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행기

등잔밑이 어둡다 - 구병산

조사장 정원과 전원주택 

 

 

 

 

뒤풀이

 

 

 

 

 

 

몸만 늙어간 게 아니었어
세윌에 낡아간 기억이라니. .

7
월은 조사장과 천둥산 산행을 계획했었다.

제사인지 모르고 있다가 강화에서 제사 지내고 새벽 한 시에 대전 도착한다고 연락을 했다.

내가 무리하지 말고 출정은 다음으로 하자고 했는데 지난달에도 같이 산행을 못했으니 이번에는

꼭 같이 가야한다고  했다.

ㅎㅎ 사실 지난 달 조사장과의 출정일이 안 맞았던 탓에 난 가은산의 인생풍경 속을 거닐 수 있었다 .

지난 번 매직이 한토에서  민주지산 가는데 신청 안하시냐고 전화를 했다.

같이 가서 술 한 잔 치자고

시원한 날 각호산에서부터 민주지산,석기봉, 삼도봉으로 이어지는 후련한 능선과 알탕 그리고

이후의 뒤풀이가 구미가 당겼지만 조사장과의 선약으로 초대만 고맙게 받았었다.


일단 강한 의지를 보이는 조사장 ! .

우린 시간을 좀 늦춰  가까운 구병산을 타기로 했다.
가끔 산행 후 술 한잔 치기로 할 때 조사장이 집에서 가까운 구병산을 제안하기도 했는데 나는 늘

일축했던 터였다.

가까이 있는 산 인데다, 조망도 별루고, 산행 코스도 짧다.

그리고 괴산에는 가지 않은 산이 아직 많다.


조사장이 두 달 만 인데 시간 괜찮으면 술도 한 잔 치면 좋겠다 해서 그 동안 미뤄 두었던 구병산에

가기로 했다.

조사장 집에서 40분이면 떡을 치는 곳이다.

구병산은 젊은 날 내 체력이 강철 같았던 시절 충북 알프스 종주하면서 그 능선을 걸었고 마눌과

100대 명산 6번째로 올랐던 산이다.

 

7시에 조사장 집에서 만나 30분 남짓한 시간에 추차장이 있는 구병산 관광지에 도착했다.

그 옛날 국도변 적암휴게소가 구병산 관광지로 변했고 그 옆이 속리산 휴게소라 고속도로를

타고 왔으면 휴게소 안에다 차를 파킹하고 산행해도 무방하다.

 

보은에서 구병산 관광지를 대대적으로 개발해서 주차장도 엄청 넒은데 우리 차 말고는 차가

한 대도 없다.

산행을 끝나고 내려와서도 마찬가지였다.

거짓말 같지만 5시간 동안  차가 한 대도 늘어 나지  않았다.

지난 번 순창군에 이은 보은군의 참혹한 관광 투자 실패 였고 한국 지방 중소도시의 현주소 였다.

듣던 바 대로 눈 앞에 보이던 KT 통신탑도 철거 되었다.

우성사료 계열사 대전 방송국(TJB)에서 철거된 통신탑아래 부지를 사들였다고 들었다.

나중에 그 곳에 애견 공원과 캠핑장을 조성할 계획이라는 루머를 전해 들었는데 이 곳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좋은 선택은 아닐 듯 하다.

 

신선대  가는 길

7 40분부터  등로를 오르기 시작하는데 회사에서 계속 전화가 왔다.
농장에 사료가 떨어졌는데 포천 영업소 재고가 없단다.
희소 품목은 거래선 주문 안 들어 오면 재고 확보 안 하는데 주중에는 손 놓고 있다가 갑자기

수송해 달라고 난리를 친다.

그래도 농장사장  소들 밥 굶는다고 사정사정 한다니 또 우짜나 ?
출근중인 후배한테 주문수정 부탁하고 공장 생산팀에 긴급 조정부탁해서 처리하고 겨우 한숨

돌리다 보니 조사장은 꽁지도 보이지 않는다.

헐떡이며 가는 길에 또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공장 벌크사료 생산팀에서 ..

경원 용차 기사가 포천영업소 품목을 잘못 싣고 내려가서 포천에 보낼 물량이 없다고

~~

그 애기는 내가 맡고 있는 양쪽 영업소 모두의 주말 제품 공급 차질을 의미한다.

그거 해결한다고 또  전화기 붙들고 통화하랴 거친 오르막을 오르랴 하다 보니 조사장과 점점

거리는 더 멀어졌다.

조사장 벌써 신선대에 도착 했것다.

 

신선대 가는 길에는 조망이 하나도 없다.

