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현자들…
떠나간 수 많은 사람들
떠날 준비를 하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부디 잊지 마라…
네 인생의 레시피에서 절대 시간을 빼 놓아서는 안된다는 걸
맛 있는 음식도 뜨거울 때 먹어야 제 맛이 나고
아름다운 풍경도 가슴이 울 때 돌아 보아야 한다
바로 오늘이다.
네 가까이에서 묵묵히 너의 행복을 지켜 온 많은 것들에게 감사를 표하기 좋은 날은.
네 가슴 속에 간직한 사랑을 보여주기 좋은 날은….
출발
비가 올지 모른다.
젖는 게 두렵지는 않다.
비에 관한 추억이 많아서 이 나이에도 떼로 하는 허가 낸 날궃이는 재미 있기 까지 하다.
가장 뼈아픈 건 비안개에 기리어질 아름다운 풍경들이다.
하루 종일 전국 비라면 1000고지 능선은 지라산인지 계룡산인지 분간이 안된다는 거.
뒤늦게 합류 하기로 했다.
장마전선은 좀 내려 갔고 오후에 갤 거란 희망도 떴다.
무엇 보다도 이 날을 지난 달부터 비워 놓았다는 거.
"올라 오라시는 거 맞아 !"
일단 가기로 결정 했으면 지리산 신령님께 맡기면 된다.
그동안 쌓인 정이 있으니 답답한 가슴이라도 텅 비워 주시겠지 ….
천왕봉 가는 길
선두그룹에 따라 붙었다
초반에 스퍼트를 내야 먼 길에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숲과 하늘이 점점 어둑해지더니 너무 빨리 빗님이 오시기 시작했다.
빗줄기가 굵어져 방수포를 씌우고 대포 카메라를 넣었다.
우산은 꺼내지 않았다.
나무처럼 온 몸으로 비를 긋기로 했다.
갈 길이 먼데 우산 쓰고 넘어갈 고갯길은 아니라 …
로타리 산장에서 비를 그으며 점점 거세지는 비가 잦아들기를 바랬지만 쉽사리
그칠 비가 아니였다.
선두 네 명은 가던 길을 재촉했다.
갑자기 무막지한 폭우가 퍼 붓기 시작했다.
등산로가 작은 도랑으로 변하고 우뢰와 같은 천둥이 내려치고 불빛이 번쩍인다.
산허리에 걸린 비 구름이 한꺼번에 비를 다 쏟아내는 모양이다.
마치 산신령님이 “이래도 올라 올래?”하시는 것처럼…
마음먹고 몸으로 받아 내기로 하니 사정없이 후려치는 비에 야릇한 전사의 쾌감이 인다.
"그래 오랫 만에 푹 한번 젖어보자"
물 무게 만큼 무거워 지지만 시원하고 후련하니 가파른 길이 오히려 덜 힘들기도 하다.
양동이처럼 퍼부어 대니 회장님이 회군을 고민해 보야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분위기가 살벌하기는 하지만 의외의 발언에 내심 놀랐는데 저녁놀님도 은근히
동조하는 눈치
헐~.
그래 회장님이니 책임감이 있겠다.
근데 아즉 무릉객을 잘 모르시네
비에 젖는 걸 걱정했으면 애초에 오지도 않았을 거구
등산경력 40년에 산전수전 공중전 수중전에 게릴라전과 대테러전 까지 마스터한
백전노장 무릉객이 비 맞으며 나대던 지리산이 한 두번 일까 ?
재작년 여름엔 조사장하고 둘이 무릉계곡에서 거친 비등으로 청옥산에 올라 그 심한
장대 비를 고스란히 맞으면서 두타산 찍고 원점회귀 했고, 올해는 망덕봉 비등과
비 온 날 가은산 둥지봉 벼락바위 까지 넘었는데...
고지가 바로 저긴데 여기까지 올라와서 다시 돌아 간다고?
