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암자 순례
이 때쯤이면 그 길이 열린다.
지리산 깊은 곳 !
많은 추억이 있는 그 길
어머니의 불심을 생각케 하는 그 길은
오월이면 늘 가고 싶어지는 길이다 .
뒤늦게 충일에 한자리 허락 받았다 .
코로나로 인해 산악회와의 출정은 2년이 넘은 듯 하다.
산악회와 함께하지 않고도 거의 한 주도 산행을 거르지 않았으니 내게 산행이란
나름 습관처럼 내 삶에 체화되어 생활화된 삶의 일부분에 진배 없다.
헤어나지 못하는 중독이라 해도 괜찮다.
중독이란?
“자신 또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침에도 지속 강박적으로 소비하는 것”
즉 해로운 것임을 알면서도 자신의 의지로 그만두지 못하는 것이란 의미다.
과유불급이라
세상의 어느 것도 과하면 해악이 되지 않을 리야 없겠지만 오랜 세월 동안 실보다
득이 많음을 삶의 연륜과 경험으로 알고 있기에 구태여 벗어나려고 노력해 본
적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다.
아침에 버스에 올랐는데 감개가 무량했다.
수십년을 당연하게 해온 던 주말 버스 출정을 몇 년을 까맣게 잊고 살았던 거다.
나이가 늙수그레한 사람들도 많이 보이지만 아직 쌩쌩하고 쓸만한 40-50대도
많이 보인다.
충일 마차는 입추의 여지가 없는 만차다 .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 해인 4년전(2019년) 부처님 오신 날에는 희양산을 타고
일년에 한 번 개방되는 봉암사에 들렸었다.
세상을 뒤집을 것 같이 설쳐 대던 코로나는 그렇게 소리 소문 없이 물러가고 온
누리에 부처님의 자비가 넘치는 5월이 다시 돌아 왔다.
참으로 무심한 세월이다.
고부기와 칠암자 순례 길에 올랐던 어느 해 부처님 오신 날의 기억이 생생한데
벌써 9년이 흘렀다.
흐미 ~
귀연과 함께 7암자 순례하고 8년만인 2014년에 고부기와 그 길을 걸었고 세 번
째 그 길을 걷고자 길을 나서니 17년이 흘러가 버렸다.
참으로 무상하고 아득한 세월이다.
그 날의 산행기를 보노라면 손에 잡힐 듯한 그날의 기억이 마치 엊그제처럼
생생한데 느리적 거리는 세월이란 넘이 탄도미사일 보다 더 빠른 게다.
17년이라 !
가야 할 곳이 많았고 코로나가 3년을 빼앗아 갔으니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 시간
위에 퇴적된 세월의 먼지가 그렿게 두터울 줄이야 !
다시 17년이 더 지나면 내 나이 82세 !
북망산천 간다 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나이다.
어머니댁에서 자고 7시에 충일 베이스캠프에 올랐다 .
아침 김밥과 생수를 나눠주고 점심용 프라스틱 공기밥을 나눠 준다.
그 또한 오래 잃어 버렸던 정겨운 풍경이다.
코로나외 우크라이나 전쟁이 많은 것을 바꾸어 버렸다.
코로나 전 지리산 정도 거리 45명 차량이면 2만 5천원 받고 아침도 뜨거운
국밥을 주었는데 달랑 꼬마 김밥 한 줄에 생수 한통 주고 4만원 받는다.
60%인상율이다.
7암자 순례는 원점회귀가 아니라 개인 적으로 가기가 힘들다.
차를 가져가면 18키로 먼 산 길은 7시간여 걸쳐 타고 원점 회귀를 위해
택시를 불러야 한다.
기름 값에다 택시비 거기다 빡센 산행 후의 자가운전의 귀로는 위험하기
짝이 없으니 애시당초 무리한 일이다 .
9년 전의 좋은 기억과 부처님 오신 날의 의미로 엄하사 부부까지 초대를 했다.
모든 절에서 점심을 다 주니 따로 도시락을 챙겨올 필요가 없이 배낭에 물과
간식만 넣어 오면 된다고….
엄하시 부부가 오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왔으면 난 공수표를 남발한 실없는
삼람이 되고 말았을 게다.
맥사이버 산행대장이 버스 앞에 나서서 산행 안내를 하는데 7암자 중 가장
높은 곳에 워치하여 시간이 많이 걸리는 도솔암을 건너뛰고 나머지 암자만
가려는 듯이 분위기를 몰고 간다..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지름길인 비등은 통제의 위험성이 있어서 국공에
저지 당할 수 있고 만약
오늘 비가 오면 가파른 비등이 위험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논리의 근거는 궁색했다.
