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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월출산의 봄 편지

 

조사장 전화가 왔다 ·
월출로 떠나기 일주일 전에 ….··
직원들도 코로나 많이 걸리고
술자리 같이한 거래처 직원도 확진 받아서 계속 신속항원 검사 해보구 있다구 ··
게다가 지난주말에는 계룡산 장군방 능선을 타다가 발이 접질려 아즉 통증이 있다고 ··

출정이 다음주로 다가와 걱정이 되어 이번주 산행도 거르고 있다고 했다.·‥
내가 말했다 ·
오미크론은 기침이나 인후통 열감등이 나타나니 평소와 몸상태가 이상이 없으면 괜찮은 거리고
이상 징후가 있으면 목요일 쯤에 다시 검사해보라구 ··
그리고 이번 윌출산행은 6시간은 소요될 빡센산행이니
이번 주 미리 가볍게 몽풀기 산행을 하면서 예후를 보는게 더 낫겠다구··
담달로 미루어도 좋으니 무리를 하지 않는게 좋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수요일 아침에 조사장이 전화를 해서는 코로나는 괜찮은 것 같다고 하고

발은 주말에 무리는 하지 않았고 걷는 데는 별 무리 없는데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사고 원인을 다각적으로 분석 중이라고….

암릉에는 리지화를 신고

발목을 감싸는 등산화로 바꾸어야 겠다고 했다.

 

약간 삐끗한 사로를 분석하여 대책을 마련한다고?

ㅎ 조사장 답다.

내 경험상 사고는 진짜 위험한데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조심한다고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일어날 건 일어 나게 되어 있고 그건 신이 미리 프로그램 해 놓은 거다.

그렇다고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궈 먹을까?

구데기 안 생기면 잘 먹고 생기면 털구 먹으면 되는 거지

삶에서 모험과 일탈이 없다는 건 김빠진 사이다의 닝닝함 아닌가?

삶 자체도 개인적 스타일 일 뿐이다.

 

 

조사장 사용 설명서

건강 리스크는 원초 차단.

야간 산행, 금지구역 산행 철저 엄금

친구를 건강주치의로 두고

정기적인 건강검진에 이상 신호가 오면 만패불청 병원 방문

조사장은 몸에 무리 신호가 오면 좋아하는 산행도 미련없이 접을 거다

 

어디 그것 뿐이랴?

밥 숫가락 놓는 순간 일체 간식은 입에 안대고

매일 운동하고

접대 비즈니스나 친구들과 골프 치거나 나와 산 탈 때 아니고는 술은 입에 안 대고

혼 술은 더더욱 중독자의 악습으로 치부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잠은 7시간 이상 잔다

평상시 웬만하면 8시간 잔다니 우리 나이에 이런 사람 있는가?

안나푸르나에서 검증한 바에 따르면 날이 지날수록 먹성은 나보다 떨어졌지만

누으면 잠자는 내공은 나보다 한수 위였다.

 

사실 안나프르나 세부 산행기를 쓰지 못한 것도 순전 조사장 때문이었다.

둘이 방을 같이 썼는데 저녁을 먹구 숙소에 돌아오면 곧 바로 불을 껐어야 했으니

조사장 수준에서 보면 새벽 산행 밥 먹듯이 하고 홀로 비등도 마다하지 않는 나는

사고를 부르는 익스트림스포츠맨 이자 완전 스턴트맨 수준의 위험한 사나이다.,

 

ㅎㅎ

우야튼 조사장은 벼름빡에 똥칠 할 때 까지 살거다.

 

 

산행하다 발에 무리가 오면 중간에 내려와 관광으로 돌리면 된다고 안심시키고
난 오후에 파포 사진 찍는다고 사료 몇 포대 옮기다가 허리가 삐끗했다

정말 어이 없이 없는 상황
무게가 무거운 것도 아니고 몸이 느낄 만큼 심한 다른 무리를 한 것도 아닌데 ··
갑자기 엉거주춤 허리를 펼 수가 없다 ··

몇 달 전 차에서 일어나면서 갑자기 허리를 펴기 힘들었던 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허리를 자유지재로 돌리기도 어렵고 반듯한 자세로 걷가도 어럽다 ··
낼 모레 출정을 앞둔 오늘은 그 때보다도 더 황당한 상황이다 ··

조사장이 3월에 봄산행 겸 미각여행을 가자는 걸 내가 4월에 떠나자 했다 ·
월출산의 봄을 만나고 싶어서….·
월출의 가을은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 였고
월출의 겨울은 처연하고 장대한 수묵화의 감동이었다 ·
월출의 봄이 궁금했고 생애 마지막 월출 종주를 하고 싶었다.

