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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경제

경제이야기 (4월 15일자 한국경제신문)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부채 부담이 폭발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지난해 사상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고, 노인 인구 비율이 급증하고 있는 한국의 인구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정부는 이 같은 우려를 감안해 “장기적인 재정운용 방향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IMF “인구감소 문제 심각”

IMF는 고령화와 관련된 의료비 및 기타 부채가 향후 한국의 재정에 부담이 될 것으로 진단했다. 안드레아스 바우어 IMF 아태국 부국장보 및 한국 미션단장은 13일(미국시간) 아시아지역 경제전망 발표 후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인구 고령화로 인한 추가 부채가 발생하더라도 나중에 부채가 폭발하지 않도록 재정 정책을 장기적 틀에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고령화 우려가 반영된 IMF의 부채 전망을 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비율은 올해 53.2%에서 2026년 69.7%까지 높아진다. 다른 선진국들이 코로나19로 증가한 부채를 줄이기 시작하는 것과 달리 한국의 부채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바우어 단장은 고령화 대응을 위해 근로자를 위한 더 강력한 안전망, 훈련 및 유연성 강화 등 노동시장 개선을 위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규제 완화 필요성도 언급했다.

실제로 한국은 최근 급격한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 등 인구문제를 겪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여성 1인당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의 수를 나타내는 지표인 합계출산율은 0.84명을 기록했다. 2018년 0.98명으로 처음으로 1명 이하로 떨어진 이후 매년 하락세가 계속되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최근 인구추계에 따르면 상황은 계속 악화할 전망이다. 예산정책처는 2040년 합계출산율이 0.73명까지 하락할 것으로 봤다. 생산연령인구(15~64세) 100명당 부양인구는 2020년 39.7명에서 2040년 76.1명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됐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계속 이어지면 국가 재정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은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고령자를 위한 복지지출은 법에 근거가 명시된 의무지출이 대부분이라 줄이기 어려운 상황인데 저출산으로 경제활동인구가 줄어 국가의 각종 수입은 급감할 것이란 예상이다. 최슬기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그동안 저출산 고령화 정책을 많이 내놨지만 효과성 분석 없이 예산과 사업 수만 늘린 것이 문제”라며 “자녀를 낳고 싶은 사람들이 낳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IMF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재정 지출은 적절했다고 봤다.

 

 

○‘재정체력 소모’ 인정한 정부

정부는 재정건전성 문제가 제기되는 것에 대해 코로나19로 늘어난 재정지출 증가폭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안도걸 기획재정부 2차관은 “재정 체력이 소모된 것이 사실”이라며 “현재 방역 상황, 경기 흐름, 탄소중립 2050 실현 등 미래 대비 투자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지출을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최근 구성한 재정운용전략위원회를 상시 가동해 관련된 이슈를 짚어보겠다는 방침이다. 올해 상반기 중 지출구조조정과 제도개선, 재정운용 방향 등이 위원회에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건전성 관리를 위해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재정준칙 통과에 속도를 내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안 차관은 “국제 신용평가사가 재정준칙을 만들어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방침을 높게 평가했다”며 “합리적인 내용과 수준으로 재정준칙이 마련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IMF의 나랏빚 지적에 대해선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반박했다. 한국의 부채 비율이 다른 국가에 비해 급등한다는 것은 현실과 다를 것이란 게 기재부의 예상이다. 안 차관은 “IMF는 내년 미국의 지출이 12.3% 줄어들 것으로 가정하고 채무를 예측했지만 최근 공개한 내년도 예산안을 보면 지출이 오히려 늘어나는 것으로 나온다”며 “국제 비교시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강진규/정의진 기자 josep@hankyung.com

 