지리산 일대는 실제 비가 오지 않고 오후 3시 너머 약간의 비 예보가 있을
뿐이었다.
중요한 건 평소 가기 힘든 도솔암 산행 안내를 보고 따라 나선 나 같은
사람이 많을 거라는 거
그래도 사람들은 별다른 의의를 제기 하지 않았고 나도 잠자코 있었다.
덕유산 휴게소에서 꼬마김밥 아침식사를 마치고 맥대장에게 갔다.
다짜고짜 약속하고 공지한 루트니 가자고 했다.
“2년 전에 국공이 막아서 회군했다고 하지만 오늘 같은 흐린 날에 거기 까지
와서지킬 것 같지는 않다.
만일 회군하게 되면 아얘 도솔암을 포기 하고 B팀 루트를 따르겠다.. “
충일 맥사이버 대장은 알겠다고 했고 차에 오르자 마자 탐방코스 확정안을
발표 했다.
맥대장 왈
“도솔암 가는 비등루트는 예정대로 진행하겠다.
저지 당하면 돌아가 B팀의 루트를 뒤따라가겠다.
체력에 자신 있고 도솔암에 꼭 가고 싶은 사람은 B팀과 함께 영원사 갈림길까지
진행하고 그곳에서 정규 도솔암 루트로 산행하고 다시 돌아와 나머지 순례길을
이어가시라.”.
맥대장은 칠암자 순례를 마무리 하고 하산 하기 까지의 시간을 6시간을 부여해 주었다.
덧붙여 A팀은 삼정산에도 오르지 말고 암자에서 너무 오래 머물지 말라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뒤풀이 까지 넉넉히 7시간을 주어야 하는 길을 한 시간이나 앞당긴 걸 보면 2진이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게 하려는 생각 이겠다.
9년 전에는 두 대의 차량이 왔고 고부기와 나는 빠른 차를 타고갈 생각으로 바람같이
그 길을 내달려 무수한 2진을 추월해가며 선두 4번 째로 베이스 캠프에 귀환했다.
그 때 내 나이가 꽃다운 방년 방년 56세
45 명중 10명 가량이 1진 비등에 합류 했다.
역방향으로 도솔암을 치고 오르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비등 등산로 가는 길에 몽블랑을 함께 댕겨온 산님을 만났다.
닉은 기억이 안 나는 젊은 친구 인데 나를 대뜸 알아 보고 먼저 말을 걸어 왔다.
우리는 반가움에 지나간 그날의 아름다운 여정에 관한 이야기와 근황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생애 잊지 못할 참으로 아름다운 여정이었다.
그 길이 더 넓은 세상을 향한 기대와 갈망을 부채질 했고 나는 안나푸르나 넘어
쟌뮤어를 꿈꾸는 중에 코로나가 내 삶의 방향을 순식간에 바꾸어 버렸던 것이다.
알프스에서 13번 방을 함께 쓴 산 친구들과는 몇 번의 만남을 이어갔고 함께 산을
타기도 했지만 코로나의 강을 건너면서 카톡 한구석 톡방으로만 남아 있다.
하지만 13번방 친구 고산과는 개인적으로 알프스 3대미봉 자유여행을 함계 해보고 싶다.
내가 연락하면 그들도 쉽사리 만날 수 있겠지만 지금의 내 처지로 더 만은 인연의
끈을 내려뜨리리다가는 과로사 할지도 모른다.
A팀과 B팀이 갈리고 30여분 가량 진행하여 비등으로 접어드는 임도 차단기에 도착했지만
지키는 국공은 없었다.
17년 전에는 역방향 진행했을 때 8시간 30분이 걸렸는데 그 여정이 너무 행복하고
인상적이어서 산행기를 참으로 정성스레 쓴 기억이 아직 남아 있다.
9년전에 비등으로 도솔암에 올랐다가 실상사로 내려섰는데 앞에서 돌연변이 고부기
놈이 설쳐대는 바람에 18키로를 5시간 30분 만에 주파했다.
그 때도 비등을 따라 도솔암을 당겨오고 삼정산 정상까지 찍었으니 거의 산악구보
수준의 무장공비 발재간 이었다.
“9년 전에는 꽤 쓸만했네 그랴!“
퇴직 1년 전인데 퇴직 후에도 촉탁근무를 하게 될 거라는 생각에 인생2막에 대한
걱정도 별로 하지 않았다.
도솔암 가는 비등이 9년 만인데 거의 처음 가는 길이나 마찬가지로 전혀 새로운
루트 같았다.
참으로 새털처럼 가볍고 허약한 사람의 기억이다.
