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눌이 가고싶은 곳이 바래봉이리네
젊은 날 내가 신의 정원이라 했던 곳 ᆞ
동화나라 같은 5월 고원의 아름다운 꽃밭
마세 먼지도 없고 그래도 물 맑고 공기 청정했던 시절
그 감동으로 회사 친구들도 데려가고
그리고 홀로 지리산 태극 종주 때는 덕두봉 산그리메를 보며
새벽에 바래봉에 올라 지리산이 쓰는 한편의 시에 찬탄을 금치 못했던 곳
어린 은비와 태현을 데리고 마눌과도 갔던 곳이다.
개화에 맞춰 새벽 일찍 갔는데
그 때 가는 날이 장날이라 자욱한 안개에 차가운 바람 까지 불어
코 앞의 풍경도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게 신의 정원인지 , 아파트 꽃밭인지…..
불어가는 바람은 안개를 흐뜨려 춤추는 꽃들을 보여주러 무던히도 애를 썼지만
함께 몰고 온 때아닌 추위로 아이들만 고생시키고 말았다.
영문도 모른 채 따라 온 아이들은 추위에 떨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많는 정상을
찍고 산상에서 차가운 아침을 먹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교통 정체나 사람정체는 두 눈뜨고 못보는 성격이라
1000고지 아름다운 정원에서 빛나는 봄날 아침의 풍경을 보려주려 서둘렀다가
마눌에게 5월의 흐릿한 안개와 추위의 기억만 안겨준 채 하산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퇴직하고 2년후 인가
옛 추억이 생각나 5월의 정령치에서 긴 능선을 따라 바래봉으로 내려왔다.
먼 발치에서 버선발로 달려 나오는 여인을 생각하는 그리움과 설레임으로
걸어 내린 그 길
그 녀가 사는 마을 동구밖에서부터 슬픔이 밀려 왔다.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리여 블로그를 뒤적였지만 화려한 사진 외에는 한 줄의 글도 없다.
난 다시 만난 그녀에 대해 그리고 그녀 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만 세월에 늙어 간 게 아니었구나 !
내가 사랑했던 풋풋한 산골쳐녀는 중년의 아줌마가 되어 버렸고
화장을 덕지덕지한 얼굴에서 끝내 찾지 못한 청초한 옛모습의 그리움 탓에
난 봄날의 수심에 휩싸이고 말았던 것이다..
“ 아구야 이 써글 놈아 우짜 인자 왔다냐?
팍싹 삭아서 왔부럿네 ”
세월에 늙어가는 바래봉 처녀는 반가움에 내게 그렇게 말했는지도 모른다..
나를 이끈 건 그날의 추억과
지리산과 설악산처럼 변하는 세월속에서도 변함없이 날 기다려주는
한결 같은 여인의 사랑이었는데…
너무도 변해버린 옛 여인의 모습에 난 그 옛날의 추억과 할말을 함께 잃었던 것이다.
너무 크게 자라 버린 철쭉들
황폐해진 곳곳의 군락지와 망가진 초원들
소로길은 경운기와 트럭이 다녀도 될 만큼 넓어졌다
난 그날 봄날의 사량도처럼 또 하나의 마음의 고향을 잃어 버렸다 ᆞ
그리고 흰 눈이 내리는 겨울날이나 다시 찾겠다고 그렇게 옛 여인에게
다시 안녕을 고했던 것이다.
그런데 마눌이 어디서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그 풍경을 보고싶다고 했다 ᆢ
그러고보니 벌써 5월 중순
지금쯤이면 현란한 원색의 사진들을 내세운 5월의 화원이 봄날의 추천 산행지로
여기저기서 기사나 뉴스의 머릿 글을 장식하고 있겠네
남원군은 바래 처녀를 모델로 기용하여 그동안 너무 많이 울거 먹은거 가터,,,,,,
요즘은 날이 더 뜨거워져서 어떨지 모르겠지만
한국 대표철쭉 산행의 순서는 그랬다
5월 첫주 보성 제암산과 일림산
5월 둘째주 황매산
5월 셋째주 지리산 바래봉
5윌 네째주 덕유산
6월첫주 정선두워봉 소백산
내 눈엔 산이 아름다웠던 시절의 호젓하고 풋풋한 바래봉의 기억이 남아 있으니
그렇다 해도 그 풍경을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늙기 전에 한 번은 감상하고 가야 할 풍경이지.