그렇게 기대와 설레임이 함께 가는 추억여행 이었는데
바크스 신의 초대장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젤로스의 경고장을 먼저 받아든 거다. ·

 

눈부신 봄날이 느닺없이 태클을 걸어 왔다
·잠낀만 무릉객 !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뮈지 ? 신께서 갑자기 꺼내든 이 옐로 카드의 의미는?
매달 둘이 같이 움직이니 나도 핸디를 잡고 가라고?

긍게 !
가라는 거유 가지 말라는거유 ··?


의자에서 일어날때나 걸을 때 갑직스런 통증이 엄습했다·
걸을 때 허리가 펴지지 않아서 남들이 보기에도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

일단 퇴근하구 집에 가서 저녁밥을 해 먹구 산책을 나갔다 ·
허리 통증이 더 심해져서 엉거주춤 영 자세가 안 나온다 ·
통상 하루 이틀 지나거나 가벼운 산행을 하면 정상으로 돌아오곤 하니 별 걱정은 안되지만

6시간 이상 소요되는 빡센 산행이 낼 모레라


아스팔트가 안 좋을 거 같아 핸펀 전등을 켜고 산자락 길을 걷다가 논둑 길을 걸었다.

처음에는 허리를 펼 수도 없었는데 걷다 보니 자세도 나아지고 통증이 조금씩 완화된다··

알겠숑 !
가란 얘기네···

아침에 일어나니 에제와 마찬가지로 뻐근하다 ··
그래도 어제 걸어서 그런지 기분상 상태가 호전된 듯한 느낌이다.

내일 새벽 출정이라 퇴근하고 대전에 내려가 여장을 꾸려서 어머니 댁에 갔다.

과일을 먹는 중에도 계속 스트레칭하고 허리를 돌리는 날 보고 어머니는 무리해서 가지

말라고 하신다·
그리고 여동생이 갖다준 거라며 허리에 큰 파스를 붙여 주셨다·

오랜 경험으로 난 안다 ··
큰 충격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이런 정도는 산이 치유할 줄 거라는 걸‥


허리가 걱정된 것도 아닌데
2
40분 쯤에 눈이 떠지고 잠이 더 오지 않았다 ·

4시간 남짓 잔 셈이다.·
누워서 뒤척이다가 계란을 싦고 뜨거운 물을끓여서 보온병을 채웠다‥
이제 봄날이라 찬물도 괜찮겠지만 강원도 생활의 습관이었다

조사장이 신흥역까지 데리러 오니 좀 일찍 새벽 5시에 길을 나셨다 ·
배낭을 메고 좀 걸어보고 스트레칭도 할 겸

별다른 인기척을 내지도 않았는데 어머니는 화장실 가느라 잠을 깨셔서

또 어머니의 배웅을 받고 길을 나섰다.


전철역 까지 얼심히 걸어 가는데 낙차 없는 평지는 별다른 무리가 없다 ··
원근이 구분이 잘 안되는 밤길에서 갑자기 발이 휘청이면 여지없이 불에 덴 듯한 통증이

엄습했다 ··

참 완존 어이없네 !

사료포대 하나 옮기다가 이런 수모를 다 당하고….

어둑한 새벽을 불어가는 바람은 제법 스산한데

불켜진 신흥역 2번 출구 앞에서 열심히 스트레칭하는 나 ··

올림픽에라도 나가는 듯한 비장한 달밤 체조
새벽 출근 하는 아주마이들이 멀뚱멀뚱 쳐다 보았다.··

조사장은 5 33분에 도착했다 ··

조사장은 발이 삐끗하고 나는 허리가 삐끗하고 ….

둘이 오래 같이 다니다 보니 이런 것도 닮아 가는 모양이다 ·

우린 밀린 얘기 나누며 그렇게 영암으로 갔다 ··
영암 읍에 도착하면 아침을 먹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
문을 연 식당이 없다.

도시에서도 물가인상과 최저임금 인상으로 24시 음식점들이 눈에 뛰게 사라지는데

하물며 영암이야 말해 무엇할까?

 

물어 물어 길을 찾아 8시가 넘어 간신히 아침식사 되는 집을 찾았다 ··
김치 찌게 2인분에 공기밥 3개를 비우고 천황사 지구로 출발하다 ··

남도의 봄이 그렇게 눈부셨다 ··
발길이 휘청거렸다 ··
다행이 허리 때문이 아니라 그 현란한 봄빛 때문이었다 ··
가장 최근의 월출 탐방은 4년 전 2월의 겨울이었다,
2
18 현란한 눈 세상 이었으니 그간의 월출 잔상은 까맣게 지워지고 그날 월출은

내 기억의 화폭에 장대한 수묵화를 그려놓고 영혼을 흔드는 웅대한 서사시를 낙관했다..

 

경포대에서 구정봉을 거쳐 천황사로 내리던 길은 장대한 설국이었다.

 

또 다른 월출의 얼굴을 보았다.

