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군자산의 간판스타 코끼리 바위의 위용
남군자산 산행 들머리 하관평 마을을 찍고 가다 보면 마을 입구 도로에서 만나는 귀여운 환영인사
이 조형물을 보면 차를 끌고 마을로 들어가지 말고 길가 적당한 곳에 차를 파킹해야 한다.
완전무장한 채 염화칼슘이 뿌려진 도로를 걸어 하관평 마을로 가는 조사장!
등산로는 저 시래기를 말리는 건물과 느티나무 사이 마을 길로 들어간다.
임도길을 만나 계속 가다보면 봉우리 우측에 삼형제 바위가 보인다.
"애걔 ! " 처음에는우습게 보았다.
하지만 저그 가는 길에도 수 많은 우여곡절과 구절양장이 있다.
하여간 천천히 올라온 완만한 길을 뒤돌아 본 풍경이다.
"차가운 대지와 잘 정돈된 묘지위에는 황금 빛 햇살이 쏟아져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한다."
이 동네는 아주 대놓고 겁박이여 !
별로 높지도 않는 속리산 국립공원 관리소장님도 그렇고 보람원장님도 그렇고...
삼형제바위에 오르며 바라 본 풍경
삼형제 바위에 오르는 조사장
여기 까지가 1시간 걸리다.
대야산 클로즈업
감개무량한 무릉객 - 대한 민국 군자가 의당 가야 할 남군자산 정상에 비로소 우뚝 서다.
생애 최초로 오른 남군자 산에서 지난 날의 감회에 젖다.
하관평 마을에서 여기 까지 1시간 50분 걸린다.
남군자산의 호방한 풍경.
다시 150미터 되돌아 내려와 보람원 방향으로 진행.
전망바위 에서 내려다 본 풍경.
전망바위 암괴.
가야할 능선 길.
남군자산 두 번째 명물 손가락 바위.
이걸 만났다는 건 순조롭게 길을 가고 있다는 거
내려다 보이는 우측 능선으로 돌아 내려야 한다.
아래 건물이 청소년 수련원인 보람원이고 우측으로 감아도는 능선 끝 하강하는봉우리가 갈모봉이다.
보기에는 멸 굴곡이 없을 것 같은 편안한 능선길이다.
마치 오늘 등산로 초입에서 올려다 본 삼형제 바위처럼...
근데 가봐라 !
스릴과 서스펜스 까지는 아닐지라도 꽤 거칠고 까칠한 산길에 도전의 의욕이 충만해질 것이다.
갈모봉 연계 산행시 가장 주의해야할 분기점
땅만 보고 무심코 내려가다가는 아래 쪽 보람원으로 곧장 내려간다.
손가락 바위을 지나면 10분 이내에 이 분기포인트를 마주하게 되니 손가락 바위를 만나면 이후
정신 바짝 차리고 눈을 치켜 떠야 한다.
갈모봉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는 언덕 길 위에 있으니 본의 아니게 보람원으로 알바가고
싶지 않으면 항상 위쪽을 잘 살피며 걸을 것.
전망바위 지나서 내려다 본 개략적인 산세처럼 갈모봉은 능선을 따라 진행되는 산길이니 혹여
이 이정표를 놓쳐 등로가 하염없이 내려가면 심기일전 다시 회군해야 한다.
안부 방향으로 능선을 따라 간다.
멋져부러 ! 후련한 산세상 !
하늘을 우러러 무언가 간곡히 소망하는 아이 형상의 바위
두 번 째 분기 포인트
아기 형상 바위를 지나고 약 10분 뒤에 나타난다.
여기서 보람원 방향으로 내려가면 사콜 !
나무 뒤 능선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전체적인 개념도를 머리에 그리면 길의 흔적이 희미해서 헷갈리는 구간에서도
진행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
신생이 움트는 봄에 오면 정말 멋지지 않을까?
미사일 바위! - 믿거나 말거나 !
남들은 촛대바위라 하데...
고릴라 바위 !
식빵 바위 !
식빵 바위를 여나무 발자욱 우측으로 바라보면서 가파른 능선을 올라 쳐야 한다.!
군자치 !
남군자산에서 1시간 30분 정도 지점에 선다.
열심히 군자치를 올려치는 조사장 !
아무도 없는 사위는 고요하다.
둏다 ! 이 고독한 산 길
의자 바위
몽키 바위 !
몽키바위를 지나면서 날씨는 급선회하여 순식간에 흐려지다.
군자치 치고 올라와 바라 본 지나온 능선 길
우측 가장 높은 봉우리가 남군자산 이다.
야호 ! 드디어 갈모봉 도착 !
갈모봉의 누은 소나무
군자치에서 1시간 15분 소요
안전지킴이 조강쇠 ! - 변함 없는 내 산 친구
나여 ! 무릉객.
