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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걷기의 인문학

 

 

걷기의 인문학

 

내 생애에 이토록 깊이 생각하고 살아 있음을 느끼고 본연의 내 모습을 되찾은 적이 없었다.

도보여행을 통해서 이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걸어야만 명상을 할 수 있다.

 

나는 걸을 때만 사색할 수 있다..

내 걸음을 멈추면 내 생각도 멈춘다.

내 두발이 움직여야 내 머리가 움직인다

장자크 루소

 

 

나는 적어도 한가지 점에서 만큼은 고대 현인들의 소박함을 닮았다고 자처한다.

바로 걸으면서 사색한다는 점이다.  – John Thelwall   Peripatetic

                                  영국의 혁명가 겸 작가 탈월  소요자 중

 

우리에게 너무한 세상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걷는다.

                                                    윌리엄 워즈워즈

 

 

 

이 책의 부제는 보행의 역사다.

 

역사까지 파헤쳤다고 보기는 어렵다

자신이 가이드를 자처하며 보행의 역사 속으로 안내하지만 주관적인 관점이다.

사실 보행의 역사를 파헤치는 것 자체가 별 의미 있는 작업은 아닐 것이다.

오스트랄로 피테쿠스의 직립보행으로부터 손이 자유로워 지고 도구의 이용이 가시화 되면서

인간은 숲을 벗어나 더 멀리 까지 걸어가게 되었다.

더 넓어진 삶의 지평을 최대한 누리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두개골

용량계속 늘어 났고  인류는 눈부신 성장과 진화를 이어갔다...

억겁의 대자연  속에서  일천한 생명의 역사지만  한 시절을 지배하던  수많은  생명체들이  

명멸해 갔어도  인간은   끝까지 살아 남았다.

하나를  가르켜 주면 열을 알고 신이 일부러 가르쳐 주지 않는 것까지 집요하게 파헤쳐 대는

호기심 많은 이생명체는 기형적인 두뇌의 힘으로 일찌감치 생태계의 지존으로 등극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것으로 만족할 인간이 아니었다.

그칠 줄 모르는 욕망의 털없는 원숭이들은  깊은 바다 속에서 가장 높은 산 까지 접수하고 더

나아가 우주 까지 그 영토을 넓혀가며  이젠  신의 영역인 생명의 창조와 영생의 비밀까지 파헤

치려 들고 있다.

 

세상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인간이 이룩한 물질문명의 발전은 현란하다.

하지만 행복을 위한 인간의 부단한 노력은 이제 거대한 벽에 봉착하기에 이르렀다.

인간의 삶은 풍요로워졌지만 정신은 가난해졌다

걷지 않으므로서 고요해질 수 없는 사람들

끊임없는 욕망과 욕심으로 벗어날 수 없는 인류는 점점 행복에서 멀어지고 있다.

 

직립보행에 눈 뜬 그 때로부터 인간으로부터 변함없는 사실 하나가 있다.

걷지 않으면 건강을 잃는다.

걷지 않는 자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없다.

 

그 정도로 사색하고 그 정도로 존재하고 그 정도로 경험하고 그 정도로 나 다워지는 때는

혼자서 걸어서 여행할 때 밖에 없었던 것 같다,

두 발로 걷는 일은 내 머리에 활기와 활력을 불어 넣어준다.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할까?

몸이 움직여야 마음이 움직인다고 할까?

 

저자는 인류의 정신문화 유산인 철학과 문학적 사유의 출발점이 보행에서 비롯되었음을

걷기를 좋아하고 일상화 했던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상가와 문학가의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단순한 걷기가 가져다 주는 무한한 세상의 경이와 상상력 그리고 창조적 에너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것은 충분한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나 역시 무수한 길을 걸었고 그 길 위에서 무수한 삶의 기쁨과 감동을 누렸으므로.

 

나는 평생을 걸었지만 지루하지 않았고 세월에 마모되고 풍화되었지만 아직 지치지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걷기가 내 삶의 활력을 불어 넣고 내 가슴을 마르지 않게 한다.

어쩌면 걷기는 내 영혼의 샘물을 끌어  올리는 마중물이다.

 

무수한 길을 걷다 보니 산이 하는 말” “바람이 전하는 사랑을 알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오래 걷다 보면 길 위에 도가 있음을 안다..

걷는 것 만으로 마음이 고요해지고 마음이 고요해지면 삶이 한 뼘 가벼워지고 즐거워 진다.

 

내가 걸은 무수한 길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길 위에서 만난 풍경과 그 길의 끝에서 만난 감동이 세상에서 딱딱해진 내 가슴을 부드럽게

만들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더 따뜻한 눈을 갖게 하였다.

 

내게 책의 내용이 새로울 건 없었다.

내가 지나간 세월에게 산에게 ,바람에게 들었던 이야기들 이었으므로….

내가 수 많은 길을 걸으며 고개를 끄덕였던 우리 사는 세상 밖의 이야기 였으므로

 

 

걷는다면 먼 여행도 좋고 가까운 여행도 좋다.

보행은 수단인 동시에 목적이며 여행인 동시에 목적지다.

무작위로 널려 있는 어떤 것, 체로 걸러지지 않는 어떤 것이 눈에 뛰는 순간, 우리는

자기가 찾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던 그 무엇을 발견하게 된다.”

두 발이 움직여야 머리가 움직인다는 장자크 루소의 걷기 사랑 까지는 아닐지라도

난 저자의 이 표현에 격하게 동감한다.

마치 글을 쓰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점점 써야할 것이

많아지는 것처럼 단조로운 걸음을 걷는 행위가 수 많은 생각과 아이디어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게 한다.

 

청년 니체는 나에게는 세가지 오락이 있으니 첫 째는 나의 쇼펜하우어, 둘째는 슈만의

음악, 마지막은 혼자만의 산책이라고 했다.

수 많은 대문호, 철학자들의 홀로 걷기와 혼자만의 사색을 통한 황홀한 고독 속으로의

여행은 그 족보가 있다.

혼자 머물수 없으면 황홀한 고독의 맛을 느낄 수 없다.  

혼자 있지 않으면 자신의 영혼의 깊은 심연을 들여다 볼 수 없다. .

 

걷기란 일종의 유체이탈 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날씨를 느끼고, 질감을 느끼고, 계절을

느끼고 야생의 것들을 만났다.

 

길은 걷는 것은 일의 확장이고, 걷기 위해 만든 공간들은 겯는 일의 기념비들이며 , 걷는

일은 세계 속에 존재하면서 세계를 생산하는 일이다.