바람재에 이정목에 배낭을 내려두고 구정봉을 올랐다가 되돌아 오는 길의 풍경은

내 생애 가장 감동적이었던 한라산 폭설 산행의 기억을 소환할 만큼 인상적이었다..

대자연이 빚은 기암괴석의 조각 공원에 날린 눈발은 몽환적인 동화의 나라를 펼쳐 놓았다.

처음 대하는 월출의 멋진 겨울 풍경에 아이들처럼 마냥 들뜨고 가슴은 부풀어 올랐다.

남도벌 끝자락에 있는 월출산에 휘영청 달빛이 내린 풍경이 아름답다는 말은 내 일찌기

들어 보았지만 월광이 무색해지는 순백의 산세상 역시 필설로 형언키어려운 절절한

감동 이었다.

 

난 그날의 감회를 이렇게 적었다.

 

도처에 내걸린 신의 그림들그리고 그 속을 걷는 홀로 나.

한 폭의 동양화 속을 걸으니 여기가 신의 정원이고 오늘은 내가 월출의 신선이다..

구름 사이를 들락거리던 눈부신 태양은 천황봉 가는 길에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함박눈이 펄펄

내렸다.

거친 바람만의 동행이었지만 춥지도 외롭지도 않은 길이었다.

 

천황봉 오르는 길에는 거센 바람이 불고 골짜기를 휘도는 광풍에 쌓여 있던 눈발이 하늘로

솟구쳐 올라 능선이 온통 자욱한 눈보라로 가려 지더니 천황봉에 도착하자 신기하게도 잠시

맑은 하늘이 열렸다.

월출 산신령님이 오늘 무릉객을 반겨 주시는 구나!”

 

결국 그날 나는 사고의 위험과 엄중한 과태료를 불사하고 출입이 전면 통제된 구름다리

쪽으로 하산했다.

그 위험한 길을 걸어 내린 사람은 40명 일행 중 나 한 명 뿐이었다.

두려움 반, 설레임 반 !,

난 비장한 카타르시스 속에서 그 험한 길을 걸어내려 정해진 시간 내에 무사히 하산을 마무리

했던 것이다.

 

산세로 보면 천황사쪽 기암 절벽이 낙차가 크고 거대해서 도갑사에서 천황사로 넘어오는

역방향 종주가 훨씬 수월 할 것이었다.

하지만 조사장이나 나나 오늘 하자 있는 몸 상태로 산행을 하는 것이니 가파른 내림 길이

더 위험하고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래서 우린 정공법으로 천황사-도갑사의 오리지날 루트를 따르기로 했다.

 

 

천황봉 가는 길

이제 봄이 막 피어나면서 산으로 오르는 중이다.

아랫 쪽 나무들은 눈부신 연초록으로 새순을 피워 올리고 회색의 거대한 바위 암봉 위에

걸터 앉은 나무들은 아직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다.

그 청회색 암릉과 갈색의 관목들 사이사이에서 진달래가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반색을 한다.

어서 오시라요 !”

남도 해남에서 먼저 피어나던 진달래가 이제 여기에서 또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다.

계절과 날씨와 풍경의 조화가 빚어낸 봄날의 멋진 하모니

나는 아름다운 월출 세상을 활공하는 한 마리 자유로운 매

피어나는 봄날의 화원을 지나 잿빛 바위위로 두둥실 날아 오르며 녹색의 봄이 번져가는

영암의 들판을 바라보는 기분을 어디 비견하랴?

자세히 보면 풀 숲에 수 많은 꽃들이 피어 나고 있다.

꽃들은 먼저 잠에서 깬 아가들처럼 아직 숙취에 곯아 떨어진 아삐의 발을 잡아 흔들고 있다.

 

등로는 한적했다.

천황봉 오름 길에서 마눌이 흘리고 간 장갑을 찾으러 그 거친 길을 되짚어 내려오는

돌쇠 남편을 만났고 해남 고향이 외로워 영암으로 흘러 들었다는 72세의 씩씩한 할배를

만났다.

 

 

장대한 월출이 바위봉들의 위용을 천천히 감상하며 오르는 길

천황사를 지나 구름다리 까지는 1.4km 밖에 되지 않아 별 어려움 없이 올라 채고

그 다음부터는 고도가 올라갈수록 가슴은 속절없이 부풀어 올랐다.

회색의 바위 성벽을 넘어 연록의 봄이 너울너울 춤추는 영암 들판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부시시 잠에서 깨어나 베일처럼 드리운 어둠의 휘장을 살며시 들추면

마음을 춤추게 하는 봄날의 마법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잠을 좀 못 자면 또 어떠랴

꿈길같이 몽롱한 이 길의 기분 좋은 피로가 오늘 죽음 보다 더 깊고

봄처녀의 입술보다 더 부드러운 잠을 불러 줄 텐데………

 

천황봉 가는 길은 거칠고 웅장 했다.

