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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2024 덕유 종주

 

기사 아저씨가 얘기하던 실종된 60대 후반 할미  -

참 아깝다  새벽 4시에 덕유산을 오를 수 있는  나와 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열혈 할미 

 

 

남덕유산 까지  8.1km  -  배낭은 무겁지만 날씨도 좋고 사브작 사브작 잘 가 보자    

 

 

곳곳에 거미줄  -  하지만 선답자가  걷어 내어 쾌적한 등산로  

 

 

드디어 할미봉이  보이고  

 

 

할미봉 전위봉  

 

 

벌써 지나 온 길은 아득하고.. 

 

 

등로 좌측 풍경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 서봉(좌측)과  남덕유산(우측)의 위용

이  멋진 길을 걸어보지 못하고생을 마감한다는 건  진짜 억울 한 일이여  

 

 

드디어 할미봉 도착 ! 👌😊

할미봉에서 휴식하고 있는 조강쇠     

 

 

나여 ! 무릉객  !

할미와 다시 만난 게  몇 년 만인가 ?   

2차 백두대간 때 아들과 같이 만났으니   9년 만일세  ! 

 

 

멋져부러 !    서봉 가는 길   

 

 

내가 야용하는 하산길  - 홀로 겨울 산행때  영각사에서 출발하여 남덕유 정상 찍고

서봉을 휘돌아 이곳으로 덕유교육원에 내려서면  대략 여섯시간  코스 

다음에는 역방향 산행이 좋을 듯 ...  

 

 

서봉 가는 길 - 길 가운데 떡 버티고 있는  할배 나무   

 

 

서봉 오름길 전망 좋은 레스또랑에서 식사 중인 부부 산님   

 

 

오늘 임자 만난 조사장   -  안나푸르나에 빛나는 조사장 너무 불쌍해 보이는 거 아녀?

인자 조사장  덕유산에 오기는 힘들 듯..  

 

 

운무의 조화 !

오늘 많이 도와 주시는 덕유 신령님 !.  

 

 

야호!   드디어 서봉 도착 !  😂😂😂

 

 

서봉 정상 - 아래 보이는 덕유 교육원...  

 

 

서봉에서 바라 본  운무에 가린 남덕유 정상...

저기 까지는 1.2km   

 

 

심기일전  조사장...  

 

 

서봉에 흐드러진 야생화들...  

 

 

남덕유에서 서봉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길 

 

 

서봉에서 남덕유 가는 길은 야생화 꽃밭 - 특히 인상적인 보라색 초롱 꽃 군락 지  

 

 

멀리 우측 능선 아래  우뚝한 할미 봉  ...  흐미 무거운 등짐 지고 멀리도 왔다.  

 

 

와우!  !   드디어 남덕유 산 정상 도착 ! 👍🤣💕

나 여기  셀 수 없이 왔구   앞으로도  1년에 한 번씩 오면  10 번은 더 오겠네..

고부기와 같이 본 새벽 일출이 정말 장엄했네 !. 

 

 

 

영각사 쪽 하산 길 ...  

 

 

가야 할 능선 길  - 저 능선을 따라 4.3km 더 가야 오늘의 목적지 삿갓재  대피소..  

 

 

가운데 음영진 높은 봉우리가 삿갓봉이고 그  아래가 삿갓재  -  흐미 살벌하이 ...  

 

 

뒤 늦게 올라 온 부부 산님이 선물한  원 샷...  

 

 

가슴이 울컥한 삿갓봉 ...  6년  만의 해후

2018년 9월  나 홀로 덕유 종주 때 만났던  삿갓봉     

 

 

 

삿갓봉에서 바라다 본 지나온 남덕유와 서봉 - 구름이 몰려 가고 있다....  

 

 

삿갓봉은  다시 오기 힘들 거 같아 이 풍경은 더  아쉽다..

 

 

삿갓봉에서 바라본 향적봉 가는 길  - 멀리 향적봉 

 

 

삿갓봉 표석 위에 앉은 고추 잠자리 ...  우린  동시대를 누리다 이제야  함께 만났군    

 

 

안녕 ! 남덕유, 서봉  그리고  삿갓봉 ..  