 

이야기가 듣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의 시간 속에 펼쳐지듯 길은 걷는 사람의 시간 속에

펼쳐진다.

급커브는 반전과 같고, 정상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길은 클라이막스를 앞두고

점점 고조되는 서스펜스와 같다.

갈림길은 새로운 줄거리의 도입과 같고, 도착 지점은 이야기의 끝과 같다.

길이 남아 있는 덕에, 지금 옆에 없는 누군가의 말을 들을 수 있듯 길이 남아 있는 덕에

지금 옆에 없는 누군가의 발자취를 따라 갈 수 있다.

길이란 앞서간 사람이 남긴 기록이기에, 길을 따라가는 것은 앞서간 사람들을 따라

가는 것이다.

 

보행에 관한 거창한 서술이지만 작자의 생각에 깊은 공감을 느낀다.

 

길을 걷는 게 전혀 지루하지 않다는 건 이런 거창한 철학성과 역사성에 근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단순한 행위자체가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주고 설레임과 흥미를 유발함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걸으면 마음이 넓어지고 행복해진다.

그래서 걸었던 거고  그러다 보니 난 걷기를 멈출 수 없다.

신이 멈추라할 때 까지

 

 

 

책 내용 발췌

 

자유롭게 걸을 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소들은 많다.

칩거 . 편리함의 추구 , 컴퓨터, 스마트폰

 

보행의 역사는 글로 쓰이지 않은 은밀한 역사다.

노래의 작은 패시지, 노상의 작은 패시지, 인생의 작은 패시지 그리고 책 속의 작은 패시지에서

그 역사의 편린들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원시적이고 원초적인 이 행위에는 엄청난 우주가 담겨 있다.

사색과 명상, 예술과 영적인 의미까지.. 결부시킬 수 있다.

걸었기에 도로와 무역로가 뚫린 것이고 현재의 공간감각과 대륙횡단의 공간감각이 생긴것이다.

걸었기에 도시들, 공원들이 만들어 진 것이고 지도와 여행안내서, 여행장비가 생긴 것이다.

 

걷기의 역사는 허락없이 남의 땅 (해부학,인류학,건축,조경,지리,정치사와 문화사,문학,색슈

얼리티,종교연구)에 걸어 들어가지만 그 중 어느 땅에도 머물지 않고 계속 먼 길을 걸어 간다.

걷기의 역사는 모든 땅의 일부이자 모두의 경험의 일부라는 점에서 무한한 역사다.

 

완전히 새로운 전망을 발견하는 것은 큰 행복이다.

지금도 나는 언제라도 이 행복을 맛 볼 수 있다.”

두 세시간의 오후 산책은 언제나 나를 낯선 나라로, 내가 평생 가 볼 수 없는 어느 나라 못지

않게 낯선 나라로 데려다 준다.

처음 가 본 외딴 농가 하나가 다호메이 왕국의 모든 영지를 합한 만큼이나 좋은 때가 있다.

반경 10마일, 즉 오후 산책 한 번의 거리 안에 있는 풍경이 보여줄 수 있는 것들과 70년이라는

사람의 한 평생 사이에는 실은 공통점 하나가 있다.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 일을 안하기가 쉽지 않다.

아무 일을 안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무슨 일을 하는 척 하는 것이고 아무 일도 안하는 것에 가장

가까운 일은 걷는 것이다.

인간의 의도적 행위 중에 육체적 무의지적 리듬(숨 쉬는 것,심장이 뛰는 것)에 가장 가까운 것이

보행이다.

보행은 일하는 것과 일하지 않는 것 그저 존재하는 것과 뭔가를 해내는 것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다.

 

이성적으로 볼 때 보행은 몸과 ,마음과 세상이 한 편이 된 상태다.

오랜 불화 끝에 대화를 시작한 세 사람처럼 , 문득 화음을 들려주는 세 음표처럼 걸을 때 우리는

육체와 세상에 시달리지 않으면서 육체와 세상 속에 머물 수 있다.

걸을 때 우리는 생각에 빠지지 않으면서 생각을 펼칠 수 있다.

장소를 넘나들다 보면 시간을 넘나드는 일이 더 쉬워지는 것 같다.

계획에서 추억으로 넘어가고 또 거기서 관찰로 넘어가고….

보행의 리듬은 생각의 리듬을 낳는다.

풍경 속을 지나가는 일은 생각 속을 지나가는 일의 메아리면서 지름길이다.

마음은 풍경이고 보행은 마음의 풍경을 지나는 방법 이라고 할까?

마음에 떠오른 생각은 마음이 지나는 풍경의 한 부분 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는 일은 뭔가를 만들어 내는 일 이라기 보다 어딘가를 지나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보행의 역사가 생각의 역사를 구체화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마음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두발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은 가능하지

않는가 말이다.

 

걷는 일은 곧 보는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보면서 동시에 본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고 새로운 것은 이미 알고 있는 것 속으로 흡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느긋한 관광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색하는 사람에게 걷는 일이 특별히 유용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걷는다면 먼 여행도 좋고 가까운 여행도 좋다.

보행은 수단인 동시에 목적이며 여행인 동시에 목적지다.

무작위로 널려 있는 어떤 것, 체로 걸러지지 않는 어떤 것이 눈에 뛰는 순간, 우리는 자기가 찾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던 그 무엇을 발견하게 된다.

어는 한 장소가 의도적으로 떠오르는 때는 그 장소가 우리에게 놀라움을 안겨주는 때다.

마음과 몸, 풍경과 도시가 잠식당하는 이 때 걷는 일은 그 잠식을 차단하는 초소이고 걷는 사람은 그렇게 지켜야할 것을 지키는 파수군이다.

 

순간적인 에피파니(깨달음,영감,통찰)가 아닌 점진적인 확신이었다.

공간이 파악되 듯 의미가 파악되었다.

한 장소를 파악한다는 것은 그 장소에 기억과 연상이라는 보이지 않은 씨앗을 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장소에 들어가면 그 씨앗의 열매가 기다리고 있다..

새로운 장소는 새로운 생각 , 새로운 가능성이다.

세상을 두루 살피려면 걸어 다녀야 하듯 마음을 두루 살피려면 걸어 다녀야 한다.

 

나는 걸을 때만 사색할 수 있다..

내 걸음을 멈추면 내 생각도 멈춘다.

내 두발이 움직여야 내 머리가 움직인다.   루소

 

나는 적어도 한가지 점에서 만큼은 고대 현인들의 소박함을 닮았다고 자처한다.

