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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지리산 태극종주 - 요물님 산행기로 뜨거운 그날을 추억하며

 

 

지리산 태극의 꼬리

 

언제 :2006년 10월 3일
어디를 :1001번국도(22시 23분)-남가람봉(23시 14분)-석대산(4일 01시 13분)-315봉(03시 14
분)-망해봉(05시 19분)-왕봉산(06시 1분)-20번국도(06시 35분)

산행거리 :  도상 13.742 km    산행거리 :  14,659 km
산행시간 :  8시간 12분
누구와 : 그리운산님 태극왕복중, 100두님, mt주왕님, 요물

 

 

 



 

 

**지리산에 기적이 있었습니다.  


190여 키로를 달려온 4일째의 밤은 화려하였습니다.  

"모험은 권하되 위험은 막는다"란

말이 생각났습니다.  

웅석봉에서 떨어지는 1001번 국도의 지리산 태극능선를 달려온 남강의 10여키로를 남겨놓은 시간 어두움속은 첫 남강 왕복종주자의 승리를 예견한 듯 그리운님들이 모였습니다. 

9월 30일 새벽 6시 26분에 왕봉산을 출발해 덕두봉을 달려 다시 태극의 꼬리를 걷기위해 돌아온 그리운산님은 장해 보였습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험한 길을 걸은분 같지 않게 포옹하는 모습까지 정다워보였습니다,
허지만 몹시 야위워보였습니다.  

4일동안 걸은 지리능선의 발걸음이 5키로 정도의  몸무게가  저울숫자를 내려 놓았습니다.  

소낙비도 만났고

어두움속을 걸으며 힘이 되었던 분들이 있어 여기까지 왔노라 했습니다.  

 100두님의 목소리를 선두로 그리운산님 처음으로 뵙는 무릉객님 너무도 반가웠습다.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자 무릉객님의 바톤을 mt주왕님과 요물이 받았습니다. 

 

 

 

 

 

 

                      석대능에서 바라본 달뜨기능선-

 

 

        **덜찬 보름달이 달뜨기능선에 비치고


 '달뜨기'란 이름이 누구에 의해 언제 생겨났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병주의 대하소설
<지리산(전7권)>에 그 이름을 가슴 벅차게 부르던 빨치산들이 나온다.

 

"앞서 걷던 문춘 참모가 걸음을 멈추고 한참 정면을 바라보더니 뒤를 돌아보고 감격어
린 소리로 외쳤다. "동무들! 저기가 달뜨기요. 이제 우리는 지리산에 당도했소." 거산(巨
山)의 모습이 강 너머 저 쪽에 나타나 있었다. 가까운 곳은 선명한 푸르름이고, 멀어져
감에 따라 보라색으로 변하고, 아득한 정상은 신비로운 빛깔 속에 안겨 있었다. 달뜨기
는 지리산의 초입이다. 남부군은 드디어 그 긴 여로를 겪어 목적한 곳 지리산에 들어선
것이다. 수백의 눈동자가 일시에 그 신비로운 웅봉(雄峯)으로 빨려들어갔다. '아아!'하는
탄성이 대열 속에서 바람 소리처럼 일었다. 여순병란 이래의 빨치산들이 마치 고향을
그리듯 입버릇처럼 말하던 달뜨기가 아닌가. 박태영으로서도 감회가 없을 까닭이 없었
다. 그는 '지리산에 가면 살 길이 열린다'라고 한 이현상의 말과 '과연 지리산에 가면
살 길이 있을까'라고 쓴 홍행기의 탄식이 뒤범벅 된 감정으로 넋을 잃고 지리산을 바라
보았다."
(퍼온글 )


석대능선을 걸으며 달뜨기능선에 비친 못찬 보름달이 비추어준다.  

모레가 추석이라고
이틀

지나면  둥근달을 비추어 주겠노라고

 그리고

지금 걸어가고 있는 분들의 희망이 전이된다. 

누가 등떠밀러 가라면 가겠는가.  

누가 억만금을 준다면 걷겠는가

그냥

지리능선이 좋아 태극모양을 닮아보려 걷고 있는지 모른다.                                 
                        

 

 


   **석대산 지나 무덤 봉우리마다 무덤....

 

 

 

 

 

 

 

 

 

 **석대산을 지나자 첫 번째 어두움속의 무덤이 몇기가 모여있다. 

 


 

 


**315봉에 오르자 또 무덤이 있다.


우린 그 무덤가에 앉아 귀신씬나락 까먹는 소릴하고 있었다.
구이신 : 밤에 잠도 안자고 뭣들 하냐?
mt주왕 :  귀신씬나락까먹는 소릴하고 있습니다.
100두님 : 캄캄한 밤에 귀신씬나락 까먹을 수 있나요?
mt주왕 : 밤에 까먹는 소리가 더 요란해 좋습디다.
요물 : "에웅"

 

 

 

 

 

 

 

망해봉에 또 무덤이 있다.


구이신 : 오면서 밤을 얼마나 많이 주었길래 나를 다 주냐?
요물 : 그리운산님 보살피랴,  구이신님 몰래 밤줍느랴 디지는줄 알았습니다.
mt주왕 : 누야,  귀신씬나락 까먹는소리 하지 마이소
구이신 : "밤맛이 좋군" 밤귀신은 말도 한덴다.   그리운산님을 보살피기는,  그리운산님이 요물을

            보살펴야겠더군

 

 

 

 

 또 있고

 

 

 

 

 

한참 지나자 또 무덤이 있다.


(봉우리마다 무덤이 있고 또 그냥 무봉에도 있다.)
구이신 : 이노무 태극남강꼬리는 구이신들의 모임이 있다.
mt주왕 : "귀신씬나락 까먹는소리 하지 마이소"

 

 

 

 

 

왕봉산에 또 무덤이 있다.


새벽에 왕봉산에 오르니 귀신씬나락 까먹는 소리도 끄친다.
구이신 : (그리운산님에게 귀에 대고 사알짝 소곤소곤하는 소리 왈)
         내가 여기까지 잘 모시고 왔소.   걷는 성의가 괘씸하여 모시고 왔소.
그리운산님 :   고맙습니다.   구이신님 저 이제 지리산 왕복종주 다시는 안해요.
구이신 :  이보다 조금 더 긴 진양호 어떨까?
그리운산님 :  귀신씬나락 까먹는 소리 하시지 마세요.  

 

 

 

 

 

 

 

 

 

 

     **포옹

 

석대산에서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있는 인도길따라 내려서니 와우님과 장태관님 펄펄 끊여놓은 라면냄새가 코끝에 닿는다.   