날씨가 어찌 변할지도 모르는데 비 쫄딱 맞고 패잔병처럼 패주한다는 건 말도 안되고
무릉객 사전에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닝닝하고 단조로운 삶에서 모처럼 만난 스릴과 서스펜스 그리고 다이나믹하고 스펙
타클한 모험의 시간이데....
"노 프러브럼 ! & 괜 찮아유 !"
“이 날 오라신 이유가 있겠지요 …"
"다들 돌아가시려면 가세요 !"
"전 혼자라도 갑니다."
ㅎㅎ 할배가 혼자 간다는데 우짜것어 ?
젊은 것들이 따라와야지 .
그래도 이런 날씨에 국립공원 산행만큼 안전한 데도 별로 없다.
폭우는 항상 통제 대상이지만 지리산이 위험한 건 산꾼들 보다는 계곡 피서객들 얘기다.
이런 폭우와 천둥 번개가 계속된다면 몸을 가릴 수목이 없는 천왕봉과 제석봉 관목지대가
가장 위험할 것이다.
근데 산 꼭대기에서 벼락 맞아 죽을 사람이면 다른 어디에서든 죽을 것이다.
그렇게 사랑해서 지리산 신령님이 데려 가신다면 할 수 없지라 ! 워쩌것어?
두 번 째 위험은 탈진과 체온 저하 !
사전 경고도 없이 내 몸이 오늘 갑자기 비맞았다고 보이코트하고 나서기야 하것어?
비를 흠뻑 맞아 고산의 체온 저하가 문제될 수는 있지만 그 땐 우비를 보온용으로
입으면 된다.
계속 퍼부어 대던 비는 고도를 높여 갈수록 다행이 그 줄기가 조금씩 잦아 들었고
가끔 수림사이 터지는 시야로 멀리 하얀 구름과 몽환의 산 안개가 흘러가면서
가슴도 다시 부풀어 올랐다.
바람은 산 안개를 이리저리 몰고 다녀서 기다리면 가끔 멋진 조망이 열렸다.
천왕봉 500미터 남긴 곳에서 등로는 자욱한 안개에 휩싸였다.
먼저 올라갔다 내려 오는 젊은 친구가 정상에서는 바람만 심하게 불고 짙은 안개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지리산 신령님 오늘 날 부르신게 아니었나 ?"
천왕봉
나는 다시 천왕봉에 올랐다.
이번에는 6개월 만이네,,,,
목멘 그리움 그리고 어머니의 가슴이자 내 마음의 성지.
백두대간을 마무리하던 날 붙잡고 꺽꺽이던 표석 옆에 그렇게 다시 서서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린 것이다.
안개는 자욱했지만 비가 그친 것만으로도 천만 다행이었다.
젖은 옷은 이미 다 말랐고 바람은 세차가 불었지만 그 결은 차지 않아 너무 시원하고
후련했다.
회장님은 횡하니 내려갔고 같이 올라 왔던 한 산님도 내려가고 천왕봉에는 우리 셋만
남았다.
“오늘 우리가 천왕봉 전세 냈네요 !”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다 보니 날씨가 조금씩 좋아졌다.
자욱한 산 안개는 거센 바람에 순식간에 모여 들었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도저히 벗겨지지 않을 거란 생각했는데 그 안개와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한 번씩
열리고 언뜻언뜻 조망이 드러나기도 하면서 반전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 했다.
“흐미 ~ 분위기 심상치 않는데 ….”
게다가 가끔 구를 사이로 햇빛이 고개를 내 밀기 시작했다.
"산신령님 오셨네 ! "
"저 왔어요 무릉객 !"
축제 !
관객은 달랑 세명.
지리산 천왕봉에서 바람과 안개와 구름과 태양이 보여주는 대자연의 퍼포먼스는 황홀했다.
지리산이 말했다.
“인생은 누리는 자의 몫이다.
신이 소맷부리에 감추고 있는 패는 아무도 모른다.
미리 예단하고 겁먹을 필요가 없다.”