바로 걸으면서 사색한다는 점이다.  – John Thelwall   Peripatetic

                                  영국의 혁명가 겸 작가 탈월  소요자 중

 

이 책이 나온 1793년 이후 더 많은 사람들이 탈월과 같은 주장을 펴게 되었고 나중에는

고대인들이 사유하기 위해 걸엇다는 주장이 정설로 굳어지기에 이르렀다.

소요학파 (Peripatetic School) : 걷기를 일삼는 사람, 멀리까지 걷는 사람의 뜻으로 아리스토텔레스학파 철학자를 일컫는 말이다.

그라이에프(Felix Grayeff)는 아리스토학파의 역사를 쓰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운 그 학당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곳에는 아폴로신전과 뮤즈 신전이 있었다.  작은 건물들도 있었을 것이다.

기둥이 늘어 선 지붕 덮힌 통로가 아폴로 신전까지 이어져 있었고, 아폴로 신전에서 뮤즈신전까지 이어지는 길이었을 수도 있다.

원래 있었던 길인지 학당을 지을 때 새로 세워진 길인지는 알 수 없다.

이 열주회랑(peripatos)이 바로 이 학파의 이름이 되었다.

적어도 학당 설립 초기에는 학생들과 선생들이 이 길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배우고 가르쳤었던 것 같다.

훗날 아리스토텔레스가 걸어다니면서 가르쳤다는 말이 나온 것도 그런 까닭이다.”

소요학파는 아리스토텔레스학파의 철학자들을 일컫는 말이고 영어 peripatetic은 걷기를 일삼는 사람, 멀리까지 걷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다.

이런 단어들이 사유와 보행을 연결 짓고 있다.

 

소피스트의 어원

Sophia 지헤를 의미한다

하지만 플라톤이 소피스트들에게 너무 맹렬한 비난을 퍼부었던 탓에 영어 sophstsophistso

아직 속임수나 교활함의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

그들이 가르친 수삭학은 정치권력의 도구였고 그들이 가르친 논쟁과 설득의 기술은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의의 핵심이었다.

소피스트들은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녔다.

생각에 충실한 사람들은 대개 떠돌아 다닌다.

생각이라는 비물질적인 것에 충실한 유형과 특정한 사람이나 특정한 터전에 충실한 유형은 다르지 않았나 싶다.

기성철학 학파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에 이르러 처음 아테네에 정착했다.

스토아학파(Stoics)라는 명칭 또한 아테네의 스토아(Stoa)  즉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걸었다고 하는 금욕과는 거리가 먼 색깔로 칠해진 열주통로에서 왔다.

그후 오랫동안 걷는 일과 사색하는 일 사이의 연상이 확산되면서 나중에 중부유럽에서 그 연상을 반영하는 지명들이 생기기에 이르렀다.

하이델베르그에는 헤겔이 걸었던 것으로 유명한 철학자의길 (Philosophenweg)이 있고 코니히스베르그에는 칸트가 말마다 산책한  철학자의길 (Philosophenweg-damn)이 있다.

키에르케고르는 코펜하겐에서 철학자의 길을 걸었다.

 

보행을 하면 생각나는 철학자들이 또 있다.

밴담과 밀등은 먼 길을 걸었다.

홈스도 먼 길을 걸었고 길을 걸으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기 위해 잉크병이 붙은 지팡이를 가지고 다녔다.

몸이 허약했던 칸트는 날마다 식후 산책으로 쾨니히스베르므 외곽을 걸었다.

칸트에게 사색의 시간은 걸을 때가 아니라 난롯가에 앉아 창밖을 교회 탑을 바라 볼 때 였다.

청년 니체는 나에게는 세가지 오락이 있으니 첫 째는 나의 쇼펜하우어, 둘째는 슈만의 음악, 마지막은 혼자만의 산책이라고 했다.

 

그 정도로 사색하고 그 정도로 존재하고 그 정도로 경험하고 그 정도로 나 다워지는 때는 혼자서 걸어서 여행할 때 밖에 없었던 것 같다,

두 발로 걷는 일은 내 머리에 활기와 활력을 불어 넣어준다.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할까?

몸이 움직여야 마음이 움직인다고 할까?

 

루소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산책 중에 떠 올린 생각들과 산책길에 찾아낸 식물들 속으로 도피하는 한 남자,

더 안전한 도피처를 원하면서 더 안전했던 도피처를 추억하는 한 남자를 그리고 있다.

홀로 걷는 사람은 세상 속에 있으면서도 세상과 동떨어져 있다.

홀로 걷는 사람의 존재 방식은 노동자나 거주자나 한 집단 구성원의 유대감 보다는 여행자의 무심함에 가깝다.

걷는 동안 루소는 사유와 몽상 복에 살며 자족할 수 있었고 자기를 배반한 것 같은 세상을 이길 수 있었고, 그런 이유에서 걷는 것을 아예 자신의 존재 방식으로 선택했다.

루소가 세상을 떠나고 거의 한 세기 반 후 마음의 작동방식을 그려내고자, 제임스조이스와 버지니아 울프는 의식의 흐름이라는 문체를 발전시킨다.

조이스의 소설[율리시스]와 울프의 소설[데러웨이부인]에서 주인공들의 머릿속에 뒤죽박죽 뭉쳐 있는 생각들, 기억들은 그 길을 걸을 때 가장 잘 풀려 나온다.

바꾸어 말하면 보행이라는 비분석적, 즉흥적 행위와 가장 잘 어울리는 사유는 이런 비체계적, 연상적 유형의 사유다.

루소의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은 바로 사유와 몽상의 이런 관계를 그려 보여주는 최초의 그림 중 하나다.

루소의 글이 철학적 보행을 다루는 문학의 효시라면 그것은 루소가 자신의 사색이 어떠한 정황 속에 행해지는 지를 상세히 기록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최초의 저술가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루소의 [다섯번 째 산책]

루소가 비엔느 호수의 생피에르에서 맛 보았던 행복이 묘사되어 있다.

여기서 루소는 이렇게 큰 즐거움이 어디 있겠는가?” 라는 수사적 질문을 던진 후, 가진 것은 식물 뿐인 생활, 하는 일은 식물채집과 뱃놀이뿐인 생활을 그려낸다.

육체노동이 필요 없으되 귀족휴양지의 세련된 교양과 사교도 없는 천혜의 나라,, 루소가 꿈꾸는 이샹향이다.

한편 [열 번째 산책]에서는 자기가 십대 때 후원자이자 연인이었던 루이즈와의 행복한 시골생활을 찬미하고 있다.

