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어느 날 심한 갈증을 느끼는 날이 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런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고?
그럴 수도 있겠지~~
세상은 워낙 시끄러운 곳이니…..
그날 공교롭게도 창밖에 비바람이 심했거니….
아니면 그대가 애써 들으려 하지 않았거나…
들었어도 들은 체 하지 않았거나…
중요한 건 그 목소리를 자꾸 무시하면 나중에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 목소리를 잃어 버린다는 건 길을 잃는 것과 같다는 거
사실 그 갈증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세상에서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가치를 향한 끊임 없는 탐구와 추구로
영혼의 노래로
아니면 방랑과 술과 시라도….
그러나 그 갈증을 풀어 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자신 밖에 없다는 거
꼭 좋아해야 한다고 세상이 가르치는 것에 현혹되지 말아라.
그 것에 동의하는 순간 더 이상 마음이 울지 않을지도 모른다.
네 가슴이 뛰는 소리, 네 영혼이 노래하는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정작 하고 싶었던 일을 하지 못하고
가 보고 싶은 곳에는 가보지도 못한 채 여행을 끝내야 할 것이다.
목소리가 들라는 날이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떠났다..’
어디라도 어디로라도….
참으로 오랜 날 동안 떠나는 것이 습괸이 되면 그것은 또한 삶의 기쁨을 불러내는 주술이 된다.
떠나는 습관이 몸에 배이면 떠날 이유는 점점 더 많이 생겨난다..
눈이 펑펑 내리니 떠나고
친구가 가지니 떠나고
갑자기 그 동안 무심했던 내가 보고 싶으니 떠나고
내 삶에 많은 자유가 주어졌으니 떠나고….
아무 일이 없어 심심하니 떠나고….
춘 행 일 : 2019년 4월 7일
춘 행 지 : 소매물도
코 스 : 선착장 – 남매바위 –열목 – 등대 – 망태봉- 선착장
소요시간 : 3시간 15분 (점심포함)
날 씨 : 화창하고 눈부신 봄날
동 행 : 마눌과 두리 (충일 산우회)
오늘은 ?
오늘은 봄 처녀가 코맹맹이 소리로 가르랑거리고 마눌 마저 가슴에 봄바람이 들었으니 떠난다.
어디로 갈까?
좀 멀고 비싸긴 해도 이 봄에 마눌과 데이트 하기에는 남해의 먼 섬이 좋겠지…
힘에 부치지도 않고
따사로운 태양아래 시원한 해풍이 목을 간지르고
온통 초록의 새싹들 속에 수많은 꽃들이 다투어 먼저 피어나는 섬
청솔은 압해도로 가고
금강은 하동 십리벚꽃길에 가고
충일은 대매물도와 소매물도에 가네…
내 젊은 날에는 갈 데가 너무 많아서
외로운 많은 섬들은 내 고립된 노년의 기쁨을 위해 유보 되었지…
난 속으로 대매물도애 갔으면 했는데
요즘은 마눌 컨디션도 괜찮고
손바닥 만한 소매물도는 훗날 산을 싫어하는 친구들과도 함께할 기회가 많을 것 같아…
근데 마눌 왈~~
“소매물도가 훨씬 멋있디야~~~”
헐~~ 그걸 누가 모르나?
아무리 봄이라지만 두어 시간 산책만 하고 오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나?
그랴도 워쩌?
마눌이 좋다는데 가야쥐….
버스가 6시 35분 출발이라
알람을 5시 30분에 맞춰 놓고 이른 아침을 챙겨 먹고 청사역으로 출발하다.
버스를 타니 신청이 늦어서 꼴지에서 두 번째 자리…
엔진 소음이 가장 심한 자리여…
지난 주 춘행 길에는 38석 리무진 타고 누워서 갔는데….
모처럼 마눌과 가는 상춘길인데 모냥 빠지게 출발 전부터 우짜 일이 좀 꼬이네….
근데 조금 있으려니 나이가 드신 단체분 일행들이 시청에서 우르르 타드만 다짜고짜 뒷자리로 자리를
바꿔달라는 거여…
잽싸게 손들고 앞으로 나서니 이 그 자리가 밖이 훤히 보이는 넓은 통유리 창에, 승차감 좋고 발까지
편한 로얄석인거 아녀?
사소한 일일지언정 술술 풀리는 걸 보니 오늘 멋진 소매물도 필이 팍팍오드만….
