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은 창대했다.
황금의 연휴 명절 토요일 날에는 지리산이나 덕유산에 올라 해맞이를 하고
팔도 산신께 올 한해의 무탈한 산행을 빌자고….
그리고 그 계획은 무참히 깨어졌다.
환골탈퇴하는 회사의 흐름에 부합하느라 황금연휴 토요일에도 출근하여 일하다가 밤늦게
대전으로 내려 왔다.
그래도 명절인데 차가 밀리지 않으니 야밤도 좋긴 하다.
하여간 오미크론 때문에 가장 조촐하고 맥아리 없는 역대급 명절을 보내고 나서 다시 돌아
온 2월의 첫째 토요일도 회사에 기꺼이 반납했다..
60세 넘는 노인의 계속되는 야근에 특근…..
난데 없이 일복이 터진 무릉객
강원도 길목에서 음풍농월하며 탱자 탱자 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쏟아지는 강원 하늘의 날벼락이다.
새상살이가 다 그렇다. .
판을 벌리는 사람들이 있고 수습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다.
언제까지 빨리 처리하라고 독촉만 해대는 관리자가 있고
날밤을 세워가며 처리해야 하는 실무자가 있다.
그래도 나처럼 덤으로 일하는 사람들이야 거리낌 없이 불평불만의 목청을 높일 수 있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 책임감 강한 실무자들이야 그럴 수야 있나?
무릇 몸이 약하면 온갖 병균이 달려들고
입지가 약하면 하찮은 인간들이 달려드는 법이다.
자연이나 인간세상이나 생태계의 먹이사슬은 잔혹하다.
스스로 먹이사슬의 상단으로 올라서지 않으면 늘 다른 사람들에게 휘둘리는
초식동물의 비애를 안고 살아야 한다.
근데 인간세상에서 더 처절한 건 저녁 없는 삶을 살며 어렵게 먹이사슬 상단으로 올라갔는데
늙었다고 낭떠러지에서 밀어 버리는 거 ….
그 것보다 더 슬픈 건 젊은 사자가 생태계를 장악하고 아직 늙지도 않은 곰을 늙었다고
낭떠러지에서 밀어 버리는 거
실무 사용자들 보다 더 고생하는 후배 전산실 직원들이 안스럽고 측은했다.
진행과정을 알기에 그들에게 그 무모함과 부족한 준비를 대놓고 성토하지도 못한다.
엎친데 덮친다고 이런 난장판의 와중에 여직원의 코로나 감염 검사 공백과 확진 스트레스 까지…
이순의 삶을 흔드는 이 시간은 내 삶의 어떤 복선인가?
외곽경비 방위병에서 수색대 첨병으로 전선에 투입되어 동분서주 하면서 생각해 보니
지금 힘들긴 하지만 이 나이에 젊은 날처럼 열심히 일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삶의 활력이 되지
않겠나?
함께 고생하는 추억도 훗날엔 그리움이 되겠지.
회사의 1세대 전산화를 주도하고 30년 후 제 2세대 전산화의 지켜보며 일선에서 고분분투
하는 것 또한 신의 뜻이고 무슨 운명 같은 것 인지도 모른다.
백두대간을 누빈 무릉객이 느닺없이 강원도의 수문장을 하게 된 것처럼….
난 문막에서 힘들게 일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내 기준에서 그들의 삶은 치열하고도 고단했다.
나보다 더 나이든 사람이 새벽 같이 나와서 매일 수 백포의 사료 등짐을 지고
명절 연휴건 야밤이건 상관없이 사료를 배달하고 수송한다.
코로나 때문에 반감되긴 했지만 그들의 세상에도 더불어 사는 즐거움이 있고 낭만이 있다.
자기 일 하기도 바빠서 전혀 그럴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이젠 주문실 쓰레기통도
비워주고 지저분한 주변도 곧잘 정리한다.
봄엔 버들강아지며 봄 꽃을 꺾어 생수통에 꽃아 놓기도 한다.
그것 뿐인가?
없는 시간을 쪼개 땀흘리며 텃밭을 가꾸고 그 텃밭에서 소출한 옥수수며, 고추며, 가지, 배추
등을 나누고 주말에 내려가는 내게도 한아름씩 챙겨준다..
그들은 많은 결핍 속에서도 정을 나누고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 꿋꿋하 살아간다.
더 많은 것을 갖고 그리고 또 많은 것을 누리고 살면서도 늘 부족함에 시달리며 사는 사람들
보다 더 열정적으로 자신의 삶을 산다.
자신만의 편견과 아집은 깨어져야 하고 관점은 더 유연하고 때론 바뀌어야 한다.