[안현실 칼럼] 한국 산업이 침탈당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 전기차 배터리 분쟁 종식 합의에 “참으로 다행”이라고 했다. SNS에서 “경쟁을 하면서 동시에 신뢰를 기반으로 협업해 나가는 게 국익과 개별 회사의 장기적 이익에 모두 부합한다”는 것이다. 이 일이 왜 일어났는지, 지식재산권 얘기는 일언반구도 없다. 문 대통령은 “정부도 전략산업에서 생태계와 협력 강화의 계기가 되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해나가겠다”고 했다. 생태계와 협력의 바탕이 지재권 존중에 있다는 걸 알고나 하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두 기업의 싸움이 부끄럽다고 했다. 정 총리는 국가지식재산위원회 공동위원장이다. 만약 두 기업이 국내에서 다퉜다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 내린 수준의 판결이 나왔을까. ‘배상금 2조원+α(미공개)’란 합의가 가능했을까. 판결 수준도 배상 금액도 절대 불가능하다. 지재권 소송 당사자들이 왜 한국 법원과 중재를 거부하고 미국에 가서 끝장을 봐야 하는지, 정부는 생각해 봤나. 국내에서는 지재권 보호와 분쟁 해결에 기대를 접었다는 것이다. 총리가 뭐가 부끄러운 건지 분간조차 못하는 나라가 됐다.

흔들리는 건 지재권만이 아니다. 한국 산업이 침탈당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국가경제위원장이 주재하는 회의에 불려갔는데도 정부는 말이 없다. 반도체로 중국을 때려 견제하겠다는 미국 행정부가 삼성전자에 뭘 요구했는지 뻔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놓고 말하고,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은 말을 전하는 통로를 바꾼 것뿐이다. 법 위에 있다는 중국 공산당은 더 날뛸 게 분명하다. 이런 현실에 정부가 침묵만 하라고 국민과 기업이 세금을 내는 건 아닐 것이다. 필요할 땐 가만히 있고 가만히 있어야 할 땐 끼어드는 정부로 전락하고 말았다.

가뜩이나 코로나로 경제가 어려운 판에 미국과 유럽연합(EU)이 ‘탄소중립’에 장단 맞추는 속내도 수상하다. 코로나에 당했다고 생각하는지, 국내 생산망을 확충하고 외국 기업도 생산시설을 자국으로 옮기라고 압박하기 위해 탄소국경세를 활용하려는 속셈 같다. 기후변화 대응이 보호무역주의 무기로 둔갑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산업통상자원부에 탈원전 완장을 채운 것처럼 환경부에 탄소중립 완장을 채워 밀어붙일 태세다. 국내 에너지 기업들이 “너무 뒤처져도 너무 앞서 나가서도 안 된다”며 ‘타이밍론’을 호소하고 있다. 기업이 늦게 대응해 도태당해도 안 되지만, 정부가 일방적 규제로 나서면 기업이 다 죽을 것이란 얘기다.

극단적 환경주의자들의 계산법은 간단하다. 국내 배출 탄소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에너지 기업만 정리하면 된다는 식이다. 제조업도 모조리 접어야 할 판이다. 철강 화학 등 기초소재부터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핵심부품까지 모두 영향권이다. 포스코부터 삼성전자까지 문을 닫거나 밖으로 나가면 한국 경제는 어찌 되겠나. 말이 쉬워 ‘대체’ ‘순환’ ‘전환’ ‘효율’이지, 여기엔 엄청난 가정과 전제가 있다. 혁신 공정·기술의 조기 상용화, 그린수소 등 인프라의 충분한 공급과 적정가격 보장이다. 산업의 생사가 걸린 문제를 우습게 안다는 게 환경주의자들의 치명적인 오류다.

탄소중립을 반대하는 게 아니다. ‘환경이냐 산업이냐’ 양자택일이 아니라 둘 다 지켜낼 ‘다목적함수’를 풀 능력을 정부가 갖고 있느냐를 묻고 있다. ‘원전이냐 재생이냐’ 이분법을 들이대며 탈원전으로 질주한 단세포 정부가 또 무슨 일을 벌일지 걱정이다.

인공지능(AI) 육성도 그렇다. 미국이 중국을 의식해 벌이는 행보는 비장하다. “AI 연구개발(R&D) 예산을 매년 두 배로 늘려라.” “이민법을 동원해서라도 중국 두뇌를 빼내라.” “공무원을 AI 교육으로 무장시켜라.” 미국 AI 국가안보위원회 보고서의 골자다. 두뇌 유출을 방치하고 인재 유입을 막는 한국 정부는 위기감이 있는가.

 


AI 활용을 말하지만 중국에도 없는 규제를 들이대고, 연구는 미국에 무임승차하는 식으로 AI 강국이 될 수 있을까.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AI는 잡(job) 킬러”라고 호도하던 제1야당도 기대할 게 없다. 미래를 광내는 수단쯤으로 여기는 정치가 산업을 망치기로 작정한 형국이다. 이대로 가면 ‘산업 주권’ 상실은 시간문제다.

ahs@hankyung.com

 

 

 

경총회장에게 듣는다. 