 

 

산상 만찬 !   - 고생 끝에 누리는 행복한 뒤풀이

다른 사람 나누어 주었으면  큰일 날 뻔 - 조사장과 둘이  오리고기 800g  + 버섯한팩 + 양파 2통

+ 고추한 봉  + 쪽파1단   + 소주  500ml  2병  완전   폭풍 흡입   

 

 

 

그렇게  낭만적인 산장의  저녁은 저물어 갔다.

 

  

 


할배 둘의 육구 종주 도전기  

                                                                24년   8월 9일   금요일 

 

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이다.

4월 셋째주 광복절 연휴를 이용하여 설악산 대청봉을 거쳐 수렴동으로 하산하는

혼자만의 산행 계획을 수립했다.

흐물거리며 녹아내리는 아스팔트처럼 무기력해지는 여름날에 한 번 쯤은 정신의

날을 바로 세워 야지.

그러고 보니 이번 여름은 무더위와 제대로 한 번을 맞짱 떠 본 적이 없다.

원거리 출정 일에는 흐리거나 비가 왔고 일정이 있는 날에는 근교 산을 새벽이나

저녁에 오르다 보니 무더위의 횡포와 만행(?)을 직접 겪어 보지 못했다.

지난 주 HIOF 친구들과의 수원 야외 회동 때야 비로소 극강해진 폭염의 위세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조사장 전화가 와서 8월 출정일을 조율하다가 설악산 홀로 산행에 관한 얘기를

했는데 조사장이 의외로 관심을 보였다.

근데 조사장이 차를 가져오면 이동거리가 멀어 금요일날 대중교통으로 올라와서

문막 호텔에서 자고 새벽 같이 내 차로 움직이던지 아니면 대전에서 고속버스로

강릉에 오면 내 차로 픽업을 해서 같이 산행을 해야 한다.

문막에서 1박하면 몰라도 대중교통으로 강릉에 오면 중간 수렴동 대피소에서 하루를

보내야 한다.

하지만 혼자 여행을 싫어하는 조사장이 대전 강릉간 홀로 왕복 여행의 시간 소요를

감수할 리가 만무했다..

 

이미 결론은 나 있는 상황에서 이리저리 생각을 굴리던 조사장이 덕유산 1박 종주를

하면 어떻겠냐고 훅 치고 들어 왔다.

내가 예전에 어젠가 둘이 덕유 1박 종주 한 번 하자고 얘기 했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허걱~ 가을도 아닌 이 폭염에  ?

덕유산이 가깝기는 해도 계곡이 아닌 능선 길을 무거운 배낭을 지고 30km 이상

걸어야 한다.

각종 장비에 물무게를 감안하면 거의 자해와 테러 수준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덕유를 홀로 종주한 건 2019 9월 달이었으니 5년 전이다.

5년전이면 그래도 팔팔  날 때 아닌가?

그 때 구천동에서 출발하여 삿갓재에서 하룻밤 유하고 전체 30km 거리를 16시간

만에 걸었다.

 

 

힘겨운 여정으로 일축하면서도 조사장 가자는 말에 한편으로는 귀가 솔깃하고 모험

가의  역마가 꿈틀거린다.

폭염이 쉴드를 친 올 여름은 다이나믹한 모험이 빠져 있었다.

 

글쎄요 금요일 산장이 자리가 예약되어야 갈 수 있지요 .  한 번 알아 보지요.”

그렇게 대충 마무리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그 다음 날인가 득달 같이 조사장 전화가 왔다.

금요일 산장을 예약했다고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육구 종주를 하잖다.

육구 종주?  !

육십령에서  무주구천동 까지   35 km

덕유 교육원에서 시작하는 것 보다 5km를 더 걸어야 한다.

5년 전 보다 더 무거운 등짐을 지고 하루  9시간 이상 씩 산을 타야 한다. 

우리의 계획대로 낭만적인 고원 페스티발을 위해서는 물 외에도 술과 고기도 등짐

져 날라야 한다.

설악산 등산을 하루에 끝내고 모텔에서 자고 돌아 오는 거와는 비교가 안된다.

거기다 설악은 명경지수가 흐르는 수렴동 계곡을 끼고 치자 향기를 맡으며 물처럼

흘러 내라는 계곡 산행이다,

무더우면 등산화만 벗고  계곡물에  뛰어들었다가 나오면 된다.

폭염에 맞짱 뜰 일명 "메기탕" 이란 비장의 카드가 있는 거다..

 

갑자기 착잡 해진다.