아삭아삭 소리나는 배가 배를 채우며 한잔의 막걸리와 포개어진다.  


수양산-덕두봉을 걸은 신현철님과 망해봉에서 내려오신 그리운산님과 진한 포옹을 한다.
아마도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두분의 무박태극왕복 선후배 사이로 우리는 모른다.  

얼마나 진한 마음의 껴안음인지 알 수가 없다.  

 

언제나 먼 길의 승리자를 만들기 위해 걸어가는 본인의 인내도 옆에서 지켜보는 우리들도 같이 포옹을 한다.  

왕봉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남강의 물은 새벽을 열면서 더 진하게 흐르는가 보다.  

 

 

해도 일어나려 한다.   

그리운산님의 힘찬 발걸음을 축복하러 오는가 보다.
한병의 샴페인과  순간 찰라의 화려한 폭죽이

그리고

원없이 걸었던 96시간의 장한 모습이 왕봉산과 포옹을 했다.

 


 

 

 

 

 

 

 

 

 

 

 다음엔 100두님 차례 연습중

 

 

 

 

 

그리운산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2006.10.10 15:45
▲사니조아▲
^길이 있으되 걷는다^...
두분 정말 대단하십니다.
축하드립니다.

무릉객님과의 만남도...
직접 그리신 요물님의 사진은 항상 설명,해설이 부가되어야 이해가???

좋은하루^^^
2006.10.10 15:51
배종철
어딘지 감은 잘 오지 않지만 함께하시는
분들의 정겨운 모습이 너무 좋아 보입니다.
어떤 산보다 무덤이 많아 혼자 산행하면 아마
귀신이 나올것 같네요. ㅎㅎㅎ
늘 좋은 우정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2006.10.10 18:02
거미~
"정말로 축하 드립니다"
정작..무덤옆에 누워보면 편하다고들 말하던데요...ㅎㅎ
대단들 하십니다
왕복을여??

2006.10.10 19:21
계백
추석명절 잘 지내셨습니까? *요물*님!!

하늘이 열리고 이땅에 처음으로 나라가 세워진 개천절날 대단한일을
해내신 *요물*께 기립박수를 보냅니다.
저도 태극종주를 햇던 기억이 있으나 2박3일간으로 조금은 여유로왔는데
무박은 저는 꿈도 꾸지 못할 한계에 도전하여 성공하셨으니 대단하다 할 수 밖에....

산행을 끝내시고 축하받은 자랑스럽 모습이
환상적으로 아름다워 행복해보여 산행 함께 한듯 감동적입니다.

이어가신 산행길에서 많이 웃을 수 있기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2006.10.10 20:45
진맹익
요물님,,
대단한 분들의 대단한 산행에 시덥잖은 목자가
참으로 대단하게 보고 갑니다.
반가운 주왕 성님도 보이고 하니 더 좋습니다.
아니 그래도 초저녁 청솔님이 폰으로 주왕 성님과
모임이 있다고,,,
다시한번 축하드리며 건강 빕니다.
난테 드림,,
2006.10.10 22:50
유순이
요물님 오랫만입니다
추석 명절은 잘 보내셨죠
참으로 대단한 분들의 산친구의 우정이랄까 보기가 아름답습니다
그렇게 대단하신 분을 만나 몇마디 주고 받은 짧은 순간
뒤를 따르는분이 무릉객님이군요
요물님의 산행기를 읽을때마다 느끼는 어쩜 그렇게도 감동을 주는지요
그리운산님과의 진한 고행에 축하드립니다
2006.10.11 22:14
saiba
요물님!
으흠.. 좀 특이한 산행기 같습니다!
으시시한~ 사진의 연속... 산님들도 넘 대단하신 것 같구요...
플랭카드를 보니 기가 파악 죽는 듯한 느낌이 ㅎㅎㅎ
산에 살다가 산에서 한평생을 보내 실 것 같은 대대산님들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2006.10.12 00:57
산모퉁이
다녀 오신 산들이 어딘지 잘 감이 안 잡힙니다.
수양산에서 더 남쪽 부근인가 생각이 드는데...
무박태극왕복종주... 요물님께서 언젠가 하시고 산행기를 올리시지 않으실까 예상을 해 봅니다.
산꾼들의 진한 우정의 모습에 경의를 표하며 즐산 이어가시길 빕니다.
2006.10.12 12:10
느린★공명
요물님! 반갑습니다.
늦은 인사지만, 추석연휴 즐거이 보내셨는지요?
귀한분들과 발걸음하여 뜻 깊은 산행이었군요,
긴∼여정에 모두 추카드리며,
늘 건강하시고, 즐산길 빕니다.......((^L^))
2006.10.13 21:55
무릉객
잠시만남으로 훌쩍 헤어져 너무 아쉬웠습니다.
그리운 산님과 함께 떠나시는 뒷모습이 너무 짠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지리산의 한 자락에서 우연히 요물님을 뵐수 있었다는 사실이 참 신기하더군요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지리신령님의 깜짝 선물이었나 봅니다.
가슴이 따뜻했던 산님들과의 만남 오래 기억에 남겠죠
이제 어느 산길에서 그냥 지나쳐갈 염려는 없어졌으니 산을 떠나지 않는 한
또 반가운 만남을 갖게 되겠죠 ...
건강하시고 살아가는 날의 감동과 기쁨 늘 함께 하소서...

 

 

3번 나누어서 했던 나홀로 지리산 태극종주 마지막 출정길에서  그리운 산님과 동행하게 되었다

당시 태극을 닮은 사람들 이란 등산 동호회의 고문으로  전국적인 유명인사였던 그리운산님은

딸래미가 사법고시 패스한 기념으로  편도 100km에 이르는 지리산 신태극 능선길  왕복종주길

에 올랐다.

200km 험한 산길을 잠을자지않고 이어서 왕복 종주하는 철인 대장정 길이었다.

그게 인간으로 가능할 수 있을까?

내가 잠자며 3회 나누어 걸었던 그 길을  편도가 아니라 왕복으로  무박 종주했다.

그의 왕복  마지막 코스 독바위- 웅석봉 구간을 같이 걸었다.

걸으면서 졸던 그와 함께....

그리고 웅석봉에서  요물님과 MT 주왕님을 만나게 되었다.

한국의 산하까페에서 거친산행과  산행기로 함께 교류하며 필명을 드날리던  얼굴 없던 산친구들...

우연히 요물님의 산하산행기가  검색되어  그날의 감동적인  산행이 떠 올랐다.    

