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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봄날의 체력 보강 훈련 - 구왕봉 ,희양산 원점 산행

 

은티마을 가는 길  아침 

 

희양 능선에서 바라보다.

 

대간 표석 

 

좌측으로 가면 희양산 , 우측으로 가면 구왕봉 

 

허리휘는 영접 

 

호리골재 이정표 

 

구왕봉 가는 능선에서 바라본 풍경 

 

구왕봉 가는 능선에서 내려다 본 은티마을 풍경

그 뒤로 골재를 채취한다고 훼손한 산자락이 흉물스럽다.

 

 

악휘봉 너머 장성봉으로 치닫는 백두대간 갈 

 

마당바위 

 

 

 

조사장과 산행은 1월과 2월을 건너 뛰었다.

조사장과는 5시간 이상 산행인데 2월은 몸이 여전히 회복의 징후를 보이지 않았다.

역시 나이는 못 속인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닌 것이다.

다른 때 같으면 댓시간 산 한 번 타면 신체의 모든 비정상적인 리듬은 말끔히 리셑

되었는네  이젠 복원의 꼬리가 사뭇 길다.

자주 안부를 물어보면서 함께 할 산행을 기다리는 조사장에게 그렇게 난 2월에도

순전히 나를 위해 고춧가루를 뿌려댔던 것이다.

우야튼 3월에 들어서면서 몸은 조금씩 적응을 해가고 봄기운에 근질근질해졌다.

조사장과는 둘째주 토요일을 D-DAY로 잡았고 세 달 만이니 산행하고 술 한잔

치자고 해서 괴산 인근의 산을 잡기로 했다.

 

괴산과 문경은 기골이 장대한 암봉들이 즐비한 곳이라 그동안 흐물거리던 정신의

날을 벼리고 집 나간 군기와 해이해진 기강을 바로 세울 최적의 교육장이 될 것이다.

 

후보지 2개를 보냈다.

1:구왕봉, 희양산 코스

은티마을-호리골재-구왕봉-지름티재-희양산-성터-은티재 은티마을  11km 6시간

2: 남군자산 길모봉 코스

      한관평마을 삼형제바위-칠일봉-남군자산-군자치-길보봉-선유교-하관평마을

      11km 6시간

 

 

나왈 : 골라 잡으슈  ~~

조사장왈 : 아무데나 상관업슈~~~

 

 

어머니 집에서 새벽 5시에 조용히 나오는데 그노무 오마니 지킴이 아줌씨 큰소리로

문이 열렸습니다~~`”

아줌마 새벽에는 목소리 좀 낮춰유  ~~~ 오마니 깨셨겠네~~”

 

내심 백두대간의 최대 난코스 중 하나인  희양산을 낙점한 터라 빡센산행이 걱정되어

24시 국밥 집에서 내장탕을 하나 비우고 가느라 조사장 집에는 610분에 도착했다.

근 세달 가까이 만나지 못했으니 이러 저러 할 얘기가 많아 주절주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문의 주택에서 1시간 20여분 걸리는 은티마을은 마치 건너 동네 마실 가듯 금방

도착했다.

 

오늘은 백두대간이 허리에 해당하는 낙차 큰 바위 능선 코스로 그 포스와 카리스마가

장난이 아닌 산들이라 이전의 워킹 산행과는 격이 다르다.

곳곳이  절벽지대니 아주 조심해야 하고 뻐근한 팔운동에 평소에 쓰지 않던 근육을

많이 써야 해서 더 힘들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위험한 코스는 기겁하는 조사장한테 대놓고 겁을 주니 조사장은

긴장의 빛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 옛날 마눌도 희양산에 올랐다가 공포의 직벽코스로 하산했던 이력이 있다.

또한 워낙 유명한 산이라 다른 비등의 산들 같지 않게 튼튼한 로프가 걸려 있을 터이니

강인한 체력의 조사장이야 별 문제가 없을 터 이다.

문제라면 내가 더 문제지

지난 번 미륵산에서 워밍업을 하긴 했어도 그날은 쎄미 크라이밍 수준의 거친 암벽

이라도 사실 훨씬 짧은 거리였다.

난 허리에 실리는 배낭의 무게를 고려해서 보온물통에 뜨거운 물도 가져오지 않고

생수도 1리터만 가져왔다.

