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맞는 자세 (2)
이 정하
봄이 와서 꽃 피는게 아니라
꽃 피어서 봄이 오는 것이다
긴 겨울 찬바람 속
얼었다 녹았다 되풀이하면서도
기어이 새움이 트고 꽃 핀 것은
우물쭈물 눈치만 보고 있던
봄을 데려오기 위함이다
골방에 쳐박혀 울음만 삼키고 있는 자여,
기다린다는 핑계로 문을 잠그지 마라
기별이 없으면 스스로 찾아 나서면 될 일,
멱살을 잡고서라도 끌고 와야 할 누군가가
대문 밖 저너머에 있다
내가 먼저 꽃 피지 않으면
내가 먼저 문 열고 나서지 않으면
봄은 오지 않는다
끝끝내 추운 겨울이다
정확히 10시 30분에 만나 양산8경을 트레킹 하다.
봄날에 걷기 좋은 길이다.
산을 좋아하지 않는 친구들과 소요하며 자연 속의 시간을 보내기엔 좋은 곳이라
봄이면 친구들을 데려 왔던 곳이다.
젊은 날 많이 허구헌 날 들개처럼 싸 돌아 다닌 것도 노후에 재산이 될 수 있다.
상대에 맞게 갈만한 곳을 많이 안다는 거
계절이 바뀌면 가슴이 울어 떠날 때를 알리고 그리움으로 표구된 옛 추억이 가고
싶은 곳이나 가야할 곳을 알려 준다는 거
우야튼 내 지론은 건강 짱짱할 때 먼저 잘 놀고 잘 먹자는 거다.
송호 유원지의 소나무는 언제 보아도 좋고 금강변 물줄기를 따라 여유롭게 흘러가는
길은 봄이면 늘 생명의 기운이 충만해서 걷는 내내 기분이 좋아진다.
시기가 너무 잘 맞아서 그 어느 때 보다도 유난히 부드러운 파스텔톤의 봄의 색감이
눈을 즐겁게 한다.
그 편안한 길을 가족들과 함께 걷다 보니 봄의 기운을 받아 새순을 피워내는 나무들처럼
마음도 같이 피어 났다..
헨리데이비드 소로가 그랬다.
봄과 아침에 공명할 수 없다면 내 젊은 날은 이미 지나가 버린 거라고….
걷기는 동적인 명상이다.
수 많은 대 문호들의 취미가 산책이고 그들은 그 걷는 시간의 사색과 명상을
통해 무수한 영감을 떠 올렸다.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 떠나는 게 습관이되고 또 오랜 세월 걷다보면 알게된다.
"내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내 생각도 흐르기 시작한다" 고 갈파했던 소로의 말이
사실이란 걸
누죽걸산(누으면 죽고 걸으면 간다)라는 다소 과격한 언어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
나이가 들수록 건강은 걷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관절이 안 좋아지면 걷지 못하고 걷지 못하니 체중이 불어 더 움직이기 힘든 악순환에
들게 되는데 걷기를 중단하는 순간부터 호르몬 분비가 중단되어 기분도 우울해 지고
몸도 자정 기능을 상실해 간다.
관절이 아파도 걸어야 몸의 스스로 회복의 실마리를 찾아 치유를 해갈 수 있는 것이다.
내 오랜 경험상 산행과 걷기는 건강에 좋지만 몸 보다는 오히려 마음과 정신에 더 좋다.
건강에 대한 자신감도 생기고 자존감도 높아진다.
고요함 속에서 자신을 되돌아 보면서 삶의 깨달음에 다가갈 수 있고 세상에서 뒤바뀐
중요한 가치들을 다시 정배열할 수 있다.
그래서
아름다운 봄날 좋은 사람들과 아름다운 풍경 속을 걷는 것 보다 더 값싼 행복은 없고
밥 맛 좋아지는 건 세상에 별로 없다.
양산 8경
제 1경 : 천태산 영국사
신라 문무왕 때 창건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피난한 절로 당시 절 이름을 영국사로 개칭한
국태민안과 국난극복을 빌던 호국 도량
높이 18미터 수령 600년의 은행나무가 있다.
제 2경 : 강선대 (降僊臺) 영동군 향토유적 제 1호
봉곡리 황골 강변 절벽에 위치한 아름다운 정자
전설에 의하면 신선이 하강하여 노닐고 선녀가 목욕하였다는 곳으로 기암절벽에
은거한 정자에서 바라보는 금강의 전망이 일품이다.
선조~인조 때 청백리로 동래사,예조판서,충청도도순찰사를 역임한 동악 이안눌님
의 시가 전해온다.
제 3경 : 비봉산
양산 면사무소 서쪽 가곡리에 우뚝 솟은 봉우리로 백제의 국경지대 였으며 옛 성터
가 남아 있다.
금강과 양산을 한눈에 굽어 본다.
고층산 또는 남산이라 불리다 훗날 봉이 난나고 해서 비봉산이라 불렀다.
제 4경 : 봉황대
제4경은 봉황이 깃들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수두리의 양강변에 있는 누대로 옛날
처사 이정인이 소일하 던 곳이라 한다.
봉황대와 앞의 더 높은 한천정에서 내려다보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강과 주변의
풍경이가슴을 후련하게 한다.
제 5경 : 함벽정
1897년 정유년에 건립한 것이다. 송호리에서 강물을 따라 500m쯤 올라가 강 언덕
반석 위에 지어졌다.
봉황대의 동쪽 강변 바위에 있는 정자로 이 강변 백사장에는 물새 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비봉산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는 정자로 옛날 선비들이 이곳에 올라 시심을
떠올리고 학문을 강론 하던 곳이다.