사람 모여 사는 데는 어디든지 살만하다.
중요하 건 그들과 같이 어울리며 마음을 나누며 회심탄회해질 수 있는가?
그동안 생각 없이 누리던 내 삶의 평화는 많은 부분이 그들의 땀과 고통의 덕분이었다.
그들이 맡은 일들을 열심히 잘해주니 상대적으로 내가 여유롭고 자유로울 수 있었다
실무자지만 그들에겐 또 관리자 위치가 되는 나는 그들과 생각보다 더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고 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살아 온 날들 또한 삶의 값진 교훈이었다.
그들도 내 삶의 스승이었다.
그들로 인해 내가 살았던 삶과 내가 누라는 많은 것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내 지난 삶을 돌아 보고 더 열심히 살아야 할 나의 남은 날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토요일 저녁에 대전에 내려 갔다가 올 수도 있지만 괜히 몸만 더 피곤할 것 같다.
이 또한 모두 하늘의 뜻이려니…..
조사장과 좌구굴욕 이후에 산에서 많이 멀어져 있었다.
명절 마지막 일요일 날 마눌과 뒷동산 두 시간 산책하고 동네에서 순두부 찌게 한 그릇
먹은 게 전부였으니 가히 어느 쇠잔한 나의 미래를 미리 차용한 체험하습과도 같은 날들 이었다.
내 친 김에 일요일엔 치악산 해돋이나 보고 나홀로 시산제나 올리고 오자 !
작정을 하고 나자 심신이 지쳐 피곤한 와중에도 오히려 새로운 도전을 향한 강한 열망이
솟구치고 새로운 기운이 솟아 난다.
그려 송충이는 솔 잎을 먹어야지..
치악산 종주……
지난 해 여름 군대 친구들과 치악산 비로봉에 오르긴 했었지만
마음에 두고 있는 비로봉 – 남대봉 종주는 그냥 막연한 계획으로 가슴 한 구석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러다가 설악산 수문장 계약해제되면 치악산 종주 한 번 못해보고 강원도를 떠날지도 모른다.
세마리 토끼를 잡으러 떠나는 길이다...
치악산 일출에 나만의 시산제
그리고 그 힘들다는 치악능선 풀종주
그러고 보니 치악은 늘 내 바짓가랭이를 물고 늘어졌었다.
겁없이 나대던 내 젊은 날
인터넷도 활성화되지 않은 그 시절에 달랑 치악산 지도 한 장 가지고 손수 차를 몰고
구룡사에서 시작하여 비로봉과 향로봉 남대봉을 거쳐 상원사로 치악산 풀종주란 걸 했었는데
그 때 바위에서 발을 삐끗하여 혼자 30여분을 누웠다가 아픈 다리를 이끌고 어렵게 산행을
마무리 했다.
당시엔 기록을 남기지 않을 때였지만
아마 7시간 30분 정도는 족히 소요된 거친 산행이었던 것 같다.
하아에나처럼 혼자 세상을 떠돌는 습관과 거친 세상을 향한 겁 없는 나의 도전은 내 삶에
자신감을 불어 넣었고 훗날 백두대간으로 나를 이끌었다.
작년 이기자 군대 친구들과 산행에서는 황점에서 비로봉 찍고 구룡사로 하산했는데
구룡사 다 내려와서야 정상에 가방을 놓고 온 걸 알아 채고 다시 올라 갔다가 가방을
찾아서 되 넘어 갔다..
친구들은 지금도 만나면 그 애기를 한다….
치악산을 넘어가서 다시 넘어 온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라고…
ㅎㅎ 살다보면 가고 싶지 않지만 가야하는 길도 있다
자동차키에서 부터 핸드폰, 지갑, 신용카드에 이르기 까지 나의 모든 것이
거기 들어 있었으니….
하여튼 난 익숙한 황점루트를 따라 비로봉에 오르기로 했다.
워낙 혼자도 잘 노는 체질이라 저녁에 책 보며 빈둥거리다 느즈감치 짜장면 까지 끓여 먹고
뉴스를 보고나니 10시가 다 되어 부랴부랴 여장을 꾸리고 음식을 준비하다 보니 11시가
훌쩍 넘어 갔다..
9시에 잠자리에 들어 6시간은 자고 간다는 풍신이 다른 날 보다 더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3시 17분에 알람을 맞춰 놓았다.
Zzz~~~
3시간 남짓 눈 붙이고 알람 소리에 일어 났는데 정말 5분 누었다가 일어난 것 같다.
얼려 놓았던 곰국을(어제 밤에 해동을 위해 꺼내 놓음) 팔팔 끓여서 고기를 듬뿍 집어 넣고
한 그릇을 다 비웠다.