손경식회장 , 기업규제 쏟아내는 정부 정치권에 '하소연'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을 정부에 공식 건의하겠다고 14일 밝혔다. 세계 반도체 패권 경쟁이 벌어졌는데 이 부회장이 아무런 역할을 못 하는 상황이 계속돼선 안 된다는 게 이유다. 경제계 주요 인사 가운데 이 부회장을 사면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한 것은 손 회장이 처음이다.

손 회장은 이날 서울 남대문로 CJ 사옥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지금은 한국 경제를 위해 이 부회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라며 “(이 부회장이) 최대한 빨리 경영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 각국이 반도체산업을 키우겠다고 나서고 있어 한국이 언제 ‘반도체 강국’ 자리를 뺏길지 모르는 게 현실”이라며 “삼성전자가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면 이 부회장이 하루빨리 경영을 진두지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1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구속돼 있다. 사면이나 가석방 등을 통해 풀려나지 않는다면 이 부회장은 형기가 끝나는 내년 7월 말까지 수감생활을 해야 한다.

손 회장은 “삼성전자에서 글로벌 기업인들과 교류하고 과감한 투자를 결단할 수 있는 인물은 이 부회장”이라며 “세계 반도체 전쟁이 시작됐는데 1년을 느긋하게 기다릴 순 없다”고 지적했다. 사면 시기와 관련해선 늦어도 광복절에는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손 회장은 상법, 중대재해처벌법, 노동조합법 등 지난해 경제계의 반대에도 국회에서 강행 처리된 법안에 대해 “기업에 무리한 부담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수정해야 한다”며 보완 입법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노조법에 대해서는 “사용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정부가 노사관계 문제에서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손 회장은 최근 정보기술(IT) 기업에서 촉발된 대기업의 도미노 임금 인상에 대해 “대·중소기업 간, 산업 간 임금 양극화가 걱정스럽다”며 “여기에 최저임금까지 과도하게 오르면 여력이 없는 기업들은 버티기 힘든 만큼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올해 최저임금 인상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대재해법, 기업에 4중 제재…보완입법 서둘러 과잉처벌 막아야"
손경식 회장, 기업규제 쏟아내는 정부·정치권에 '하소연'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발언에 신중한 것으로 유명하다. 거친 표현을 자제하고, 정부는 물론 노동계와 정치권 등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일도 거의 없다. 하지만 14일 서울 남대문로 CJ 사옥에서 만난 손 회장은 거침이 없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한 측근은 “우리 경제가 도약할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절박감에 목소리를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제가 지표상으론 회복세로 돌아섰지만 불안감은 여전합니다.

“대부분의 기업은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내수는 여전히 부진하고, 중소기업인과 소상공인은 버티기 힘들다고 하소연합니다.”

▷경제를 회복시킬 방법은 무엇입니까.

“기업이 창의성과 자율성을 발휘할 환경을 만들어주고, 기업인들의 기를 살려줘야 합니다.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는 게 가장 큰 숙제입니다.”

▷상속세가 논란입니다.

“최대 60%에 달하는 상속세율은 기업인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줍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가 기업인들의 의욕을 꺾는 문제도 생깁니다. 세율을 합리적으로 낮춰야 합니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은 규제 때문에 힘들어합니다.

“과감하게 풀어야 합니다. 기업이 공장을 새로 세워 고용을 창출하겠다고 해도 규제에 막히는 게 말이 됩니까. 그런데 기존 규제를 없애지는 못할 망정 자꾸 새로운 규제를 만들어 걱정입니다.”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각종 법안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손 회장은 당시 상법, 공정거래법, 노동조합법, 중대재해처벌법 등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지만 끝내 법안처리를 막지 못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끝내 통과됐습니다.

“영국에선 이와 비슷한 법이 제정되는 데 13년이 걸렸습니다. 한국은 제대로 논의도 하지 않고 순식간에 법을 만들어버렸습니다. 시행령 등을 통해 보완해야 합니다. 나아가 법 자체를 개정해야 합니다.”

▷어떤 방향으로 개정해야 합니까.