길은 완전 깔딱고개 였다.
전국의 내노라하는 고수들이 운집했으니 거친 길 임에도 비등을 거스르는 역류의
물살은 거세고야멸찼다.
외길의 대오에서 이탈할 수 없어서 흐름을 타다 보니 몸이 채 풀리기도 전에 모진
고문과 테러가 가해지는 격이다.
대전에서만 3개 산악회가 왔다.
토끼 몰이와 진배가 없었다.
판에는 낑겼으니 “쫄리면 죽으시던가!”
고도가 올라가면서 체력의 부담을 느낀 사람들은 하나 둘 좁은 길 옆으로 비켜서며
길을 내주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난 터질 것 같은 심장의 박동과 거친 호흡을 즐기며 능선의 목전 너덜지대 까지 쉼
없이 진군했다.
늘 그렇듯이 익숙한 고통이 야릇한 쾌감을 불러 일으켰고 내 정신의 잡내를 제거해
주었다.
“무릉객 아즉 쌀아 있네 !”
그래도 지난 번 조자장과의 큰 산에서 노닐었던 소백주유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
몸은 어쩌면 머리보다 기억력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도솔암 !
오랜세월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작은 암자에 안도감이 인다..
안뇽! 다시 만나 반가우이 ! 나 무릉객이여 !
죽기 전에 세상을 아름다운 곳을 많이 돌아 보고 싶다는 나는 찰라의 세상을
나르는 한 마리 나비일 뿐이다.
너무 짧아 미추를 구분할 겨를이 없다.
세월의 거친 뽕을 먹고 아름다운 비단을 소화하는 한 마리 누에처럼 세상에서
만나는 아까운 인연과 풍경들은 모두 감사와 기쁨으로 필터링 해야 한다.
내 삶이란 어느 화창한 날의 햇살과 바람에 흔적없이 사라져 가는 이슬 같은 거
그 곳이 속세에서 가끼운 도솔 이었다
육욕천의 4째 하늘로 불국의 중앙에 위치한 수미산에서 12만 유순 떨어진 곳에
있는 미륵보살이 사는 곳으로 그 앞에는 도솔천이 흐르고 도솔궁이 있다고 했다..
미륵의 마음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스님이 기거하지만 정진하는 스님은 수시로
바뀐 것처럼 그 엣날 도솔암을 스쳐간 무수한 객들은 오랜 전 북망산천을 넘어
갔고 오늘은 무릉객이 다시 도솔천을 건너가고 있다.
도솔샘의 물의 한 바가지 마셨다.
후끈 달아 오른 몸은 청수의 차가움과 그 달디단 물 맛에 소스라 쳤다.
마치 오늘 순레길의 고행은 이제 다 마무리 된 것 같이 마음이 편안해졌다.
10시 30분의 시간에 미역냉국과 밥을 주는데 냉국만 한 사발 들이키고 영원사를
향해 출발하다.
영원사
영원사의 변화가 단연 눈에 뛴다.
표석이 있는 공터는 주차장으로 변했고 그 곳에서 영원사는 까마득히 올려다
보인다.
내 옆자리에 앉은 70줄에 든 산님은 지난 해 영원사 얘기를 하며 혀를 끌끌 찼다.
점심 때쯤 그 곳을 지나치게 되었는데 주지란 분이 나와서 등산객들은 절에 머물지
말고 빨리 빨리 지나가라고 채근을 했다 한다.
부처님의 자비와 공덕이 온 누리에 퍼져나가는 부처님 오신 날에….
담도 허물어지고 마당도 넓어졌는데 절은 마치 새로 지어진 건물처럼 반짝이고
윤이 난다.
부처의 깨달음을 염원하는 불자들의 수행도량으로 난 그 길을 따라 허허로이 홀로
가는 길에서
피어나는 지나간 시간의 감회가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
상무주암 가는 길은 다시 가파른 길을 치고 올라야 한다.
다시 힘들여 올라야 하는 산길이지만 도솔암 비등을 오르던 거친 호흡과 긴장감은
사라지고 묵묵히 고행을 이어가는 수도자의 마음으로 돌아가게 하는 길이다.
그 고행의 먼 길 끝에서 그들이 만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내 집 처마 위에
내 곁 가까이에
아니면 내가 걷는 길 어디에나 뒹굴어 다닌다..
먼지 가득한 세상에서 침침해진 네 눈이 알아채지 못하는 것일 뿐
욕심에 어두워진 네 마음이 행복을 행복이라 인정하지 않는 것일 뿐.
내 행복은 분명 거기에 있고
어쩌면 그들이 찾는 행복은 마음 한 가운데 있는지 모른다.