10시 20분 통영 여객선 터미날에 도착했어…
통영은 벌써 몇 번 째인지 셀 수도 없네…
통영시장 무릉객 한테 표창이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녀?
리바이벌 잘 안하는 무릉객이 통영엔 이렇게 호떡집 불난 듯 들락 거리니…
50분 출항이나 30분 시간이 남아 있어서
부리나케 서호 시장으로 달려 갔어
이 좋은 날 걷기만 하면 되것어?
아름다운 풍경 앞에 두고 술 한잔 쳐야지…..
놀래미 회 2만원어치 뜨고 500ml 프라스틱 소주 1병과 초고추장, 외사비를 샀지
젓가락과 컵은 서비스로 얻고,..
그 와중에 마눌은 문어편 말린거 두 통이나 사고….
부랴부랴 대합실로 들어서자 배표 나눠주고 막바로 승선했어
출출하면 달리는 배 위에서 한 잔 치려고 했는데 말 그대로 인산인해 배 안은 입추의 여지가 없었어
봄날은 더 할 나위 없이 화창하고….
지지난 주 동석산에서 바다를 보면서 시원한 해풍을 맞았고
지난주에는 말없이 떠났던 동자를 칼바람이 불고 눈발 날리던 백화산에서 다시 만났지
그렇게 마지막 이별의 키스로 그녀를 보내고 나서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는 상춘 길
내내 갑판 위에서 바다를 바라 보았어
늘 바다는 내게 무슨 말을 하고
나는 언제나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지…
그 교감이란 해묵은 전통이지만 내 삶을 더 빛나게 하는 교훈이었지…
난 알지
늘 바쁘다는 무수한 핑계로
세상의 사랑하는 많은 것들에게 안부를 전하지 못하는 삶을 살다 보면
사람도, 살아가는 날의 기쁨과 감동도 다 내 곁을 떠나는 법이라는 걸
세상에서 길을 잃은 자신의 영혼을 영영 찾지 못한다는 걸
희망과 사랑에게 작별인사를 건넬 시간조차 없이 생의 마지막 날을 맞게 될 수도 있다는 걸
봄 날의 여행은 그런 것이야
나를 만나고 사랑하는 것들에 내 안부를 전하는 거
세상의 아름다움을 누리고 그 추억을 터임캡슐 앨범에 끼워 넣는 거
나는 뱃전을 때리는 파도의 물방울을 맞으며 내내 갑판에 서 있었어
지나는 섬과 바다와 그리고 수면 위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봄과 무수한 대화를 나누었지
그 동안 배는 비진도 내항을 거쳐 외항에 정박하고
1시간 20분이 바람 같이 흘러 소 매물도에 도착했어….
섬에 내린 아름답고 화사한 봄의 모습에 첫 선이라도 보는 듯 마음이 그렇게 두근거렸지…
나의 나이든 훗날을 위해 잘 접혀진 기다람을 오래 간직하고 있었던 소 매물도
이처럼 멋진 화창한 봄날 우린 드디어 만났네…
애거사 크리스티가 그랬나?
“인생을 살아 볼 가치로 만드는 유일한 것이 있다.
바로 아름다움이다. 여기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리고
격하게 동의하네….
아름다움을 보는 안목과 관점은 사람마다 다 다른 것이겠지만…
더 멋진 내일을 위해 많은 사람들은 신사임당 초상화를 사는데 바쁘지만
난 오늘 기꺼이 이 멋진 봄날이 매물도에 그려낸 아름다운 그림을 사겠어….
난 소매물도가 끝이 빤히 보이는 손바닥 만한 섬인 줄 알았어
앞에 바로 등대섬이 보이는…..
근데 손바닥 보다는 좀 더 크더군
젊은이들보다 더 많은 늙은이들이 오긴 해도 그렇게 호락호락한 섬은 아니야
계단도 많고 낙차도 크고….
우린 좌측 길을 따라 등대섬으로 갔다가 가운데 길로 돌아 오기로 했지 …..
내가 보았던 여느 섬의 풍경에 뒤지지 않을 아름다운 풍경이 거기 있었네
후련한 푸른 바다와 많은 섬들 그리고 동백꽃과 유채꽃 복사꽃이 함께 손을 흔드는…
우리는 허기를 지고 해안가로 내려서서 화려한 식단을 펼쳤지…
놀래미회에 소주 한 병 그리고 봄나물 반찬들…
내가 너무 욕심이 많은 건가?