 

 

동부능선의 가을노래 

 

 

 

태극종주세번째이어가기(2006년10월3일)중산리-천왕봉-웅석봉

 

가을날씨 청명하고 바람 좋은 날

한낮에는 무더웠음

 

03 :30 : 중산리 매표소

04 :24 : 망바위

04 :50 : 법계사

05 :40 : 개선문

06 :12 : 천왕봉

06 :40 : 천왕봉 출발

07 :00 : 중봉

07 :54 : 전망바위

08 :13 : 식사후 출발

08 :20 : 하봉

08 :46 : 국골사거리

09 :24 : 쑥밭재

10 :10 : 진주독바위

10 :35 : 새봉

10 :40 : 전망바위

11 :53 : 새재

12 :25 : 서왕등재 (약 30분 식사)

12 :55 : 식사 후 출발

16 :25 : 도토리봉 헬기장

16 :50 : 밤머리재 (약 30분 휴식 및 식사)

17 :20 : 식사 후 출발

18 :00 : 웅석봉 가는 길 헬기장

18 :44 : 왕재

19 :30 : 웅석봉

20 :20 : 헬기장 , 어천 갈림길

21 :50 : 1001번 도로 

 

 

진주가는 길

조용히 다가 온 가을과 차가운 새벽공기가 가슴을 흔들었습니다.

숙제처럼 남겨진 태극종주와 지리산의 가을

이젠 떠날 때가 되었음을 다시 돌아 온 계절과 울리는 가슴이 말해 줍니다.

 

하늘이 열린 날 지리산 동부능선으로 난 가을의 들창을 열어 젖히기로 했습

니다.

혼자 떠나고 싶은 가을 입니다.

 

진주에서 중산리로 들어 가는 막차는 9시 10분 입니다.

귀성차량에 막히지 않는다면 밤 10시에 중산리에 있을 테고 그렇지 않으면

진주에서 하룻밤 자야 합니다.

오늘밤 지리산에 들지 못하면 내일은 태극 마지막 구간을 마무리할 길일이

아닌 셈입니다.

지리 신령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천왕봉의 단풍을 보고 한신계곡으로 내려설

생각 입니다.

 

업무를 마치고 이어달리기 하듯 마눌에게 도시락을 건네 받고 서둘러 산청으로

출발합니다.

기름 값 절약 하려고 마눌차를 몰고 가는데  떼어다 붙인 GPS가 작동을 하지

않습니다.

다시 돌아 갈 수도 없고 잘 못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게 생겼습니다.

 

19시 40분에 산청 시외 버스 터미널에 도착 했습니다.

주변 골목에 서둘러 차를 파킹하고 터미널에 도착하니 진주 가는 버스가 한

대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가 타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차가 떠나니 너무 순조로운 이어달리기에

내일의 태극그리기 최소한 참가상은 따 놓은 당상 입니다.

이제 여행길이 여유로워 집니다.

30분 정도 소요되는 진주에서 막차를 놓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저녁식사 할

시간까지 생겼습니다.

 

시내가 다소 막혀서 진주에는 20시 23분에 도착했습니다.

일단 배가 고파 돼지국밥 집에 앉았습니다.

서울에서 근무할 때 가락동에 할아버지가 끓여내는 돼지국밥 맛이 짱이었습

니다.

그리고 보면 돼지국밥이 너무 오래간만 입니다.

돼지국밥이 불러낸 빛 바랜 시간 속에 머무는 그 오래된 기억을 들추어 내며

터미날이 보이는 식당에서 혼자 밥 한 그릇 후딱 비웠습니다.

 

중산리 가는 길

일정에 차질이 없다는 생각과 나른한 식곤증 그리고 버스의 규칙적인 흔들림이

잠을 불러 냅니다.

중산리에는 10시 30분이 넘어서 도착했습니다.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1시간 30분이나 걸린 셈 입니다.

 

중산리에서는 나와 같이 배낭을 맨 사람과 함께 덩그러니 남겨졌습니다.

낮에는 몰랐는데 서늘한 바람이 불어가는 중산리의 밤은 적막하고 을씨년스럽

습니다.

천왕봉의 가장 가까운 베이스 캠프 중산리는 기대했던 관광지의 화려한 네온

불 빛 대신 불켜진 두개의 슈퍼와 민박 간판만이 을씨년스러운 어둠 속에 조용

히 빛나고 있습니다.

 

아래 민박집은 방이 다 차버렸고 윗집에 투숙을 했습니다.

혹시 현금이 부족할까 봐 카드로 하렸더니 카드가 되질 않습니다.

3시 30분에 중산리 매표소를 통과하면 천왕봉 일출 시간을 맞출 수 있습니다.

중산리의 낯선 지붕아래서

핸드폰 알람을 3시에 맞춰 놓고 잠자리에 듭니다.

4시30분부터 등산을 허락한다지만 무조건 세시 반에 통과해야 합니다.

 

중산리의 새벽

어김 없이 새벽 3시에 알람이 울립니다.

4시간을 자고서 마주하는 지리산의 청정하고 차가운 새벽공기는 아직 혼돈에서

깨어나지 않는 정신을 번쩍 일으켜 세웁니다.

쏟아질 듯 맑게 빛나는 무수한 별들을 바라보며 칠흑의 어둠에 쌓인 길을 올라

갑니다.

적막한 그 길 위로 불 빛 두 개가 따라 옵니다.

천왕봉을 오르고자 중산리의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 입니다.

 

실강이를 각오 했지만 순순히 매표소를 통과 시켜 줍니다.

시계는 정확히 예상한 새벽 3시 30분을 가르키고 있습니다.

2시간 30분 정도는 어둠에 쌓인 재미 없는 산길을 올라야 합니다.

너무 자주 오르던 길이라 보이지 않아도 보며 오르는 것과 진배 없습니다.

함께 통과한 몇몇을 제치고 선두에 나서고부터는 등로에 불 빛이 사라졌습

니다.

둥근 불 빛 하나로 천왕봉으로 난 가장 빠른 길을 걸어 올라 갑니다.

 

30~40분쯤 갔을까?

아래에서 말소리와 함께 불 빛이 다가 옵니다.

평상적인 나의 산행속도를 따라 잡을 수 있다는 건

막강한 전투력의  준족들을 의미하는데

어둠을 가볍게 스쳐 지나는 고수들이 궁금해 집니다.

젊은 친구들이었습니다.

거친 산행길 임에도 마음가짐과 준비부족이 느껴지는 행장으로 보아 출중한

공력의 산님들은 아닌 듯 한데 젊은 혈기로 너무 들이대는 초반 스퍼트 같아

걱정스러웠습니다.