마눌이 만들어 보낸 수제 곰탕을 걸 아껴서 아주 요긴하게 잘 활용한 셈이다.
이 추운 날에는 든든히 먹고 나서야지….
무막지하게 추운 날인데 그나마 속이 따뜻하니 좋다.
5시가 채 되지 않아 낯설지 않은 황골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단기가 내려 있어서 고민을 하다가 사무실옆 빈터에 차를 파킹했다.
완전 무장을 한 채 이마에 등불을 걸고 비장한 각오로 칠흑의 어둠 속으로 숨어 들었다.
두꺼운 바지와 겨울용 등산 쉐타를 가져 오려다가 그냥 문막에 있는 초겨울 용 좀 얇은 것을
입고 나왔다.
대신 일반 쉐타를 하나 더 넣어 추우면 껴입기로 하고 오리털 파카는 유사시를 대비에
배낭에 꾸려 넣었다..
내 체질에 맞는 나름 철저한 보온 대책이었지만 갑자기 엄습한 치악 한파의 내습에 얇은
하의가 좀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오리가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 끊임 없이 헤엄치 듯 열심히 움직이면 몸에서 열이
많이 나서 하체는 그리 추위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근데 치악골의 추위는 생각보다 혹독했다...
두건을 벗고 맨입과 맨코로 호흡을 할 수가 없고
털모자와 두건을 겹쳤는데도 귀가 시리고 손발이 시리다.
모타가 예열을 끝내고 정상작동 할 때 까지는 기다리는 것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다.….
해마다 새해에 정신의 날을 바로 세우기 위해 연말이면 칼바람과 매서운 추위를 만나러 일부러
심산의 고원으로 떠나곤 했다.
냉혹한 날것의 자연과 대면할 때마다 나의 정신은 깨어나고 내 안에 잠자던 열정과 야생의
본능이 되살아 났다..
쇳소리 나는 바람은 가슴을 후비는 감동의 음악이었고 처절한 추위는 역설적으로 내 안의
뜨거움을 확인 시켜 주었다.
그런 날들이 단조로운 내 삶에 다이나믹하고 스릴넘치는 모험을 바람을 몰고오고
세상에서 피로하고 고갈되었던 나를 재충전시키고 다시 의욕이 충만케 해 주었다.
"할말 없는 거지 ! 내가 좋다는 데 우짤껴?
남들 눈에 비치는 이런 쎙고생이 내가 사는 재미라니…"
그 옛날 겨울 지리산이나 덕유산 해맞이 길에도 산행 중에는 오리털내피를 입은 적이 없다.
오늘도 초겨울용 쉐타에 자켓을 하나 걸치고 가는 길이다.
싸늘한 치악골의 냉기에 어께는 계속 시리고 추위로 인한 손과 발의 아픔은 가시지 않았다.
“ 지난해 문막 수도관이 얼어터진 날 남덕유에 올랐다가 뒤질랜드 가는 줄 알았는데
오늘도 그날에 버금가는 거 가터 ,,,”
입석사 오름 길에서 나와 같은 부류의 한 마리 젊은 하이에나가 내 곁을 스쳐 지났다.
희미한 불빛에 소리없이 다가와 나를 추월하는 바람에 짐승인 줄 알고 화들짝 놀랐다.
어둠속에 짙게 날리는 고독의 향기 …
그리고 느껴지는 젊은 수컷의 강인한 포스….
앞서가는 젊은 친구는 입석사 옆 본격적인 산길 들머리에서 아이젠을 하고 있었다.
“수고가 많네요…”
어둠 속에 인사를 날리고 내가 먼저 산 길로 접어 들었다.
그다지 많은 눈이 아니라 아직 아이젠을 할 것 까지는 없을 것 같아 나는 그대로 치고 올랐다.
내 경험상으로 현저히 발길이 미끄러져서 힘이 더 들지 않는 이상 오름길에서는 가급적
아이젠은 안하는 게 좋다.
산길 중반에서 우린 잠시 다시 조우해 몇 마디 말을 나눴고 이내 그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자가 발전으로 인해 추위도 조금씩 누그러 지고 마음은 평정을 찾아 갔지만 손과 발은
계속 시리고 아팠다.
능선에 오르는 순간 그동안 유지 되던 계곡의 평화는 사라졌다.
사방이 막힌 데다 체력소모가 많은 낙차 큰 계곡이 오히려 보온에는 보탬을 주었던 것이다.
양쪽이 트인 능선 위에서 바람은 승냥이 울음을 냈고 바람이 몰고온 냉기는 온몸을 파고
들었다.
“와우 ~~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쎈 놈이다.”