 

차는 공용주차장에서 한참을 올라가 마을  경로당 세웠다.

작년 악휘봉 나홀로 산행 때 거기다가 파킹을 했는데 이른 아침이다 보니 마을사람들의

왕래도 없었고 아무도 이의를 제기 하지 않았다.

차를 세우고 산행 행장을 꾸리는데 경로당 주차장에 트럭이 들어오길래 오늘은 용코로

걸려서 아래 주차장으로 퇴출될 모양이다 했는데 우릴 보고도 아자씨는 아무런 얘기가

없었다.

대 놓고 인사도 못하고 고마워유하고 속으로 인사하고 우리는 그렇게 춘행 길에

올랐다.

.

은티마을은 백두대간으로 둘러싸인 대한민국 대표적인 오지마을 이었다.

지금은 팬션도 들어서고 산비탈에 전원주택도 생겼지만 여기는 늘 백두대간을 빠대는

사람들이 몰려와서 마을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곳이었다.

구왕봉과 희양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에서 내려다 보면 사방이 걸출한 산세로 빙 둘러싸인

아늑한 분지로 전형적인 금계포란형  명당에 속하는 풍수의 길지이다.

이곳을 보호하는 산들의 강건한 산세와 땅의 좋은 기운이 여기 정착한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만 전원주택도 어쩌면 인생의 아이러니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벗어나 은퇴하고 쉴 때쯤 되어 노후 삶의 로망인 시골의

전월생활을 떠 올린다.

안빈낙도와 유유자적한 노후 삶의 꿈꾸지만 세월은 늘 제멋대로고 늙어가는 몸과 마음은

자주 어깃장을 놓은다.

호젓한 자유 보다는 외로움과 벌레들이 먼저 벗삼자 하고 좋은 공기에 유기농 야채로

바이오리듬이 업 되는 것 보다는 고단한 일상과 삐그덩거리는 몸이 먼저 신음 소리를 낸다.

유전자에 각인된 원시시대의 야생 본능이 우리의 발길을 여전히 자연속으로 잡아 이끄는

것이지만 또 십수년 몸에 밴 도시의 문화와 편안한 생활은 시간이 갈수록 산골 오지에서

고립된 삶을 힘겨워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적적한 노후의 삶이 더 적막해지는데 친구들의 발길도 멀어지고 여기저기

삐걱이는 노구를 수리하러 가는 일이 명절쇠러 고향가는 것 만치 어려워지면 삶의 로망은

뼈아픈 현실이 되고 마음은 하릴 없이 더 착잡해 질 것이다.

 

난 유유자적한 은둔과 꿈을 꾸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을 그 꿈 속에서 보냈다.

젊음이 받혀주는 즐겁고도 행복한 꿈 !

그래서 나의 생활과 꿈은 현실과 이상의 어느 중간지대에서 하나로 녹아 이젠 늙어가는

나이에도 헤어날 수 없는 삶의 늪이 되었다.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면 허우적거릴수록 내 삶은 그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드는데  그게

살아 가는 날의 감동이고 재미여서 그 곳에서 빠져 나오기를 스스로 거부한다.

 

자연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난 늘 다시 도시로 회귀한다.

나 역시 수행과 명상을 하되 산속에 머물지 않고 환속 하기에 도인과 승려의 삶과 다르며

자연에 머물지만 그 속에서 살지 않기에 전원생활자와 다르다.

그냥 제 멋과 제 흥에 겨워 살아가는 경계인이고 자유인일 뿐이다..

난 세상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도는 무릉객이고 나의 생활방식에 만족한다.

 

삼천리 금수강산에 내 사랑이 얼마나 많은가?

유목민이 자유로운 바람을 몰구 다녀야지 한 곳에 정주하려 하면 타고난 역마살은

병이 될 것이다.

일반사람들은 평생에 한 번 올까말까 한 희양산도 난 벌써 댓 번은 왔겠다.

그래야 10년에 한 번 꼴이나 되려나?

전국 방방곡곡의 아름다운 내 사랑들 조차 아마도 난 다 만나 보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하물며 드 넓은 세상에 남아 있는 무수한 내 사랑들을 두고 하릴 없이 늙어감은 그저 아깝고

통탄스런 일이어늘

이 늙은 나이에 수 많은 사랑을 버리고 초야에 묻혀 한 골짜기의 바람만 맞고 한 여인의

얼굴만 죽자사자 바라보다 늙어 가는 게 도대체 이치에 맞는 일인가 ?