저녁노을님이 내려가고도 산세상님과 둘이 대자연의 짧은 공연이 아쉬워 잠시 퍼질러 앉아
2막까지감상하고 나중에 올라 온 은둔 금석학 학자님으로부터 1800년대 천왕봉 바위에
새겨진 글씨를 소개받고 설명을 들었다.
숱하게 올라 온 천왕봉 바위에 그런 글씨가 새겨져 있는 걸 처음 알았다..
비가 와서 더 기억에 남을 산행길이었고 지리산신령님의 물싸다구 몇 대 맞고 몇 배로
멋진 선물을 받은 날이었다.
무릉할배 횡재한 날 !
장터목 산장에 기다리던 회장님과 저녁노을님 외에 온누리님,동산님을 만나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우리가 올라오고. 로타리산장에서 폭우가 심해지자 천왕봉 등산로가 전면통제 되어서 모두
아쉬움을 남긴 채 되돌아 갔다고 한다.
그 중 4명의 전사들이 통제에 굴하지 않고 국공의 눈을 피해 오고 있는 중이라고ᆢ
간발의 차이였다.
단지 몇 십 분의 차이로 갈린 운명이었다.
워낙 세찬 폭우라 겁나기도 했겟지만 그랴도 산신령님이 팽한 것도 아니고 국공들이 못 가게
한다고 돌아간 건 좀 아쉽다,
정말 멋진 풍경이었는데….
우야튼 .지리산 신령님은 오늘도 그렇게 무릉객을 그 품으로 받아들여 주셨다.
40명 일행중 10명만이 예정대로 백무동 계곡길로 하산했다.
그중 2명은 폭포길로 우회해서 천왕봉을 거치지 않았다.
목이님과 이슬방울님외1 은행나무님을 참샘에서 만나 뱃속이 찌릿찌릿한 시원한 맥주와 방금
해동된 황도 통조림 까지 얻어 먹고 하산하다.
얼마나 혼비백산 했으면 정상에서 먹을 생각도 못하고 다 가지고 내려 왔을까?
무릉할배 이래저래 개호강 하는 날 !
백무동을 얼마 남겨 놓고서는 슬금슬금 후미로 빠졌다.
비가 불어 계곡의 물소리는 우렁찼고 백무동 내 전용 무릉탕에서 빗물과 바람이 채 씻어
내지 못 세속의 진폐 까지 모두 씻어 낸 후 날개옷을 갈아 입고 환속하다.
빨래 끝 ~~~
7시간 30분 만이었다.
무릉할배 만세..
에필로그
이 만한 유희가 또 있으랴
단돈 3만 오천원 내면 풀서비스
하루 여행을 즐길수 있다.
편히 중산리 까지 가고 지리산 천왕봉을 넘어가면 백무동 계곡에서 기다리던 차가 태워서
대전 까지 데려온다.
잠잔다고 숙박비도 받지 않는다.
그것 뿐이랴 ?
아침 김밥주고 점심 떡주고 소맥 뒤풀이에 저녁식사도 제공된다.
오늘은 삼겹살 뒤풀이에 된장찌게 식사까지 하고 아크테릭스 손수건 까지 공짜로 받았다.
이즉 그게 다가 아니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여행길을 안내하는 가이드가 있고 각 코스별 안전지킴이들이 따라붙고
전체적인 일정을 안내하고 개인별 불편사항을 챙겨주는 도우미님도 있다
더 있다.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기쁨을 누리고 따뜻한 정과 후한 인심을 만난다.
할배가 누리기에 과분한 행복이다.
내 산악회는 코로나에 뿔뿔히 흩어졌지만 영리 산악회도 아닌 친목산악회가 이런 할배를
받아 들여 주는 것도 고맙지라.
ㅎㅎ
우야튼 말이 통하는 사람들 ~~
좀더 젊은 사람들 그리고 나이 들어도 여전히 짱짱한 노빠들을 만나는 건 즐거운 일이다.
2024년 7월 20일 토요일
동행사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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