생피에를 성을 대신할 에름농빌 영지라는 이샹향을 찾아 냈을 때 쓴 장이다.

루소가 일흔다섯 살에 [열 번째 산책]을 미완성으로 남기고 세상을 떠났을 때 에름농빌 영지이 소유주였던 자라르댕 후작은 포풀러 나무가 무성한 영지 내의 작은 섬에 루소의 무덤을 만들면서 감상적인 루소 신도들을 위햔 순례코스를 만들었다.

 

키에르케고르

지금 이 순간, 거리의 악사가 손 풍금을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온다. 멋지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우연하고 사소한 것들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주위가 소란스러울 때 생각이 잘 되고, 주변이 조용할 때 보다는 주면 소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애쓸 때 집중이 더 잘된다고 주장한다.

그의 일기에는 자신의 모든 글이 걸으면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거듭 나온다.

그가 도시에서 길을 걸으면서 집중을 흐뜨린 덕분에 오히려 자기자신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 더 생산적으로 사유할 수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산책을 멈추지 않았다.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던 때도 그는 산책 중이었다.

루소와 키에르케고르는 세상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이었지만 세상과 함께 어울려 사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들은 사회를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었지만 사회로부터 등을 돌리는 종교적인 묵상의 전통을 따른 것도 아니었다.

홀로 걷는 사람, 긴 길이든 짧은 길이든 걷는 사람은 한 곳에 머물지 않는 사람이요, 욕망과 결핍을 동력으로 삼는 사람이요, 노동자나 거주자나 집단 구성원의 유대감 보다는 여행자의 무심함을 가진 사람이다.

길은 걷는 일의 확장이고, 걷기 위해 만든 공간들은 겯는 일의 기념비들이며, 걷는 일은 세계 속에 존재하면서 세계를 생산하는 일이다.

걷는 몸은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들에 흔적을 남긴다.

거리와 공원과 보도는 길을 걷는 상상, 길을 걷고 싶은 욕망의 흔적들이다.

지팡이와 신발, 지도, 물통 배낭은 그 욕망의 물질적 산물들이다.

몸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세계를 통해 몸을 인식한다는 것, 그것이 보행과 생산적 노동의 공통점이다.

 

백지처럼 텅 빈 장소였다.

내가 항상 찾고 싶은 장소였다.

기차나 차창 밖으로 펼쳐져 잇던 길, 머릿속으로 상상해 보던 길, 번잡한 곳에서 바라보던 길이었다.

황량하고 공허하고 자유로운 곳, 걸어보라고 초대해 주는 곳

지각의 크기와 빛을 실험할 수 있는 곳

고독을 호사로 느끼게 해주는 블루스 음악 같은 곳

자유를 느낄 수 잇는 곳,

몸은 무의식적으로 움직이고 마음은 의식적으로 움직일 수 잇는 곳,

한 걸음 한걸음이 영원의 시계추인 듯 고동치는 곳이었다.

 

직립보행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는 넘어지는 것을 겁내지 않는다.

보행 기술을 완전히 익히기 까지 계속 넘어진다.

남이 대신 채워줄 수 없는 욕망, 손에 닿지 않는 것을 향한 욕망,

자유롭고 싶은 욕망, 에덴동산 같은 엄마의 안전한 품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이렇듯 보행의 시작은 지연된 넘어짐이고, 넘어짐은 에덴동산에서의 추방과 만난다.

 

직립보행으로 두 손이 해방된 수컷은 자기 짝이 갈 수 없는 먼 곳까지 먹이를 구하러 갈 수 있게 됐다.

직립보행은 인간의 조상과 그 외 영장류 사이의 가장 큰 구별점인 듯 하다.

이로써 손이 해방되면서 운반,제작, 섬세한 조각을 비롯한 무수한 가능성이 펼쳐졌다.

사실 오늘날의 모든 기술력은 직립보행이라는 하나의 능력으로부터 기인한다.

단수화하자면, 앞다리에 주어진 새로운 자유는 하나의 도전 이었고, 두뇌이 확장은 그 도전에 대한 응전이었다.

그것이 인류의 시작이었다.

 

직립보행을 시작한 초기 유인원은 나무 그늘 없는 초원을 자날 때 직사광선에 최소한 노출됨으로써 숲을 벗어나 점점 멀리까지 나갈 수 있었다

이로써 전신 체온 상승 억제가 가능해지면서 신체의 각 부분, 특히 뇌로 가는 혈액의 온도가 낮아져 열사병 방지에 도움이 되었고, 이로서 사람속(homo)의 뇌용량이 생리적 제약을 벗어났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인간 종은 점점 멀리까지 걸어갈 수 있게 된 동시에 뇌 크기를 점점 키울 수 있었다.

인간은 보행을 배우면서 안 가봤던 곳에 가볼 자유, 안 해 봤던 일을 해 볼 자유, 사유의 자유를 얻었다면 여성은 색슈얼리티의 자유를 얻었다.

통제와 봉쇄가 필요한 섹슈얼리티로 부터의 자유

보행은 우리를 동물의 왕국으로부터 쏘아 올려 만유의 영장이라는 고독한 지위에 내려 앉힌 해부학적 변신이었다.

10100만년을 이어온 똑 같은 두 발의 움직임. 그렇게 두 발로 걸은 덕분에 손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덕분에 정신이 확장되었지만 두 발의 움직임 자체는 지금껏 그렇게 강해지지도 빨라지지도 않았다..

 

성지순례

여헹은 무언가를 찾아가는 여행이고 , 순례에서 걷는 다는 것은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한 노동이다.

그 무언가 중에는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일도 포함될 수 있다..

여행의 어원이 travail (노동,고통,출산)이라는 점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순례는 고통을 통해서 축복에 이르는 영혼의 경제활동이다..

순례를 영혼의 여행으로 여기는 관행. 금욕과 고행을 영혼의 성장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시각 또한 모든 문화권에 존재한다.

순례는 한 걸음 한걸음 몸을 움직이는 물리적 노력을 통해서 생산적 차원의 형체 없는 목적지에 닿은 다는 어려운 과제를 달성케 해준다.

순례는 구체적인 목적지에 도착함으로써 마음의 위안을 얻으리라는 소망으로 빛나는 여행이다.

순례자가 목적지에 닿았다는 것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완성시킴으로써 무수한 영광과 신화로 이루어져 있는 종교의 일부가 되었다는 뜻이다.

 

낸시 프레이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까지의 순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순례자가 걷기 시작하는 순간 세계를 느끼는 방식 몇 가지가 한꺼번에 변하는데, 그 변화는 여정 내내 이어진다.