앙증 맞은 갈모봉 표석과 사위 조망
갈모봉 바위에서 바라보는 지나온 능선 길과 산아래 풍경은 멋지다.
우린 갑자기 날씨가 사나워진 길모봉에서 간편식 점심식사를 하다.
조사장이 준비한 비닐 쉘터 덕분에 쾌적하고 따뜻한 식사시간
갈모봉에서 바라 본 지나온 방향 쪽 바위
더 멀리 보이는 남군자산
이 자유로움이 좋다 .
저 구름처럼 ...바람처럼....
더 먼길을 걷고 싶다.
가지 않은 길
고요하고, 아름다운 길 .
우리가 출발한 하관평 마을 쪽 풍경
대야산 조망
멋진 대슬랩 풍경
갈모봉에서 약 5분 지점
두 번째 대슬랩의 후련하고 예술적인 풍경
첫번 째 대슬랩 후 10분 지점
능선길로 내려선 지점에서 다시 만난 출입금지 안내문
이 팻말로 보면 남군자산 - 길모봉 능선 구간 출입금지가 아니라 길모봉 자체도 못간다는 얘기
사무소장님 이래도 되는 건가유?
우리는 능선으로 내려 왔지만 계곡 갈림길로 내려섰으면 이 임도 위 어느지점으로 내려섰을 것임
거기 어디엔가도 출입금지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겠지
국립공원 관리공단은 근거없이 우리 땅의 출입을 막지말고
출입통제의 사유를 확실히 명시하라 !
명시하라 !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국립공원 관리센터를 만난다.
오늘은 아무도 없다.
국공님을 보면 갈모봉을 가보려 불원천리 대전에서 달려 왔는데 누구 맘대로 길을 막으시냐고
따져 보려 했는데...
ㅎㅎ 똥낀 넘이 성내는 것도 유분수지 .
자세히 보니 속리산 국립공원 관리소장도 아니고 사무소장이여 .
결국 절로 따지면 본찰의 주지가 방을 써붙인게 아니라 암자의 수도승이 붙인 대자보라는 거지
이거 무릉객이 보기에 암 것도 아녀 !
과태로 부과의 법적인 자격이나 있는지 모르것네 !
우리의 하산 지점이 선유동 제비소라는 거
도로 옆 선유동 계곡의 풍경
여기를 지나고 눈발이 장해졌지
휘몰아 치는 바람에 춤추며 내려오는 눈
황홀할 정도로 낭만적인 정말 멋진 첫 눈 이였어 !
정말 이 길이 오래 계속되기를 빌었지
하관평 마을이 좀 더 멀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을 했어 !
근데 나는 아즉도 흔들리는 차 안에서 신문을 볼 수 있는데
나랑 오래 같이 댕기던 카메라 야가 먼저 눈이 겁나게 나빠졌네...
"야야 ~ 너 나보다 먼저 늙으면 우짜냐?"
그렇게 장하게 내리는 눈발을 잡아채질 못하고 시방 너가 찍은게 텅 빈 도로 뿐 아니냐?.
깃발을 저렇게 빳빳이 서서 신나게 춤추고 있는데....
ㅉㅉ..
마음씨 착한 사람만 반사경에 비친 무릉객과 내리는 눈발을 볼 수 있다네
여름에 가족들과 여기 놀러 와도 괜찮을 듯
빨래 끝 ! 하산시간 1시 55분
남군자산 - 갈모봉 환종주 정확히 5시간 34분 소요
어느 절의 주지스님이 절 마당 한 가운데에
큰 원(○)을 그려 놓고는
동자승을 불러 세웠습니다.
내가 마을을 다녀왔을 때 네가 이 원(○) 안에 있으면
오늘 하루 종일 굶을 것이다.
하지만 원(○) 밖에 있으면 이 절에서 내쫓을 것이다.
그러고는 주지 스님은 마을로 내려 가셨습니다.
동자승은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원(○) 안에 있자니 가뜩이나 배가 고픈데
하루 종일 굶어야 할 것이고
원(○)밖에 나가 있으면
절에서 내 쫓김을 당해야 하는 상황이 었으니까요.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냥 하루 종일 굶는 길을 선택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냥 절을 나가야 할까요?
한 시간 뒤에 드디어 주지 스님이 돌아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동자승은 하루 종일 굶을 필요도 없었고
절에서 내쫓김도 당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선택을 했었던 것일까요?
동자승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마당 한 구석에 놓인 빗자루를 가지고 와서는
스님이 그려 놓은 원(○)을 쓱쓱 쓸어서 지워 버린 것입니다.
이미 원이 없어졌으니 원 안에 머무는 것도 아니고
원 바깥에 머문 것도 아닌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원(○)을 없애 버리자
동자승은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살다보면 스스로가 그런 원을 자꾸 만드는데 노인이 되면 젊을 때 보다 더 많은 원을
그려대게 되지
그리고 그 안에 스스로를 가두게 되는 거야
다 부질 없는 일이야
나이들수록 자유로워지고 더 잘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옥죄는 그 틀을 깨어버려야 하지.