한참 후 산길에 주저 앉아 휴식하는 그들을 내가 다시 지나치고 끝내 태양이

떠오르는 천왕봉까지 그들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천왕봉 가는 길

법계사에서 누군가 오라 합니다.

울산에서 2시 45분에 올라온 일행들이려니 하고 지나치려니 격앙된 목소리로

다시 불러 세웁니다.

국립공원 관리공단 직원이라 하면서 몇 시부터 올라왔냐고 묻데요

3시 40분 쯤이라고 이야기하자 표를 보여달라 합니다.

사간상 아마 매표도 안한  도둑산행 이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표를 보여주니 중산리에서 너무 일찍 통과 시켰다고 투덜거리면서 그냥 올라가

라고 하더군요.

매표소에서 못 가게 막아 어둠을 타고 넘었으면 점잖은 체면에 망신당할 뻔

했습니다.  

시원한 물 한 잔 마시고 갈 길을 재촉합니다.

 

5시 40분을 지나자 천왕봉 0.8.km 이정표가 나타납니다.

새벽 5시  45분 동쪽하늘에 붉은 여명이 번져가더니 6시경 날이 밝아 옵니다.

마지막 깔딱 고개는 역시 힘이 들었습니다.

천왕봉에는  06시 12분에 도착했고 태양은 정확히 20분에 떠 올랐습니다.

 

 

천왕봉(중산리에서 2시간 42분)

동네 뒷산 같습니다.

혼자 올 때면 지리 산신령님은 언제나 멋진 일출의 감동을 준비해 주시니 가슴

의 울리는 지리산 병이란 이제 다시 들어오라는 신령님의 목소리인지도 모르겠

습니다.

4년 연속해서 마주하는 천왕봉 일출에 올해는 벌써 태극종주 길에만 두 번째

입니다.

또 빌었습니다.

자연을 향한 열정과 탄탄한 체력을 오래도록 간직케 하시고 언제나 살아가는

날의 기쁨과 희망이 충만케 하소서

 

마치 처음 내가 일출을 대할 때처럼 진한 감동을 먹은 한 친구가 있습니다.

배낭을 메고 미동도 않은 채 떠 오르는 태양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한 젊은

친구 혼자 산을 올랐고 대원사로 하산할거라고 했습니다.

그가 부러웠습니다.

내 젊은 날은 산과 멀어 있었습니다.

대학시절엔 지리산 근처에조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고 30대 후반에야 겨우

천왕봉에 올랐습니다.

 

직장 후배가 묻더군요

30대로 다시 돌아간다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40대 마무리한 백두대간 종주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더군요

체력을 길러서 백두대간 종주를 하라고 했습니다.

세월이 많이 지나고 난 다음 산이 나의 가장 위대한 스승임을 알았습니다.

 

젊은 친구와 몇 마디 나누고 능선 위로 쏟아지는 눈부신 태양을 바라보며 가을

속으로 떠났습니다.

혼자 휘적휘적 떠났습니다.

 

중봉가는 길

가을은 기다리다 지쳐 벌써 능선을 내려가려 합니다

붉은 일출의 장관과 현란한 능선의 단풍들

어둠의 계곡을 지나고 지리산의 새벽이 풀어낸 가을 풍경을 바라보며 중봉으로

가는 길 넘치는 태양의 에너지와 깊고 넓은 지리산의 정기를 온 몸에 받아서

인지 다시 발걸음은 가벼워 지고 가슴은 벅찬 감동으로 부풀어 오릅니다.

 

중봉(천왕봉에서 20분)

중봉에서는 카메라를 설치하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눈부신 태양은 다시 떠 올랐고 이슬을 머금은 풀잎은 보석처럼 빛나며 바람결

에 흔들리고 있는데

지리산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지금 막 지나가고 있는데

다시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첩첩이 흐르는 산릉 위로 가을 햇살이 축복처럼 쏟아지고 먼 골짜기에는 호수

인 듯 구름을 머금고 있습니다.

 

하봉 가는 길

대원사 갈림길에서 휴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쪽문으로 연결된  금지구역으로 가는 길을 들어서려니 하봉쪽은 요즘 단속이

강화되어 벌금 50만원을 각오해야 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되겠지요

이젠 진짜 혼자 입니다.

뒤늦게 중봉을 내려선 몇몇마저 대원사 쪽으로 가고 이젠 단풍나무 숲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혼자 하봉으로 갑니다.

하봉 가는 길엔 벌써 낙엽이 뒹굴고 있습니다.

성급한 잎새들은 가지에서 떨어지지도 않은 채 시들어 가고 바람은 눈부신

살조차 아랑곳하지 않고 우수수 잎새를 떨구어 냅니다.

 

전망 좋은 바위 단풍나무 그늘에 앉았습니다.

혼자 보기 너무 아까운 가을입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단풍이 달려가는 능선과 골짜기를 바라보며 아침식사를

하는데 구름 에 앉은 기분 입니다.

세상에 이런 멋진 레스또랑이 또 있겠습니까?

자연이란 이름의 아름다운 웨이츄리스가 주는 최상의 서비스를 받으며 전망

좋은 스카이라운지에서 마주하는 럭셔리한 성찬 입니다.

고원의 시원한 바람과 격렬한 체력소모가 미각을 돋우어 오감이 함께 즐거운

시간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사방은 절벽이고 절벽에 기대인 나무들 위로 가을이 한창 입니다.

여기가 무릉도원 입니다.

식사 후 조금 더 가니 하봉 옆으로 길이 나 있고 우측 길로 조금 가자 하봉을

오르는 로프가 매어져 있습니다.

 

 

하봉 (중봉에서 1시간)

하봉에서 지나온 길을 바라 봅니다.

단풍이 흐르는 능선을 따라  고원의 가든이 보이고 지나온 중봉과 천왕봉이

보입니다.

중봉에서 식사시간을 20분 제외하면 한 시간 정도 소요 되었습니다.

잠시 풍광을 감상하다 봉우리 위에서 오른 쪽으로 난 길을 따라 진행합니다.

 

황량한 계절을 준비하는 나뭇잎이 아름답고

낙엽의 냄새가 들추어 내는 지난 추억이 따뜻합니다.

먹은 것 없이 배부르고

가진 것 없이 충만 합니다.

 

나뭇잎이 물들어 가고 또 바람에 날리어 가는 외로운 산길

그 속에 잠시 머물고 배회할 수 있는 것 만으로도 행복합니다.

그냥 사라지고 잊혀지는 것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걸 보면

흘러가는 우리 인생도 참 아름답고 소중한 겁니다.