더 이상 오를 것 없는 능선을 휘돌아 가면 거기 천황봉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곳에서

등도는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가 수직으로 다시 솟구처 오른다.

미싱체인처럼 기억에서 사라진 구간이었다.

4년전 겨울 백설이 난무하던 이 길을 걸어 내릴 때는 위험만 금지구역을 잠행하는 두려움과

팽팽한 긴장감으로 길의 형태와 윤곽을 제대로 돌아 볼 겨를이 없었을 터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지만 역시 출중한 공력의 무릉객 !

한치 앞은 내다 볼 수 없는 눈과 안개 속에서 엄청난 적설로 미끄러웠을 그 길을 홀로

걸어 내렸다니

이제 백주대낯의 봄날에 그 길을 찬찬히 돌아보니 그 날의 생각으로 새삼 모골이 송연해진다..

 

아직 늙어가기에는 터무니 없이 젊은 날 아닌가?

세상의 무서운 게 없었던 그 날이 불과 4년 전이다.

 

천황봉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

여긴 이랬었구나 !

4년전은 정상은 온통 눈보라로 뒤덮혔을 테고 14년전 가을의 기억은 희미하다.

봄날의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정상에서 반가운 표석이 손을 흔들었다.

안뇽

비장했던 4년전의 설국

그 너머 14년 전 가을의 아름다운 추억과

더 머나 먼 젊은 날 도갑사에서 천황사로 넘어오던 아련한 시절의 향수가

나를 다시 이 곳에 서게 했다.

 

때론 울컥이는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건 아직 늙지 않았다는 거다.

내 육신이 아직 멀쩡하고 내 영혼은 여전히 아름다운 방랑을 멈추고 싶지 않은데

이 절륜한 세상의 기쁨을 어찌 저버릴 수 있으랴 ?

 

내 생애에서 다시 월출산 종주를 하기는 힘들 것이다.

세상은 넓고 돌아볼 곳은 많은데 사람은 쉬 늙어간다.

월출에 다시 오는 데 4년이 걸렸고

다시 온다면 그 때는 아직도 드글드글한 산욕심은 그만 내려야 할 것이다.

아니 굳이 일부러 내리지 않아도 이 세월 이 세월의 벌판을 불어가는 바람이

그리 해줄 것이다.

 

그래도 2시간 40분 이면 월출에 닿을 수 있으니 살아가는 어느 날 영암에 장대한

눈 소식이 들려오면 다시 배낭을 메고 싶다.

경포대에서 올라 구정봉에서 바람과 함께 표효하고 다시 그 위험한 길을 걸어

내리고 싶다.

 

세상은 참 어처구니 없다.

거칠 곳이 없는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봄의 모습이 공짜인데

족보도 없는 디지털 그림을 분쇄기에 넣듯 잘게 쪼개어 몇 백에 몇 천에 팔고

그게 돈이 될 거라고 아우성이다.

380년 전에 네덜란드에서 어이 없는 튜울립 투기의 광풍이 있었지.

당시 튜울립 한송이 가격이 우리나라 화폐가치로 3000만원, 소를 20마리 살 수 있는 돈

이었다고 하는데 욕심에 눈이 멀아버린 어리석은 인간의 광기의 한계는 멀쩡한 이성으로

가늠이 되지 않는다.

세월이 지나도 사람들은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다.

빛나는 황금도 아니고 내 손으로 무게를 느낄 수도 없는 비트코인을 내 계정에

하나 넣으면 그게 8000만원 이라고….?

그래 그건 원조에다 그 갯수가 정해져 있으니 소장 가치가 있다고 치고

세상에 떠도는 알트코인은 그 종류가 몇 개여?

너두 나두 가상화폐를 만들어 이거 좋은거니까 사라고 그러는데

가격이 올라가면 그걸 만든 넘들은 계속 만들어 낼텐데 그 가격이 언제까지 올라 가것어?

코로나에 더 빈번해지는 자연재해애 세상이 헤까닥하니 멀쩡한 이성으로 판단 할 수 없는

일들이 도처에 난무한다.

아그들아 ! 군중심리에 휩쓸리지 말고 정신 줄 놓지 말아라 !

차라리 무릉객이 찍은 이 아름다운 영암의 봄날을 사는 게 더 낫지 않겠나??

싸게 주께…..

 

그려 ! 내 상관할 바 아니지

거긴 너희들의 세상이고 여긴 내 세상이다.

여전이 내 눈에 밟하고 내 손의 감촉으로 느끼고 , 내코로 냄새를 맡고

내 가슴이 흔들리는 이 곳이 내 세상이여

 

구정봉 가는 길

마치 여름처럼 무더웠다.

바람도 불지 않았다.

조사장은 철인 삼종 경기의 투사처럼 쉼 없이 앞으로 치고 나갔다.

