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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49제

천붕30일 - 봄과 오랜 친구 그리고 술

 

 

 

봄과 오랜 친구 그리고 술

 

엄마도 봉규와 황찬과 태연을 알고 있지?.

집에도 몇 번 씩 왔었고…..

고등학교 때부터 참 친한 친구들이지.

한결 같은 친구들….

 

세월의 흐름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친구들

고등학교 때는 공부하느라 바빴다

나도 못하는 공부는 아니었지만 친구들은 모두 전교에서 알아주는 실력자들이었다

우린 대학 때 금산 황찬네 마을에 모여 술 마시고 노래 부르며 나름 청춘의 숨통을 티웠고

맑은 시골 시끄러운 개구리 울음 소리를 들으며 우정을 쌓아갔다

몇 번인가 봉규네 집으로 모심으러 갔었다.

끊어질 듯 힘든 허리로 열심히 도왔지만 내가 심은 모는 둥둥 떠서 봉규 아부지가 난 못줄이나

잡으라 해서 그 후로는 편한 모내기였는데  

그래도 막걸리와 새참은 너무 맛 있었던 기억이 난다. …

 

세월은 또 흘러가서 모두들 대학에 가고 군대에 다녀 왔다.

사회 진출을 준비하고 각자의 삶을 위해 세월을 고뇌하느라 두문불출 한동안 교류의 문도 닫아

걸고 나서 우린 모두 그렇게 사회에 첫 발을 디디며 꿈에 부풀었다.

구체화되지 않은 소박하고 막연한 꿈

 

나만 빼고 친구들의 직장은 모두 화려 했다.

씨티 뱅크 , 이화여대 교수, 삼성전기

우린 삶의 새로운 르네상스로 맞이하고 각자 삶을 누렸지만 자주 만나지는 못하다가 고부기

미국에서 돌아오고 새로운 우리 만남의 역사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각자의 결혼과 부모님의 소천, 그리고 자녀의 결혼을 지켜 주며 오랜 세월을 그렇게 함께 했다.

 

지나고 보니 삶의 빛깔도 성향도 비슷했다.

황찬이만 산에서 좀 멀어 있었지만

봉규는 백두대간 종주를 세번 하고 나는 두 번 태연이는 한 번 했는데

지금은 태연이도 신을 위해 산을 내려 놓았다..

바쁘다고

아직 현직 교수에다 욕심도 드글드글한 데 또 독실한 크리스찬이니 그 나이에 그렇게 바쁘게 눈

커 뜰 새가 없다.

나름 잘 살고 있는 거겠지만 너무 여백이 없어 보이는 팩팩한 삶이다.

 

우린 언제 부턴가 우린 부부동반 모임으로 바꾸어 한국의 산수와 계절의 변화를 즐기며 우리의

삶과 우정을 노래했다.

그 젊은 세월이 참으로 빨리도 흘러갔고 말 없이 흐르는 세월은 여자들을 먼저 산에서 불러

내리고 뒤 따라 우리도 산길을 막아 섰다.

이젠 고부기도 나대지 않고 또 여자들과 보조를 맞추다 보니 트레킹도 줄이고 관광하거나 앉아서

막걸리 먹는 시간이 많이 늘어 났다.

풋풋한 고교 친구들이 경로 우대자가 되었으니 무리도 아닌 셈이다...

이젠 부모님들 모두 돌아 가시고 고부기 94세 되신 어머니만 남았으니 벌써 그 만큼 긴 세월이

흘렀던 거야

 

엄마!

지난 번 엄마 장례식에도 이 친구들 모두 왔었는데 그날 너무 조문객들이 많아서 얘기 나눌 기회

 없었네

엄마 가는 길을 지켜준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말도 전할 겸 그냥 멀리 떠나는 것 보다 대중교통

로 와서 수리나 한 잔 하자고 대전에서 모이자고 했네

 

공자님 가라사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상촌 신흠님이 인생 3락에 관해 말하기를

문닫고 마음에 책을 읽는 것이 1 락이요

문 열고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맞는 것이 2락이요

문을 나서서 마음에 드는 경치를 찾아가는 것을 3락이라하였다.…

 

옛 성현들이 인생의 지극한 즐거움에 공통적으로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친구 였고

그 친구와의 즐거운 시간을 이어주는 것이 풍류와 술이었다..

 

친구들이 온다기

금요일 저녁에 막걸리와 족발 순대를 사서 냉장고에 넣고

일찍 일어나서 사정공원을 산책하며 정자를 잡아 놓았다. …

 

대전역에서 만나 보문산 명태촌에서 아침겸 점심을 먹고

모든 봄 꽃과 새순이 있는대로 피어나는 아름다운 봄 길을  한시간 쯤 산책 하고

정자에서 큰 막걸리를 세 통이나 마셨다. …

황찬이 부인은 열무김치와 총각김치를 새로 담아 왔다.

엄마처럼 늘 친구들을 위해 맛깔스런 음식들을 준비 하는데 친구들을 대하는 그 정성이

대단하다.

착한 황찬이는 일찍 퇴직해서 사는 게 힘들어서 늘 마음이 안됐는데   딸래미는 공부를

잘해서 서울대 나오고 박사까지 받아서 교수를 하고 있으니 그래도 얼마나 뿌듯할까?

엄마는 우리 잘 커가는 모습 하나로 그 숱한 어려움을 견뎌내며 행복하셨는데….

 

저녁에는 신화수산으로 가서 쭈꾸미와 회를 안주로 술도 네 병이나 더 마셨다.

좋은 친구란 산길을 불어가는 시원한 바람 같은 거

배고픈 저녁의 구수한 된장 냄새처럼

긴 세월에도  잊혀지지 않는 오랜 추억 같은 거

 

톨스토이가 그랬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내 곁에 머무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이라고

 

그래서 짧은 봄을 잃어 버리는 게 만성이 되면 가슴이 딱딱해지듯이

우정은 너무 오래 묵히면 군둥네가 나고

사랑은 오래 돌보지 않으면 빛 바랜 추억의 강물을 따라 흘러 가는 법

남은 인생 친구들과 더불어 잘 살다가 엄마 따라 가야지

 

 

2024413일 천붕 30소천 33일 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