시간 감각이 바뀌고, 오감이 예민해지고 ,자기 몸과 자기 몸을 둘러싼 자연환경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긴다.

 

걷는 경험 속에서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사유가 된다.

자신으로부터 도피하기란 불가능하다.’  - 독일 청년

 

순례길에 나선다는 것은 가족관계 , 애착관계, 지위 , 의무와 같은 자신의 복잡한 세속적 지리를 뒤로하고 일개 순례자로 걸어간다는 뜻이다.

순례자들 사이에는 서열이 없다. 은총과 헌신의 서열이 있을 뿐이다.

터너부부는 순례를 경계선 상태 (liminality)라 말한다

과거 정체성과 미래 정체성 사이의 경계선에 놓인 상태, 따라서 기성 질서 밖에 있는 상태이자 가능성의 상태이다.

경계선 상태가 문턱을 뜻하는 라틴어에서(limin)에서 온 단어라고 할 때 순례자는 상징적으로 보나 물리적으로 보나 그런 문턱을 넘어가 있다.

우리의 순례는 마주치고 고통받고 움직이고 죽어 없어지는 그 모든 의미 지층들을 기반으로 하는

발걸음이었다.

악마가 디테일에 깃든다면 그날 내 악마는 육중한 장화에 깃들어 있었다.

그들에게 파르크 돌기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일이 아니라 자기 인생의 그 시절을 추억하는 일이었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길은 그곳의 풍경을 지나는 가장 좋은 방법에 대한 앞사람의 해석이다.

길을 따라간다는 것은 먼저 간 사람의 해석을 받아들이는 것, 학자나 탐정이나 순례자처럼 먼저 간 사람의 뒤를 밟는다는 것이다.

길을 걷는 다는 것은 어떤 중요한 일을 똑 같이 따라한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따라한다는 것은 그 누군가의 행동을 흉내 내는 연기가 아니라 그 누군가의 영혼을 닮기 위한 노력이다.

신을 닮기란 불가능하지만 신이 걸어간 길을 똑 같이 걸어가는 일은 가능하다.

 

이야기가 듣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의 시간 속에 펼쳐지듯 길은 걷는 사람의 시간 속에 펼쳐진다.

급커브는 반전과 같고, 정상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길은 클라이막스를 앞두고 점점 고조되는 서스펜스와 같다.

갈림길은 새로운 줄거리의 도입과 같고, 도착 지점은 이야기의 끝과 같다.

길이 남아 있는 덕에 지금 옆에 없는 누군가의 말을 들을 수 있듯 길이 남아 있는 덕에 지금 옆에 없는 누군가의 발자취를 따라 갈 수 있다.

길이란 앞서간 사람이 남긴 기록이기에, 길을 따라가는 것은 앞서간 사람들을 따라가는 것이다.

예전에 성인들이나 신들의 길을 따라 갔다면 그 길의 본질, 여행의 본질을 되돌아 보게 해주는 것은 십자가의 길이나 그 선현의 거룩한 정신이다.

 

글을 읽는 일은 저자라는 가이드를 따라 가는 일이다.

그 말에 우리가 항상 동의하고 신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가이드가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다 주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내가 쓰는 문장들이 한 줄로 멀리까지 이어지면서 글이 곧 길이고 독서가 곧 여행이 된다.

풍경과 이야기 사이의 융합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의 노랫길(song line)이다,

노래는 깊은 사막 한 가운데서 길을 찾아 내는 내비게이션이고 사막 속 풍경은 노래 속 이야기를 떠 올리는 기억 증진의 장치다.

한마디로 노래는 지도요 풍경은 이야기다.

이야기가 여행이고 여행이 이야기인 것은 그 때문이다.

모든 길이 이런 울림을 갖는 이유는 우리가 인생 그 자체를 여행으로 그려보게 되기 때문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이승을 걷는 것(walk the earth)이고, 직업은 이승의 행보(walk of life)이다.

구약성서에서 은총을 받은 상태를하느님과 함께 걸었다.(he walked with god)고 묘사한다.

걷기란 일종의 유체이탈 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날씨를 느끼고, 질감을 느끼고, 계절을 느끼고 야생의 것들을 만났다.

 

워즈워즈

영국의 낭만파 시인 워즈워즈는 두 다리로 282000~29만 킬로미터를 답파했다.

포도주나 독주 같은 것으로 혈기를 얻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워즈워즈는 이렇게 몸을 음직이면서 혈기를 얻었다.

워즈워즈 자신이 구름 한 점 없는 행복한 인생을 영위해온 것도, 우리 독자들이 워즈워즈의 글 중에서도 아주 탁월한 글들을 읽을 수 있게 된 것도 그 덕분이다.

사람들은 워즈워즈 이전에도 이후에도 걸었다.

다른 낭만주의 시인들 중에서도 걸어서 여행한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워즈워즈 만큼 걷는 일을 인생과 예술의 중심에 놓은 이는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었다.

결코 짧지 않은 인생에서 그가 걷지 않고 보낸 날은 거의 단 하루도 없었던 것 같다.

그에게 보행은 세상과 만나는 방식인 동시에 시를 쓰는 방식이었다.

그에게 보행은 여행하는 방법이 아니라 존재하는 방법이었다.

스물 한 살에 걸어서 3000킬로미터를 여행했고, 세상을 떠나기 까지 50년 동안은 시를 쓰기 위해 작은 정원 테라스를 왔다 갔다 했다.

그에게는 둘다 중요한 보행이었다.

파리와 런던의 길거리를 쏘다니고 산을 올라가는 것도, 여동생 혹은 친구들과 함께 거니는 것도 모두 중요한 보행이었다. 그 모든 보행이 그의 시 안으로 걸어 들어 갔다.

워즈워즈 자신은 보행을 전적으로 새롭고 강력한 방식으로 자연,,가난,부랑과 연결 지었다.

도시보다 시골에 훨씬 가치를 두었음은 물론이다.

.” 나 자연과 함께 걸으면서 번잡한 도시의 일그러진 살과 너무 일찍 접촉하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나는 언제나 걸았다. 밤에도 걸었고 , 아침에 학교를 가기 전에 친구와 함께 근처에 있는 호수를 돌면서 5-10키로를 걷는 날도 많았다.”

-      워즈워즈의 서곡

워즈워즈의 [서곡]은 한 시인이 성장하기 까지 어떤 곳을 거쳐 갔는가를 보여주는 지도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눈에 보인 것은 우주, 그리고 자기 자신 뿐이었다.