 

 

국골사거리 (하봉에서 26분)

국골사거리에 도착 했습니다.

처음 만나는 표지판 입니다.

여기 까지는 별 문제 없이 제대로 온 셈입니다.

국곡사거리에서는 새재 방면으로 우측 능선으로 하강 해야 합니다.

앞 쪽으로 길이 나 있기 때믄에 태극종주하는 사람들은 조심해야 할 구간중의

하나 입니다.

잠시 길목에 앉아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인적이 없는 깊은 산중에 홀로 앉아 누리는 이 황홀한 고독이 살아가는 날의

기쁨을 일깨워줍니다.

홀로 떠나는 여행길의 호사

바로 이 맛 입니다.

 

 

쑥밭재 (국골사거리에서 35분)

국골 사거리에서 한참을 내려가다 보면 높이가 떨어지지 않는 능선을 옆으로

바라보고 가는데 마치 알바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계속 되는 내리막이라 골짜기로 잘 못 내려서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걱정

안 해도됩니다.

한 참을 가다 능선을 돌아가는 듯한 길은 다시 마루금으로 올라 섭니다.

아직 붉은 아침햇살이 축복처럼 나뭇잎 위에 앉아 있습니다.

허리쯤 오는 산죽길을 지나서 한 오분 쯤 가다  열댓명 정도 식사를 할 수

있는 공터를 만나면 쑥밭재라고 보면 됩니다.

머리 위 나뭇가지에 표지기가 몇 개 달려 있습니다.

국골 사거리에서 약 30분 소요됩니다.

중봉과 밤머리재 사이에서 유일하게 물을 보충할 수 있는 곳입니다.

가만히 들어보면 물소리가 들립니다.

우측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있습니다.

작은 길을 내려가면 또 넓은 공터가 나오고 거기서 곧장 가면 흐르는 작은

곡의 개울물을 만나게 됩니다.

아직 얼음이 녹지 않은 물통에 물을 채우고 쑥밭재로 돌아와 잠시 휴식합니다.

 

 

독바위 가는 길

산죽길 사이에 반석이 앉아 있습니다.

3~4분 가면 머리까지 오는 정글 같은 산죽군락을 지나야 합니다.

산죽길을 지나면 집채 만한 바위가 떡 하나 앞 길을 막고 있습니다.

그 앞에는 수호신 인 듯 오래된 고목나무가 버티고 있고 길은 좌측으로 올라

갑니다.

오름길을 오르니 또 산죽 군락 입니다.

반골들

계절의 변화를 거부하는 건 청솔과 산죽들입니다.

사람이나 나무나 다 비슷합니다.

변화를 수용하고 따라 가는 사람이 있고 자신의 소신과 고집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계절에 앞서 먼저 잎새를 물들이고 잔 바람에도 낙엽을 떨구는 나무 같이 성질

급한 사람도있고 무서리에도 붉은 잎은 떨구지 않는 느긋한 사람도 있습니다.

다 제멋에 살아 갑니다.

 

마루금이 아닌 산등성이 길 그리고 우거진 산죽들이 산행 길을 답답하게 하더

니 오름길 바위에서 처음 시야가 트입니다.

지나 온 능선 길이 뚜렷이 드러납니다.

하봉을 내려서며 국골사거리를 따라 흐르는 능선을 버리고 지능선으로 갈아

탔습니다.

본 능선은 고도를 유지하며 흐르다 가파르게 능선이 끊어져 버립니다.

산죽지대 오름 길에 바위가 다시 길을 막거든 우측 바위에 올라 경치를 감상

하면 됩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인 지리산의 고요함 속에 내가 있습니다.

 

처음 반대편에서 오는 부부 산님들을 만났습니다.

외딴길에서 코 앞에서 인기척을 내니 화들짝 놀랍니다.

새재에서 올라 왔다는데 진주 독바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진주 독바위 못미쳐 뒤 따라 오는 누군가 있습니다.

사진 찍고 풍경에 취해 내 발걸음이 밀리긴 했지만 그래도 늦은 걸음은 아닌데

가볍게 추월하는 걸 보면 대단한 내공 입니다.

잠도 자지 않고 종주를 하시는 분

태극을 닮은 사람들의 그리운산님이라고 했습니다.

그 산악회에는 태극종주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고

사실 오늘 동부능선 초행길에도 그들의 지도와 자료를 가지고 종주 중입니다.

처음엔 왕복종주를 하는지 생각도 못했습니다.

너무 반가웠는데 갈림길에서 저는 등로에서 벗어나 있는 진주 독바위를 올라

보아야 했기에 아쉽게도 헤어졌습니다.

 

 

독바위

로프를 타고 독바위에 올랐습니다.

지나온 능선이 올려다 보이고 일대의 조망이 한 눈에 들어 옵니다.

답답한 가슴이 후련해 집니다.

 

들개처럼 거친 산야를 떠돌면 세상의 독기와 화가 빠져 나가는 걸 느낍니다.

날카롭게 곤두선 신경과 충혈된 두 눈이 부드러워지고 세속의 냄새가 탈취됩

니다.

거긴 무색의 바람이 실어 나르는 낙엽 마르는 냄새

철 지난 매미의 울음소리 그런 것들만 있습니다.

 

로프 달린 절벽을 지나 꿩이 한마디 푸더덕 날고 나이 드신 부부 산객을 만났

습니다.

어디까지 가냐고 묻고 앞서간 그리운산님과 말씀을 나눴는지 잠을 안자고 태극

종주를 한다고 혀를 내두릅니다.

그런 사람을 두자로 줄이면 짐승이라고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새봉(진주 독바위에서25분)

이정표가 없이 갈래 길이 있습니다.

새봉에서 그리운산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훌쩍 앞서간 줄 알았는데 속도가 좀 떨어진 듯 합니다.

능선의 흐름이 바뀌는 가장 조심할 구간 입니다.

새봉에서 직진하지 말고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새봉을 지나 전망바위가 나오고 바로 아래로 로프구간이 이어 집니다.

 

새재 가는 길

동행이 생겼습니다.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함께 길을 갑니다.

새재에서 올라온 산님을 만났습니다.

그리운산이란 이름만 듣고도 영광이라며 기념사진을 요청 합니다.

오늘 함께하는 길동무가 꽤 유명한 분이신 모양입니다.

 

다음에 만난 젊은 산객은 그리운산님 이름을 듣고 놀라면서  태극무박왕복종주

중이란 사실까지 알고 있다 합니다.