아무도 모르지.
지금 여기 까지 왔지만 얼마나 더 멀리 갈 수 있을지...
얼마나 더 높이 나를 수 있을지..
그냥 꼴리는 대로 살아
세상에서 중요한 일이란게 결국은 돌을 이쪽 에서 저쪽으로 던지는 것과 같이
다 무의미한 일이라고 소로가 얘기했지
세상에서 정말 중요한 게 무언가?
백년도 안되어 나의 존재마저 그렇게 허공으로 흩어질텐데....
흔적없이..
이것저것 재지 말고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아.
마음이 울면 배낭을 둘러메고
누군가 옆구리 쿡쿡 쑤시거나 부르면 "네 "하고 달려나가는 거야
영혼의 자유로움 그리고 시종 홀가분하고 편안한 느낌의 산행이었어
가을과 겨울이 교행하는 그 산 길에 낭만과 사색이 다시 찾아와 주었지
그냥 그 길을 걷는 것 만으로 가슴에서 기쁨이 차오르고
삶은 그렇게 가벼워지는 거야
아직 많은 원이 남아있지만 쉽사리 나를 떠나지 못하게 하던 나의 원은
일찌감치 내가 지워 버렸지.
떠날까 말까 망설여 질 때는 그냥 먼저 떠나는 거야.
어디라도 ! 어디로라도!
금지구역 표지란 더 나은 풍경의 비밀통로인지도 모르지 .
조사장은 험한 길이라고 혀를 내두르지만 이 산길을 거칠다고 하면
세상의 많은 아름다운 풍경은 그저 두고 떠나야지....
남군자산 !
조사장과의 출정일이다.
지난달 1박 일정의 무등산 단풍산행은 코로나 바람에 날려갔다.
조사장은 다시 11월 셋째주 무등산 1박 산행 출사표를 들고 나왔지만 나는 또다시
거부귄을 행사해야 했다.
일단 퇴원을 하신 어머님의 금요일 캐어를 동생들에게 미룰 수도 없다.
굳이 출정 유보를 합리화하는 변명을 만든다면 11월 만추의 무등산은 좀 어정쩡
할것 같다는 거.
무등산은 겨울 산행이 더 어울린다.
12월엔 산신령님이 허락하시면 이국적 풍광의 장대한 설국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고속도로를 통해 접근하기에 동절기 운전의 리스크도 줄이고 조사장의 안전
우려증도 완화 시킬 수 있다.
그래서 잠정적으로 계획했던 11월 1박 산행은 당일 산행으로 대체되었다.
무등산의 무등을 타고 술잔에 허허로운 가을과 이향의 낭만을 띠우려 했던 조사장은
무산된 1박 산행의 아쉬움을 달랠겸 가까운 괴산이나 문경권 산행 후 술 한잔 칠
것을 제안했다.
문제될게 무에야 ?
나는 출정 3일전에 일정표를 보냈다.
남군자산 ㅡ갈모봉 환종주
단풍은 늦었지만 고요한 산길에는 늦가을의 서정이 펄펄 날릴 것이다 .
내 사는 가까이의 때 묻지 않은 산 !
좀 빡셀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가야할 산이고 굳이 동행이 필요하다면 조사장과 가는
편이 그래도 나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고 화장빨 없는 이런 야생의 산이 좋다,
내가 거리와 소요시간이 기재된 산행 일정표를 보내면 나머지는 조사장이 다 알아서 한다.
몇 시에 만날 것이며 기상상황과 어떨 것이며 산행지 접근로는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그리고 하산이 끝나고 어디서 사우나를 하고 몇시 쯤 식사를 할 것인지 등등..
다음 날 조사장은 전화를 걸어와서 만날 시간을 통보하면서 내가 1도 신경 쓰지 않았던
그날의 기상 상황을 자세히 얘기해 주었다.
전 날 비가 내리고 밤 부터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고 다음날에는 영하로 떨어져 눈이
온다고 했다.
헐~ 예상 밖의 날씨지만 눈이 온다는 사실에는 반신반의 했다.
“눈오면 대박이지~!”
조사장은 안전을 걱정하자만 난 산상에서 첫눈을 맞는 때 이른 겨울의 낭만이 가져다 줄
최고의 하루를 떠올린다.
“설마 새해도 아닌 오늘 산에서 첫 눈을 맞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것어?”
11월 기온이 급강하하는 이런 날이 할배들이 거진 산행을 하기에 가장 위험한 시기다.
구태여 걱정해야 한다면 나는 낙엽 아래서 빙결된 강수가 몰고 올 등산로의 미끄러움이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이고 조사장은 빙결된 도로를 운전하는 새벽출정이 더 걱정
스러웠다.
