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바위산
쌓기는 어려워도 허물어 뜨리는 건 하루 아침이다.
죽이 맞고 마음이 맞는 친구가 산을 좋아하게 되어서 너무 기뻤는데
어쩌면 우리는 남은 인생 길을 더 즐겁게 걸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불과 4개월 만에 친구의 체력은 산과 멀어져 있었던 그날로 다시 돌아 갔다.
정말로 완벽하게……
그 몇 개월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엄하사는 그 어려운 조령산행에서도 흔들림 없는 짱짱한 체력을 과시했고
올 여름 이슬봉 산행에서도 시종 즐겁고 여유로운 산행을 이어가며 산행 내내
기쁨에 들 뜬 모습이었다...
우린 금요일 저녁에 문막에서 만나 소주 3병과 담근 술 몇 잔을 마셨다..
술을 좀 마시긴 했지만 술 탓 만은 아니다.
엄하사의 마음이 어지러웠다.
광교산을 거르지 않고 늦은 저녁에도 수원 천변을 걸으며 개인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던 엄학사가 사라진 것이다.
규칙적인 운동과 강인한 의지로 체력은 일취월장 좋아지고 정신도 바로 섰던 엄하사 .
이젠 모든 게 일단락되고 회사 일도 예상보다 잘 풀려 가다 보니 초심을 잃어 버린 듯 하다.
삶의 환경도 달라지고 다시 골프채를 잡게 되니 마음도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 이젠
또 다른 차원과 양상의 고민에 빠져들고 있다.
어쩌면 산이 애초에 맞지 체질에 맞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꽤 오랜 기간을 산과 함께 했기에 그렇게 쉽사리 마음이 산에서 멀어 질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마음의 번민을 떨치고 단지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생각으로 둘러 멘 배낭이었다 해도
친구의 생활이 바로 잡혔으니 잘된 일이긴 하나 친구가 산을 정말로 좋아하게 되었던 건
아니었다는 사실에 조금은 섭섭하고 허탈했다.
산이 나에게 한 것처럼 친구에게도 좋은 스승아지 친구가 되어줄 수 있었을 텐데......
친구가 산에서 멀어졌다고 문제 될 건 없다.
우린 남은 인생 오래도록 더불어 어깨동무하고 살아가야 할 친구…
거친 산을 함께할 수 없으니 만남의 빈도수를 늘릴 수야 없겠지만 친구와 함께하려던
B급 산행을 C급 산행으로 바꾸거나 여행으로 대체하면 되는 거지.
그러다 내가 다시 은퇴하거나 산에서 내려오면 더 자주만나면서 살면 되는 거지.
북바위 산은 한 번도 가지 않은 산이다.
산행 전날 친구와 술도 한 잔 나눠야 하고 요즘 산에서 조금은 멀어졌을 엄하사가
그다지 힘들지 않은 귀향의 동선에 있는 산을 찾다 보니 이 곳을 선택하게 되었다.
날은 쾌청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 주어 산에 오르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다.
월악권에 속한 북바위 산의 풍광은 출중했다.
월악산 금수산 용아릉등 걸출한 풍경의 산들이 즐비한 지역에 있어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것일 뿐 어디에 내어 놓아도 빠지지 않은 산세에다 예측불허의 반전 매력이 넘쳐 난다..
특히 오름길 등로에서 바라 보는 파노라마 치는 월악 산릉들의 조망은 압권이다.
노송과 바위들이 어우러진 풍경은 또 다른 화풍의 멋진 그림이었고 등로 여기저기 에서
눈길을 끄는 멋진 자태의 소나무는 절로 한숨을 짓게 한다..
좋은 날씨에 친구와 함께 가보지 않은 아름다운 풍경의 산을 오르다 보니 콧노래가 절로 나는데
엄하사는 예상 외로 힘들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나는 엄하사의 페이스에 맞추어 천천히 올랐는데 여러모로 컨디션이 좋지 않은 엄하사는
자주 쉬어가며 올라야 했다.
정상에 도착하니 12시 반쯤 되었다.
체력소모는 별로 없었지만 아침 7시에 황태해장국을 끓여 먹고 나왔으니 출출해 질 때가
되었는데 6시 30분에 에 해서 엄하사는 컨디션이 좋지 못하다고 쏘세지만 조금 먹고
나는 빵 두개에다 엄하사 우유 까지 2통을 마셨다.
한참을 휴식하다가 정상의 풍경을 감상하고 하산의 길을 잡았다.
중간에 임도로 접어들어 산행을 종료할 때 까지 계속 될 줄 알았더니 임도는 중간에서
슬그머니 계곡으로 내려선다.
하산 길은 희미한 계곡 길을 따라 한 동안 계속되었다.
계곡 길은 뚜렷하지 않아 길을 놓칠 우려도 있고 비가 와서 범람하면 건너기 어려울 것
같은 구간도 있다.
돌이 많아 발이 불편하고 이끼가 덮힌 바위 길에는 조심해야 할 구간도 더러 있다.
그래서 입구 산행등로 표지판에 계곡 등로가 표시되어 있지 않고 중간에 마주친 산님들이
대분분 올랐던 등로를 다시 되짚어 돌아간다고 했던 모양이다.
하여간 우리는 변화 무쌍한 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도로로 올라서서 하산지점에서 700미터
가량 떨어져 있는 출발지 물레방아 휴게소로 회귀했다.
예상외로 멋진 산행이었디.
아직 월악권을 떠나지 못하고 아쉬움에 서성이던 고운 가을 을 만났으니.......
“산이 나를 부른다”에서 “산이 나를 갈군다”로 상황이 바뀐 엄하사에겐 힘들고 고통스러운
산행이었지만 내겐 늘 그렇듯이 즐거운 산행이었다.
계곡에서 머리를 감고 나자 속이 좀 괜찮아진 엄하사가 허기를 느껴 휴게소에서 염소 전골을
먹었는데 그 맛이 꽤 훌륭했다.
그 넉넉한 산도 준비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진심을 보이지 않는다.
산 행 일 : 2021년 10월 30일 토요일
산 행 지 : 북바위산
산행코스 : 물레방아 휴게소 –북바위산 – 모악동 전 임도 갈림길 – 계곡하산 –도로 –물레방아
휴게소
산행거리 : 약 8km
소요시간 : 약 4시간 20분
날 씨 : 맑고 바람 둏다.
동 행 : 엄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