 

 

따뜻해진 봄 날씨라 옷도 가벼운 봄 옷으로 자켓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출발점에서 계곡을

올라가는 길은 제법 쌀쌀했다.

호리골재 까지는 실크 로드 였다.

조사장은 전차처럼 그 길을 거침없이 진군했다.

은티마을에서 구왕봉 가는 3.8km 정도 거리에서 2km 정도 거리는 날로 먹었다.

호리골재에서  구왕봉 가는 길도  양반이었다.

호리골재에서 이정표상 1.6km 인데 오늘 같은 서늘한 날씨에도 땀을 많이 흘리는 조사장은

그 답지 않게 구왕봉 오는 길이 꽤 멀다고 푸념을 한다..

우린 3.8km를 걷고 구왕봉에서 비로소 다리쉼을 했다.

 

구왕봉에서 지름티재로 내려서는 능선 길은 낙차가 심하고 군데 군데 위험한 난코스가

포진해 있다.

내림길 초입 두 군데에서는 카리스마 충만한 희양산 바위벽이 내다 보이는데 그 웅장한

흰 바위 풍경이 장관이다.

그 중 한 곳 소나무 아래 멋들어진 조망처는 내 평생 잊지 못할 곳이다.

 

백두대간 종주 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1년 전이다.

하루종일 내리는 비를 맞으며 우중산행을 하는 중에 만난 아름다운 풍광과 비가 걷힌 후의

현란한 운무의 춤 사위는 황홀한 대자연의 향연이었다.

그 날을 이 곳을 나는 이렇게 기록했다.

 

찬바람을 맞으며  거친 암능에 로프에 대롱거리며 낙낙장송을 휘여 잡으며 그렇게 오른

바위 전망대에는 구름을 두른 흰 희양봉이 장엄한 위용으로 다가서고  약해지긴 했지만 

아직 간간히  비를  뿌리는 세찬 바람은 범상치 않은 산세에 경외감을 더한다.

멋진 풍광이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우비자락을 휘날리며  암봉에 비껴서 있는 고사목에

기대어 포즈를 잡아 본다.

 

 

빗줄기가 멎고 그래도 많이 날이 밝아진다.

거추장 스러운 우비를 벗어 던졌다.

바람이 차단되어 무언가 답답하고 음습한 기운을 감싸던 비닐하우스가 걷히고  축축한

옷과 살갗에 차가운 바람이 스쳐 지나자 마치 몸이 호흡을 하는 듯 신선한 기운이 온몸을

따라 전율처럼 퍼져 오른다.

오락가락하는 운무 사이로  언뜻언뜻 터지는 굽이치는 산세의 조망은 장엄하기 짝이없고

반석 정상부에서 바라본 운무에 휘감긴 웅장한 희양산과 주변의 풍광은 신비롭기 한이 없다..

이 멋진 풍광을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오늘백두대간 주유는 잊혀지지 않을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굽이치는 희양의 암봉 등성이를 흘러 내리지 못한 후회가 다시 스멀거린다.

나는 희양산 구간의 백두대간을 우회한 셈이다.

 

전망바위에서 바라보는 희양산 주변에 가득한 운무가 장관이다.

짙은 운무는 세찬 바람에 흩어지며 봉우리로 솟구쳐 오른다.

그 신선한 차가움이란……

운무를 두른 산능성이를 배경으로 신록의 바다 한가운데 군계일학처럼 솟아오른 한 그루 

소나무는 명상처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자연 한 가운데 있음이 삶의 위안과 축복이다.

참으로 조화롭고 변화무쌍한 대자연이다.

흰 눈을 머리에 인 노송과 뒤 흰 눈발이 칼 바람에 날려가는 한 겨울의  풍광은 또 얼마나

장관일까?

이젠 무거웠던 마음도 맑아지고 발걸음마져 가벼워지는데  층암절벽과 그 난간에 선

분재와 같은 소나무의 멋진 조화까지 눈을 즐겁게 한다.

 

난 결국 바램 대로 장대한 눈이 내리는 날 아들과 함께 희양의 용골마루에 서서   눈덮힌

희양의 장엄한 풍광을 바라 보았다.

