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마감 휴일근무 하느라 문막에 있었어
대전에 내려 오는 차를 기다리다가 시간이 좀 있어서 수호한테 전화를 했네
이 녀석 예전보다 살이 좀 붙은 것 같기는 한데 여전히 말라깽이 나잇살도 안 붙네
나이를 물어 보니 벌써 63살이야
세월 참 빠르지 엄마?
엄마가 90이었다는 게 새삼 믿기지도 않고…
아버지가 돌아가신지가 벌써 15년이나 되었다니
참 종삼이 형은 아버지보다도 3년 이나 빨리 가셨지 ?
내 세월만 흘러 간 줄 알았더니 이 녀석도 세월도 같이 흘러 갔군
너 댓살은 내가 나이가 더 많은 줄 알았는데…..
한참을 통화하다 보니 1시간을 훌쩍 넘겼네
엄마 얘기 한참 하다가 고모님 얘기 하면서 목이 메더군
자기는 어머니가 정말 체질 상 고기를 못 드시는 줄 알았다고…
한 번도 고기 먹는 걸 보지 못했고 당신이 못 드신다고 하시니 그런 줄 알았다고
엄마 이 녀석 알잖아.
배운 것없이 객지로 버려져서 인수 아재네 집에서 월급도 못 받고 머슴처럼 아까운 청춘
허비한 거 …
그 때 공장이라도 가서 기술을 배워야 했는데….
어린 날 첫 단추가 잘 못 끼워진 탓에 또 스스로 맨 몸으로 만나야 할 세상의 두려움에 용기를
내지 못하고 그냥 운명과 시간에 자신을 맡겼던 게 패착 이었지
엄마 같지 않은 고모라서 그런 아들을 지켜내지 못했던 탓에 거기서부터 인생이 갈린거야 ……
녀석이 뒤늦게 선택한 기술이 인쇄 기술이라 또 사양길에 접어 들었고….
워낙 없는 돈으로 시작한 사업이라 늘 힘들 수 밖에 없었는데 부도까지 맞았지.
처음 고모 상태가 심각하다는 연락을 받고 내려가서 의사와 면담하는데 단 한마디에 머리가
하얘 지더래
“이렇게 될 동안 무얼 했느냐?
이정도 상태까지 갔으면 그동안 고통이 어마어마 해서 도저히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남은 가한을 말할 수도 없는 상태고 당장 내일 돌아 가셔도 이상하지 않다……. “.
그래서 심각한 암을 알게 되었던 그 날로 모든 것 다 때려치고 엄마 곁으로 내려 갔다네
그렇게 해서 지가 엄마 2년 동안 더 살게 해서 보내 드렸 잖아
몸에 좋다는 약초 다 캐다 드리고 좋다는 약 다 지어 드리고….
그 때 수호가 알았던 거야 고모가 고기도 드신다는 걸
낙지가 몸에 좋다고 해서 시장에서 잔뜩 사다가 드렸는데 잘 드시더라고…
나중에 고기도 해 드렸는데 고기도 잘 드시더라고
그래서 이 녀석 지 엄마 잡고 울었다네
울 엄마 너무 가난해서 가물에 콩나는 고기 자식들 먹이기도 바빠 당신은 아얘 고기 못 드신
다고 하신 거라고 ……
나도 고모가 고기 드시는 걸 한 번도 본적이 없었네.
대전 집에 와서도 한사코 안 드셨지
참 가슴 아프고 슬픈 일이야 엄마
그래도 그 녀석이 고모의 마지막 가는 길을 따뜻하게 보살펴 드렸지
그래서 자신의 가슴 속에 쌓일 한과 응어리도 조금은 풀면서 보내 드렸고
전화를 하면서 생각하니 어릴 적 함께 어울려 놀던 동생들인데
고모님 돌아가실 때나 자식 결혼 시킬 때나 아니면 제대로 만나서 이야기 나눌 시간도 없었네
그 녀석 힘들다 산다 해도 마음 터놓고 애기를 들어 주지도 못했고
문상을 갔어도 고모인데 장지 까지 가면서 많은 애기를 나누었어야 했는데 그저 손님처럼
앉았다가 오는 바람에 그런 한스런 얘기도 들어주지 못햇었네
고모를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 지네
착하디 착하기만 한 사람
착하다는 표현으로는 애기 하기에는 너무 어처구니 없는 삶을 사셨지
남편 젊은 나이에 보내고 남편도 없는 시댁에서 늙은 시아버지 모시고 또 그 시아버지가 재혼한
젊은 어머니의 수발 까지 들면서…
그 뿐 인가?
아들 딸들 까지 키우면서 밭일 까지 하면서 그 집 귀신이 되어 늙어가신 고모 잖아 .
세상에 이조 시대도 아니고 …
엄마와는 극명하게 대조되는 성격 이셨지
그 바람에 자식들의 운명이 갈린 거구
할아버지나 고모나 다 시대의 아픔과 세월의 찬바람을 벗어날 수 없는 숙명으로 알고 묵묵히
맨 몸으로 받아 내셨지
아버지는 어머니로 인해 그 운명에서 구원을 받았던 거구
그래도 어려운 환경에서 수호 아들은 똘똘하고 야무지게 컸으니 보람은 있지
나처럼 자식 걱정은 안해도 되잖아
힘들지만 아직 일을 하고 있고 지 몸 하나 건사하면서 살아 가면 되는 거니...
수학이는 잘 살 줄 알았어..
엄마한테도 잘 했고 성격도 외향적이라 서글서글하고...
부인도 너그러운 사람으로 잘 얻었고….
엄마 영정 앞에서 눈물을 흘리던 수학이 보았나 엄마?
이 녀석 얼굴 많이 상했어 . 부인도 그렇구….
상갓집에 상주들이 늘 그렇듯이 손님에 묻혀 이야기 한마디 나눌 새가 없었지….
아마 코로나 시대를 보내면서 사업이 어려움을 맞은 것 같아.
그 녀석 주식 얘기도 많이 했었는데 그 쪽에서도 손해를 많이 보았을 거구 …
인생이란 게 참 예측하기 어려운 거지
어떻게 보면 살아가는 게 고행이고 죽음이 그 고통을 끝내고 영원한 평화와 안식을 얻는다는
말이 맞는 거 같아
수학이는 전화를 받지 않네 ….
엄마의 시대는 지나갔고 나의 시대도 이젠 저물어 가네
젊은 날엔 서쪽 하늘의 붉은 노을이 그리 낭만적으로 보이더니
서산을 붉게 물들이겠다던 노정객의 호기로 내 아름다운 노후를 꿈꾸면 살았지만
서녘 하늘을 불어가는 시리고 쓸쓸한 찬바람은 내 생각지 못했군
내가 은퇴하면 이 녀석들 하고 밤새워 술 한잔하면서 지난 얘기 들어 주고 싶네 …….
편히 쉬세요 엄마
2024년 4월 1일 천붕 18일 째 – 소천 21일 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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