“어떤 기업은 사업장이 100곳이 넘습니다. 대표이사나 책임자가 어떻게 전부 다 챙깁니까. 사망자 한 명이 발생하면 개인 처벌, 법인 벌금, 징벌적 손해배상책임, 안전교육 수강 등 4중 제재가 부과됩니다.”

▷노조법도 작년에 처리됐습니다.

“현재 노조법은 과거 노조의 힘이 약할 때 만들어졌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오히려 사용자가 약자가 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노동계가 원하는 방향대로 노조법이 개정됐습니다. 다시 바꿔야 합니다.”

▷어떤 조항이 추가돼야 합니까.

“사용자만 부당노동행위로 처벌되는 조항을 바꿔야 합니다. 노조가 사용자를 공격하는 사례가 허다한데도 부당노동행위로 처벌받지 않습니다. 노조가 파업할 때 사용자의 방어권도 보장해야 합니다. 파업 시 대체근로를 허용해야 합니다.”

▷기업인들은 ‘사법리스크’가 크다고 하소연합니다.

“경제 관련 법령 285개를 조사해 보니 기업인 형사처벌 항목이 2000개 이상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기업가 정신이 생길까요. 글로벌기업 임원들은 한국에 오는 것을 꺼린다고 합니다. 언제 범법자가 될지 모른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이재용 부회장을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세계 각국이 반도체산업을 키우려고 달려들고 있습니다. 미국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나설 정도입니다. 앞으로 반도체산업이 더욱 중요해진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대표 반도체 회사를 이끄는 이 부회장의 손발은 묶여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미래 반도체 주도권을 뺏길까 너무 걱정스럽습니다. 이 부회장의 형기가 끝나는 내년까지 느긋하게 기다릴 시간이 없습니다. 조만간 정부에 사면을 공식 건의할 생각입니다.”

▷‘정치리스크’에 대한 우려도 커집니다.

“대선주자들이 경제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표를 의식해서 정책을 만들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경제에 돌아갑니다. 무작정 돈을 풀겠다는 생각을 거뒀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손 회장은 경제계 최대 화두로 떠오른 임금 인상에 대해서는 걱정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많은 기업에서 임금 인상 요구가 거셉니다.

“가뜩이나 기업 간 임금 격차가 큰 상황이 더 심화될까 걱정됩니다. 임금 수준이 높은 대기업들은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부 기업 직원들은 임금에 불만입니다.

“연공형 임금체계가 근본 원인입니다. 근속기간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다 보니 불합리한 측면이 있습니다. 직무와 성과에 기반한 임금체계를 도입해야 하는데, 노조 반대로 쉽지 않습니다.”

도병욱/김일규 기자 dodo@hankyung.com

 

 

한국경제 사설 

 

기업인에 대한 과도한 처벌과 모호한 규정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내년 시행 이전에 고쳐야 한다는 경제계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이대로 시행에 들어가면 기업 활동 위축과 산업현장 혼란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자가 사망하거나 다치는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최저 1년 이상 징역형을 내리고, 기업에도 10억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는 등 징벌적 책임을 묻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등 경제단체들은 중대재해처벌법 통과 후에도 지속적으로 정부와 여당에 법 손질을 요구해왔다. 손경식 경총 회장과 강호갑 중견기업연합회장은 지난주 각기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을 만난 자리에서 보완 입법을 요청했다. 손 회장은 어제 한경과의 인터뷰에서도 “기업에 무리한 부담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경제단체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그만큼 기업의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매출 상위 10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잘 드러난다. 10곳 중 6곳이 법 시행 전 개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개정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로는 ‘사업주·경영책임자의 책임 범위를 넘어선 의무규정’을 꼽았다.

산업재해를 줄이자는 취지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기업 대표이사가 수백~수천 개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일일이 챙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장 사고를 이유로 대표를 감옥에 보내는 것은 과도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렇다 보니 일부 건설사 등에선 문제가 생겼을 때 최고경영자(CEO)를 대신해 형사책임을 질 최고안전관리책임자(CSO) 자리를 만드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기업의 우려가 크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기업 의견을 수렴해 시행령을 명확히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시행령이 아니라 법 자체를 고쳐야 마땅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법 제정을 주도한 백혜련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여당 간사조차 법이 통과되자마자 “진행 과정을 보면서 개선해야 할 점이 있으면 법 개정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을 정도로 충분한 숙의 없이 졸속으로 만들어졌다. 정부와 여당은 경제계의 호소를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