안전 지킴이 조사장은 빙판길을 예상해서 출발시간을 7시로 늦추었다.
덧붙여서 6시간의 산행과 청천 인근에서 사우나를 마치면 신탄진에서 5시쯤 뒤풀이와
식사가 가능할 거라고 했다.
출정 당일
7시에 조사장 집에서 만났을 때 입에서 입김이 나오고 마당에는 살얼음이 얼었다.
조사장은 물기 있는 데크를 걸어 나오다가 미끄러질 뻔 했는데 그 사소한 사건으로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 날 출정하는 조사장은 심기가 심란해졌다.
기선이 제압된 조사장은 가는 내내 속도를 낮추고 안전 운전에 노심초사 했다.
가는 길 날씨는 예상을 깨고 찬란한 태양이 떠올랐지만 기온은 오르지 않고 계속 영하를
밑돌았다.
청천을 지날 때는 제설차가 염황칼슘을 뿌리고 있었다.
“흐미 11월에 이걸 뿌려대면 한 겨울에는 우짤라고 그랴?”
과도한 거북이 운전를 하는 조사장이 너무 예민하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운전을 하다보니
위험이 감지되는 모양이다.
이리저리 구불거리고 여기저기 언덕과 고개를 뒤채는 국도가 미끄럽기 까지 하니
조사장도 같이 얼어 붙고 있는 중이다.
오늘은 옆자리에 앉은 내가 조사장 마음에 염화칼슘을 뿌려주는 수 밖에…..
.
우린 살아가는 날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거부기처럼 느리게 기어 갔지만 목적지가 그리
멀지 않는 곳이라 1시간이 좀 넘어선 시간에 우린 하관평 마을 어귀에 도착했다.
여느 마을처럼 국도변에서 좁은 마을 길을 따라 한참 들어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하관평
마을은 도로에 딱 붙어 있었다.
마을 안 동구밖에 차를 주차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마을로 내려섰다가 우린 이내 다시
되돌아 나와야 했다.
마을의 여학생 하나가 마을로 내려서는 우리 차를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 보았는데 마을
어귀로 내려서자 마자 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금새 이해가 되었다.
다른 쪽 길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차가 들어 설 공간이 없는 마을이다.
심각성을 눈치 챈 우리가 서둘러 차를 돌려 나가는 것까지 여학생은 빤히 바라 보았다.
“아그야 미리 교통 정리 좀 해주지 그랬냐?”
땀이 많은 조사장은 겨울 복장으로 칭칭동여 맨 채 중무장을 하고 왔다.
체온 저하는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의사 친구들의 조언 때문 일 게다.
그 맛있는 곱창과 내장탕도 안 먹고, 한 여름에도 따뜻한 물을 마시는 것도 다 그들의
의견 탓이다.
근데 조사장의 의사 친구들도 그렇고 내가 아는 귀연의 의사들도 대다수가 두주불사
술꾼들이다.
남몰래 개고기를 먹으면서 수행 정진하는 땡초들처럼 남한테는 몸에 안 좋으니 술과
담배를 끊으라면서 정작 본인들은 엄청 마셔 댄다.
우쨌거나 체온의 중요성을 맹신한 조사장은 자신이 열이 많고 땀을 많이 흘리는 소양인
임에도 온몸을 칭칭 동여 맨 에스키모 복장으로 거친 비등의 탐험길에 올랐다.
저 복장으로 땀에 젖은 채 능선 길에 서면 체온이 더 떨어질 텐데….
남군자산 가는 길
같이 간 두사람의 복장은 정말 판이하다.
나는 가을 상의에 잠자리 날개옷 같은 바람막이
그리고 가을 바지에 귀를 가리지 않는 그냥 모자
조사장은 눈만 보이는 목두건에 귀마개가 있는 모자
겨울 상의에 자켓 그리고 겨울바지.
"조사장 너무 오바하는거 아녀?
11월에 이러면 12월과 1월에는 뭐 입고 다니누 ?”
단연 압권은 조사장의 몸빼바지다.
그건 다우다 외피 안에 충전재가 들어 있어 따뜻하긴 해도 펑퍼짐해서 몸배무새와는
무관한 복장이다.
게다가 산 길에서 나뭇가지 등에 걸리면 잘 찢어질 소위 다우다라는 나이롱 원단.
내가 그것 좀 그만 입고 다니라 했는데 정말 그 이상 가는 바지가 없데나 어쨌다나 ….
예전 것은 겨울마다 입고 다녀서 다 헤어지고 낡아 빠져서 같은 걸 구하려고 재래
시장을 헤메고 다니다가 겨우 하나 샀다고 했다.
"왜 그렇게 사냐고요 ?"
얼마나 좋은 바지들이 널려 있는데…
허기사 그러니 돈을 그렇게 벌어도 바람 한번 안 피우고 기생 집도 안 가지.