그리운산님은 한국 최초로 무박 태극종주를 완성하신 분으로 2004년엔 웅석봉

에서 덕두산에 이르는 73km구간의 무박 왕복종주에 도전해서 78시간 만에 성공

함으로써 왕복 태극종주의 역사를 쓰신 분이었단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오늘은 태극을 닮은 사람들이 올바른 태극마루금으로 새로 개척한 웅석봉에서

진주남강의 왕봉산에 이르는 루트까지 포함한 장장 왕복 200km의 신태극구간을

무박으로 도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간의 능력과 잠재력 참으로 무한하고 그 용기란 참으로 대단합니다.

제가 사는 대전에도 지리산 무박 태극왕복종주를 성공하신 고수들이 몇 분

계시는데 사실 만수무강에 지장이 있을까 봐  함께 산행을 하지는 않습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해서 수 많은 사람들에게 태극의 꿈

을 심어준 장본인이 오늘 저의 길동무가 되었습니다.

 

저야 3~4 구간으로 나누어 덕두봉에서 웅석봉을 연결하는 태극그리기를 하고

있지만 지리산의 주능선 종주를 한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무박 태극왕복종주가

어떤 고통과 인내를 요구할 것이란 걸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새재(새봉에서 1시간 18분)

새재에 내려서면서 억새가 많이 보입니다.

아랫쪽에는 평화로운 새재 마을이 보입니다.

모르는 사이에 해발은 많이 낮아져 있고 가을을 노래하던 나뭇잎들은 홀연히

사라져버렸습니다.

푸른 여름의 숲과 정오의 이글거리는 태양이 아직 끝나지 않은 여름의 이야기

를 들려줍니다.

 

싸리나무가 길가에 도열해 있습니다.

잠시 싸리나무 마른 잎이 던져주는 추억에 잠기며 길을 걷다가 새재의 나무

그늘에서 잠시 휴식을 합니다.

 

그리운 산님을 응원하는 태달사 사람들은 밧데리가 떨어질 지경까지 끊임없이

격려의 화벨을 울리고 또 일부는 힘을 실어주기 위해 이미 이 근처까지 와

있는 모양입니다.

 

 

서왕등재(새재에서 32분)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지 마중 나온 일행들을 만나기 위해 앞서서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그리운산님을 따라 가기가 버겁습니다.

3일을 안 잔 사람이 저럴 수가 있다니.

그는 전생에 야생마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외고개에서 일행들을 만나기로 했는데 지나쳐 버리고 서왕등재 습지에서 잠깐

의 해후를 했습니다

서왕등재로 가는 갈림길에서 우측길을 놓치고 능선 마루금을 따라 직진하는

바람에 왕등재 숲을 우회하여 산비탈로 다시 서왕등재 습지로 내려섰습니다.

어쩌면 습지를 거치지 않고 능선 마루금를 따라 길을 잡는 것이 제대로 된

태극길일 것 같고 생태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고원의 습지를 보존하는 길이

될 것 같습니다.

 

습지를 지난 능선 그늘에서 그리운산님과 식사를 합니다.

제겐 아직 남아 있는 김밥과 빵이 전부였는데 덕분에 고원에서 상추와 싱싱한

야채를 먹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밤머리재 가는 길

태양 빛이 뜨거운 능선에 올라 지나온 길과 가야 할 능선 길을 바라 봅니다.

참으로 먼 길을 걸어 왔고 날은 이렇게 뜨거운데 아직 가야 할 길이 아득합

니다.

원래는 밤머리재에서 오늘 구간을 마무리하고 내일모레 밤머리재에서 수양산

까지 종주를 마무리할 생각이었는데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어차피 덕두봉과 웅석봉을 연결하는 태극그리기가 저의 목표였던 터라 욕심을

내서 오늘 웅석봉에 제 발도장을 찍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면 지리산 태극종주도 3구간으로 나누어 마무리 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3시간 쯤 야간산행을 하게 되겠지만 동행이 있으니 별 문제될 것도 없고 시간

상 내일 출근에도 그다지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내일 출근만 안 한다면 내친김에 그리운산님과 함께 새롭게 그려진 태극 마루

금을 따라가고 싶은 욕심까지 생깁니다..

아무리 날씨가 어떤들 잠 안자고 3일째 산행을 하고 계신 분도 있는데 새벽

까지 4시간 잠 잘 잔 사람이 무슨 엄살을 떨 수 있겠습니까?

 

엄청나게 큰 배낭을 지고 비지땀을 흘리는 홀로산님을 한 분 만났습니다.

밤머리재에서 시작했다는데 저렇게 무거운 짐으로 태극길을 따라 갈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서왕등재에서 약 1시간 40분 거리에 있다는 동왕등재는 어딘지 모르고 지나

쳤습니다.

밤머리재를 두어시간 남겨 놓은 거리에서 다시 젊은 산님을 한 분 만났습니다.

삼십대 초반에 산에 매혹되어 호젓한 오지 산행의 멋에 혼자 취할 수 있는 그

에게서 사람좋은 편안함과 여유로움이 배어납니다.

잠시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졌습니다.

 

밤머리재에서 먼거리 까지 태극을 닮은 사람들 회장님이 마중을 나오셨습

니다.

외로운 자신과의 투쟁을 하시는 그리운 산님에게는 많은 후원자들이 있었습

니다.

고독한 인간의 한계에 서있는 사람과 그 고통과 힘겨움을 보듬고 어루만져

주는 그들의 각별하고도 끈끈한 유대가 가슴을 따뜻하게 합니다.

박카스 한 병과  한조각의 사과에 실린 정이 새로운 의지와 힘을 북돋워

주었습니다.

 

김정모 회장님을 만나고도 몇 개의 봉우리를 더 넘어서야 도토리봉에 도착했

습니다.

도토리봉 헬기장에는 젊은 친구들이 사진기를 설치하고 그리운산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밤머리재에서 기다리는 태달사회원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기념촬영을 하기

위해 여기서 기다렸다 합니다.

원님덕에 나발 분다고 저도 같이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천왕봉을 올라 단풍나무 숲을 지나 여기까지 왔으니 무릉객의 태극이어가기도

자축할 만한 의미 있는 여행 길 아니겠습니까?

 

 

밤머리재 (서왕등재에서 3시간 40분)

밤머리재에서 올라온 다른 대원과 뜨거운 포옹을 하고 역사적인 밤머리재에는

그렇게 내려섰습니다.

기다리던 대원들의 박수와 열열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넓은 공터엔 간이매점이 있고 차가 몇 대 주차해 있습니다.

단지 그리운산님의 길동무였다는 이유로 너무 융숭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대단한 고문님과 회원들입니다.