장쾌한 암봉의 풍광은 조금씩 스케일이 줄어 들었지만 나는 여전히 눈 속에 꿋꿋이

버티고 있었던 그 담대한 바위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지난 날의 감회에 젖었다

 

바람의 언덕 위에 한 그루 소나무 그늘이 있다.

난 그 곳에서 요기를 하며 잠시 휴식을 하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나무그늘에

조사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등로는 이제 제법 가팔라지고 있어서 무더운 날씨에 조금씩 발길이 밀리고 있는데

띠리리링~~ 전화벨이 운다.

조사장이다 ..

벌써 멀리 보이는 구정봉 정상에 올라 사진 찍으며 천천히 오르는 나의 모습을 내려다 보며

전화를 때리고 있다.

 

이번 여행길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

구정봉은 오르는 길은 호락호락 하지 않았지만 주변 풍광은 예사롭지 않았다.

큰 바위로 이루어진 구정봉 정상부에는 여러 개의 웅덩이가 있는데 바위 틈새로 힘들게

올라서야 만날 수 있다.

그 곳에서 비로소 시원한 바람과 만났고 실바람을 목에 걸고 내려다 보는 월출나라의 뷰는

가히 압권이었다.

 

구정봉 아래는 베틀굴이라는 바위 동굴이 있는데 찬 바람을 막아주고 바닥이 평평해서

추운 겨울날 산꾼들이 즐겨 비박을 하는 곳이다.

 

모처럼 시원한 바람이 불어가는 구정봉 정상에서는 4년 전 환상설국의 감동과는 또 다른

멋진 대자연의 파노라마가 펼쳐졌다.

가슴을 흔드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는 게 어디 쉬우랴?

허구헌날 빠대고 댕기고 매년 산신령님한테 술도 한 잔 올리고 해야 그 정성과 노력을

가상히 여겨 신들의 세상을 잠깐 구경할 수 있게 해주는 거지

 

사실 구정봉까지 보고 나면 이후 도갑사 까지는 평범한 풍경의 연속이다.

그래서 천황사와 도갑사는 상징적인 종주 루트이고

숨돌릴 틈 없는 장쾌한 암봉의 향연은 첫번 째 실크로드인 산성대에서 천황봉에 올랐다가

구름다리로 내려서는 코스로 총 망라될 것이다.

두번 째 실크로드는 지난 겨울산행에서처럼 경포대에서 바람재로 올라와 구정봉 찍고

구름다리로 내려서는 코스

다음에 다시 월출에 오면 이 두 코스 중에 하나를 택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정상의 풍경을 감상하고 여유롭게 그늘진 바람 길에 앉아 요기를 했다.

 

하산 길

구정봉 찍으면 고생은 다 끝났다고 보면 된다.

등로는 잠깐 능선으로 올라쳤다가 줄곧 완만한 내림길을 따라 억새평원으로 연결되고 이후에는

제법 좀더 낙차를 키우며 길게 도갑사로 흘러내린다.

 

도갑사 가는 길에는 지난 주 화암사에서 보았던 얼레지가 지천 이었다.

내 생애 통산 이렇게 많은 얼레지 군락을 본 적이 없다.

예전에도 얼레지는 오랜 세월 이렇게 길섶에서 피고 졌겠지만 3월말이나 4월 초에는 남도의

섬으로 떠나곤 했으니 이 멋진 대자연의 꽃밭을 만날 수가 없었던 거다.

 

4년이란 세월이 간극이 있긴 하지만
짧은 시간이 빚어 내는 눈부시고 현란한 세상의 변화가 어렴풋한 기억의 잔상 속에서도

통절하게 느껴졌다.

그 장엄했던 환상의 설국이 눈 부신 햇살 아래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무더운 봄날로

비뀌는 데는 단지 두 달이 걸렸을 뿐이었다.

 

월출의 가을은 내 이미 알고 있는데

황향한 겨울도 그토록 시리고 아름다웠고 이 눈부신 봄날은 꽃이 피어나듯 절로 마음이

피어나니 비록 월출의 여름 속을 소요하지 못했어도 미루어 짐작컨대 월출의 사계절은

어디 한 군데 떼어내어 버릴 곳이 없을 터이다..

이젠 영암 하늘에 둥근 보름 달이 걸릴 때

경포대에서 구정봉으로 올라 달빛에 드리운 월출 세상을 내려다 볼 일만 남았나 ?.

 

 

조사장은 도갑사에서 1시간을 넘게 기다려야 했다..·
봄날의 유혹에도 아랑곳없이 목표를 향해 쉼없이 전진했던 조사장은 일찍 하산하여 30분을

기다리다 내게 전화를 했고 나는 그로부터 30분이 더 걸려 하산을 마무리 했다.