자기 멋에 사는 똥고집은 어쩌면 자수성가한CEO들의 강한 자의식일 지도 모른다.
여러 학설과 주변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또 충분한 자료조사를 거쳐서 스스로
결론을 내면 그걸로 끝이다.
누가 뭐래 건 한 번 꽂히면 자신의 방식이 최적이고 옳다는 신념이 너무 확고해서
추호의 흔들림이 없다.
생활방식 뿐만 아니라 건강관리도 마찬가지다.
이쯤되면 건강에 대한 관심과 자신의 관리 방식은 호불호와 좋고 나쁨을 넘어 선
철학이고 사상이다.
마을 어귀에 대문짝만한 경고문이 붙어 있다.
남군자산 ㅡ갈모봉 능선 출입금지
프랑카드로 걸려 있는게 아닌 입간판 형 공고문인 데다 철 다리에 녹까지 슬어 있는
걸 보면 언제 부터인지는 몰라도 꽤 오랜 세월 거기 서 있는 것 같다.
근데 그 저의가 무얼까?
길 자체가 위험한 건가?
아니면 송이 버섯 같이 임산물의 무단 채취를 제지하기 위함인가?
상시 단속하고 국립공원 관리소장이 과태료를 부과할 거라고..첨언해 놓았다.
거짓말
오늘 같은 평일 추운 냘에 누가 그 능선을 갈 것이여?
혹시 우리처럼 간크고 정신나간 인사가 가물에 콩나듯 출몰할 걸 기다리면서
추위에 떨 국공님이 어디 있겠냐고요?
그 얼어 붙는 능선에!
나는 국공님은 하나도 안 무섭다.
정작 내가 걱정되는 건 조사장이다.
안전 지킴이 조사장 !
입간판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조사장
흘깃 눈치를 살피니 걱정이 구름같이 일어나는 착잡한 표정 이다.
아마 칠보산 구봉능선과 연어봉의 악몽이 되살아 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왜 통제를 하지요 ?"
"위험해서 그런 건 아닐 까요 ?"
“산이 낮아서 그리 위험할 건 없고 아마도 버섯 철에 권한권자 외에 출입을 통제
하기 위한 방편으로 써 붙였다가 아직 철거하지 않은 모양이네요.”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금지구역을 가야 하는데 어떤 얘기를 한들 납득이 되겠냐만은 나는 적당히 썰을
푸는 거고.
내가 오늘 계획을 바꾸지 않을 거란 걸 직감적으로 알고 있는 조사장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어보는 거다.
남군지산 찍고 되돌아 내려 오면 3시간 30분 !
보람원 하산하면 4시간
예정코스로 환종주하면 6시간 소요될것이다.
이이 답은 정해져 있는 것이다.
오늘 밥값과 술 값은 해야지.
조사장은 500미터도 못가서 옷을 벗을 거란 내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임도른 따르다 소나무 숲길로 갈라지는 갈림길에서 조사장은 자켓과 두건을
벗어 던졌다.
갈아 입을 수 없는 다우다 몸빼 바지는 정상가기 전에 다 젖을 것이다.
내 경우 기온은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11월 까지는 가을 쉐터를 입고 2월 까지는 겨울 옷을 입는다.
동절기에도 여간해서는 고어텍스 자켓을 입지 않고 상의 위에 바람막이만 하나 걸친다.
복장과 계속 몸을 움직어서 몸의 열이 외부의 기온과 균헝을 이루는 점점을 찾으면 된다.
땀이 나지 않는 약간의 싸늘한 외기의 기운이 피부에서 느껴질 수 있는 상태가
내게 맞는다.
홀로 치악산이나 덕유산 같은 큰 산의 일출을 보려고 새벽에 뭄직일 때는 자켓을
걸치고 목두건과 빵모자를 써야 할 때다.
실제 나가서 걸어보면 견적이 나오는 것이다.
영하로 떨어진 계곡의 기온은 몸을 움츠러들게 했지만 조금 어깨가 시린 것 말고는
가는 내내 쾌적했다.
삼형제 바위 오르는 산길에는 수북히 낙엽이 쌓여 있어 그렇지 않아도 희미한 산길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자주 끊어지던 길이 거칠게 일어나 앉기 시작하면서 조사장은 착잡한 표정은 역력해졌다.
그래도 남군자산 가는 길은 출입통제가 아니라 사람의 왕래가 꽤 있을 텐데 낙엽이 덮어
버리니 앞에서 가던 조사장이 번번히 발을 멈추게 되어 내가 앞으로 나섰다.
나는 오래간만에 대하는 날것의 자연 앞에 아드레 날린이 솟구치고 오랫만에 대적할 만한
맞수를만나 가슴의 뜨거운피가 솟구쳐 올랐다.
삼형제 바위
그렇게 몇굽이 산길을 휘돌고 크고 작은 봉우리를 넘어서서 삼형제 바위에 도착하다.