시기는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서
마눌한테 고원의 5월의 꽃밭을 보어 주기로 하다 ᆞ
바래봉 산행은 정령치에서 시작하여 지리산 능선을 따라 세걸산 부운치 팔랑치
바래봉을 찍고 용산마을 까지 내려오는 것이 산꾼들의 가장 보편적인 산행방식이다.
힐링과 조망의 산행에서 지리서부능선의 신록과 화려한 5월에 꽃밭에 물리고 나면
한 동안 봄산행을 떠날 생각이 없어질 것이다..
14키로로 5시간. 정도 소요되는 장딴지 뻐근한 코스지만 시종 내림길이라 그리 힘든
산행이라고는 할 수 없다.
교통상 산악회를 따라 가는 게 가장 좋다.
바래봉 능선의 가장 멋진 철쭉 군락지는 팔랑치와 바래봉 인근이다.
철쭉 군락지만 돌아 보려면 허브농원이 있는 용산마을 주차장에서 시작하여
바래봉 찍고 팔랑치 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코스가 가장 일반적이다.ᆞ
약 11키로 정도로 3시간 30분~4시간 소요된다.
여기 또한 철죽 개화시기에는 대형 관광차량으로 북새통을 이룬다.
주차장이 넓어 좀 늦게 도착해도 상관 없긴 한데 날 뜨거운 5월에는 긴 임도를
많이 걸어야 하는 것이 단점이다.
가장 단거리코스면서 철쭉군락지를 쉽게 돌아 볼 수 있는 코스는 팔랑마을
코스로 7 키로 정도 거리에 3시간 정도 소요된다
이 코스의 좋은 점은 1000고지 능선 접속구간이 울창한 숲 길이고 대표군락지인
팔랑치와 바래봉 군락지의 쳘쭉을 최단거리로 여유 있게 돌아보며 봄날의 정원에서
부담없이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데 있다.
이코스의 단점이라면 팔랑마을 까지 올라가는 좁은 차도와 부족한 주차시설이댜
유료주자장에 주차하려면 적어도 아침 8시 까지는 도착해야 한다
5000원
늦으면 도로변에 주차해야 하는데 주차할 공간이 마땅치 않다.
그럴 때는 음식점에 미리 전화해서 점심먹겠다고 하면 주차자리를 확보해준다ᆢ
음식점도 그리 많지가 많은 편은 아니니 너무 늦지 않아야 한다..
유료주차장은 마을에서 운영한다.
5월의 바래봉은 새벽일출 산객들이 많은데 아무리 꼭두새벽에 일찍 주자장에 주차해도
내려와 나갈 때는 돈을 내야 한다ᆞ
몇시부터 나오시는 지는 모르지만 예리한 매의 눈으로 감시하는 할머니 한 분 출근하여
교통정리를 하며 철저히 돈은 수금한다.
.
돈을 미리 냈는데도 미심쩍그면 와서 다시 달랜댜
냈으면 말고 안 냈으면 확인사살 까지 하면서 확실히 받아내는 고도의 전략이다.
우린 아침을 안 먹고 출발하여 팔랑마을 주차장에 8시에 도착했다.
마침 일출보고 떠나는 차가 있어 주자장 중앙에 한자리를 확보 받고
차안에서 빵과 우유 그리고 계란과 사과로 아침을 먹었다.
아침을 먹고 한참 밍그적 거리다가 출발하여 하자 할머니가 와서
돈을 냈는지 묻는다.
"아까 내고 아침 먹느라 늦었어유!"
팔랑마을에서 팔랑치 오르는 길은 울창한 숲 길이다 ᆞ
고원의 아침 공기가 제법 싸늘해서 코가 뻥뚤리는 쾌적한 오름길 이다
할아버지를 따라 온 손자 손녀가 보기 좋았다.
유치원 다니는 여동생과 초딩오빠ᆞ
자주 할아버지를 따라 산행을 한다고….
오빠는 빨리 가다가도 할아버지와 동생을 기다렸다가 함께 휴식하고 나중에는
여동생의 배낭 까지 들고 올라갔다
기특한 녀석ᆞᆞ
몇 년 후 시우가 할비가 산에 가자면 따라올까?