차가운 맥주 한잔을 마시고 시원한 물에 머리를 감고 몸을 씻었습니다.

식사를 하고 산꾼들의 따뜻한 정으로 원기를 북돋우며 전열을 가다듬었습니다.

누군가 또 건네주는 한 병의 박카스와 우루사 하나로 벌써 마음은 웅석봉에

도착해 버렸습니다.

백두님이 동행으로 나섰고 다시 태달사 대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웅석봉을

향해 힘차게 진군합니다.

 

 

웅석봉 가는 길

853봉을 올라 치면서 가파르게 내려선 도토리봉을 바라 봅니다.

내가 지나온 그 먼 산길은 도토리봉 등 뒤에 가려져 보이지 않습니다.

체력의 한계를 벗어나 마음으로 즐길 수 없는 산행을 안 하는 저로서는 오늘

산행이 무리일 지도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길 여유마저

빼앗아 갈 체력적인 부담은 없습니다.

 

웅석을 4.3km 남겨둔 오름길에서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지나온 능선 너머로

떨어지는 석양을 바라 봅니다.

인생의 이치를 깨달은 철학자의 얼굴입니다

세상의 영광과 기쁨 그리고 온갖 탐욕과 집착이 가져다 주는 미망과 혼돈을

벗어버린 평화로운 풍경 입니다.

은은한 황혼의 빛이 던지는 고요한 체념으로 마음은 바람 없는 호수의 물결

처럼 평온해집니다.

어둠과 등을 맞댄 하늘의 붉은 황혼이 나그네의 발길을 숙연하게 합니다.

항상 곁에 있어 줄 것 같았던 젊음이 떠나고 인생은 많이도 흘러왔습니다.

욕심껏 살아갈 날은 자꾸 줄어 가고 세월이 흐름은 더 빨라 갑니다.

언젠가 저 붉은 황혼처럼 조용히 스러져 갈 짧은 인생입니다.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그 해가 떨어지는 데도 갈 길이

남았습니다.

태양이 강열한 빛을 거두고 나서 다시 가을 길을 되찾았습니다.

바람은 소슬하게 불어오고 보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달이 희미하게 떠오르는

길을 따라 갈 길을 재촉합니다.

 

산속의 어둠은 더 빨리 찾아 옵니다.

힘 없는 매미의 울음 뒤로 휘영청 달이 떠올랐습니다.

머리에 등불을 걸었습니다.

혼자라면 초행길에 길을 잃을까 노심초사하여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 텐데 길동

무가 있으니 제법 밝은 달을 바라보며 산바람을 목에 걸고 가는 길이 낭만적

이기도 합니다.

어둠이 내리고 얼마 되지 않아 왕재에 도착하고 웅석봉에는 낭만적인 달 빛을

걸고 어둑한 길을 한 시간쯤 더 걸어서 도착했습니다

 

 

웅석봉(밤머리재에서 2시간 10분)

산청과 어천마을의 불빛이 보입니다.

만세!

이곳이 꼭 한번 와보고 싶었던 지리산 동부능선의 끝자락 입니다.

어둠에 가려서 지나온 유장한 산릉이 보이지 않아 아쉽지만 16시간 만에 도착

한 머나먼 여정의 마지막 고봉 이었습니다.

처음 웅석봉에 발자국을 남긴 무릉객의 감동과 태극 종주 마지막 관문에 도착

한 그리운산님의 절절한 감회로 웅석봉은 그렇게 들떠 있었습니다.

백두님은 기다리는 일행들에게 그리운산님의 웅석봉 도착을 알리고 우리는 한

쪽의 사과를 나누고 기념촬영을 하면서 그렇게 웅석봉의 영광을 자축했습니다.

밤바람이 후련하게 불어 가는 웅석봉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기억으로 남았

습니다

 

1001번 도로로가는 길

웅석봉에서 가파른 하강과 거친 산행로는 수면부족과 극단적인 피로에 쌓여

있는 그리운 산님께는 몹시 위험한 코스였습니다.

바위가 달려든다는 그리운산님을 백두님이 밀착 경호를 하고 앞서거니 뒤서

니 하면서 조심조심 하산을 하느라 시간소요가 많았습니다.

 

어천 내림길이 있는 헬기장에 도착했습니다.

어천으로 내려가려 했는데 그렇게 훌쩍 헤어지는게 아쉬워집니다.

마지막 관문에서 어렵게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하는 그리운산님이 걱정되기도

해서 대원들이 마중 나온다는 1001번 도로까지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어둠에 쌓인 아쉬운 길입니다.

새로 개척한 길이라지만 사람의 발길이 제법 있었던 것처럼 길의 형태가 뚜렷

합니다.

아래 마을의 불 빛을 보면서 몇 개의 봉우리를 넘고 가파른 비탈길을 몇 번

내려 서면서 슬며시 산행길이 지겨워 질 때 쯤 사람의 소리와 불 빛이 올라

옵니다.

 

1001번 도로 (웅석봉에서 2시간 20분)

한적한 도로가 떠들석하게 내려섰습니다.

태달사의 많은 회원님들이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그리운산님은 아직 갈 길이 남았고 저에겐 18시간 20분이 걸린 대장정의

마무리였습니다.

한국의 산하에서 글로 만나 뵈었던 여장부 요물님과 유명하신 주왕님을

만났습니다.

가끔 글을 올렸을 뿐인데 무릉객이란 이름을 기억해주시고 반가운 친구처럼

맞아 주시니 너무 기분좋은 달밤 입니다.

밤머리재에서 인사 나눈 주왕님과는 1001번 도로에서 서로를 알아본 셈입니다.

새삼 인터넷의 위력과 산을 연결해 주는 의외의 인연이 놀라워 집니다.

지리산 신령님의 선물이었습니다.

가슴벅찬 해돋이를 허락하시고 불타는 동부능선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 주었

습니다.

고요한 일몰과 수 많은 귀인들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태극을 닮은 사람들은 그렇게 끈끈하고 정이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살 좀 빼는 날인가 했는데 넘치는 정을 담은 막걸리와 감자탕에 너무

많은 것들을 먹는 통에 오히려 체중증가를 걱정해야 할 판입니다.

별이 빛나던 밤에 맛보았던 태달사표 감자탕과  따듯한 인정들을 잊지 못할

겁니다.

 

30분쯤 휴식하고 다시 떠나는 그리운산님과 뜨거운 포옹을 했습니다.

그의 성공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그의 고독한 투쟁이 너무 안스

럽고 다시 떠나는 그의 뒷모습에 코끝이 찡해 옵니다.