.
제 6경 : 자풍서당 (시도유형문화재 제73호 )
두평리 소재
조선 중기의 유학자 동천 이충범(1520∼1598)이 제자들을 양성하던 곳이다.
조선 초기에 양강 강가에 처음 지어졌다고 하는데, 인조 4년(1626) 이후 숙종
46년(1720)까지 여러 차례의 보수공사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처음에는 풍곡당이라고 부르다가 광해군 6년(1614)에 한강 정구 선생이 이곳에
머무르며 자법정풍(資法正風)으로 학문을 장려하였다는 뜻으로 자풍당이라
이름을 바꾸었다.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 집으로
18세기경의 건축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다.
현재 매년 10월 19일 제사를 지내며, 이곳의 책 읽는 소리는 양산 8경의 하나이다.
제 7경 : 용암
송호 국민관광지 바로 앞 양강 위에 치솟아 있는 큰 바위로 용이 선녀가 목욕하는 것에
반해 승천하지 못한 채 바위로 굳어 졌다는 전설이 전한다.
제 8경 : 여의정
송호 국민관공지 숲 속에 있는 정자로 여의정은 이요당 박흥거의 후손으로 문과에 급제
하여 연안부사였던 만취당 박응종이 관직을 사직하고 이곳으로 낙향하여 풍류를 즐기며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다.
선생은 이곳에서 예의와 풍속 및 경서와 사기를 가르쳐 학자를 길러냈다...
여의정은 선생의 후손들이 고인의 선덕과 생전의 듯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마음은 쓸데 없는 두려움과 근심의 용광로라고 했다
우린 세월을 보내면서 그 용광로의 불길을 잠재우고 고요해질 수 있는
자신만의 비법을 터득하여야 한다,
마음이 스스로 고요해지면 세상의 비바람도 그 고요함을 흔들지 못한다.
마음이 평정심을 유지하고 그 고요함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은 중용과 균형에서 비롯된다.
지나친 쏠림과 치우침은 삶의 자유와 여유에서 멀어지게 하 것이다...
모든 조화로움은 중용과 균형의 산물이다..
일도, 놀이도,
나와 타인 그리고 관계의 배분도
욕심과 만족 그리고 미래의 행복과 현재의 행복 까자도
삶의 중요한 것들이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조화를 이루어야 마음 또한
여유를 가지고 스스로 고요해질 수 있다..
그래서 늘 우리의 삶의 균형과 조화가 필요하고
그것을 유지해가는 것이 속인의 수양이고 도에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이 될 것이다.
도시를 벗어난 강둑의 풍경이 한가롭고 단순해 지듯이
바뀌어가는 우리 삶의 풍경도 조금씩 단순해지고 단조로워 지는 중이다.
나와 큰매제가 먼저 세상 밖으로 나왔고 앞으로는 동생들이 뒤 따를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세월이 삶을 구조조정하고 우리 스스로도 또 거기에 맞는 그림을 그려
가야 하는 때가 다가 온다.
그 때에도 씩씩할 수 있는 건 자신에 대한 믿음이고 결국은 홀로 머물 수 밖에 없는
삶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에서 비롯될 것이다..
늙어도 세상의 중심에는 여전히 내가 서 있고 삶이란 내가 그리는 그림이고
내가 쓰는 한 편의 서사시라는 거
길 위의 풍경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나의 영향력에 기대었던 수 많은 인연과 관계가 사라지고 나면 그 동안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던 내 가까이에 있는 것들이 더 소중하게 다가 올 것이다.
바빠서 돌보지 못했던 가족들
오랜 친구들
그리고 늘 곁에 있었던 자연
그런 것들이 많은 치유와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들 잘하고 있지만
훗날 그리워 마음 아프기 전에 살아 계실 때 어머님께 잘하고
훗날 더 외로워지기 전에 늘 가까이 있어 그 소중함을 잊고 살아 가고 있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더 잘하고
먼 훗날 지나간 날들이 아쉬워 지기 전에 지금까지 열심히 잘 살아 온 나를 위해
더 멋진 날을 선물하며 재미 있게 살자 ..
이젠 인생 후반전이다.
이제 더 모으는 것보다 내리고 누리는데 더 노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내일의 행복을 원한다면 먼저 행복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
사실 알고 보면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그건 어디에나 아무렇지도 않게 굴러다니는 데 마음이 콩 밭에 가 있는 우리가
가까이 있는 행복을 알아 채지 못하고 그 걸 찾아 먼 곳을 떠돌았던 것이다.
마치 자다가 남의 다리를 긁어대는 것처럼…..
많은 세월을 보내다 보니 이젠 알겠다.
행복은 크고 거창한 게 아니고
행복은 도달하고자 애쓰는 어떤 한 지점이 아니고
어떤 거대한 기쁨의 덩어리가 아니다.
걱정 없는 평범한 일상이 행복이고
가까운 사람과 나누는 즐거운 시간과 맛 있는 음식 또한 행복이고.
그건 원래부터 내 마음속에서 잠자고 있었던 것이었다.
우린 봄날의 눈부신 햇살을 듬뿍 받으며 두 다리로 함께 양산 8경을 돌아보았고 마지막
신선이 내린다는 강선대에 올라 시원한 양강의 바람을 맞으며 우리가 걸어 온 길을
되돌아 보았다.
잠시 정자에 앉아 커피를 나누고 우리는 그렇게 즐거운 기분으로 가선식당으로 이동해서
도리뱅뱅 한접시와 막걸리 한 사발로 우리 여행을 자축하였고 맛 있는 어죽으로 점심을
나누며 1박2일의 패밀리 야유회를 멋진 추억으로 갈무리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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