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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황매산 억새 평전 산책

 

 

어머니와 아침식사를 하고
집에 돌아와   여장을  꾸리고 길을 나섰다 ᆞ

황매산 가는 길
마눌이 황매평전의 싱싱한 억새의 갈기를 보고 싶다고 했다ᆞ

황매산 마눌과 12년 전에 갔었다
다시 가고 싶지 않은 산이었다
제주도 보다 더 광활한 철쭉과 억새의 땅이었는데

욕심 않은 인간들에 의해 철저히 유린되고 파헤쳐진
아까운 산하를 보는 건 고통스러웠다.

세 번의 놀라움을 안겨준 산이다.

모산재의 수려한 암릉과 멋드러진  노송의 조화에 놀라고 낭자한 핓빛으로 타오르던

철쭉의 광염에 다시 놀랐다.
그리고 마지막엔 그 무수한 인파와 그 수려한 자연에가해진 인간의 광포한 테러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남아 있던 오랜 감정의 앙금도 세월의 강물에 조금씩  흽쓸려
가고  더러는  물속에 녹아들었다ᆞ
허기사
내가 이렇게 세월에 풍화되어 낡아 가는데
꼬장꼬장한 생각인들 시간의 강물에 깎이고 벼려져서 둥그러지지  않았겠는가 ?


이젠 브레인 메모리의 용량 증설도 언감생심이다.

노화로 인한 베드섹터가 폭증하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지.!

닦고 기름치고 조이는 것도 한계가 있는 거다.

홍수처럼 밀려드는 정보에 무감각해야 하고 그나마 필요한 것들은 보관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저장공간을 지워내야 가능한 연식이다.

낡아 가는 하드웨어와  가끔 껌뻑이는  낡은  OS  소프트웨어 !   

내 메모리에 저장된 12년 전의 낡은 기억이  온전히 남아 있을리 없다.

 


마눌과 같이 갔으되
자차로 갔는지
산악회와 같이 갔는지도 생각이 나지 않고
황매산으로 가는 길도 ᆞᆞ
산행로의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그래서 역대 왕조들은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사고를 지어 기록을 보관했고

대통령 통치기록은 대통령기록관에 보관된다.

무릉객의 무릉견문록은  무릉객의 무릉도원에 잘 보관되어 있다.

 

별로 생산성도 없고 다른 이들에게 내세울 만한 것도 아닌  순전히 내 기쁨과 훗날의 추억을

위한 사진 작업과 글쓰기지만 이럴 때는 그래도 꽤 유용하다.

 

전용 인터넷 역사관을  운용하는 건 지금생각해도 잘한 일이다.

잘 노는 넘이 잘 사는 넘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슬픔은 개무시하고 즐거움은 팍팍 늘려 잘근잘근 씹어서 먹어야 한다

내 평상시 모토와 딱 맞아 떨어진다.

사진과 글쓰기는 나의 화려한 자연 편력과 함께 이젠 포기할 수 없는 취미가 되어 버렸다.

분리가 불가능한 일괄 여행패키지라고나 할까?

내게 자연으로의 여행은 꼬리를 무는 기쁨보따리인 셈이다.

 

여행지로 떠나는 설레임의 기쁨

아름다운 세상과 만나는 기쁨

아름다운 세상을 앞에 두고 나누는 미각의 기쁨

그리고 그 즐거운 시간을 다시 되새김질 하며 정리하는 기쁨

훗날 그 기록을 꺼내어 즐거운 추억을 소환하는 기쁨

 

길잡이 처녀는  생초IC로 안내 했는데  나들목을 나오고
35 km 
가량  지방도를 따라   구비구비  휘돌아가는 길은 마치 옛 유배의 길과 같이

쓸쓸하고  적막했고 시간도 꽤 걸려 꼬박 2시간이 소요되었다.


다시 태풍이 온다더니 내륙은 때 늦은 폭염이  기승을 부려 

우리가 도착했을 때 9월의 무더위는 절정에 달해 있었다 ᆞ
11
시가  30분경에 산 위 주자장  철쭉과 억새사이 식당에서 묵사발을 하나 씩 비우고 가져간

떡과 계란을 먹고  우린 그렇게 폭염 속으로 떠났다.

 

 

 

 

난 황매산  산책을 얼마나 얕잡아 보았으면  등산화도 챙겨오지 않고 슬리퍼만
찍찍 끌고 왔다ᆞ

다시보아도 어이없는 억새밭
콘크리트  .

관리측의  고중도 이해가 가지만 몇개의 지선에 길을  낸 야자나무  카펫길 조성이나 

집 짓는 황토블럭을 깐  맨발 황토길  조성은 아얘 불가능 한 걸까 ?
그건 그렇다 해도 이 아름다운 산에 8부 능선 까지 도로를 내고 거대한 주차장 만든 건

정말 해도해도 너무했다. 

 

우린 메인 로드를  따라가다가 억새둘레길로 접어들었다 ᆞ
그 길에서 바라보는 황매산의 억새 풍광은 장관이었다
영남 알프스나 제주도 어느 억새 밭에 내 놓아도 째이지 않는 건강한 억새 군락과 가슴을

후련하게 하는 광활함이  폐쇄증에 시달리던 시선을 강탈했다.