괜찮으까 ? 이 서슬 푸른 뜨거운 여름날에 ?

 

중간에 조사장 한테서 몇 번 전화가 왔다.

조사장은 새로운 여행길에 대한 흥분과 기대에 들 떠 있는 듯하다.

출발 당일 점심은 각자 간식으로 지참하고 모든 장비와 이틀간의 먹거리는 내가

일괄 준비하여 2등분 하기로 하고 조사장이 우리집으로 새벽 5 30분 까지 오는

것으로 일정을 확정했다.

나는 안면 있는 안성 택시 기사님과 통화하여 6 30분에 구천동으로 와줄 것을

부탁했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시작한 무모한 할배들의 모험은 그렇게 엉겹결에 추진되었고

그 날은 어김없이 다가오고 말았다.

 

D-1 

회사에서 좀 일찍 나와서 3 30분 버스를 탔다 .

고속터미날 이마트에서 준비물을 구입하여 집으로 돌아 오다.

 

배낭에 준비물을 채우고 물까지 2리터 넣어 등에 지어 보니 숨이 턱 막힌다..

저번 설날 한신계곡에서 천왕봉 치고 오를 때의 힘겨웠던 여정이 떠 올랐다.

산장에서 낭만적인 술 한잔과 하룻밤도 좋지만 우린 이런 등짐을 지고 능선에서

콧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어쩔 수 없이 대포카메라는 놓고 가기로 했다.

나부터 살고 봐야지.”

 

알레아 약타 에스트 Alea iacta est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그래 한 번 붙어 보자.!

 

D DAY

 

출정의 날이 밝았다.

겁 없는 두 할배의  모험의 날!

무의식 속에 약간의 긴장 감이 남아 있었던지 자명 종이 울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5시간 쯤 자고 새벽 3 30  1시간 일찍 깨어난 거다.

볼일 보구 맨손체조 하고 그 이른 시간에 어제 먹다 남은 제육볶음에 밥과 김치국물

까지 투하하여 거하게 새벽밥을 먹고  일단 보무도 당당하게 출정하다.

 

조사장은 정확히 5 30분에 도착했다.

자기도 걱정이 되어 5시간 밖에 자지 못했단다.

~  잠박사 조사장이  의외네 ….

아침에 선물 꾸러미를 넘겨 주니 역시 착잡하고 걱정스러운 표정 이다.

 

허걱! 가다가 생각하니 대포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기로 하는 바람에 거기에 들어

있던 모자까지 놓고 왔다.

흐미 ~~  전투모도 쓰지 않고 전쟁에 나가는 꼴이네~

그래도 중간에 생각났기 망정이지 잘못하면 머리 다 익을 뻔 했다.

 

가다가 편의점에 들러 중국산 밀짚모자를 7000원 주고 구입했다.

구천동 공용주차장에 차를 파킹하고 기다리고 있던 택시를 타고 육십령으로 이동하다.

육십령 가는 길에 기사아저씨 왈 두어 달 전에 67세 할머니가 덕유산 야간산행 중

할미봉에서 기념사진 촬영 한 사진 한 장 가족들에게 보내고 실종 되었다고 한다.

수색조도 편성되어 찾았지만 아직 까지 소식이 없어서 가족들이 현상금 프랑카드를  

걸았다고 한다. 

 1000만원 !

할배들도 조심하란 뜻이 담긴 택시기사님의 친절(?)한 멘트였다.

 

가히 할배, 할매들의 전성시대네 !

하지만 육십 후반이면 옛날 나이로 사십 중반 이여 ! 

 

 

육십령

예상대로 7 30분에 도착했는데 벌써 몇 대의 차가 도착해 있다.

ㅎㅎ 조사장 님 산입에 거미줄 칠 일은 없겠네 !.

새벽 산행을 하다 보면 산 입에 거미줄 칠 일이 많다.

새벽 산길을 최초로 걷다 보면 목이며 얼굴이며 입이며 할거 없이 거미줄이 걸린다.

참 부지런한 거미들이다.

지난 번 회사에서는 에어컨 실외기를 열어보고 그 안에도 거미줄이 쳐져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기사 아저씨 한테 육십령 표석에서 기념촬영을 부탁하고 할미봉을 향해 출발하다.

등로에는 진짜 할미를 찾는  푸랑카드가 걸려 있다.