삶이란 별 것 아니지 않는가 ?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니 삶이 자꾸 힘들어 지는 것이다.

삶이란 자신이 보고 싶은 풍경을 찾아 떠나는 여행길일 뿐이다.

찾아가는 저마다의 풍경은 다르겠지만 우리에게 목표보다 더 소중한 건 그 길 위에서

만나는 빛나는 작은 기쁨과 감동들일 것이다.

여행은 즐거워야 한다.

여행의 일정표는 수시로 바뀌기도 하고 갑자기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 법이다.

우린 여행중이다.

다시 돌아 올 수 없는 여행, 짧아서 더 아름다운 여행.

 

하산 길이  점점 가파라지고 거칠어 지면서 우리는 스틱을 접어서 배낭에 넣었다.

정신집중과 적절한 호흡조절이 필요한 구간이다.

 

봉암사와 연결되는 지름티재에 무사히 내려 섰다.

예전과 다름없이 봉암사로 가는 산길은 목책으로 굳건히 닫혀 있다.

백두대간 종주를 하는 사람이라면  몽둥이를 들고 산길을 막아서는 봉암사에 대해 별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겠지만 참으로 유서 깊은 절이고 신비에 쌓인 절로 유명하다.

금강산 장안사 만치 가기 어려운 절

이 절은 평소에는 참배객이나 관광객의 발길을 막고 부처님 오신 날 단 하루만 절을 개방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오직 참선과 정진에만 몰두하는 간화선 수행원이 있는 절이다.

지증대사탑비 국보와 7개의 보물을 간직하고 있다.

백두대간 파인 나 역시 별로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수 년 전 부처님 오신 날

희양산을 타고 봉암사에 들러 그 선입관이 싹 바뀌었다.

백두대간의 허리에 기댄 아름답고 인심이 후한 대찰이다.

대한민국 불교 역사의 큰 자리를 차지하는 하고 있는 수행의 도량은 어느 해 부처님 오신

봄 날 에 그렇게 좋은 기억과 함께 내 마음으로 들어 왔다.

 

지름티재에서 희양산 오르는 길은 직벽의 난코스로 악명 높은 길이다    

마눌과는 성터로 희양산에 올랐다가 이 길을 통해서 지름티재를 내려서서 반대편 구왕봉

찍고 되돌아 내렸다.

오늘 과는 반대방향이다.

아들과 함께한 백두대간 희양산 구간은 파란만장 했다.

역종주 중의 희양산 구간에서 갑자기 유례없는 폭설이 쏟아 졌다.

수 많은 산우들이 중도에 이탈하는 중에도 우리는 굴하지 않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희양산 정상에 올랐다.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장엄한 희양산 이었다.

세상의 남편과 아버지란 그런 것이다.

세상의 기쁨은 함께 하고 싶지만 그 고통은 기꺼이 내가 지고 싶은

마눌이 지름티재 로프에 매달려 있을 때나

모든 대간객들에게 비상대피령이 하달된 상태에서도 내 고집으로 아들을 몰아쳐서

희양산에 발도장을 찍었지만  내림길의 힘겨움 속에서 탈진한 모습을 보이는 아들을

초조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 볼 때나……

어쨌든 우린 무사히 산행을 마무리 했고 그 생생한 기억의 날들을 뒤로하고 또 수 많은

세월이 바람처럼 지나갔다.

 

그 때가 불과 10년도 되지 않았는데 희양과 나는 같이 늙어 간 것이다.

희양의 절벽을 풍화되고 안전시설은 강화되었고 나는 정말 우습게 알았던 코로나에

먼지나게 뚜드려 맞고 쌍코피 줄줄 흘렸다.

희양도 나도 세월에 많이 길들여 졌다.

희양의 직벽은 수직으로 계속되는 오르막 길로 지친 몸을 끌어 올리려다 보니 여전히

거친 숨을 몰아 쉬어야 하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더 수월한 느낌이다.

아무리 예전보다 몸이 가볍고 또 배낭이 가볍다 해도 무수한 대간객의 간담을 서늘케

하던 고압적이고 악명 높은 희양 직벽의 카리스마 아닌가?.

허기사 백두대간 종주라면 배낭의 무게도 엄청나고 희양산에 도달할 때 쯤엔 솜처럼

지쳐 있을 때니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그 때와는 비교할 있는 상황이 아니긴 하다..