그래도 어렴풋한 추억에 남아 있는 거친 등로의 기억에 비하면 길은 뚜렷하고 좋은 편이다.

다만 하염없는 오름길이라 여름에 땀 한 번 거하게 쏟는 극기 훈련장으로 나무랄 데 없는

코스다.

별다른 준비없이 갑자기 치고 오르는 통에 몸이 좀 놀래긴 했겠지만 몸은 지난 비등길의

힘겨움에도 잘 적응을 했었다.


그 옛날 백두대간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다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잠도 들깬 멍한 머리로 된비알을 치고 오르던 날들..

장딴지에 쏠린 체중으로 전해지던 고단한 대간 길의 무게와 알집이 터질 것 같은 팽팽한

긴장과 묵중한 통증 !

그건 삶의 무게였다.

하지만 주눅들지 읺고 움츠러 들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던 내 삶이고 나의 고뇌였다.

직은 빗방울이 모여 강물을 이루고 바다로 나가듯

한 발 한 발 더 높고 더 먼 길로 나아가던 발걸음은 되풀이 되는 도전과 성취의 기쁨을

자양분으로 자가증식을 해가며 백두대간을  왕복 종주의 위업을 이뤄냈다.

 

격주마다 10시간의 거친 산행을 즐겁게 소화 하던 시절이었다.
출정하지 않는 주말에도 체력관리를 위해 7시간 산을 타고 출정 3일전에는 술자리도

피했다.
백두대간 종주당시 장사 송자장은 늘 선두에서 날라 다녔는데 그는 평소에도 앙 발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다녔다.

그런 열정의 소유자였던 그도 중도에 종주를 포기했고 45명중에 마지막까지 완주한

사람은 20명이 채 되지 않았다.
6일 근무시절 일요일 하루만의 일정으로 소화 했던 위업 이었고 비가 오던 눈이 오던

상관없이 정해진 36회 출정계획표에 따라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마무리한 컴퓨터 일정이었다.

그런 산대장도 만나기 힘들었고 그런 치열함을 감당한 산 친구들도 지금은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단 한 번의 오차가 있었다.

백두대간 종주의 피날레는 천왕봉 일줄로 화룡점정을  찍고 싶어서  동료들과의 일정을

포기하고 나 홀로 1주 전에 지리산 마지막 구간 백두대간  길에 올랐다.

그리고 36구간 1년  6개월에 걸친 대장정을 마치고 홀로 천왕봉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표석을 부여 잡고 그렇게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2003 1026

6 30)

산우들은 그 다음주 빗속에서 백두대간 종주를 마무리 했다

그리고 백두대간의 감동이 세상의 무수한 아름다운 풍경 속으로 내 발걸음을 이끌었다.

정맥길을 아우르고 한국 오지 아름다운비경의 속에 나의 발자국을 새기며  그렇게 새로운

세상을  향한 나만의 여정과 지도를 만들었다.

 

 

신선봉
우여곡절끝에 신선봉에 도착하니 조사장 웃통을 훨훨 벗고 네이키드 신선이 되어 있다.

조사장  빨딱 서있는 등로와 함 누가이기나 해보자 하면서 올라 왔을 터라 계속되는

오르막에 무더웠던 여름을 다 벗어 던지고 걸친 것 없는 몸 위로 거칠 것 없는 바람을

맞고 있었다.

오장 육부 까지 훝어 주는 너무 시원한 바람이다.

그래 이 맛이야!
탈속의 바람

내가 옥바람이라고 하던 그 바람이 거침 없이 불어주었고 형제봉 가는 충북 알프스

능선에는 운무가 오락가락하고있다.

지금까지의 고생은 홀연히 사라지고 신선이 된 듯 기분은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조망 또한 멋지다.
내가 조사장에게 구병산의 재발견이라고 얘기했다.
구병은 결코 내게 폄하당할 산이 이니었다.

뻐근한 산 맞네 !

어쩌면 그 옛날 좌구산처럼 중앙 무대 조폭이 지방 내려 갔다가 동네깡패한테 호되게

얻어 터지고 오는게 아닌지 몰라 !

구병산 가는 길
우리는 충분히 휴식하고 구병산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2km .
거칠다 해도 1시간 30분이면 가능할 테니 예정 시간 5시간은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 같다.

거친 능신길은 우수에 차고, 시원해서 이상적인 산행이었다.

853
봉 가는 길 능선길은 폐쇄되었다.
보아하니 안전한 우회 길은 너무 재미가 없을 듯ᆢ
내가 누구여?
나 망덕봉과  둥지봉 비등 댕겨온 무릉객이여 !