근데 능선 길 어디에서도 배낭을 풀고 옷을 껴 입을 만한 데가 없다.
좌구산 굴욕에 이어 치악산 까지 뻣치는 망신 살
정상도 아니고 오름 길에서 오리털 내피를 입을 생각을 다 하다니…..
속도를 좀 늦추었다
속도를 빨리하는 건 좋은 데 너무 일찍 비로봉에 도착하면 사위에 거칠 것이라고는 없는
1000고지 봉우리에서 무방비로 바람을 맞아야 한다.
움직임이 정지된 그 때는 오리털 내피고 북극곰 외투고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래도 생각이 단순해지는 이런 시간이 좋다.
숫컷의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분비가 왕성해지고 전사의 아드레날린이 분출하는 이런 순간
위기 극복의 본능이 작동하고 늘 그랬듯이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솟구치고
야생의 투혼이 되살아 나는 이 시간
이런 극한의 시간이 있어 난 내 일상이 얼마나 평화로운 축복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털모자를 쓰고 목두건을 그 위에 까지 덮어쓰고 눈만 내 놓은 상태에서도 바람이 내는
승냥이 울음소리는 계속 들려 왔다.
눈 쌓인 길이 드러나고 조금씩 날이 밝아 왔다.
다행이 비로봉이 보이는 능선 길에서 둔덕이져서 바람를 막아 주는 곳을 발견했다.
처음으로 배낭을 내리고 뜨거운 물을 두 잔 마셨다.
그리고 배낭에서 오리털 내피를 꺼내서 파카 안에 겹쳐 입었다.
한참을 걸려 다시 여장을 수습하고 출발하려는 찰라 아뿔사 스틱 한 개가 보이지 않는다.
흐미 ~ 옷을 끼워 입느라 부산을 떨다가 산비탈로 미끄러져 내려간 모양이다.
후렛쉬를 비춰봐도 비탈이 가팔라서 스틱의 위치가 확인이 되지 않는다.
내려 갈 수도 없는 날 선 비탈 길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시간만 가는데
그렇다고 오늘의 긴 여정에 스틱을 포기할 수도 없다
할 수 없이 길 아래쪽으로 내려가서 밑에서 부터 우회하여 내가 쉬던 장소를 확인하면서
비탈길을 치고 올랐다.
다행히 비탈 중간 지점에서 미끄러 내린 스틱을 찾을 수가 있었다.
참 신기하다. 나도 모르는 새에 이 녀석이 언제 여기 까지 내려 왔는지 …
이제 조금씩 푸른 기를 머금어 가는 하늘에 아직 달이 남아 있으니 가히 달밤에 체조라 할만하다.
쌩쑈도 이런 쌩쇼가 없다.
다시 배낭 위치로 돌아와 여장을 수습하고 한 굽이 오르막을 올라 서는데 손은 왜이리
깨어지게 시린지…?
그런데 비로봉을 옆으로 둔 동편 하늘은 붉고도 선명한 여명이 깨어나고 있다.
오늘 일출은 따 놓은 당상인데…
그 황홀한 일출의 붉은 오색 여명이 자즈러질까 걱정되어 장갑을 낀 그 시린 손으로
셔터르 누른다.
손이 시려 감각이 없으니 장깝 낀 손으로 셔터가 눌러 지지도 않는다..
언 손은 얼얼하다 못해 터져 나갈 듯 아프다. .
할 수 없이 그 와중에 장갑을 벗고 셔터를 누르는데 이번에는 촬영모드가 맞지 않는다.
역대급 추위 ! 이렇게 터져나갈 듯 아픈 손은 처음이다.
그 추위에 카메라가지고 맨 손으로 씨름을 하자니 진짜 악 소리 나온다.
예술의 길은 정말 멀고도 험난 한 거
나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나만을 위한 사진을 찍느라 내 손발의 세포에 급속 냉동의
테러를 가하고 있는 중이다.
몇 컷 찍긴 찍었는데 진짜 동상이라도 걸린 것처럼 아무리 두 손을 비벼대도 아픔이
가시지 않는다.
비로봉 오르는 내내 후회가 밀려 왔다.
일출은 그렇다 치고 그 사진이 뭐라고 언 손의 아픔을 참아가며 그렇게 용을 쓰는가?
마티스는 초딩이 그린 것 같은 단순한 그림으로도 수 백억의 돈을 버는데
이 개고생하면서 내가 찍은 멋진 사진은 아무도 값을 쳐주지 않는데 …..
산이 하는 말을 들었다.
“아서라 무릉객
네가 본 이 시린 세상의 아름다움만도 부귀영화에 필적하는 귀한 시간 이라네….