워즈워즈가 이미 어린시절부터 보행과 자연에 열정이 있었거나, 어른이 된 워즈워즈가 어릴 때 느꼈던 감정을 끄집어 내 예술로 정제한 것일 수도 있지만, 어느 것이 됐든 워즈워즈에게 그 열정은 아주 어릴 때 생겨났고 아주 나중까지 남아 있었다.

내가 택할 길잡이가 그저 하늘을 떠도는 구름뿐이라고 한 들 나는 길을 잃을 수가 없소

걷다 보면 우리의 발길은 자연스럽게 들판과 숲으로 향하게 된다” – 소로

 

보행을 수단이자 목적으로 삼았던 루소는 분명 워즈워즈의 선배였다.

19세기가 끝날 무렵에 루소와 낭만주의는 자연이 곧 감정이고 감정이 곧 민주주의라는 등식을 성립시켰으며 사회질서를 극히 인위적인 것으로 서술하고 계급 특권에 반기를 드는 것이야 말로 유일하게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워즈워즈의 업적은 루소의 과제를 이어 받아 더 발전시켰고 , 유년과 자연과 민주주의 삼자의 관계를 밝히되 논리로 증명하는 대신 이미지로 그려 보였다.

 

나는 시골길을 좋아하오. 그런 길을 볼 때보다 좋을 때는 별로 없소.

그 모습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소.

날마다 멀리서 내 두발로 넘어 갈 수 없는 가파른 산비탈 너머로 사라지는 길은 나를 영원에게로 아니면 적어도 내가 모르는 것을 끝없이 어어지는 것들에게로 데려다 줄 안내자 같았소

 

친구와 함께 양치기를 따라 산꼭대기에 도착한 워즈워즈는 산꼭대기에서 갑자기 쏟아져 내리는 달빛과 풍경과 계시에 휩싸여 긴 독백을 시작한다.

산을 올라가는 일은 이제 자기자신과 예술을 이해하는 방법이 되었다.

산을 올라가는 일은 한 때 문학으로부터의 이탈이었지만 이제 문학활동이 되었다.”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였던 워즈워즈는 예전에 보았던 장면의 시각적 디테일과 감정의 생생함을 그릴 수 있었고 자기가 존경하는 시인들의 긴 싯구를 인용하거나, 걸으면서 머릿속으로 쓴 시를 나중에 글로 옯길 수 있었다.

워즈워즈가 시를 쓴 방식을 보면 구술 전통이 떠오르는 한편 그의 작품 중에 가장 좋은 것들이 노래하 듯 아름답고 대화하는 듯 자연스러운지 알 수 있다.

작곡가가 곡을 쓰면서 메트로놈의 소리로 일정한 리듬을 찾듯, 워즈워즈는 시를 쓰면서 자신의 발걸음으로 일정한 리듬을 찾았던 것 같다.

 

워즈워즈가 같은 곳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어딘가로 나가는 행동이 아니라 몸을 어떤 꿈결 같은 리듬에 맞추는 행동이다.”  세이머스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일은 시를 쓰는 일을 육체노동, 이를테면 쟁기를 끄는 농부처럼 왔다 갔다 하는 일, 아니면 양을 잃어버린 양치기처럼 산속을 헤메고 다니는 일로 만든다.

그가 이렇게 시를 쓰면서 마치 육체노동을 하듯 몸을 혹사한 것은 그 때문 이었다.

워즈워즈는 최상일 때나 최악일 때나 항상 보행시인이다.”

 

1918년에 청년 키츠가 시를 쓰기 위해 도보여행을 떠났다.

그에게 도보여행은 감수성을 도야하는 수단이었을 뿐 아니라 모종의 통과의례 였다.

한 달 안에 배낭을 꾸려서 잉글랜드 북부와 스코틀랜드 일부를 돌아보는 도보여행을 떠날 생각 입니다. 여행의 목적은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유럽 전체를 연구하고 관찰하고 내가 추구하는 삶의 서곡을 쓰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할 일은 산을 기어 올라가서 구름 저 위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얼마 후 다른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는 집에 있으면서 팩을, 심지어는 호메로스를 읽은 것보다 이렇게 넉 달 동안 하일랜드를 헤메고 다니는 것이 더 큰 경험이 될 것이고 편견을 더 많이 떨구어 없앨 것이고, 고생스러움에 익숙하게 해 줄 것이고, 더 아름다운 풍경을 알아 볼 수 있게 해 줄 것이며, 더 웅장한 산에 대한 기억을 남겨 줄 것이고, 시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해 줄 것이라는 생각이 없었더라면 절대로 나 자신에게 이런 여행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적었다.

잠시 동안 역경을 헤쳐 나가고 산에 익숙해지는 일이 시를 쓰는 훈련이었다는 뜻이다.

 

 

보행을 다룬 최초의 수필 헤즐럿이 1821년에 쓴 [길을 떠나며 On going a Journey] 이다.

이 글의 서두에 따르면

세상에서 가장 기분 좋은 일 가운데 하나는 길을 떠나는 것인데, 마로 말하자면 혼자 떠나는 것을 좋아한다.  걸을 때 혼자인 편이 좋은 이유는 자연이라는 책을 읽는 내내 다른 사람들을 위해 그 책의 의미를 번역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고 나는 막연한 내 상념이 민들레 솜털처럼 날아 다니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지 그 상념이 논쟁의 가시덤불에 엉겨 붙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헤즐릿의 글은 보행 필이라는 장르의 효시가 되었다.

 

레슬리 스티븐은 보행예찬[In Praise of walking]에서 걷는 길은 다른 길을 자연스럽게 연결해주는 실과 같다. 하지만 걷기는 그런 하나하나가 이리스토텔레스의 요건을 갖춘 작은 드라마 , 곧 일정 플롯에 사건과 파국이 있는 드라마다. 일상생활의 내용을 구성하는 모든 생각, 우애 관심이 이 드라마의 내용이다.”

 

로버트루이스 스티븐슨 1876년의 유명한 수필 도보여행(Walking Tours)

도보여행을 할 때는 반드시 혼자 떠나야 한다. 도보여행에는 자유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때 그 때 마음 가는 대로 발길을 멈추거나 다시 출발하거나, 이 길로 가거나, 저 길로 가는 것이 반드시 가능해야 한다. 전투적 보행자와 함께 속보로 걷거나 젊은 처자와 함께 좁은 보폭으로 걷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역사 연구가 G.M 트리벨리언은 1913년에 발표한 수필 보행(Walking)의 서두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 병을 고치는 두 의사는 내 왼쪽 다리와 오른 쪽 다리다.