 

나는 출임금지 팻말이 선명한 능선 길을 당연한 듯 걸어 올랐다.

능선의 기억이 전혀 새롭다.

예전에 한 번은 이길로  걷지 않았을까 ?
하지만 마천루 처럼 솟아 있는 장성 절벽 길은 생소했지만 긴장과 스릴이 넘치고 풍경은

예상치 못한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나는 한 마리 매가 되어 인적 없는 바위 길을 날아오르며 속리의 또다른 신선계를 내려다

보았다.
낡은 동아줄과 오랜 세월 비바람에 풍화된 날카로운 절벽들은 원시의 자연인 듯 있는

그대로의 참 모습이었다.
마치 늙어가는 인간처럼 구병산도 자연스럽게 늙어가고 있다.
마눌과 온 때는 절벽 길을 타지 않았겠지만 그 날도 벌써 20년이 다 되어 간다.


낡아가는 구병산은 사람이 많이 찾지 않는듯 했다.

멋진 산이지만 속리산이라는 걸출한 산에 가린 2등의 비애.

도시 가까이에서 아직 안전시설이 보강되지 않은 야생의 날것 같은 능선 길을 걸어 볼 수

있다는 건 행운이었다.
세상의 무수한 거친 산길은 인간의 욕심에 의해 성형되고 거세되었다.
구병의 걸출한 능선의 풍경을 유보하고 있지만 오르고 내리는 길이 너무 거칠고 힘이

들어 오히려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는 듯했다.

장성 같은 암벽 길에서 사고가 자주 나서인지 그 멋진 등산로를 아얘 대 놓고 폐쇄했다.
등산 인구가 더 줄고 있으니 구병산은 세월에 아랑곳 없이 다시 야생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

조사장도 이 길을 걸을 생각이 추호도 없을 터이니 내 친구 중에 이 길을 같이 탈만한 친구가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가장 높은 바위 절벽을 로프를 잡고 오르는 찰라 또 전화가 왔다.
사전 주문이 없었던 급한 양어 거래선의 토요일 출고를 처리해 달라는 양어 영업 부장의 전화ᆢ
오늘 아얘 날을 잡은 거야, 날 잡겠다는 거야? !”

 

절벽 위에서 업무처리하는 무릉객. !
무릉도인 오늘 무진장 바쁘다 바뻐 !
산타랴! 일하랴 !

두 갈래 길에서 나는 어김없이 능선 길은 탔다.
구병산 공식이다.
출입금지 팻말은 엄청 멋진 풍광지대의 준말이고
능선과 안쪽갈림길은 힘들어도 재미있는 길과 평범하고 안전한 길의 갈림길이었다.

 

853봉이후 다시 능선길을 따랐는데 나는 그 능선 길을 올라치면 구병산 정상일 줄 알았다
오름길 중간에 오버행 바위 난관에 봉착했다.

가느다란 로프 한 개만 늘어져 있는데 발 디딜 틈이 마땅치 않아 그 로프에 의지해 내 체중을

끌어 올리 기가 쉽지 않다.

두 번의 실패로 무리한 등정에 시간만 허비하는 상황에서 또 오기가 발동했다.

내가 뉘귀여 ?

나 망덕봉과 둥지봉 비등 댕겨온 무릉객이여 !

 

끊어질까 걱정이될 정도로 로프가 너무 가늘었다.

거꾸로 위가 튀어나 온 바위 위로 오르려면 이 로프 하나에 체중을 매달고 팔 힘으로 몸을 끌어

올리며 발 디딜 곳을 찾아야 하는데 손이 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

도저히 맨 손으로 불가능하여 장갑을 꺼내서 끼고 스틱은 접어서 배낭에 넣은 다음 강하게

로프를 휘감아 움켜 잡고 심호흡을 하면서  날렵하게 오버행 바위 위로 올라섰다.
설악 비등 때도 늘 느끼는 것이지만 젊은 날 암벽 등반 교육도 받고 등산 학교도 졸업할 걸..

암벽을 탔으면 내인생의 시야도 더 넓어지고 가보지 못한 험준하고 높은 곳의 아름다운 풍경

도 많이 누릴 수 있었을 텐데….


어렵게 봉우리에 올랐다.
구병산이라고 돌무더기 워에 나무 표석이 써 있는데 조사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 있는겨 ?”
전화를 때리니 자기는 지금 구병산 정상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나보고 되려 어디냐고

묻는다.
~~
사위를 둘러보니 앞에 봉우리 하나 더 있는데 그곳에서 붉은 색 옷을 입은 조사장이

전화를 받는 모습이 보인다.
내가 선 봉우리의 표석을 자세히 보니 구병산이란 표기 아래 백운봉이라고 괄호로 표시

되어 있다.
구병산정상은  300미터 쯤 앞에 있는 더 높은 봉우리다.