세상에 하나 뿐인 너 만을 위한 풍경
다시 만나기 어려운 이 풍경의 가치는 너 만이 알고 있으니 그 값은 스스로 매기면 될 아닌가? “
그래서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이 있다.
난 나의 사진에 딱 1억의 가격표를 붙이기로 했다.
안 팔리면 나의 고가 소장품이고 팔리면 더 좋고 …
근데 진짜 산다면 99% DC도 해줄 수 있다..
그 것보다 더 오래된 장엄한 추억들의 가격 까지 죄다 메기면
NFT 자산을 나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도 별로 없을껴 …
새벽의 상념에 잠기고 있는 이 때
“띠리리리~~~~” 울리는 비장한 벨소리
헐 엄중한 이 눈 밭, 식전 댓 바람부터 왠 전화여?
첫마디부터 격앙된 소리가 터져 나온다.
콜러 : “4438 “ 차주 되세요?
나 : 예 그런 데요…
콜러 : 아늬 차를 사무실 옆에 세우시면 어떻게 해요
주차장 넓은 데를 두고
나 : 차단기가 내려와 있어서 차 둘 데가 거기 밖에 없더라고요…
콜러 : 아니 앞에 가면 자동으로 올라가는 건데 …
요즘 다 그런 거지 사람이 어떻게 일일이 올려줘요?
나 : 그럴리가 ? 가까이 갔는데도 안 올라 가더라고요 ….
콜러 : 더 가까이 가야지 .. 그럼 다른 차는 어떻게 들어 갔겠어요?
나 : 어두워서 다른 차는 못 봤는 데요
콜러 : 그러면 차라리 갓길에다 주차를 하셔야지 그 곳은 영선차를 대고 수시로 자재를
불출 하는 창고 앞 인데 거기다 주차하시면 일을 어떻게 해요?
나 : 그람 주차 금지 표시라도 해 놓으셔야지
그라고 일요일도 일을 하시나요?
(아뿔싸! 그 말에 그 양반 더 뻑쳐서 기분이 나빠진 것 갗다.)
콜러 : 지금 어디세요? (낮게 깔린 볼멘소리)
나 : (통빡을 재고) 지금 남대봉 쪽으로 가고있어요….
콜러 : 비로봉도 안 들리고 벌써 황골 삼거리를 넘어 갔다는 말이예요?
나 : 오늘은 종주하는거라 거기 안 들리고 남대봉으로 직접 가유
콜러 : 그럼 곧은재로 하산하셔서 택시타고 바로 오세요…
(사태는 점점 더 심각한 국면으로 흐르고…)
나 : 죄송한데 두 시 까지만 기다려 주세요 그 때 까지는 갈 수 있어요…
콜러 : CCTV에도 다 찍혔고 빨리 안 내려 오시면 견인 시킵니다.
나 : 치악산 종주하러 대전에서 왔는데 하여간 최대한 빨리 내려 갈 테니 좀 봐주세요
콜러 : 그럼 견인소에서 찾아야 하실 겁니다.
곧은재로 하산 하세요 .
나 : 하여간 최대한 빨리 가 볼께요….
참 어이 없다.
차단기 앞에 까지 갔는데 올라가지 않던데 완전 앞에 까지 밀어 부쳐야 했나 보다
지난 번 설악 화채능선 종주 때도 우중 생쑈하는데 차 빼라고 전화 오드만
그날만큼 악전고투하는 오늘도 그 날과 판박이 상황이다.
“왜 맨날 내차만 가지고 그래?”
일 하는 자재를 못 뺀다는 게 말이 되는가?
앞 쪽 길에 세워두고 몇 발자국 더 걸어서 날으면 되는 거지….
그리고 일요일에 공사는 무신 공사고, 무신 자재 불출이여?
견인하든지 말든지 …
근데 껄쩍지근 하다.
전화로 실강이 하다보니 발도 손도 깨어 터져 나가고….
난 아즉 비로봉에도 안 올랐는데 곧은재 까지 가도 10시는 되긋다.
하여간 난 정상에 올랐다.
시간을 맞추기라도 한 듯 정확한 타이밍 이었다.
스틱쇼와 전화쇼 덕분에 정확히 일출이 제대로 터져 올라오기 일보 직전에 비로봉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3명의 산님이 서성이고 있었고 나와 비슷한 시간에 세 명이 산님이 더 합류했다.
장엄한 비로봉의 새벽 이었다.
평상시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오른 산이 내게 최고의 찬사를 쏟아내는 시간
새벽 3시 17분에 일어나 곰국을 데워 먹고 나선 야심한 2시간 반의 어둠 속 고행은
빛을 만나기 위한 순례의 대장정으로 바뀌는 순간 이었다.