묘지가 있는 마을 분지에서 올려다 보이던 그 바위다.
그냥 한 달음에 쪼르륵 올라 갈 것 같았는데 한 시간 이나 걸렸고 오르는 길의 낙차가
예사롭지 않았다.
남군자산의 스타이자 명물.
코끼리 바위를 위시한 삼형제 바위는 듣던 대로 웅장한 바위군이다.
지나온 길이 내려다보이고 거대한 바위위에 놓인 집채바위들의 위용 한가운데 평화와
안정이 휘날리는 곳이다.
우리는 배낭을 내리고 뜨거운 물을 한 잔씩 마시며 다리쉼을 했다.
삼형제 바위 이후에 길은 눈에 뛰게 좋아 졌다.
태양은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지만 그늘진 능선 위에는 싸래기 눈이 휘날린 흔적이 역력
하고 바람의 위세가 자못 등등하다.
“이렇게 좋은 길이?”
남군자산
나뭇잎 사이에서 빙결된 얼음은 녹지 않아 낙엽 길은 미끄러웠지만 남군자산은 예상보다
쉽게 우리를 허락했다.
“이쯤 되면 너무 싱거운 거지 ! “
그렇게 우리는 남군자산 정상에서 두 팔을 치켜들고 파노라마 치는 웅장한 산 세상을
내려다 보았던 것이다.
하관평 마을을 출발한지 약 1시간 50분 만이다.
기분 좋은 날이다.
흐리다던 날씨는 화창하고 ,어제 비로 맑아진 공기는 멀리까지 막힘 없는 깨끗한 조망을
열어주고 있다.
게다가 오늘은 늙은 산꾼이 40년이나 고이 접어 두었던 비장의 산길이다.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는 그 곳에서 사위의 풍경을 감상하며 잠시 머물다가 바위봉을 다시
내려와 보람원 방향의 능선 길은 잡다.
군자치 가는 길
이제부터 금지구역으로 묶인 구간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길은 잠시 다시 거칠어 진다.
다음 이정표가 되는 지형지물은 손가락 바위이다.
약 30분 진행하면 큼직한 손가락 형상의 바위가 나타나는데 거기 까지 가는 길에도 낙차 큰
업다운이 많다.
양쪽이 터진 능선에서 세찬 바람이 불어 왔다.
먼저 전망바위를 만난다.
그 곳에서 좀더 진행하면 나뭇가지 사이로 청소년 수련원인 보람원이 내려다 보이고 우리가
휘돌아 내려야 하는 능선이 한 눈에 들어 온다.
가야할 방향의 산세를 머리에 넣고 가면 설령 길을 잃거나 헷갈리는 길이 나타나도 크게 염려할
일이 없다.
이후의 길은 로프가 매달리기도 하면서 조금씩 거칠어 진다.
그리고 나면 바위절벽이 나오고 길은 능선을 따라 진행하다가 손가락 바위를 만나는 것이다.
손가락 바위를 만나면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손가락 바위를 지나고부터는 긴장해야 한다.
중요한 갈림길 이정표를 놓치면 본의 아니게 보람원 알바를 뛰어야 한다.
10분 거리에 있는 낡은 이정표는 갈림길 언덕 위에 있으므로 고행 길의 고뇌와 사색에
젖어 고개를 숙이고 가다 보면 보람원으로 하산하게 될 것이다.
업다운이 심한 낙엽 쌓인 능선길은 미끄러웠다.
스틱이 자주 제구실을 못하고 튕겨나가거나 미끄러지기에 끝을 보니 땅에 박히는 철심이
마모되었는지, 오랜 충격으로 안으로 박혀버렸는지 스틱의 철심이 사라지고 끝이 뭉뚱해졌다.
그동안 낙엽쌓인 바윗길에서 곧잘 미끄러지고 엉덩방아를 찧었던 게 스틱 때문이었다.
그걸 알고나서 조심조심 내려 갔는데 낙엽 쌓인 바위 위에서 결국 대차게 나동그래 졌다.
다치진 않았지만 팔이며 엉덩이에 충격이 컸다.
나는 선답자의 트랙도 가져오긴 했지만 계속 핸드폰을 꺼내 보기가 귀찮아서 오룩스를
열지 않았다.
나 혼자라면 길이 잘못된 걸 알게 되면 되돌아 올라오면 되지만 비등에서 다시 오름길을
되짚는 알바를 진짜 싫어하는 조사장이라 정신을 바짝차려야 한다.
자칫하면 지난 번 연어봉의 재판이 될 수 있다.
연어봉 가는 구간은 비등으로 로프를 타는 바위지대가 많아서 나는 스릴과 재미를 느끼며
산길을 주유했는데 조사장에게는 살떨리는 구간이었던 모양이다.
어렵게 연어봉에 올랐다가 마패봉 쪽으로 진행한다는 것이 비등 하산길을 따라 갔던 거이다.