 

구병산
우린 그렇게 구병산 정상에서 1시간 30분 만에 재회했고 태양이 구름 속을 들락날락하는

출중한 뷰의 정상 레스토랑에서 멋진 성찬을 즐겼던 것이다.

정상에 서 있는 이정표를 보니 서원리에서 구병산에 이르는 새로운 등로가 떠오른다

 

서원리에서 구병산 정상 7.7키로
능선 2키로  그리고 신선대 하산 3.5키로
13.2키로  제법 뻐근한 산행이 될 수 있겠다.
서원리와 구병산관광지간 택시비는 약 2만윈한다고 보면 다음에 조사장과 이 코스를 한 번

타도  좋겠다. 충북 알프스 구간 종주인 셈이다. 

우린 정상 오름길을 되돌아 내려와 기지국 길로 내려섰다 그 길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게 없었다.
아니 어쩌면 좀더 퇴화되어 문명의 흔적이 지워지고 있는지 모른다.
지그재그 길을 따라 내려오다 계곡으로 내려서고 발이 불편한 너덜 길을 진행하다 보면
급기야 길의 모습이 사라진다.

조사장은 길을 잘못 들었다고 걱정한다

나는 희미한 옛 추억이 떠올라 맞는 길이라 얘기해주었고 긴가민가 하고 걱정할 때

눈에 익은 철계단이 나타나 정상 등로를 내려가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
우린 그렇게 문명에서 벗어나 야생의 산길을  걸어 다시 속세로 귀환했다.

큰 비가 내리는 때는 참으로 위험한계곡이 될 것이다.

사람이나 산이나 막연한 첫인상이나 편견으로 얕잡아 보아서는 안된다는 걸 구병산은

알려 주었다.

 

우린 보은 뱃들 사우나에서 1시간 반 가량 사우나를하고 조사장 단골 빠 동식이네

생물 전문식당” (구 삼식이 구이) 에서 새로 들어온 놀래미 회에 붕장어 탕으로 거하게

뒤풀이를 했던 것이다.

몸이 축나면 공식처럼 우린 붕장어 탕으로 축난 몸을 보한다.

소주3병 맥주 1
준수하게. …

 

돌아와 구병산 기록을 확인 해보니  마눌과는 2007 7 28100대명산 6번째로 올랐다
그 때는 정수암 갈림길에서 853본 전방 능선으로 올랐고 그 곳에서 구병산으로 진행했다.

그날 우리 하산 길과 같은 코스로 하산 까지 통산 6시간 걸렸는데 마눌한테는 3시간

30분 코스라고 애기하고 갔다가 6시간 이 걸리는 통에 마눌이 고생을 많이 했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단거리 코스면 그 정도면 충분할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100대 명산 가지 않는다고 할까 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후에도

씩씩하게 잘 다녀서 함께 백대 명산 주유의 기쁨을 누렸다.

17년의 세월이 흘러 갔으니 마눌은 거친 산을 내려 왔고 그 만큼 세월이 더 흐르면

평지 길도 힘겨워 할 지 모르겠다.


내 젊은 날 구봉산 능선을 지나가는 충북알프스 종주 첫 구간은 2004 9 26일 추석

명절을 이용해.마무리 했다.

서원리에서 형제봉을 찍고 피앗재를 거쳐 만수리까지 23.6키로 대장정은 10시간 30

걸렸고 제2구간은  10 19일 피앗재에서 신정리 까지 20.3키로 구간은 11시간 20분에

걸쳐 종주했다.
백두대간 종주가 끝나고 체력이 한참 물오른 시기였고 산 타고 내려와서 음식을 먹으면

접시 까지 씹어 먹을 만큼 소화력이 왕성한 시기였다.

 

산행일 : 2024년 7월 6일 토요일 

구병산 관광지 - 신선대 -853봉 -백운봉 -구병산 -기지국 하산길-원점  
소요시간 5시간 30분

날씨 : 흐히고 시원하다 햇빛 

동행 : 조사장  

 

 

                                                                                          2024년 7월 6일 토요일 

'산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 덕유 종주  (0) 2024.08.15
목멘 그리움 그리고 지리산의 선물  (0) 2024.07.21
채계산 유람기  (0) 2024.06.30
신선골주유기 ( 둥지봉-가은산)  (0) 2024.06.29
동네 친구  (0) 2024.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