그리운산님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했습니다.

밤길의 동행을 자처하는 백두님, 주왕님, 요물님이 있어 다시 마지막 혼신의

힘을 낼 수 있으리란 믿음으로 안도하며 마지막 작별의 손을 흔들었습니다.

짧은 만남이었는데 가슴엔 쌓인 것이 많았습니다.

 

3번에 걸친 멋진 태극종주 추억이었습니다.

가을이면 다시 붉은 지리산이 그리워지고 달 밝은 밤이면 그리운산님의 외로운

싸움과 백두님의 노랫소리가 기억날 겁니다.

 

늦은 시간인데도 산청까지 태워다 주신 김정모회장님과 어총무님 덕분에 너무

편하게 대전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피곤을 느낄 법한데도 지리산에서 받은 무한한 정기와 감동 그리고 산을 사랑

하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 때문인지 졸음도 훌쩍 달아나 버렸습니다.

당일 산행기록으로 가장 긴 시간 18시간 20분의 산행과 가슴 따뜻한 귀향은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그렇게 태극 길을 이어가고 낭만적인 가을 여행을 갈무리 했습니다.

 

 

후기

명절을 지나고 모처럼의 긴 휴일의 증후군으로 산행기를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의 기쁨과 감동을 정리하고 싶은데 몸도 마음도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오랜 게으름 끝에서 또 한 주가 훌쩍 지나가면 그 멋진 추억의 시간을 그냥

덮어버릴까봐 애써 책상머리에 앉아 보았습니다.

 

동부능선 태극종주 길은 대자연의 감동이 조용히 가슴을 흔드는 길이었습니다.

그 길을 혼자 걸어가면서 살아가는 날의 기쁨에 젖었고 다시 찾아갈 아름다운

여행길의 기대와 희망에 부풀었습니다.

주능선을 중심으로 끊어져있던 서부능선과 동부능선의 태극을 성공적으로 이어

가며 많은 추억을 쌓고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초행 길이 걱정스럽긴 했지만 일단 떠나고 나니 문제될 것도 없었습니다.

태극 동부능선 길에서 등로는 뚜렷했고 길을 잘못들 만한 구간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주의구간)

중봉에서 능선을 따라 가다가 입산통제구역 표지판과 대원사 쪽 치발목 산장

갈림길을 만나면 통제구역으로 직진해야 합니다.

하봉 앞에서 길이 좌측과 우측으로 갈라지는데 우측으로 가면 하봉으로 오르는

로프가 있습니다.

하봉에는 표지석이 없습니다. 조망을 감상하고 우측 등로를 따라 진행하면

됩니다.

하봉에서 25분 정도 가면 국골사거리 표지판이 나타납니다.

직진하지 말고 우측 새재 방향으로 진행 합니다.

능선의 고도가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골짜기로 내려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길을 잘 못 잡은 것 같은 의구심이 들기도 하는 구간 입니다.

진주 독바위 갈림길에서 20여분 가면 새봉입니다.

이곳에서 능선의 흐름이 바뀝니다.

갈림길이 있는데 직진하지 말고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됩니다..

그리고 좀 햇갈리는 구간이 서왕등재 습지 입니다.

아래 안부에서 우측으로 진행하여야 다리를 건너 습지를 가로 질러 가는데

가다 보니 능선을 따라 진행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4군데 말고는 크게 헷갈릴 만한 구간이 없을 것으로 생각됩

니다.

가끔 선답자의 표지기를 확인하고 능선의 흐름을 보면서 진행하면 큰 무리가

없습니다.

일단 떠나고 나니 지리산의 가을도 만났고 태극이어가기도 완성했고 길동무도

만났습니다..

 

                   

어느 산모퉁이에서 홀연히 만났던 좋은 인연들에 감사합니다.

그리운산님은 200 km의 대장정을 성공리에 마무리하고 멋지게 태극종주의 역사

를 다시 쓰셨습니다.

무한한 인간의 능력과 그리운산님의 고독한 투쟁에 다시 한 번 고개숙여 경의

를 표합니다.

제가 지리산에서 만난 나이든 젊은이를 생각하면서 

젊음에 대한 제가 좋아하는 사무엘 울만의 "청춘" 이란 시를 한 번 옮겨 봅니다.

 

 

젊음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다.

그것은 장미빛 뺨도, 빨간 입술도 아니며 나긋나긋한 무릎도 아니다.

그것은 의지와 상상력이며 활력이 넘치는 감성이다.

그것은 삶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이다.

젊음은 용기가 비겁함을 누르는 것을 뜻하며, 안이함을 떨쳐버리고 모험에

나서는 것을 뜻한다.

이런 성향은 때로는 20살의 청년에게서가 아니라 60살의 노인에게서 발견되기

도 한다.

나이만 먹는다고 늙는 것이 아니다.

이상을 버릴 때 우리는 늙는 것이다.

나이는 피부에 주름살을 만들지만 열정이 식어버리면 정신에 주름살을 만든다.

걱정과 두려움과 자기불신은 용기를 꺾고 정신을 죽여 버린다.

60살이든 16살이든 사람의 가슴 속에는 경이로움에 끌리는 마음, 미지의 것에

대한 꺼지지 않는 호기심, 그리고 삶이란 게임에서 느끼는 기쁨이 있게 마련

다.

당신과 내 가슴의 한복판에는 무선전신국이 있다.

그 무선전신국이 인간과 신에게서 오는 아름다움,희망,환호,용기 그리고 힘의

메시지를 수신하는 동안은 당신은 젊을 것이다.

안테나가 내려지고 당신의 정신이 냉소의 눈(雪)과 비판의 얼음으로 덮히면

당신은 나이가 20살이라도 늙은 것이며, 안테나가 올라가 있고 그 안테나를

통해 낙관의 전파를 수신한다면 당신은 나이가 80살이라도 젊은 채로 죽을 수

있을 것이다.

 

 

무릉객의 산행길을 따뜻하게 배려해 주셨던 김정모회장님 어총무님,백두님,

요물님,주왕님 그리고 가슴 따뜻한 사람들 태극을 닮은 사람들의 모든 회원님

들께 감사드립니다.

언제 다시 산에서 만나 그날의 행복한 추억을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슴이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

산이란 그렇게 아름다웠고 산을 닮아 가는 사람들은 그렇게 푸근했습니다.

가을의 바람과 지리산의 멋진 풍경이 가득한 기쁨을 몰고 왔던 그날처럼 아직

돌아보지 못한 수 많은 아름다움을 찾아서 다시 떠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