 

 

 

경제발목잡는 붉은 깃발법

                                                     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경기 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빠를 것으로 보인다.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이 6%를 웃돌 것으로 전망하는 근거는 4조2000억달러에 달하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경기 부양책과 인프라 투자 계획도 있지만, 무엇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백신 접종이다. 미국은 지난 8일 현재 인구 대비 접종률이 34%이고, 이미 확진 판정받은 인구 수까지 고려한다면 집단면역 상태도 머지않은 듯하다. 가을 학기엔 학교들이 전면 오프라인 수업을 시작할 수도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작년 미국을 비롯한 유럽 선진국에서 많은 확진자가 발생한 것과 비교하며 K방역을 자화자찬했지만 한국의 백신접종률은 2%에 불과하다. 항공기 취항이 전면 금지됐던 영국의 백신접종률도 47%를 넘어섰다. 대책 없이 무조건 경제 활동을 자제하라는 규제만으로 일관했던 한국과 달리 선진국들은 백신 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1년이 지난 지금 그동안 억눌려왔던 글로벌 경제 활동의 탄력이 제대로 발휘될 시기에 신성장 산업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풀린 천문학적 규모의 재정부양책이 가져올 골디락스 기회에 편승하기 위해서는 한국 기업도 경쟁력을 갖추고 뛰어들어야 하는데, 각종 규제에 발목 잡혀 국가적 경쟁력이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시장의 흐름을 거스르는 시대착오적 과잉 규제가 산업과 국가 경제에 어떤 장기적 폐해를 가져오는가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역사적 사례가 1865년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절에 만들어져 30년 동안 지속됐던 세계 최초의 도로교통법, ‘붉은 깃발법’이다.

당시 증기 자동차 출현으로 일자리를 잃게 된 마차 업자 항의가 거세지고, 마차 사업을 보호하고 마부의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자동차를 규제하는 법을 제정하게 됐는데, 그 내용을 보면 어처구니없다. 한 대의 자동차에 운전사, 기관원, 기수 3명을 고용하도록 했고, 기수는 마차를 타고 낮에는 붉은 깃발, 밤에는 붉은 등을 들고 55m 앞에서 자동차를 선도해야 한다. 자동차 속도를 마차보다 느리도록 최고 속도를 시내에서 시속 3.2㎞, 시외에서는 시속 6.4㎞로 제한했다.

자동차가 마차보다 느리게 가야 한다는 억지를 입법화한 그 당시 정치인 행태를 보면 시대가 변해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말보다 천천히 가야만 하는 자동차를 구매할 소비자가 몇이나 됐을까. 영국이 자동차를 가장 먼저 만들고도 산업혁명의 중심이었던 자동차산업 주도권을 독일, 프랑스, 미국에 넘길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붉은 깃발법 같은 어리석은 규제가 자리하고 있다.

주택 가격 안정을 목표로 한다면서 되레 공급을 감소시키는 부동산 규제를 양산한 결과 주택 가격의 폭등을 초래했다. 일자리만큼은 확실하게 늘린다면서 반시장적 노동 규제를 밀어붙여, 정규직 일자리가 195만 개 줄어들고 비정규직만 200만 명 넘게 증가했다.

대·중소기업협력재단의 2017년 자료에 의하면 기술 유출·탈취 피해 유형은 경쟁사로의 기술 유출이 42%로 가장 많았고, 대기업의 기술 탈취는 0%였다. 기술자료 유출·유용 혐의를 받는 원청기업 비율이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 자료를 보더라도 대·중소기업 상생협력법은 부작용이 우려되는 규제다. 분쟁 리스크로 인해 기존 거래 기업을 바꾸려는 동기가 감소함에 따라 새로운 중소기업의 진입이 어렵고 해외로 거래처를 변경할 가능성이 증가한다. 중소기업 보호가 아니라 오히려 발전을 저해하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정부와 국회는 경쟁적으로 시장의 규칙을 해치는 새 법안을 졸속으로 쏟아내고 있다. ‘기업규제 3법’, 기업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징벌 3법’ 등 설익은 과잉 규제들이 제대로 된 심의와 숙고 없이, 위헌 소지까지 감수하면서 통과될 처지다. 세계 각국이 자국 기업의 경쟁력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는 것이 못내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