 

조사장은 1
나는 꼴지 ··
기다리는 걸 알아도 난 그 기다림을 의식해 조급해질 수가 없었다 ·

때는 바야흐로 만물이 소생하는 사월의 봄날‥
봄은 짧고 난 짧은 봄을 누리는 한 마리 나비 아니련가?··

여긴 월출산 이라···
다시 어느 해 봄에 나는 이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우리가 어느 날 원출에 뛰어 든 두 마리 장닭이라면 조사장은 후다닥! 나는 부다닥

시간은 유용하게 쓰기 위한 것이다 ‥
우린 새벽에 남도로 떠났고
그 길에서 오래된 눈부신 봄이 내게 너무 많은 말을 쏟아 놓았고 ‥
내 눈과 카메라는 담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다시 또 놓고 가면 아쉬움이 또 많아질 것 같아서….. ··

꼴지에게 갈재를 보내는 것 또한 많다 ·
··
눈부신 봄날
노랑나비
계곡물
계곡의 얼레지

때는 무더운 사월의 봄날

하산 길의 꽃과 풍경을 죄 카메라에 담으면서 천천 히흘러가는 길에 갑자기

시원한 계곡물이 나타났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냐구?

머리만 감고 가겠노라 했는데 머리를 감으니 발을 담구고 싶고

발을 담구니 또 몸의 땀을 씻고 싶다.

나는 급기야 웃통을 벗어 제치고 웃옷을 빨아 몸을 닦아내고 그 옷을 짜서

다시 입었다.

등로에서 은페엄폐가 되었더라면 4월의 알탕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고 도갑사로 내려가 절 구경을 하고 대웅전에 들러 부처님전에 3배 까지 올렸으니

조사장이 한 시간 이상 기다릴 수 밖에….

그래도 조사장은 볼멘소리를 할 수가 없다.

그게 내 잘못이냐구?

다 월출의 봄 때문이지 ….

 

한 시간을 넘게 기다린 조사장은 이 봄날에 따분 했을까? 부아가 치밀었을까?

CEO의 말 한마디면 모두 깨갱깨갱 꽁지를 내리는 데

무릉객은 말 한마디 없이 세월아 네월아 월출의 신선처럼 음풍농월 하며 내려와서

탱자 탱자 절구경 까지 다 했으니...

 

우야튼 우리는 절에서 한잔의 시원한 물을 마시고 기념촬영 까지 하면서 아픈 발과

아픈 다리로 대망의 월출 종주를 무사히 마무리 했다.

 

우린 콜 택시를 불러 영암의 벚꽃 터널을 지나 출발점으로 되돌아 갔다.

제철 풍경은 보고 나주 가는 길에 기사님한테 영암 특산 음식을 물으니

툭별히 특산 음식이랄 것도 없는 데 전국적으로 알려진 곳은 독천읍 낙지 거리란다.

난 목포의 독천식당에서 낙지육회 비빔밥과 낙지 탕탕이는 먹어 봤다.

봄날의 보양식이었다.

뜨거운 밥 위에 꿈틀거리는 낙지와 싱싱한 육회를 얹고 그 위에 참기름과 함께 갖은

양념으로 비벼 먹는 밥

근데 기사 아저씨는 영암의 독천 식당이 원조이긴 한데 뻘이 없는 곳이라 낙지 가격이

너무 비싸서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 영암에서는 한우가 먹을 만 하다고 했다..

돈이야 조사장이 다 내니 별 문제될 게 없지만 .

근데 한우야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데 지역 특산 음식이라 할 수 있나?

우린 이미 나주 홍탁으로 뒤풀이 하기로 의기투합 했었다.

 

택시비는 19천원 나왔다.

뼈룩도 낯짝이 있으니 새벽 같이 손수 운전해서 영암에 내려오고

천주교 신자을 절 모퉁이에서 한시간을 넘게 기다리게 했는데

아무리 조사장이 부자라도 택시비까지 내라 할 수 있나?

조사장에게는 1원 짜리 푼돈도 안되는 아침밥과 원점회귀 택시비는 무릉객이

기꺼이 부담하다.

이건 영암 개발 지원금이고 내가 내는 건 돈이 아니라 정인게지……

 

월출의 봄을 가슴 가득 채운 뿌듯함을 간직 한 채 봄이 한창인 영암의 들판의 유유히

가로 질러 나주로 갔다.

그리고 나주의 영산강변 전망 좋은 모텔에 방 두 개를 잡아 깨끗이 목욕재개를 하고

조사장이 미리 주선해 놓은 바로 옆 나주 명물 홍어거리에 있는 홍어1번지 식당에 들었다...

작년에 나주 한전에서 근무하는 거래선과 함께 갔던 곳 이라는데 나주 홍어거리에서 제일

음식 잘하는 곳으로 현지인들도 추천하는 곳이란다.

이른 금요일 저녁인데도 2층은 예약이 거의 차 있었고 벌써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음식을 나누고 있었다.

서슬 푸르렀던 코로나는 이제 대한민국에서 개무시 당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

홍어 코스 정식

역시 원산지 에서 먹는 홍탁의 맛은 각별했다.