무념무상 무장무애 !
나는 어둠 속을 걸어 칼바람 부는 설산에 오른다 ·
그리고 더 오를 곳에서 다시 떠오르는 새날의 희망과 기쁨을 만난다 ·
거창할 것도 없는 단순한 이 여행이 세상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꾸고
내 삶의 색깔을 바꾼다 ·
거기 명상과 사색이 있고 황홀한 고독이 있다
세상에서 잃어버린 나를 만나고 내 영혼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눈다 ·
세속에 발을 딛고 있는 속인이 어찌 득도의 길에 오를 수 있으랴만 ··
나는 이 영혼의 순례를 통해 스스로 맑아지고 고요해진다.
근데 참으로 신기한 건
정작 엄청난 바람과 추위를 예상했던 비로봉 정상은 평화로웠다.
바람도 자고 오리털을 껴 입고 올라오느라 그랬는지 그 다지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여기가 오메가 포인트 였다.
인간의 단계를 거쳐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고요와 평정의 신의 세상
진,선,미가 하나 되는 곳
슬픔과 기쁨이 등을 맞대고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는 곳
욕심과 미망이 사라지고 비움과 채움이 조화와 균형을 아룬 채 조용한 감동이
가슴으로 솟구쳐 오르는 이 곳
오늘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세상의 중심이다.
IMVIP
I am Very Important Person
나는 브이아이피다.
I am Most Valuable and Important Person.
나는 가장 귀하고 중요한 사람이다
해는 얼마 되지 않아 동편 하늘로 힘차게 솟구쳐 올랐다.
오랫동안 보고 싶었던 그 풍경이었다.
강원도의 수문장을 하면서 숙제처럼 가슴에 남아 있던 해묵은 숙원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비로봉의 풍경과 일출의 여운을 모두 담고 나서
태양을 바라보는 나만의 제단을 만들고 시산제를 올렸다.
제물은 조촐했다.
집에서 조상의 차례를 모실 때 준비했던 전과 사과 와 배
배는 너무 크고 그 냉혹한 추위에 깎기가 어려울 것 같아 잘 깎아 담아 왔다.
술은 배 회장님이 강원도 가는 길에 친히 들려서 전해주신 약술
차가운 바닥에 꿇어 술 잔을 채우고 삼배를 올렸다.
더 많이 사랑하게 하소서
늘 필요한 사람으로 남게 하시고
나의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소서
올해도 세월에 먼저 늙어가지 않는 마음과 지치지 않는 체력을 허락 하소서
사람들은 다 안다.
하늘에는 하느님이 있고, 극락에는 부처님이 있고, 산에는 산신령이 있다는 걸
시산제는 산과 통하고 사람과 소통하는 영혼의 교감이란 걸…
그건 미신과 무속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경의이고 우릴 돌아보는 겸손함이며 산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성스러운 의식이란 걸
종교와 무속을 초월하여 대자연 속 하나의 피조물인 인간이 불멸의 신에게 드리는 경배였고
또 한해의 무탈함을 기원하는 무릉객의 정성이었다.
신과의 동행
어쩌면 나는 혼자 걷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
신은 거기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난 산길에서 늘 나를 보호하는 신과의 동행을 느낀다..
의식을 치루느라 가장 늦게 하산했다 ·
황골삼거리를 되돌아가 향로봉을 향해 걸어갔다 ·
해가 떠오르고 나서 설산의 윤곽과 풍경은 구체화되고 추위는 조금씩 누그러 들었다 ·
낙차도 그리 크지 않고 아이젠을 했지만 쌓인 눈으로 발이 편안한 그 길에서
마음도 편안해졌다 ··
길은 외길이고 길 위에는 나 말고 아무도 없다 ·
배가 고파와서 한참을 걸어가며 적당한 곳을 찾았지만 벤취나 쉼터도 만나지 못했다 ··
그냥 가다가 양지 바른 길 위에 배낭을 내렸다 ··
가방과 카메라는 나무 등걸에 걸고 간이 의자에 걸터앉아 오늘도 홀로 아침식사를 한다
조촐한 성찬
내가 먹은 건 보름달 하나와 전.
그리고 뜨거운 물 ··후식으로 엄청 큰 배 1/4 쪽 까지
공단 직원이 내려오라던 곧은재도 그리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
그곳에서 우측으로는 곧은재 탐방지원 센터로 내려가는 하산로고 좌측은 부곡으로
하산하는 코스다 ·
곧은재로 내려오라 했지만 난 애초에 그럴 생각이 없다
설마 견인 시키기야 하것어 ?
