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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이기자 대천 여행 (23년 10월 둘째주)

 

 

 

 

리기자 전우들 가을 대천 여행

 

엄하사는 대표이사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사업은 궤도에 올라서 마눌에게 자기 사업을 접게하고 회사의 내부관리를 전담시키기로 결정 했다.

오랫동안 공을 들인 유치원도 후배 선생에게 넘기기로 했고 세종의 집도 내어 놓고 수도권 집을

알아 보고 있다.

차하사는 올해 600 백여평 샤인 머스켓 포도 농사에서 350 상자의 품질 좋은 포도를 생산하고 판매

하면서 첫해 농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나는 ?

여전히 문막에 칩거 하면서 띵까 띵까 하면서 잘 놀고 있다.

 

그렇게 우린 지난 여름 지리산 회동이 무산된 이후 대천 여행길에서 다시 만났다.

내가 계획한 일정표대로의 대천 여행은 순조로웠고 우리는 그간의 밀린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

을 함께 했다..

 

어머니 댁에서 자고 마눌이 픽업와서 서세종IC에서 엄하사 부부와  합류했다.

천장호 주차장에서 930분에 차하사 부부와 만나서 출렁다리와 호숫가를 트레킹 했다.

기념 사진도 남기고 장곡사로 이동하여 경내를 둘러보고 나서 칠감산 맛집에서 버섯전골로 점심식사도

맛 있게 먹었다.

예정된 저녁 황제의 만찬을 위해서 구성코자 했던 농부의 소박한 식탁이 무색해진 너무 거한 점심상

이었다.

버섯전골과 각종 나물반찬이 푸짐히게 나오고 막걸리 까지 두 통을 들이키다 보니 모두들 오버플로우

상태가 되었다..

이른 저녁상은 물 건너 갔고 저무는 바다를 열심히 걸어야 할 핑계만 만들어준 사찰 투어 였다..

 

청천호는 대천 가는 길목에 있다.

대천에서는 대천 어항에서 해수욕장까지 긴 해변 길 말고는 대 놓고 걸을 만한 곳이 별로 없다.

그래서 산타기가 어려운 친구들과 함께 갈 때는 약 6km 에 이르는 청천호 둘레길을  산책한 후에 바다로

나가는 것도 좋다.

날씨는 약간 흐렸지만 가끔 햇빛이 구름 밖으로 나와 주어 걷기 좋은 날이다.

우리는 가느실 마을 주차장에 도착하여 여유롭게 느린 걸음으로 호수 둘레 길을 한 바퀴 돌았다.

 

50년이 넘은 친구들이다.

하나는 경로우대자 둘은 그 목전에 있다.

세월은 너울 너울 흘러 가고 세상의 파도는 거세게 몰아쳤는데 이 친구들은 아직 지치지 않았다.

모두들 자신의 신명과 장단에 맞춰 춤추고 노래하면서 잘 살아 가고 있다.

우린 그저 가끔 한 번 만나 어깨동무하고 놀다가 옛날 그 시절 이야기 나누면서 술 한잔 치고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면 그게 힐링이고 살아가는 날의 기쁨이다.

호랑이 장가가는 듯 대천의 어항 쪽 해변을 따라 헤저 터널 가는 길에는 햇빛 속에서 장한 소나기가

쏟아졌다.

우리는 울고 웃는 날씨 속에 원산도 해수욕장에 도착해서 때 묻지 않은 원시의 바다를 즐겁게 산책했다.

날은 맑게 개여서 산책할 동안 비는 절대 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우산 없이  모두 맨몸으로 나섰는데

조용한 바다를 바라보며 드넓은 해변 중앙 까지 걸어나가자 갑자기 먹장구름이 몰려 들더니 세찬 비를

퍼부어 댔다.

엄하사 부부와 차하사 마눌은 빗 속에 뛰어서 출발점로 가고 나와 마눌과 차하사는 빈약한 송림에서

비를 그었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격이었다.

한참을 쏟아 붓던 소나기는 그쳤지만 빗 속을 달려 간 사람들도 소나무 아래 비를 피하던 사람들도

같이 젖었다.

예상보다 빠른 해수욕장의 파시였다.

하지만 오랜 친구들과 함께 하는 그런 날궃이도 훗날 오래 기억될 즐거움 이었다.

비 그친 해변의 황홀한 해넘이를 떠올리며 해수욕장으로 가는 중에 다시 여름비처럼 장대비가 쏟아 졌다.

우린 해변으로 가는 대신 어항의 마천루에 있는 까페로 가서 한 잔의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차를 마시며 비 그친 해변을 내려다 보았고 구름 사이로 내려와 붉게 빛나는

마지막 순간의 일몰을 함께 바라 보았다.

 

서산을 붉게 물들이는 황홀한 일몰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그냥 조용히 저물어 가는 내 인생의 황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게 한 가을 바다.

아직 내 앞에 남아 있을 무수한 여행길의 욕심도 잠재우는 그렇게 고요한 일몰이었다.

빛이 밀려드는 어둠에 잠길 때쯤 우리는 마천루 까페에서 내려왔는데 어항 가는 길에 비는 또 억수 같이

퍼부어 댔다.

마치 비와 우리는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듯이 오후 내내 달아나고 히히덕 거리기를 반복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비린내 나는 어항은 별로 일 것 같았다,

그래도 커다란 농어 한 마리와 꽂게 5마리를 사서 넘기고 사람들의 말소리로 떠들썩한 어시장 식당에

오르자 허기가 동하고 미각이 꿈틀거렸다.

커다란 농어는 씹하는 쫄깃한 식감이 그만이었다.

요즘 입맛을 잃었던 마눌도 꽃게찜과 농어를 맛 있게 먹었다고 했다 .

 

더 이상 무슨 애기가 필요할까?

함께 늙어가는 오랜 친구가 있고

하루 종일 아름다운 풍경 속을 헤메느라 지친 노구의 주린 배는

젊은 날의 추억 뿐만 아니라 그날의 미각 까지 함께 소환하는데

술과  펄펄 뛰는 바다의 날 안주는 입에 쩍쩍 달라 붙었다.

차하사는 운전한다고 술을 마시지 않았고 엄하사와 나는 소주 두 병과 맥주 두 병을 나누어 마시면서

흔쾌했고  차하사 와이프도 술자리를 거들었다.

 

114일 토요일에 엄하사가 돼지 갈비 한 박스를 사서 차하사 전원주택으로 보내서 차하사 부인이

양념을 하고 갈비를 구어 함께 밤새워 먹고 마시며 시골에서 하룻밤을 보내자는 제안을 했다.

나는 술자리에서 즉답을 피하고 돌아와서 이미 정해진 답을 보냈다.

초대는 고맙지만 나는 다음 기회에 참석 하도록 하겠네!”

나와 마눌은 시간만 내면 오가는 여정과 숙박 걱정없이 즐겁게 마시고 놀고 올 수 있는 좋은 기회지만

산과 친구들과의 약속을 저버릴 수가 없다.

 

우리는 그렇게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어둠이 짙게 깔린 해변에서 이별의 아쉬움을 나누었다.

엄하사 부인이 운전하고 나는 기분 좋게 취해 이러저런 얘기를 떠벌이고  엄하사는 조수석에서 졸며

깨기를 반복했다.

우리는 서세종 나들목에서 헤어졌다.

 

마눌은 긴장해서 고속도로를 운전했다.

그래도 비는 오지 않고 하늘은 맑게 개여서 귀로의 부담은 덜 수가 있었다.

잘 보고 잘 놀고 잘 먹었던 좋은 날이었다.

 

20231014일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