결렬한 운동 후에 걸인의 입맛으로 받은 황제의 성찬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막걸리와 홍어는 입에 쩍쩍 달라 붙었다.

우리는 코스 요리에 홍탁 한 접시를 더 추가 했고

나는 배가 불러 막걸리를 소주로 바꾸었지만 아까운 홍탁 몇 점은 그냥 남길 수 밖에 없었다.

 

나주의 해가 서산으로 뉘엇뉘엇 기울고 시나브로 어둠이 깔릴 때 까지 우리는 술잔을 부딪

혔고 배가 너무 불러 거동이 힘들 정도가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강변으로 나섰다.

봄날에 부는 강 바람은 너무도 시원 했다.

집 나간 바람이 비로소 돌아 온거다.

강변을 밝히는 현란한 네온들이 불콰한 얼굴을 가려 주었고 우린 기분 좋은 취기와

이향의 설레임 속에서 마치 유럽의 어는 낭만적인 도시에 와 있는 듯 들뜬 마음으로

영산 강변을 오래 산책한 후 숙소로 돌아왔다.

친구와 함께 누린 멋진 봄날

좋은 날씨와 제철 풍경 그리고 자역의 특산 음식의 풍마까지 삼박자가 어우러진 즐거운

남도 여행길 이었다.

 

 

 

에필로그)

 

참으로 유한한 인간의 기억이라니 ….

월출의 가을날 기억이 하도 희미해서 돌아와 블로그를 펼쳐 보았다

 

14년 전 200811월 단풍이 좋은 날

도갑사에서 천왕사로 넘어 온 걸로 기억하던 보미네와의 월출 종주는 오늘과 같은 코스로

천왕사에서 도갑사로 넘어 갔다.

마눌과 100대 명산 31번 째 여행길이었다.

난 허리를 다쳐 친구들과의 거친 산행을 내리고 마눌과 100대 명산 주유를 이어갈 때였다.

 

계절만 가을에서 봄으로 바뀌었을 뿐 똑 같은 길을 걸었고

중간에 구정봉만 거치지 않고 오롯이 오늘 가던 그 길을 그대로 따랐었다.

사진으로 확인한 구름다리도 천황봉 표석도 그리고 암봉들의 모습도 모두 그대로였다.

 

난 그 날의 산행의 감회를 이렇게 적어 놓았다..

 

천황사 구름다리를 타고 도갑사 까지 이어지는 긴 월출산 종주코스를 마무리 하면서

나는 허리가 뻐근해 오고 마눌은 다리가 아프다.

보미 엄마는 여전히 까딱없고

보미 아빠는 생각보다 먼 길에 연신 투덜투덜하면서도 특유의 유머감각을 잃지 않았다.

우린 고단한 여정과 긴 여행길의 끝을 이야기하면서 추색이 완연한 도갑사로 내려섰다.

6시간의 가을여행 이었다.

 

나 홀로 부처님 앞에 엎드렸다.

부처님 욕심 안부리잖유

내 좋아하는 것 계속하게만 해주세요….”

 

ㅎㅎ

그 때도 여전히 허리가 아플 때 였고나 !

그 때도 도갑사 대웅전에서 부처님께 삼배를 올렸고나 !

그 때도 허리가 아팠고 이번에도 갑자기 불편해 진 건

월출 산신령님은 그 날의 기분을 다시 느끼게 해주시려 내 허리를 살짝 비틀어 주셨기

때문이었고나!

 

비록 구정봉은 건너 뛰었지만 6시간 이상의 산행을 무리 없이 소화했으니 이 때만 해도

마눌의 체력은 짱짱했다..

 

월출의 가을을 보내고

나는 몇 년을 고생하던 다친 허리가 다 나아 산 친구들과 다시 온 산을 빠대고 다녔고

아들과 함께 백두대간도 종주했다.

백두대간 두 번 종주와 정맥 종주에 빛나는 무릉객

아들과 백두대간 종주하고 마눌과 100대 명산 주유하고 친구와 안나푸르나까지

순례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구 그래

대한 민국 산은 오지 까지 다 빠대고 말레지아 .중국, 네팔, 알프스 까지 세상의 거친

산들에서 콧노래 부르며 젊은 날을 노래하고

이제는 잠시 돌아와 거울 앞에 서서

앞으로 가야할 아름다운 세상을 계획하며 코로나에 조용히 칩거하며 세월을 낚는

무릉객이야 말로 한 시대를 풍미하는 낭만가객 아닌가?!

앞으로 설레임 가득한 그 장대한 행보가 또 기대되지 않는가?

 

그래 세월은 그렇게 너울 너울 흘러 갔다.

