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내게 믿음을 설파하던 친구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졌었다.
왜 하느님은 자신을 믿지 않으면 지옥으로 보내는가?
왜 하느님은 10페센트의 돈을 걷어가는가?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난 알았다.
살아가면서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벽돌로 뒷통수를 내리치고 신은 너무 많은 사람들의 기도에
시달려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일 시간이 없다는 거
신은 진리를 말했으되 인간은 그 진리를 다르게 해석한다는 거
신은 인간을 창조했지만 이젠 인간이 다시 신을 재창조 하고 있다는 거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종교는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을 파멸시키고 타락으로 내몬다.
전쟁의 역사는 종교 분쟁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하나님의 세상이 도래해야 할 이 땅 위에 끊임없이 불신과 분노의 불을 지피고 지금까지도 꺼지지 않는
전쟁의 불씨는 종교라는 화로에서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다.
내세의 천국을 인도하는 종교가 지상의 지옥을 구현하고 자비와 사랑을 설파하는 경전이 이 땅 위에
가장 큰 증오와 잔인한 전쟁의 광기가 흐르게 한다.
작가는 기독교의 실상을 훤히 꿰고 있고 나는 작가의 의도가 빤히 들여다 보인다.
경제인으로 바쁘게 살아가던 작가는 가진 자들의 반열에 서기 위해 앞 뒤 돌아 볼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좀더 자유로워지니 시야는 더 넓어지고 성찰과 사고는 더 깊어졌을 터이다.
삶의 가치관은 변함이 없으니 세상 돌아가는 꼴에 마냥 침묵하기 어렵고 세상 여기저기 등천하는
썩은내와 군둥내를 참아내기 어렵다.
작가는 마지막 희망과 버팀목이 되어야 할 종교가 부패하고 타락해 가는 모습을 통해 허물어진
신의 권능과 파국으로 치닫는 우리 사회를 통렬히 비판한다.
영성이 사라진 교회와 정의가 외면되는 사회
그리고 가진 자들이 건설하는 지상의 천국에 관하여
온 나라가 불황에 허덕이는데 메가처치들은 세금 한푼 안내고 이 땅에 하느님의 왕국이 아니라
그들의 왕국을 건설하고 있다.
세상보다 먼저 세속화 되어 가는 그 곳은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마치 성역처럼
아무도 쉽사리 건드리려 하지 않는 그런 곳이다.
유럽의 종교개혁과 러시아의 정교혁명과 같이 뼈아픈 자기성찰의 과정도 없이 종교의 본질을
잃고 세속에 물들어 가는 대한민국기독교
신을 버리고 기업화, 권력화, 세습화로 스스로 신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끄는 종교
한국 기독교의 작태를 보면 벨이 틀리고 속이 뒤집어 진다.
리얼 다큐멘타리로 때리면 속이 후련하겠지만 불러올 파장과 뒷감당이 심히 걱정된다.
심증은 가고, 안 봐도 비디오지만 물증이 없다 보니 잘못 건들면 오히려 역공을 당해
뒷통수를 먼저 쳐맞을지 모른다.
그려서 퍽치기의 안전거리 확보를 위해 픽션의 허울을 뒤집어 쓰는 거지
작자가 보는 타락한 기독교의 관점은 두가지로 대변된다..
아담의 원죄처럼 청산되지 못하고 대물림된 그릇된 신앙의 역사적인 관점과
개인의 탐욕을 조장하고 종교를 타락으로 이끄는 팽배한 물질문병의 사회적인 관점
전자에서 대한민국 기독교는 생존을 빌미로 하느님 위에 신사를 군림시킨 뼈아픈 과거의 오류에
대한 반성과 인적쇄신의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종교의 교리와 성직자의 양심은 부정되었고 변절자들에 의해 주도된 기독교는 불신과 갈등의 그
태생적 한계 때문에 어쩌면 끊임없는 모순과 왜곡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인지도 모른다..
후자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묻는다..
“세상을 움직이는 동력은 비전인가 채워도 해소되지 않는 욕망의 갈증인가?”
그는 바닥에서 몸소 하나님의 교리를 실천하던 신의 대리인 명수창목사가 당초의 초심을 잃고
점점 탐욕에 사로잡혀 신의 변절자 “메슈바”가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타락해가는 기독교의
실상과 부패한 사회를 고발한다.
“ 계속되는 성공이 인간을 타락으로 내몬다. “
일단 궤도에 오르면 무한 증식이 가능한 교회는 불황을 모르는 탄탄한 기업으로 거듭나고 수 많은
사람들의 이익이 맞아 떨어 지는 가진 자들의 낙원이 된다.
처음 명수창 목사는 충직한 신의 대리인 이었다.
불어나는 교회의 재산과 늘어나는 추종자들 그리고 실패를 모르는 그의 삶에 대한 자신감이 자신은
신으로부터 선택된 사람이라는 믿음과 오만에 빠지게 만들었다.
권력의 주변에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이 영합하면서 사회가 더 권력을 키워주는 구조적인
선 순환이 가속화 된다.
신의 대리인은 돈의 위력을 알게 되고 신의 소명보다 더 자극적인 무소불위 권력의 단맛에 취하여
자신의 본분을 잃어 버린다.
이제 지상에 신의 왕국을 건설하는 대신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겠다는 야망에 불타 오르는 신의 대리인은
결국 종교를 자신의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고 하느님의 복음마저 왜곡시키기에 이른다.
자신이 행하는 모든 일이 신을 위한 것이고 신의 뜻임을 표방하지만 그것은 이미 통제할 수 없는 자신의
욕망과 욕심의 다른 얼굴일 뿐이다..
명수창 목사에게 교회의 성공은 미쳐 몰랐던 자신의 능력의 발견이었고 넘치는 권력과 돈은 자신이
피 땀으로 이루어낸 결과이기 때문에 자신의 것으로 귀속되어야 마땅한 것이었다.
대중의 분노와 깨어 있는 자들의 목소리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진실과 비판의 칼날은 항상 서슬이 퍼렇지만 늘 그렇듯이 돈과 권력의 힘으로 밀어 부치는
그들의 거짓 앞에서 진실의 목소리는 너무 작고 공허하다.
부패한 사회의 비옥한 토양과 권력을 내려놓기 싫은 사람들의 비호 속에서 그의 왕국은 대물림되고
세월은 다시 그 있을 수 없는 부조리 위에 망각의 수의를 덮는다.
하느님의 희생과 사랑 속에서 성장한 기독교는 한국에서 길을 잃었다.
사회는 불의와 부정을 응징할 힘을 잃었고 하느님은 그들을 올바를 길로 인도할 기력을 잃어 버렸다.
작자의 의도와 문제의식은 명확하다.
독창적인 어휘와 표현은 인상적이고 주제는 공감은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전문 글쟁이도 아니고 종교인도 아닌 작자가 가지고 있는 종교적 지식의 깊이와 예리한 통찰력은
박수를 받을 만 하지만 이왕 소설을 표방했으니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과 책에서 눈을 뗄 수 없
는 픽션의 재미, 그리고 타락한 종교인들의 간담이 서늘해질 결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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