또 견인한다 한들 워쩌것어 ?
가서 깽판 한번 부리고 찾아 오는 수 밖에…
치악산 부곡 탐방센터에서 비로봉에 올랐다가 곧은재까지 능선산행을 하고 그곳에서
다시 향로봉에 오른 다음 곧은재로 되돌아와 부곡으로 내려가면 6시간여 소요되는 멋진
원점회귀 산행이 될 것이다 ·
곧은재에서 향로봉은 시종오름길이다 ··
향로봉 가기 직전에 행구 탐방센터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
향로봉여서 마눌과 통화를 하고 처음으로 한 산님을 만났다 ·
치악산 하산로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 보았다 ··
나의 종주 목표인 남대봉을 찍고 상원사나 영원사로 하산하면 황골과 거리가 멀어져
택시비도 많이 나올 거고 시간 소요도 많을 거란다 ··
거기다 마음없에 두고 있던 영원사는 길이 미끄러워 택시가 올라오지 못하면 한참을
걸어내려 가야 한다고
산님은 행로봉 못미쳐 행구 탐방센터를 추천했다 ··
그렇다고 곧바로 뒤돌아가 행구탐방로로 하산하고 싶지는 않았다 .
산님에게 사진 한 장을 부탁하여 기록을 남기고 나는 남대봉을 향해 나아갔다 ··
그리고 남대봉을 가면서 오늘 남은 종주 거리 반을 진행하고 다시 되돌아와
행구 탐방지원 센터로 내려가기로 했다 ··
종주는는 미왼성이지만 거리상으로 종주와 같아서 종주에 버금가는 실리적인 절충안이었다 ·
비용과 시간을 같이 절약할 수 있는….
향로봉에서 아득히 보이는 세 봉우리를 넘어 갔다가 되돌아 오기로 했다.
그 세 봉우리를 넘는 길이 종주 능선의 가장 거친 길이었다
난 그 세개의 봉우리 넘어 평온해진 산세의 어느 양지바른 언덕에서 여장을 풀고 충분히
휴식하며 뜨거운 물과 과일로 긴 여행의 여독을 풀었다 ·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회군의 적지 였다.
신이 암시해주는 쉼터에서 따뜻하고 편안한 휴식을 취하며 한잠을 한가로이 앉아 있다가
다시 향로봉을 향한 귀로에 올랐다 ··.
치열한 아침은 지나갔다
향로봉 까지의 회군도 무사히 마치고 행구 하산로로 들어섰다.
행구 하산길에서 긴장이 풀어져서 인지 오히려 발길이 무거웠다 ·
행구 탐방지원센터 하산로는 빠른 만큼 냑차는 엄청나고 길은 온통 불편한 돌길이었디
중간에 한번 휴식하면서 얼마 남지않은 뜨거운 물에 찬물을 타서 마시려 했더니
오늘 치악의 추워에 꽁꽁 얼어버린 물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
배낭에 무게만 보탠 무용지물 이었다 ··
하산길 중간에 보문사가 있다
양지바른 언덕에 위치한 평화로운 절이다 ·
경내를 둘러보고 관음상이 내려다 보는 절 계단에 앉아 남은 뜨거운물을 마시고
아이젠을 풀었다 ·
탐방지원션터 까지는 1.8키로 정도의 포장도로였는데 난 발의 피로를 풀기 위해
뒷걸음으로 내려왔다
중간에 전화를 걸렸더니 예상했던 국향사 대신 탐방지원 센터가 나타나 배낭을 내리고
택시를 호출 했고 택시는 비람같이 달러왔다 ··
8시간 소요된 모처럼의 대장정은 그렇게 끝이 났다 ·
내게 중요한 건 고목처럼 오래 살아남는 게 아니다.
하루를 살아도 즐겁고 재미 있게 ….
그리고 나의 가슴이 뛰는 삶이다.
내 의지대로 가고 싶은데 가고 먹고 싶은 것 먹을 수 있는 건강한 시간이다.
그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알고 있는 거라고는 우린 지금도 무기력과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죽은 후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죽음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안다..
나는 죽는다.
나는 혼자 죽는다.
그리고 아무 것도 가져가지 못한다.
죽은 후의 세상은 내 알바 아니다.
죽어서 다시 생이 꽃 핀다 한들 여기서 잘 살았던 것처럼
거기서도 잘 살아 갈 것이다.
설령 다시 태어나도 레떼의 강을 건너 내 생의 기억이 없어지거늘
다시 태어남은 지금의 내가 아닐지니 또 무슨 상관이랴?
열심히 산다고 살았지만 어영부영 하다가 나의 소중한 젊은 시간들이 다 지나 갔다.