그 옛날 은비와 태현은 잘 따라다녔는데 …
군데군데 바위가 있긴 해도 발이 편한 흙길이 많다
1000고지로 접속하는 산길이 이 정도면 완전 A급이다.
바래봉은 몇 년 전보다 더 훼손이 심했지만
코로나 거리두기가 완화된 봄날이라 수 많은 인파가 몰렸다ᆞ
“안뇽 ! 좋겠수!”
그노무 식지않는 바래 아줌씨 인기는 여전하네 !”
말은 그리 했지만 오랜 친구 바래 처녀
이제 세월에 같이 늙어간 바래 아줌씨의 수심을 보았다.
철쭉의 개화시기는 잘 맞았는데
철쭉이 만개하지 못한 채 말라가고 있다.
오래 세월 무수한 아름다운 풍경에 눈이 높아진 탓도 있지만
언제부턴가 심산의 꽃도 단풍도 그리 곱지 않다 ᆞ
대한민국의 아열대화 되어 가고 있다.
날씨와 강수랑 탓이다
개화기에 충분한 비가 내려주어야 하는데 비는 없이 태양빛은 강하고
건조한 바랑은 자주 분다 ᆞ
또 하나
대한민국이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것처럼 철쭉들도 많이 늙고 억세졌다
허리춤 아래 있던 풋풋하고 싱그러웠던 화사한 철쭉들은
이제 웃자라서 팔랑치 군락지에서는 키를 훌쩍 넘기는 것도 많다 ᆞ.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는 바래봉은 산행하기 최적의 날씨였지만
꽃들은 계속되는 무더위와 건조한 날씨여 지친 모습이었다.
“미안허이 친구 ! 날씨탓이라고는 하지만 다 욕심사나운 인간들 탓이네, !”
아침 일찍 출발한 여유로운 산행이라 지리산 주능선이 올려다 보이는 팔랑치 풀밭에서
오래 휴식하고 바래봉 삼거리 지나 벤취에서도 또 쉬면서 과일을 먹었다.
바래봉은 인산인해다.
인증샷을 위한 인파가 너무 긴 줄을 서 있어서 기념촬영을 할 엄두도 못내고
가로대 사이로 표석과 다름사람들의 즐거운 표정만 담아 왔다.
그리고 바래봉 아래 군락지 햇빛 좋고 바람 부드러운 곳에서 아얘 퍼질어 누워
오래 휴식하며 옛 여인과 천천히 회포를 풀었다.
누운 곳에서 지리산 주 능선이 한 번에 올려다 보인다.
내 젊은 날의 피와 담이 진하게 배어 있는 곳
거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떠났 순례의 길을 코로나 때문에 2년을 걸렀다.
대피소가 폐쇄되는 바람에 유보했던 종주는 이번 가을에나 한 번 할 수 있을까?
바래봉에서 식당에 전화를 해서 토종닭 백숙 한 마리 고아 놓으라 했다.
지리에 들었으니 몸보신도 하고 가야지…..
그럴 줄 알았으면 식당 마당에 주차하고 갔으면 주차비 5000원 굳었을 텐데…..
우린 바래아줌씨와 반가운 해후를 마무리 하고 온 길을 되짚어 팔랑 마을로 다시 내려와
1시 30분 쯤에 식당에 도착했다.
백숙 맛도 그런대로 괜찮았고 특히 나물들 맡반찬이 맛깔스러운 나름 만족할 만한 식사
였다.
애초에 남으면 포장해가려 했는데 퍼석살 두 덩이 밖에 남지 않아서 싸갈 것도 없고
나물 접시들 까지도 두 바닥을 드러냈다.
"이거 60넘은 노인들이 다 먹은 거 맞어?"
식사 후 백숙을 먹고 난 후의 뼈다귀의 산이 마눌의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바래 아줌씨가 날 보고 그랬을 거 가터
“써글 .. 늙은 것이 먹는 것이 왜 그리 마이 쳐 묵나?
몸은 비들비들 말라가도 먹성은 하나도 하나도 안변해 뿟네 !”
"ㅎㅎ 눈 오는 겨울날 화장 빨 좋을 때 한 번 더 만나까?"
2022년 5월 14일 토요일
추억의 바래봉 : https://blog.daum.net/goslow/1794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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