 

김반장의 사고로 인해 수송차질이 발생하자 영업 본부장 전화가 자꾸 오고 신입기사

무인계근이 잘 안된다고  전화가 자꾸 오는 통에 그렇지 않아도 힘들고 위험한 암릉

구간에 발길마저 자꾸 밀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

신경이 쓰이긴 해도 내가 일의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고 또 전화 받는 중에는 쉴 수

있으니 생각하기에 따라 나름 좋은 면도 있는 거다...

오르다 풍경이터지면 이마의 땀을 씻으며 그 멋진 풍경 덕에 또 휴식할 수 있으니 그

또한 고행 속의 기쁨 아닌가?

좀 늦게 직벽을 올라간다고 문제될 건 아무 것도 없다.

힘에 겨운 조사장도 가쁜 숨을 몰아 쉬며 호흡조절하고 있을 것이고

오히려 용쓰고 오르느라 그 가슴 후련한 가경을 놓치는 게 내겐 안타까운 일이지…..

 

희양산 능선의 성벽 위에서 조사장은 다리쉼을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도착하자 너무 힘들다고 혀를 내두른다.

여기는 희양산이 400여 미터 남은 지점이다.

여기서부터 희양산 까지 이어지는 바위 능선의 풍경이 오늘 산행의 백미에 해당하는데

주변의 산세와 어우러진 암릉미가 압권이다.

일대에 군림하는 희양의 독보적인 카리스마

그 멋진 산세는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이 되어 절대 새로운 풍경으로 치부되지는 않지만

다시 보아도 늘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거기 오르면 내가 야생의 거친 들판에서 들짐승을 쫒는 원시인으로 다시 돌아간 듯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오늘의 대장정은 성공이다.

잠자는 야성을 깨우고 올 한 해 신나는 모험 속으로 망설임 없이 돌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되찾게 했다.

풍경에 별 관심 없는 조사장은 잰걸음으로 정상을 향해 갔고 나는 바위봉 하나 하나를

빠뜨림없이 올라 그 풍경의 카메라에 담고 지난날의 감회에 젖어 보았다.

 

희양산 정상

따사로운 헷살이 쏟아 지고 있다.

난 다시 여기에 섰구나!

2019년 부처님 오신 날에 이 곳에 있었으니 4년 전에 왔던 거다.

우린 아무도 없는 희양산 정상에서 각자의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그 아래 천혜이 전망대

반석바위에서 화려한 식단을 펼쳤다.

오늘의 산행은 다 끝난 것과 마찬가지다.

 

식사를 하는 중에 네명의 산님이 올라 왔다.

얼쑤! 이증샷 건졌네….

여자 한명에 3명의 남자

여자가 굉장히 활달했다.

너무 위험할 것 같아 성터로 우회했다고 하지만 풍기는 산꾼의 포스는  지름티재

등반에도 전혀 꿇리지 않을 만큼 강렬했다.

우리는 그들이 표석에서 사진을 찍으며 희양산 등정을 자축하는 동안에 식사를 마치고

기꺼이 풍경 좋은 전원레스또랑을 내어 주었다.

권리금 한 푼 받지 않고서

 

잠시의 인연은 서로의 멋진 산행을 빌어 주며서 그렇게 희양산에서 교행했다.

순례의 고행길은 끝났으므로 내려가는 길은 마음이 편했다.

하산은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시간에 맡겨 놓으면 해결될 일이었다.

계곡 하부의 산죽 군락과 거대한 암괴의 적층 말고는 별 특징이 없는 길이라 사진을

찍을 일도  별로 없는 길이다.

나는 하산 속도를 빨리 해서 조사장과 같은 페이스를 유지 했고 크게 체력의 부담을

느낄 겨를 도 없이 희양산 백두대간 표석으로 회귀했다.

그리고 0.8km의 은티마을  접속 길을 걸어 차자 주차되어 있는 은티마을 경로당으로

돌아 왔다.

다섯 시간 30분 만이었다.

선답자의 산행기가 통상 6시산에서 7시간 소요된 것으로 보면  빠른 산행 마무리 였다.

속도를 빨리한 탓이 아니라 순전히 휴식시간이 적었던 탓이었다.