그들은 심산의 깊은 곳에서 마음을 닦고 그 마음의 거울에 비치는 행복을 찾으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A팀은 상무주암 바로 앞에 있는 삼정산 가는 길은 그냥 패스하라고 맥대장이
말했지만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있나?
삼정산 봉우리는 나무에 둘러쌓여 주위의 사계를 조망할 수 없고 가는 길 중간에
세 곳의 조망처가 있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부처님을 찾는 불자의 묘옥처럼 공들여 찾아 볼 일이다.
상무주암
상무주암에서 점심을 먹겠다던 계획은 빗나갔다.
9년 전의 사실에 근거한 계획은 처음부터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일단의 신도들이 상무주암에서 부처님오신 날의 손님을 대접하고 있었다.
점심 때가 넘어가고 있지만 9년 전 그 때처럼 정갈한 절 밥에 풍성한 나물 그리고
무수한 방문객으로 붐비는 흡사 시장의 난전과 같은 흥청이던 축제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경제가 어려워지니 부처님의 영광과 자비도 빛을 잃어 가는 가?
내일을 알 수 없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에 있으랴?
그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변함없는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야 말로 도에 가까이
감이 아닐련지….
문수암
17년 전 귀연 중흥의 주역이었던 관홍님이 여스님이 기르던 백구에게 깨물렸던 그 날.
여스님 홀로 정진하던 절에 난입한 일단의 귀연 무리들….
그 불손한 과객들을 보고도 화도 내지 않으신 채 쟁반에 삶은 감자를 담아 내어
주시던 여스님
다 먹은 쟁반을 갖다주려 덜렁 덜렁 갔다가 관홍님이 백구에게 물린 것이다.
난 안다 .왜 백구가 관홍님을 물었는지…..
“아 긍께 만 원 짜리 한 장은 올려 갖구 가야지 왜 빈 쟁반만 가지고 가냐구?”
절 개 3년이면 불경을 왼 다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숫컷의 자존심이 있는 거지
나름 스님의 보디가드이자 호위무사이데 스님을 왜 개무시 하는 거냐구?
문수암 처마에 걸려 있는 즐거운 상념이다.
문수암에서 탁트인 지리 세상을 바라보면 마음이 절로 편안해 질 것이다.
문수암에서는 차가운 석간수를 마시고 한 차 한잔을 얻어 마셨다.
삼불사
산중에 소박한 문명이 들어선 모습이다.
초록의 지붕 건물과 단아한 절의 모습이 결코 눈에 거슬리지 않고 자연에 조화롭다.
문수암도 그렇고 삼불사도 그렇고 어찌 그렇게 절묘한 풍경의 한 가운데 위치할
수 있는지?
불국도 그려려니와 산수도 풍경도 좋아야 참선과 수행이 더 잘 되는 모양이다.
삼불사는 절 옆의 바위에 올라 다리쉼을 하면서 천천히 부처님의 세상을 음미했다.
약수암 가는 길
약수암 가는 길에서 가딩님을 만났다.
백두대간 산 친구
전국 올레 길의 달인으로 정말 즐겁게 세 상의 길을 걷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전국의 올레 길과 동네 산을 걷던 전력으로 백두대간에 도전하여 힘들었지만
갈수록 체력이조금씩 적응하면서 무사히 완주를 했다.
우린 오랫동안 지난 이야기를 나누며 그 때처럼 함께 길을 걸었다.
한밭 토요 산악회 버스로 왔는데 같이 오신 산님이 갑작스런 심장기능저하로
응급 구호 조치를 했는데 상태가 좋지 않다고 걱정을 했다.
산악회는 7시간 30분의 순례 시간을 주었고 본인은 B코스를 타니 아직 시간이
많이 남는 여유로운 산길이라서 난 먼저 인사를 하고 다음에 산 길에서 만날
것을 기약했다.
삼불사에서 약수암 가는 길은 일부 바윗 길을 지나면 편안한 산 길이 이어진다.
약수암
활짝 핀 수국과 낯익은 너른 마당 그리고 고색창연한 암자가 반겨준다.
많은 산객들이 물을 마시며 다리쉽을 하고 마지막 에너지를 충전하는 곳이다.
나는 비로소 약수전 앞의 샘에서 한 잔의 물을 받아 마시고 배낭을 풀고 부처님
에게 인사를 올렸다.
“오늘 이 귀한 길을 걷게 해주셔서 감사 합니다.”
예를 올리고 나니 시간은 3시다.
3시반 까지 하산 시간이고 내 뒤에는 많은B팀 산님들이 있으니 남아 있는
시간은 충분하다.