아름다운 봄과 바다 만으로 성에 차지 않아
그 위에 미각의 즐거움 까지 더 얹고
이미 봄과 섬에 취해 놓고도 한 잔 술의 도도한 취흥마저 불러 내려는…
잔인한 사월의 봄에 흠뻑 취해 버린 탓에 술 한 병이 불러내는 취흥은 흔적도 없는데…
근데 이 섬엔 왜 그리 통제구역이 많은 것이여?
원래 통제구역 팻말은 “아름다운 풍경 접근금지….”의 다른 말
세월은 화살 같이 빨리 지나 가는 데 내 언제 다시 이 곳에 올 수 있을까?
누가 무슨 자격으로 이 절박한 발걸음을 막는 것이여?
내가 누구여?
무릉객 아니여? !
세상의 아름다운 곳을 제 집처럼 드나드는 사람
내가 걷는 곳이 나의 땅
난 지금 나의 영지를 넓히고 있다네
등대섬 좌측과 우측 해안 수려한 금지구역을 다 걸으며 사진을 찍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어
그리고 마지막에 남겨 놓은 망태봉에 올랐지
배낭이 엄청 무거웠어
가지고 간 먹을 건 죄 먹고서 가벼워진 배낭에 소매물도가 건네 준 기념품을 가득 담아 오느라…
제대로 취한 날이 었지
황홀한 봄에
봄이 그리는 아름다운 그림에
한잔 술에
그리고 살아가는 날의 기쁨에 …..
네시 까지 오라혀서
서둘러 3시 40분에 선착장으로 다시 돌아와서
싱싱한 해삼,멍게,소라,굴, 모듬회로 술 한잔 더 쳤지
오호라 ! 내 입 속에서 펄떡 거리는 봄 그리고 바다….
아파트 한 채가 10억도 넘는 세상에서
황홀한 봄 날의 낭만을 사는 값은 얼마나 싼 것인가>
우린 다 알지…
사람들이 돈을 모으는 건
취미이거나 단지 두려움을 사기 위한 거란 걸
취미란에는 이렇게 써야지
독서나 등산이 아니고 득전
버닝썬이 아니라 어닝쩐 .
또 알지
우리가 열심히 번 돈 들이 결국 어떻게 쓰일 것인지…
빛나는 내일을 위해 열심히 허리띠 졸라 메기만 하다가
막상 물 좋고 정자 좋은 데 가려고 하면 가슴이 더 이상 울지 않거나 다리가 후들거리고
맛있는 거 안 먹고 아끼다 보면 이빨이 먼저 빠지고 입맛이 먼저 떨어진다는 거
그 동안 벌었던 많은 돈은 열심히 버느라 돌보지 않은 건강을 회복하는데 쓰이던지
새상에서 가장 비싼 아픈 침대를 사는 쓰일 거구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통장을 남긴다구
통장에 동그라미가 늘어갈수록 좋아하지만 저승사자도 잰 걸음으로 쫓아 온다는 거
공수레 공수거
그렇게 열심히 벌어 들인 건 단지 통장에 찍힌 동그라미 … 공(空)l라는 거
무수한 역사가 증명하 듯
결국 개처럼 벌은 수 많은 돈은 정승처럼 써보지도 못한 채
자식들 쌈시키고 통장에 숫자로만 남긴 채 떠날 거잖아
죽을 아까운 돈들에 비해 오는 내가 쓴 돈들은 얼마나 싱싱하게 펄떡거리리며 살아 있는가?
나를 위해, 마눌을 위해, 봄을 위해 쓰는 돈은 얼마나 저렴한 것인가?
봄과 섬과 바다가 다 내 가슴을 뛰어들게 만드는 특별한 하루를 사는 그 비용이
봄날은 늘 가장 멋진 선물이지
나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이쯤 되면 자신의 부유함을 자각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아름다운 세상이 있고
멋진 봄날을 누릴 자유가 있고
거친 길을 웃으며 걸을 수 있는 튼튼한 두 다리가 있고
아름다운 풍경에도, 한 잔 술에도 쉽게 취하는 가슴이 있고
그
래 봄은 예금 잔고 만으로 내가 가진 것을 규정할 수 없다는 걸 깨우쳐 주지…
봄은 늘 새롭다
하물며 가지 않은 아름다운 섬에 내린 봄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을까?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나는 것은 우주에 떠도는 기쁨을 내게로 소환하는 것이고
내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우주에 알리는 것이다.
안녕 소매물도 …..
아뇽 내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