그리고 14년의 세월은 또한 많은 걸 바꾸어 놓았다

나도 세월에 조금씩 낡아 갔지만 같이 백대명산을 주유하며 5~6시간 산행은 충분히

소화하던 마눌의 체력은 세월에 많이 약화되었다.

마눌도 60이 넘었으니 사실 무리는 아니다.

 

어디 그것 뿐이랴?

보미와 은비는 시집가서 아들 딸 놓고 잘살아 가고

난 은퇴를 했고 유머 감각 넘치던 보미 아빠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났다.

 

그 많은 일들이 이 14년 동안에 일어났다.

앞으로 14년은 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산정에서 만난 72세의 해남 아저씨는 65세애 눈에 뛰는 갑작스런 체력의 반감기를 경험했다고

얘기 했다..

나는 아직까지 짱짱하고 70까지는 까딱 없다고 침 튀기며 강변하지만

코로나가 우리 삶의 패턴을 순식간에 바꿔버린 것처럼 흘러 가는 세월과 우리에게

할당된 한낱 봄날 같이 짧은 인생길에서 우린 무엇을 장담할 수 있을까?

 

이 변화무쌍한 세월의 변화와 예기치 않는 리스크에 대한 보험은

오늘을 즐겁게 사는 것 뿐이다..

시방 모시가 중한겨?

이 멋진 봄날을 잃지 않고 제철 풍경을 보고 제철 음식을 먹으면서

내 좋아하는 나의 세상을 마음껏 누리는 것 말고 더 욕심낼 게 무에 있을까?.

그러다 신께서

이제 고마 내려 와라! 많이 묵었다 아이가!”하면

미련 없이 하고 내려올 수 있어야 하는 거지…..

 

오랜 세월을 보낸다는 건 낡아가는 것이기는 하지만 또한 더 현명해 지는 것이다..

걷는 다는 건 동적인 명상이고 순례의 길이다.

높이 오르는 건 그 만큼 깊어지는 것이고 멀리 가는 건 그 만큼 넓어 지는 것이다.

삶의 최고 선은 나의 행복이다.

기왕 살려면 재미 있게 살아야 하고 사는 재미는 내가 만드는 것이다

 

늙어간다는 것은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 하나쯤은 주머니에 갖고 있는 것이다.

더 갖기 보다는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남은 내 몫의 기쁨과 행복을 찾아내고

마음 하나로 꿈틀대는 욕심과 치미는 분노와 상실과 고뇌까지도 잘 설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내 삶의 주역이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는 빛 나는 배경이

되고 그늘이 되고 종국에는 거름이 되는 것이다 .

 

14년 전에도 삶의 해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보미네와의 월출산 산행기 간판에 시 한 수 걸어 두었던 걸 보면….

 

 

눈물겹도록 미친 사랑을 하다가
아프도록 외롭게 울다가
죽도록 배고프게 살다가

어느날 문득
삶의 짐 다아 내려놓고
한 줌의 가루로 남을 내 육신

그래, 산다는 것은
짧고도 긴 여행을 하는 것이겠지

처음에는 나 혼자서
그러다가 둘이서
때로는 여럿이서
마지막에는 혼자서 여행을 하는 것이겠지

산다는 것은
사실을 알고도 모른 척
사람을 사랑하고도 아닌 척
그렇게 수백 번을 지나치면
삶이 지나간 흔적을 발견하겠지

~ 그때는 참 잘했어
~ 그때는 정말 아니었어
그렇게 혼자서 독백을 하며 웃고 울겠지

아마도 여행 끝나는 날에는
아름다운 여행이기를 소망하지만
슬프고도 아픈 여행이었어도
뒤돌아보면 지우고 싶지 않은 추억이 되겠지
짧고도 긴 아름다운 추억여행

그래,
인생은 지워지지 않는 단 한번의 추억여행이야

김정한시집 - 멀리 있어도 사랑이다 - 中에서

 

 

어떤 일이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세월이지만 좀더 좋은 방향으로의 변화가 진행되고

또한 어떤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고강한 삶의 내공을 쌓아가는 나이기를 기대해본다.

 

 

산 행 일 : 20224월 8일 금요일 (나주숙박)

산 행 지 : 월출산

산행코스 : 천황사 구름다리 천황봉 구정봉 도갑사

산행소요 : 6시간 20

 

경유지별 시간

09:09 : 천황사 들머리 (천황봉 3.7km)

09:22 : 천황사

10:00 : 구름다리

11:17 : 경포대 능선 삼거리

11:24 : 통천문 삼거리

11:39 : 천황봉 (억개밭 2.9km, 도갑사 5.6km)

11:58 : 천황봉 출발

12:37 : 바람재

12:59 : 구정봉

13:25 : 구정봉 출발

14:09 : 억새밭 (도갑사 2.7km)

 

날 씨 : 맑음 ( 눈부신 봄날 - 여름처럼 덥다 )

구정봉과 영상간변에는 시원한 바람

동 행 : 조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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