극일의 대찰 실상사를 돌아 볼 시간과 뒤풀이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사단은 엉뚱한 데서 났다.
약수암을 통과하여 지나가면 실상사 가는 하산 길인데 내 머릿 속에는 왜 암자를
돌아 나가 앞 길을 따라 진행하는 걸루 메모리 있었는지….
마귀가 실상사 가는 길을 막고 나섰다.
길은 뚜렷하고 호젓한 오솔길이라 잰 걸음으로 유유자적 한참을 가다가 갑자기
인적이 너무 없어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실상사 하산 길이 이렇게 고요할 수가 있는가?
“이 길이 아닌개벼!”
분위기상 돌아 가는게 맞는데 혹시나 맞는가 해서 맥대장 한테 전화한 게 불찰
이었다.”
맥대장이 반주를 한 잔 걸쳤는지 아니면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있었던지 돌아 나와서
가는 길이 맞다고 했다.
그 말을 믿고 갈 데 까지 갔는데 갑자기 조망이 확 터진 산허리 부근에서 산 길이 끊겼다.
여전히 산아래 세상을 내려 보이는 고도가 높은 곳이다.
산 길 끝난 곳 아래 포장 임도가 나와서 이쯤에서 내려가도 좀 돌아서 실상사로 갈 수
있겠거니 하면서 그 길을 걸어 내리다가 밭을 돌보는 두 분을 만났.다.
“흐미 ~ 반가워라 “
실상사를 묻는데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아이고 거꾸로 왔어요 !”
“산 길로 그 길을 다시 갈라면 힘들 낀데 그냥 내려서 읍내에서 택시 불러서 가는 게
좋을 거 가튼데…”
“읍이 어딘데요?”
“저짝 아래요 !”
가르키는 곳을 내려다 보니 한참 아래 갈 길이 아득하다.
거기 까지 가는데 1시간은 족히 걸리것다.
내가 알바한 시간이 40분 !
현재 시간이 3시 40분이니 터보엔진을 장착하고 내달리면 4시 30분 까지 내려 갈 수
있을 것이다.
가장 고통스런 시간이다.
이미 하산 시간 10분을 경과 했고 B팀 도착과 뒤풀이로 한 30분은 지연된다고 보면
사람들이 기다려야 하는 시간은 30분 안팎이 될 것이다.
바람의 속도로 질주했다..
그리고 약수암을지나 실상사로 내려가는 길은 아얘 뛰어서 내려 갔다.
세월아 내월아 하며 내려가는 가딩님을 실상사 가는 포장도로에서 다시 만났다..
두 산골 농부에 이어 다시 눈을 동그랗게 뜨는 가딩님!
“아니 한참 앞에 가시던 분이 왜 지금 내려 가세요?”
“아 예 어다 좀 들렸다 오느라고요 …”
그리고 또 내달리는 나!
무릉객 인생도 재미와 스릴은 있지만 참 바쁘고 고단한 인생이여 …
뒤풀이는 막 끝나가고 있었고 내 뒤에는 아직 도착하지 못한 한 분의 산 님이 남아 있었다.
냉방으로 시원해진 차안에 자리는 군데군데 비어 있었고 내가 차안으로 들어가도 출발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통로 옆에 앉은 산님이 일찍 내려 가시더니 왜 이제 오느냐 물었고 내 무용담을 들은 내
옆자리 칠순의 멋장이 노인은 나의 파란만장한 장도를 축하해 주었다.
나는 땀이 밴 옷도 갈아 입지 못한 채 장비를 수습하고 등산화를 갈아 신으며 귀향의 준비를
했고 뒤 쳐진 마지막 산 님은 20분 후에 베이스 캠프로 귀환 했다.
괜히 호들갑을 떨었네!
막걸리는 집에서 샤우하고 마시면 되니 뒤풀이는 아쉬울 것도 없고 할 거 다하고 약수암
반대편 가 보지 않았던 길도 40분 걸었으니 정말 숨가뿐 일정으로 꽉차 게 보낸 하루가
아닌가?
23년 부처님 오신 날도 내 걸음 보시가 빛이 났고 온 누리에 부처님의 자비와 기쁨이 가득한
멋진 날이었다. !
산 행 일 : 2023년 5월 27일 토요일 부처님 오신 날에
산 행 지 : 칠암자 순례
산행코스 : 도솔암 -영원사 - 삼정산 -상무주암-문수암 - 삼불사 - 약수암 -실상사
산행거리 : 약 18km
소요시간 : 약 6시간 40분 (알바 포함)
날 씨 : 흐림
동 행 : 충일 산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