내가 지금 알았던 것들을 그 때 알았더라면 더 열심히 살았을 것이지만
사람은 배우며 성장하는 존재라
삶의 지혜란 많은 세월을 보내고 또 많은 스승을 만나고 스스로 곰삭고 깊어져야 비로소
깨닫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살았으니 후회는 없다
과거는 이미 지나 갔다
중요한 건 남아 있는 소중한 시간을 어떻게 누리며 즐겁게 살아 갈 것인가?
그래야 늙어 툇마루에 앉아 먼산을 쳐다보는 날 후회스럽지 않지 않겠나?
시한부 인생을 사는 내가 무슨 미련과 욕심이 그리 덕지 덕지 많아야 하는가?
도대체 내가 무엇을 괴로워 하고 아둥바둥 해야 하는가?
상처
조르주 상드
나는 덤불 속에 가시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꽃을 찾던 손을 멈추지는 않겠네
그 안의 꽃이 모두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만
만약 그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꽃의 향기조차 맡을 수 없는 것이기에
꽃을 꺾기 위해서 가시에 찔리듯
사랑을 구하기 위해서는
내 영혼의 상처도 감내하겠네
상처받기 위해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상처받는 것이기에
자율주행차가 나오고, 인공지능 로봇이 나와서 손 하나 까딱 안하고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고, 드론을 타고 편안하게 산 정상 까지 올라 갈 수 있는 세상이 와도 장단지에
뻐근한 힘이 실리고 거친 숨을 몰아 쉬고 코김 팍팍 내 품으며 산에 올라야 무릉객은
세상사는 맛이 나는 거다.
에필로그
약속한 2시가 채 안되어 황골에 도착했더니 국공 아자시 멀리서 알아채고 손에 보드판을
들고 버선발(?)로 뛰어 나온다.
9시간 불법주차
그래도 전화와는 사뭇 다른 공손한 톤이다.
내 애마는 사무실 옆 공터에 얌전히 앉아 있다.
“산 타시는 데 계속 전화하면 기분 나쁘실 것 같아 전화 안 드렸어요…”
나는 약간 불만석인 어투로
“ 아저씨 땜시 스트레스 받아서 남대봉도 못가고 중간에 내려 왔어요..”
일부러 볼멘 소리를 했다.
“ 진짜 그쪽에 차를 대시면 안되요..
가분 좋은 산 타시는데 독촉 전화 안했고
그리고 무사히 내려오셨으니 다행이예요.. “
그러면서 보드판을 내밀며 불법주차에 서명하라고 한다.
“헐 ~ 이기 멉니까?”
“ 아 별거 아니예요
따로 과태로는 없구요 . 다음에 또 국립공원에서 불법주차 하면 그 때는 그 때는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일 종의 경고장이에요…
ㅋㅋ
이 아자씨 멀 잘 모른다.
난 지난 가을 오색에서도 불법주차로 걸렸는데 그건 기록에 안 남았다는 걸……
난 흔쾌히 싸인을 했다.
“다음에 또 국립공원에 불법주차할 일이 무에 있을까?”
덕분에 종일 주차료는 굳었다.
새해 벽두부터 돈이 굳는 걸 보면 올해도 산기와 태양기가 나한테 좋은 기운을 펑펑
몰아 주는거 아녀?
그래도 정든 아저씨와 인사를 나누고 애마의 시동을 거는데 .,,,,
추위에 엔진이 큰소리로 방방 거리며 자갈에 탱크 구르는 소리를 내다가 툭 꺼져 버린다.
다시 엔진을 거니 이게 무신 담프트럭인 요란한 소리를 내며 차체까지 요동친다.
흐미 ~ 남사시러라 ….
“ 야 애마야 너 추운데 혼자 너무 오래 두었다고 시위하냐?
그랴도 분위기가 있고 무릉객 체면이 있지 “
나는 창문을 내리고 다시 뻘쭘하게 인사를 하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오랜만에 체력 소모가 컸던 산행이었던 모양이다.
잠을 설친 새벽 산행에다 모진 추위까지 가세한 상태에서 잔뜩 웅크린 채 장시간 낙차 큰
거친 길을 걸었으니…..
집에 도착하자 마자 얼갈이 된장국을 끓여 먹고 3시간여 잠을 자고 일어 났고
잠깐 볼일 보고 내쳐 자고 다시 새벽에 일어 났다.
10시간은 족히 잤으니 부족한 잠시간을 채우고도 평상시보다 더 오래 잔 것이다.
그리고 건친 산행의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나 평상시 컨디션으로 돌아가는데는 이틀이 더
걸렸다.
2022년 2월 5일 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