산비탈을 따라 20여분 내려가다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산길을 되짚어 올라가렸더니
조사장이 알바를 빌미로 위험한 산길을 내려가자는 통에 할 수없이 중간지점으로 하산하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도 조사장은 연어봉을 위험한 산행의 대표주자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눈높이를 높이고 10여분 진행하다 보니 반가운 이정표가 손을 흔든다.
“나 여기 있어요!”
이 길과 두 번째 갈림길만 무사히 통과하면 군자산 –갈모봉 금지 구간에서 알바할
곳은 거의 없을 것이다.
보람원 하산길로 접어들려 하는 조사장을 제지하여 능선 길을 올라타고 편안한 마음
으로 길을 재촉한다.
이곳에서 군자치 까지는 한 시간 정도 걸린다.
1차 분기점 안부 이정표에서 5분 정도 가면 아기 형상 바위를 만나고 그 곳에서 10여분
더 가면 나무 등걸에 보람원 하산 이정표가 매달려 있는 2차 분기점을 만나게 된다.
이곳이 또한 갈모봉 가기 위해 주의해야 할 마지막 분기 포인트이다.
이 지점에서는 나무 뒤로 난 능선 길을 따라 가야 한다.
이 두번째 이정표에서 군자치 까지는 35분 가량이 걸리는데 두 번의 대찬 된비알을
치고 올라야 군자치로 내려 설 수 있다.
가다 보면 차례로 미사일바위와 고릴라 바위와 식빵 바위를 만난다.
식빵 바위가 보이는 곳에서 길을 발딱 일어나 앉는다.
길이 희미한 곳에서 식빵 형상의 바위가 오른 족 지근거리에 보이면 앞에 보이는
가파른 능선으로 치고 오르면 된다.
낙엽이 그렇지 않아도 흔적이 희미한 등로를 완전히 덮어 길을 가늠하기 어려운데다
능선이 경사가 거의70~80도 수준이어서 엄청 미끄러워 힘이 많이 드는 길이다.
통상 길이 헷갈리고 흔적이 희미한 곳에 오히려 표지기도 잘 달려 있지 않다.
표지기를 다는 사람도 미심쩍으니 함부로 달지 못하는 게다.
그 옛날 백두대간 시절 괴산 마분봉 쪽에서 대형 알바를 했는데 백두대간 산객들이
잘못 달아맨 표지기를 회수 하지 않아서 그걸 보고 따라가다가 사단이 났던 것이었다.
속도 조절은 내가 하는 것이니 외기의 기온과 체온은 균형을 잘 유지 하고 있다.
선답자들의 기록에는 후반부의 계속되는 업다운이 사람을 지치게 한다고 써 있었지만
오랜만에 몸을 푸는 셈이다.
겨울로 가는 길은 쓸쓸하고 황량했지만 그 고요함 속에는 역설적인 충만함이 깃들여
있었다.
내가 처음 걸어보는 길이라는 것 만으로 호기심과 설레임이 가득했고 낙엽이 바람
결에 흩날리는 호젓한 산길은 낭만적이었다.
군자치
군자치에는 11시 35분에 내려섰다.
남군자산에서 1시간 25분 걸렸고 첫 번째 분기점에서 50분 두번째 분기점에서 35분
만이다.
넘나드는 소로가 있는데 온 길을 돌아가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남군자산과 갈모봉의 중간지점 이긴 한데 어느 쪽으로 돌아가기도 호락호락 하지
않지만 온 길을 되짚는 것 보다는 계속 가는 것이 훨 나으리라 …
반대편 능선 안쪽 계곡으로 내려가면 보람원 안으로 떨어진다...
등로는 갈모봉까지 그리 거칠지는 않아도 꾸준한 오르막이 지속된다.
능선 나뭇 가지 사이로 지나 온 능선과 산아래 세상이 후련하게 조망되는데 그 풍경이
또한 압권이다.
가는 길에 의자바위와 몽키 바위를 만난다.
몽키 바위를 지나면서부터 날씨는 갑작스레 흐려지기 시작하고 바람결은 한층 날카로워
졌다.
전화를 받는 조사장을 추월하여 앞으로 나섰다.
오늘이 평일이라 카톡으로 온 업무상 질의 내용을 답신해야 하기 때문에 빨리 갈모봉에
도착하려고 속도를 올렸다.
그렇게 잔뜩 찌푸린 하늘 아래 산 길을 파죽지세로 진군하여 갈모봉에 도착했다.
갈모봉
군자치에서 1시간 15분 만이다.
지나온 길을 건너다 보는 풍경이 좋아서 일단 정상석과 풍경 사진을 찍고 서둘러 답신을
작성했다.
조사장이 도착하여 쉘터를 만들고 들어오라고 재촉할 때서야 겨우 답신을 보낼 수 있었다.
