구들과 17시간 함께 보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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