내 몸과 마음은 서로 가까운 곳에 살고 있어서 한 쪽이 병에 걸리면 예외 없이 다른 한 쪽도 병에 걸리는데, 그렇게 몸과 마음이 병에 걸렸을 경우에도 두 의사를 부르기만 하면 병이 낫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

피로 물들인 선원들이 배를 차지하고 방탕에 빠지듯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난동을 부리기 시작하면 나는 걷기 시작해서 해질녘에나 그 녀석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 온다.

그 때쯤이면 그 녀석들도 행복한 보이스카우트 소년처럼 한데 어울려서 즐겁게 뒹군다.”

소로 역시 다른 수필가와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자연의 세계를 걷는 일을 자유와 연결 짓는다.

 

찾아오는 손님이 하녀에게 집주인이 작업하는 서재를 구경시켜 달라고 하자 하녀가 대답했다.

주인님의 책이 있는 곳은 이 방이지만, 주인님이 작업하는 곳은 저 바깥 입니다.”

 

움직이는 것이 최고의 우울증치료제이다  [우울의 해부] 로버트 버턴

찰스루머스라는 이 십대 청년은 신시내티에서 로스엔젤레스까지의 여정을 기록한 [미국의 떠돌이]의 서두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추구한 것은 시간이나 돈이 아니었다.

내가 추구한 것은 생명이었다.

그것은 건강 지상주의자가 추구하는 한심한 생명이 아니라 좀더 참된 의미의 생명, 좀 더 폭넓고 좋은 의미의 생명, 곧 사오히의 안타까운 장벽들을 넘어선 곳에서 완벽한 육체와 깨어 있는 정신을 가지고 살아갈 때 느껴지는 그 용솟음 치는 기쁨이었다.

 

이런 장거리의 도보여행은 세 가지 동기의 결합인 듯 하다.

장소의 자연적, 사회적 구조를 이해하는 것,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기록을 세우는 것.

아주 긴 여행은 일종의 순례로 여겨질 때가 많다.

달리 말하자면 , 장거리 여행이 영적 발견이나 실리적 발견을 가능케하는 수단이자 일종의 믿음 내지 의지를 보여주는 증거로 가능한 것이다.

 

현대판 장거리 보행자 로빈 데이비드슨() 는 그의 글 발자취[Tracks]에서 말했다.

매일 30킬로미터 씩 날마다 몇 달을 걸어가다 보면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나중에 되돌아 보면서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일례로 나는 과거에 일어났던 모든 일과 만났던 모든 사람을 세세하고 선명하게 기억했다.

내가 나눴던 모든 대화 , 엿들었던 모든 단어 하나하나가 기억났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유년시절 까지 기억났다.

이런 식으로 나는 과거의 사진들을 정서적인 거리를 두고 돌아볼 수 있었다.

마치 이런 일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일어 났던 것처럼, 나는 오래전에 죽은, 잊고 있었던 사람들을 다시 발견하고 새롭게 알아가고 있다. …

그러면서 나는 행복했다. 행복했다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다.”

그녀는 우리를 철학자의 영역, 걷기를 다루는 수필가의 영역으로 데려가며 걷기와 정신의 관계를 알려준다. 그녀가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극단적인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보행을 중요한 행위로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불순함이다.

보행이 풍경, 생각, 만남과 불순하게 뒤섞일 때, 걸음을 옮기는 육체는 마음과 세상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된다. 그리고 그럴 때 세상이 마음에 스며든다. 이런 책은 역설적으로 보행이라는 주제가 다른 주제로 미끄러지기 쉽다는 것, 걷는 것 자체에 집중하면서 다른 것들을 외면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국어로 순례를 뜻하는 차오산진상에는 산에게 절을 한다는 의미가 있다.

빅토리아 시대의 등산가 에드워드 휨퍼마테호른에 오른 다는 것은  더 이상 올려다 볼 것이 없는 상태요, 모든 것이 밑에 있는 상태다. 그 곳에 올라갔다는 것은 끝까지 갔다는 뜻이요, 더 갈 곳이 없다는 뜻이다.”

보행이 인생의 축소판이라면 등산이라는 보행은 더 드라마틱한 인생의 축소판이다.

 

등산 안내인 스모크 블랜저  [주 발로 세상을 올라가고 내려가고 ]에서 이런 말을 했다.

등산이란 소풍과 순례의 결합이라고 보는 게 제일 좋다는 생각을 나는 반세기 동안 홍보해왔다. 소풍-순례 같은 등산은 공격성은 작고 만족감은 크다 .

자기가 올라 갔던 데를 기록하지 않은 채로 긴 인생길 내내 가벼운 등산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연애 관계를 목록으로 기록할 수는 없지 않은가?”

 

중국과 일본의 시인이나 현자나 은자가 칭송한 것은 산에 올라가는 것이라기 보다 산에서 지내는 것이었고, 중국 시와 중국 화에서 자주 그려지는 산은 정치와 사회를 벗어나는 명상적 은거였다..

중국에서는 정처없이 떠도는 것이 칭송 받았던 반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은 때때로 미심쩍게 여겨졌다.

슈겐도(산악 수행을 중요시하는 불교의 한 종파 ) 에서는 산에 올라가는 것이 종교 행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슈겐도는 개념적으로난 물리적으로나 성산의 힘, 그리고 성산에서 참배함으로써 얻어지는 복과 관련되어 있다. 산 자체가 불교의 만다라로 여겨졌고 산을 올라가는 여섯 단계는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영혼의 행로로 여겨졌다.

 

등산가이자 뛰어난 시인이었던 게리스나이더. .

실재하는 물성, , 공기, , 나무, . 우리가 그런 것과 친할수록 세상에는 그만큼 더 영성이 생겨요

그의 시 34년이 지나고 다시 시에라의 마터호른을 오르면서 (On Climbing the Sierra Matterhorn Again Thrty-One Years)”

산을 넘고 또 넘어도

한 해 또 한 해 또 한 해 흘러도

내 사랑은 나직 그대로 .!!!

 

소유가 땅을 여러 조각으로 구분하는 경계선에 주목한다면 보행은 유기체 전체를 이리저리 연결하는 일종의 순환계로서의 길에 주목한다. 그런 의미에서 소유와는 상반된다. 

보행은 땅을 소유하는 대신 땅을 경험한다. 움직이는 중의 경험, 아무 것도 가져 가지 않는 경험, 모두와 함께 나눌 수 잇는 경험이다.

밖으로 나가 걸으면서 즐거움을 얻으려면 세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자유로운 시간, 자유롭게 걸을 장소, 질병이나 사회적 속박에서 자유로운 육체가 그것이다.