아직 흰털을 피워 내지 않은 채 바람에 흔들리며 햇빛에 반사되는 눈부신 갈기는 인상적이었다.

집나간 구월의 바람은 능선에서 다시 돌아왔다ᆞ
하와이처럼  그늘에서는  시윈하고 땡볕이 작렬한 길 위에서는  무더웠는데

우리나라도 이젠 점점 그렇게 바뀌어 간다.

물은 점점 부족해져서 대지는 건조해지고 그로인한 기압의 쏠림 현상을 상쇄하기

위해 먼바다의 광포한 태풍을 자주 끌어들일 것이다.  

그래도 시종 즐거웠던 건 한몫을 톡톡히 거들어 준 바람 덕이었다.

 

 

 

 

 

영화에 나와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 무성한 가지 아래 그늘을 드리운 떡갈나무는

낭만적인 분위기로 휴식을 강요하고

올려다 보거나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모두 예사롭지 않은 데
바람마져 그리 시원해서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린 아주 퍼질러  앉았다ᆞ
산잭길에 바쁠 것도 없으니 불현듯  연중행사처럼 다녀오다가 올해는 경황이 없어

빼먹었던 축렁산의 힐링이 떠올라 

우린  휴양지 같은 그 곳에서 한참의 한기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서  황매산 전위봉, 내가 단양의 까페산 정상을 닮았다고한  언덕 까지는
멋진 억새 물결의 향연이었다 .

마치  이국의 풍경 같은  억새 밭 길 !

그 길 위에서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주연배우라도 된  듯 비장한  낭만과 

감동이 억새와 함께 물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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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의 태양아래 무수한 갈기를 반짝이는 장대한 억새의 물결 사이로 이어지는 
길은

말 그대로 환상의 실크로드 였다

 

황매산 전위봉에서는 황매세상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고 마치 섬처럼 떠 있는

평평한 봉우리 위로 거침없는 시원한 비람이 불어갔다.
폭염의 여름을 방불케하는 9월의 무더위 산행을 각오한 길에서 우린 그렇게 눈부신

태양과 시원한 가을바람과 억새의 낭만까지  한꺼번에 누리는 행운을 누렸다.

 

 

 

황매산 정상은 보수공사로 폐쇄되었다 ᆞ
출입금지 대자보가 붙어 있어도 동생과 같이 갔던 기리산쳐럼  나라도 슬며시 올라 갔다가

내려오면 되는데 토요일인 오늘까지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정상에 서면 더 넓은 황매세상이 내려다 보이겠지만  오늘의 제한 고도는 여기 까지

 

 

한가로움, 그리고 평화로움

 

 

난 거추장스러운 신발을 벗어 던지고 맨발트레킹을 했다
하늘 전망대는 이름에 걸맞게 날카로운 매의 눈으로 평전의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인데  드넓은 억새 평원과 쩔쭉밭과   모산재 암릉까지 한 눈에 내려다 보여서 정상의

아쉬움을 누그러 뜨려 주었다

 

 

하늘전망대에서  태양은 구름 속에 숨어 들었고 고산  평전은 언제  뜨거웠냐는 듯  부는

바람을 타고  서늘한 가을 공기가 밀려 들었다.

비로소 하늘 억새 밭은 날씨 까지 선선한 가운데 가을다운 풍경 위에 가을 정취까지 더해서

우린 하늘전망대에서 더 오래 고원의 낭만을 즐겼다.

 

 

하늘전망대를 거쳐 황매산 철쭉제단을 지나  갈대밭 사잇길을 따라 메인로드로 

복귀 했는데  우린 귀로의 길 중간 한적한 떡길나무 아래 벤취에 드러누워 이제사

가을의 향기를 날리는 억새밭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우린 억새 숲에 누워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보며 망중한을 보내다가 수국 정원과 공원의

꽃밭을 가로질러  주차장으로 되돌아 왔다.

두어 시간 산택이면 족할 길을 죽죽 늘여서 5시간 가량 소요했으니 산책과 힐링이

어우러진 가을 여행이었다.

 

 

 


산욕심은 아직 드글들해도 마눌을 위한 여행이니
내 배낭에도 이젠 마눌의 눈높이와 페이스에 
머무는 행복을  주워 담아야지ᆞ


 

 

추억 여행을 마치고 마눌이 검색한 합천호관광농원 식당으로 갔다.

오곡밥 정식
그동안 여행길에서 마눌이 선정한 식당들이 별로여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가격도 비싸지 않은데  차림상은 예상 외로 근사했다.

한정식의 음식 가짓수도 풍부했지만 모든 음식이 정갈하고 맛깔 스러워서

모처럼 만족한 식사를 즐겼다.

합천댐을 낀 주변의 풍경은 그다지 좋지 못했지만 넓은 부지에 지어진 특색있는

건물의 농원식당은 일대에 꽤 알려진 모양이어서 저녁 때가 되어 갈수록

사람이 많이 몰려 들었다.

여유로운 여행의 여세를 몰아 천천히 시간과 맛을 음미하고 우리는 느긋한

포만감과  좋은 여행의 여운을 안고  귀로에 올랐다. 

 

2022 918일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