정말 눈이라도 오려는지 기온은 더 내려가고 바람은 거세졌다.
조사장은 오늘 회심의 역작을 준비해 왔다.
비닐 쉘터 !
저 번에 내게 묻기에 가르쳐 주었더니 쿠팡에서 구입해 온 것이다.
덕분에 추위에 떨지 않고 비날 쉘터 안에서 훈훈한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여기 까지 왔으니 금지구역 산행은 끝난 셈이다.
우린 이제부터 제비소에서 올라와 갈모봉 산행을 하고 내려가는 산객이다.
하산길
하산길 길목에 대슬랩이 2개가 있는데 그 풍경이 가히 압권이다.
남군자산이나 갈모봉에 견줄만한 풍경인데 그 큰 바위며 내려다 보이는 그림 같은 풍경은
감탄사를 절로 자아낸다.
첫번째 슬랩은 갈모봉에서 5분 거리에 있고 두 번째 슬랩은 첫번 째 슬랩에서 10분을 더
가면 만나는데 이런 풍경이 있어서 짧은 산행로와 갈론 계곡을 끼고 있는 갈모봉이 괴산
35명산에 이름을 올린 모양이다.
새로운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 앞에 서는 것은 언제나 감동적이다.
세상에는 늙지 않는 마음 하나로 만날 수 있는 이런 아름다운 풍경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그것이 내겐 살아가는 날의 기쁨이고 마음의 위안이 된다.
우리는 갈림 길에서 다시 능선길을 따랐고 그렇게 산 아래 임도로 내려 섰다.
우리가 내려선 곳에도 출입금지 팻말이 떡 하나 세워져 있었다.
그 내용을 보면 아애 갈모봉 까지 산행도 하지 말라는 얘기
우야튼 우리는 임도를 따라 내려가 아무도 없는 관리소를 지나 큰 도로로 내려섰다.
큰 길을 따라 조금 걸어 오르면 거기 제비소가 선다.
도로를 따라 30여분 걸어야 하관평 마을로 회귀할 수 있다.
도로를 따라 걸어 가는데 정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나 오는 첫 눈 맞는 거 맞어?”
“그것도 아름다운 풍경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는 새길 위에서 ?”
눈은 더욱 장대 해졌고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춤추기 시작했고 내 마음도 덩달아 눈 밭을
뒹구는 똥 강아지처럼 기뻐 날뛰었다.
있는 그대로 완전한 날이다.
긴 도로를 따라 걸어 가면서 길이 빨리 끝나지 않기를 빌었다.
눈과 바람의 템포에 맞추어 내 마음도 같이 웃어 대며 신나는 춤을 추는 날이었다.
감사한 일이다.
늙은 가슴도 축축하게 하는 이 감동이 내 곁에 있음이
조사장은 선녀탕을 예정하고 있었다.
청천을 지나 우리는 선녀탕이라는 시골 온천에 들렸는데 시설은 생각보다 훌륭했고
사람들도 꽤 많았다.
우리는 한시간 30분 가량 사우나에 머물며 기분 좋은 하루의 여독을 풀었다.
그리고 조사장 집으로 가서 내 차를 가지고 신탄진 대처로 나가 우럭무침과 붕장어
전골을 맛 있게 먹었다.
소주 네 병과 맥주 한 병
여섯 번의 오르가즘을 느낀 닐이었다.
삼형제 바위
남군자산 정상
갈모봉
눈 내리는 선유동
격렬한 운동 후의 사우나
그리고 좋은 안주를 앞에 두고 친구와 함께 기울이는 한잔의 술잔
산 행 일 : 11월 17일 토요일
산 행 지 : 남군자산 –갈모봉
산행코스 : 하관평 마을 – 삼형제 바위 – 남군자산 –갈모봉 – 군자치-제비소 –
보람원앞-하관평마을
경유지별 산행시간
08:24 : 하관평 마을 출발
09:30 : 삼형제 바위 (하관평 마을에서 1시간 )
10:11 : 남군자산 정상 (하관평 마을에서 1시간 47분, 삼형제 바위에서 40분)
10:38 : 손가락 바위 (남군자산 정상에서 30분)
10::45 : 안부 이정표(첫 번째 분기점)
10:49 : 아기바위
11:01 : 나무등걸 이정표 (두번 째 분기점)
11:35 : 군자치(남군자산 정상에서 1시간 24분 )
12:49 : 갈모봉 (군자치에서 1시간 15분)
13:04 : 1차 대슬랩
13:14 : 2차 대슬랩
13:28 : 하산 완료( 하관평 마을에서 5시간 8분)
13:58 : 하관평마을(하산지점에서 30분)
총소요시간 : 5시간 34분
날 씨 : 말고 흐리고 눈
거 리 : 약 11km
동 행 : 조사장
능선길에서 조망할 수 있는 주변산의 이름을 잘 정리해 주신 산님의 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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