 

다소 부담스런 산행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기 때문에 마음은 홀가분 했다.

걱정스런 숙제를 마무리하여 마음의 부담을 덜어낸 조사장 역시 기분이 한껏 고무되어

오래 기억에 남을 멋진 산행이었다고 뿌듯해 했다.

조사장이 이런 저런 애기를 하는 중에 잠시 졸음이 쏟아졌지만 그래도 적재적소에

추임새를 넣어 의심은 피해 갔고 늘 나와의 출정이면 잠을 더 많이 자고 나오는 조사장은

피곤한 기색 없이 목적지 까지 쌩쌩하고 안전하게 날 배송해주었다.

 

가는 중에 조사장이 무엇을 먹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지금의 상태로야 무엇을 먹어도 맛이 없겠느냐 만은 난 제철음식인 간재미 무침이나

몸보신용 장어 구이가 어떠냐고 했고 조사장은 흔쾌히 동의 했다.

조사장이 자주가는 신탄진 수산점에 예약을 잡았다.

그곳은 나도 몇 번 따라 갔던 곳인데   예약자가 누구인지 밝히지도 않았는데  쥔장은

목소리 만으로 조사장을 알아 차리고 예약을 진행해 주었다.

 

관평동 사우나에서 2시간여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여독을 풀었다.

5시에 수산점에 도착해서 펄펄 뛰는 쭈꾸미를 보자 순식간에 마음이 바뀌었다.

저거로 먹읍세다!”

펄펄 뛰는 싱싱한 쭈꾸미와 우리 삶의 기쁨을 안주로 우린 4병의 술을 비워냈고

성공적인 봄날의 적응 훈련을 성대히 자축했다. .

 

 

톨스토이가 얘기했던 세상에서 중요한 것 3가지가 새삼 마음에 와 닿는다.

1.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이고  

2.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고

3.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 에 있는 사람을 잘 대하는 것

 

내가 누구들의 좋은 친구라면 내게도 좋은 친구가 많겠지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친구란 내가 좋아 하는 것을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친구

게다가 가고 싶은 데 어디든 데려다 주고 먹고 싶은 건 무엇이나 사주는 친구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

조사장이 그런 내 친구일세…… 

 

 

산 행 일 : 2023311일 토요일

산 행 지 : 희양산

산행코스 : 은티마을-대간표석 -호리골재-구왕봉-지름티재-희양산-성터 –대간표석 -은티마을

산행거리 : 11km

산행소요 : 5시간 30

   : 화창한 봄날 약간 쌀쌀 했던 날씨가 더 좋았던 날

   : 조사장

 

나 무릉객은 이번 봄 산행 까지 5 번 희양산에 올랐다.

2002 7 13일 백두대간 종주 때     http://blog.daum.net/goslow/1667282

2008 5 1일 마눌과 100대 명산 종주 때     http://blog.daum.net/goslow/16734983

 

마눌과 추는 춤 - 희양산 (100대명산 제 23산)

잊지 못할 추억의 장소에 다시 간다는 건 설레이는 일이다. 희양산! 백두대간의 허리에 앉아 있던 골격미가 우람한 산이다. 희양산을 오르던 비오던 그날은 정상의 마루금을 밟지 못하고 성터에

go-slow.tistory.com

2016 2 28일 아들과 백두대간 종주 때     http://blog.daum.net/goslow/17940334

 

아들과부르는노래33-백두대간제21구간(이화령-백학산-이만봉-희양산-은티마을

산 행 일 : 2016년 2월 28일 일요일 산 행 지 : 아들과부르는 노래 33- 백두대간 21구간 코 스 : 이화령-황학산-백화산-이만봉-희양산-은티마을) 날 씨 : 흐리고, 진눈깨비,눈,싸리기,함박눈 다 맞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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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년 5월 12일 부처님 오신날   https://go-slow.tistory.com/17940628

 

부처님오신날 - 희양산산행 & 부처님 오신날만 개방하는 봉암사 순례

희양산 살아 있으면서 엔간히 산을 좋아하는 사람조차 한 번 가보기 힘든 곳 한반도의 중추인 백두대간에서도 허리에 해당하는 희양산은 뼈대 있는 가문에 걸맞는 장대한 기골과 탄탄하고 늠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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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번  2023년 3월 11일 토요일  조사장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