걸으면 걸을수록 육체는 자유로워 진다.

보행의 역사는 자유를 찾아 나서는 역사이자 즐거움의 의미를 정의하는 역사였다.

 

생태주의 용어로 보행은 지표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표종은 생태계 건강의 지표이고 , 지표종이 위험해지거나 감소하거나 멸종 위기에 처한다는 것은 생태계에 문제가 있다는 초기 경고 신호다.

보행은 여러가지 자유와 기쁨, 예컨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 닫혀 있지 않은 멋진 공간, 구속 받지 않는 육체라는 생태계의 지표종이다.

 

교외가 일상의 사유하를 촉발하고 자동차가 일상 사유화를 강화했다면, 텔레비전, 전화, PC, 인터넷은 일상 사유화를 완성한다. 세상으로 걸아 나갈 필요가 점점 없어지니, 공적 영역이 퇴보하고

사회 조건이 악화될 때 맞서기 보다는 물러서게 된다.

 

보행의 황금기를 만든 추동력은 차량으로 무장하지 않고 다른 종류의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겁내지 않고서 탁 트인 공간을 여행하고 싶은 욕망이었다. 도시와 시골이 전 보다 안전해진 시대의 욕망이자 그 안전해진 세계를 간절하게 경험하고 싶어하는 시대의 욕망이었다.

교외화는 도시는 버리고 시골은 방치했다.. 오늘날의 이른바 2차 교외화(집에 지하벙커가 있는 고급주택 동네)는 그 격리 상태를 더 심화 했다.

 

발이라는 추진력은 드디어 비로소 기나긴 퇴화의 도정에 올랐다.

기차는 인간의 지각과 기대와 행동을 우리의 육체가 존재하는 유기적 세계로부터 단절시켰고 , 이로써 그 세계를 구성하는 장소들을 변형했으며, 그런 의미에서 그런 장소에 존재하는 모든 육체를 압살한 셈이었다.

본성 또는 자연으로부터의 소외는 흔히 자연적 공간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초기 철도 여행자들은 기차라는 새로운 기술력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게 되었다는 표현을 썼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게 되었다는 것은 물리적 세계의 초월, 즉 유체이탈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여행 속도가 빨라지면서 여행은 더 재미 있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재미 없어졌다..

폴빌리오에 따르면  교통편이 보행에 필요한 육체적 수고를 지향하는 단계에서 최초의 고속 교통편이 보행에 따르는 감각-운동을 제거하는 단계를 지나, 이제 감각의 박탈이 한계에 다다른 상태다. 예전 여행에는 흥분과 떨림이 있었다면 지금은 중앙스크린에서 영화가 상연된다.

객관적인 기준으로 보면 육체는 절대로 퇴화 하지 않았지만, 우리의 기대와 욕망을 기준으로 보면 육체는 점점 더 느리고, 약하고 못 미더운 무언가로, 기계적인 수단에 의해서 수송되는 물건으로 지각된다.

어떤 의미에서 자동차는 이제 의족이 되었다.

의족은 다리가 망가졌을 때 필요하지만 자동차라는 의족은 육체가 망가졌을 때 곧 인간적 규모를 넘어선 세계가 육체의 개념을 망가뜨렸을 때 필요해진다.

 

사람들이 안 걷게 된 것은 걸을 만한 장소가 없어져서 이기도 하지만 걸을 시간이 없어져서 이기도 하다.

생각과 연애와 몽상과 구경이 펼쳐지던 자유분방한 사색의 시공간이 이젠 없어졌다.

기계는 더 빨라지고 있고 삶은 열심히 기계를 따라가고 있다.

교외가 보행을 비효율적 이동 수단으로 만든 것도 사실이지만 미국인들의 정신적 교외화가 보행이라는 이동수단을 없앤 것도 사실이다.

헬스장이라는 실내 공가는 없어진 야외의 대체물 이자 육체적 부식을 막기 위한 미봉책이다.

헬스장은 근육과 피트니스를 생산하는 공장이나 마찬가지이고 대부분 헬스장은 실제로 공장과 비슷하다.

 

산업혁명이 공장에서 노동을 제도화하고 파편화 했다면,지금 헬스장은 여가를 제도화하고 파편화 하고 있다.

역사는 처음에는 비극이었다가 다음에는 촌극이 된다. – 마르크스

육체노동은 처음에는 가치를 생산하는 일이었다가 다음에는 여가의 소비활동이 되었다.

기계가 우리를 위해서 물을 길어주게 됐고 우리는 또 다른 기계를 이용해 물 긷는 동작을 재연하게 됐다.

물 긷는 동작은 이제 물을 긷기 위한 일이 아니라 우리의 육체를 위하는 일이 됐다..

물을 길어 주는 기계와, 근육을 키워주는 기계가 따로 있을 때 우리는 뭔가를 잃어버린 게 아닐까?

한 때 사역동물의 지위에 있던 육체가 이제 애완동물의 지위로 올라섰다.

말하자면 걸어 다니던 시대의 육체가 마치 말과 같은 이동수단 이었다면, 운동이 필요한 시대에 육체를 대하는 방식은 마치 개를 산책 시키는 것과 같다. 지금의 육체는 일과에 동원된 육체가 아니라 여가에 동원된 육체, 노동하는 육체가 아니라 운동하는 육체다.

런닝머신 보행이 그렇게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로 바뀐 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다.

교외의 필연적 결과이자 자동차 도시의 필연적 결과 기후를 조절할 수 없는 실외 공간에 있을 때보다 에어컨이 있는 실내공간에 있을 때 더 안락을 느끼는 정신 그러니까 아무데도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기계다

러닝머신은 세상으로부터의 후퇴를 가능케하는 기계다.

지루함이 공장 노동과의 공통점이다.

형무소의 쳇바퀴가 수감자의 교화에 도움이 되는 이유다.

그리이스 신화 도둑질을 일삼으며 순진한 여행자를 수시로 살해한 죄인이 산으로 돌을 올리는 형벌을 받는 시시포스의 지루하고 반복적인 고뇌

분위기로서의 공간, 지형으로서의 공간, 볼거리로서의 공간, 경험으로서의 공간은 사라졌다.

 

보행이 새로운 영역이 열린 것은 1960년대. 예술로서의 보행

보행은 공간의 표현이자 자유의 표현이다. 누군가 어디를 걸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앎이 내 상상 속에 살아갈 수 있다  행위 예술가 스티븐 롱

카지노란 곳은 길을 잃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현대판 미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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