"할미봉 할미가 시중들 할미가 필요 하셨나 보네 !"

헤드렌턴 까지 쓰고 야심한 밤 할미봉에서 사진 찍은 걸 보면 우리에 버금가는 슈퍼

할미인데 저렇게 팔팔할 때 훌쩍 떠나야 한다는 건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할미봉 가는 길

내 젊은 날의 함성과 땀이 배어 있는 길이다.

2003년 이 백두대간 길을 따라 지리산으로  내려 갔고

2016년에는 아들과 함께 이 길을 따라 설악산 쪽으로 올라 갔다.

젊은 날 덕유산 종주를 많이 했어도 늘 영각사에서 마무리 했기에 쉽게 걸을 수 있는

길은 아니었다.

 

날씨는 약간 흐리고 등산로는 흙 길이라 편안하다.

더 좋은 건 숲이 울창한데 그 아래로 시원한 바람이 지나 다녔다.

좋네 !

이정도 길이라면 아주 걷기 좋은 길에 속한다.

거리가 길어서 그렇지 영각사에서 남덕유 오르는 길 보다는 더 편한 길..

 

역시 노장의 관록은 살아 있다 .

막상 실전에 배치되니 각오가 새로워지고  몸이 기억하고 있는 전투력이 펄펄

살아 난다.

날씨도 바쳐 주고 멋진 하루의 필이 팍팍 살아 온다.

조사장도  예상외로 선선한 산길에 기운이 나는지  휑 허니 먼저 사라졌다 .

 

 

할미봉

할미봉은 그 앞에 멋진 풍경과  전위봉을 도열시키고 그렇게 당당하게 나를 맞아

주었다.

현무암 표석에 빨강 글씨로 쓰인 할미봉은 늘 고압적인 태도로 등산객들을 맞이

간담을 서늘케 했었는데 오늘따라 그 할미가 반갑고 이뻐 보인다.

간헐적으로 불어가는 시원한 바람과 떠 오르는 옛추억에 기분이 좋아지는 할미봉이다.

 

조사장의 모습을 보고 웃음이 났다.

물에 빠졌다가 방금 건져 올린 사람처럼 완전히 젖어 있었는데 땀은 등산화속으로

흘러들어 등산화 까지  젖어 버렸다.

어머무시한 땀의 폭포수다 ..

가끔 햇빛이 얼굴을 보여주긴 하지만 이 시원한 길에서 마치 소나기를 흠뻑 맞은 것

같이  젖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

땀에 젖은 모습은 초췌해도 조사장은 힘이 넘치고 의기양양 했다.

역시 조장사여 !”

 

나는 등과 어깨에 땀이 배어 나는 것 말고는 뽀송뽀송 했다.

내 경우 포카리 900리터와 물 얼린 것 1리터를 준비했고 조사장은 2.5리터의 물을

가져왔다.

무게 때문에  전매특허 중국 보온 물통에 뜨거운 물은 넣어 오지 않았다.

초장부터 저 정도 속도의 탈수라면 물이 변수가 될 것이다.

주입량에 비해 체내 수분은 너무 빨리 배출된다,..

 

내가 가장 걱정하는 건 배낭무게 인데 조사장은 매일 아침 운동 근력운동  1시간 씩

하고 매주 5시간 이상 산을 타는데다 골격이 굵으니 배낭이 무게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듯 했다.

몸은 신체의 리듬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어서 정기적인 루틴의 산행을 거르거나,

과도한 음주로 체중이 늘거나 ,평소의 배낭무게를 벗어나면  즉각적으로 알아 차린다.

그나마 오늘의 덕유 능선은 폭염이 서슬을 비켜나서 다행인 셈이다.

 

오늘 조사장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아무도 없는 할미봉에서 즐겁게 담소를 나누다 출발했다.

 

 

서봉 가는 길

서봉 가는 길은 완만한 육산이 흐름이다

할미봉 지나 철계단 봉우리에서 바라 보면 그 등로가 한 눈에 가늠된다.

서봉 아래 까지는 무난한 흐름이고 그 뒤로 이어지는 등로가 좀 힘들겠지만 서봉까지만

올라치면 오늘 여정의 반을 넘어서고 남은 구간은 상대적으로 수월할 것이다.

아무리 시작이 반이라지만 이제 겨우 할미봉 망루에 올라 서서 눈길로 먼저 서봉을

만나면서 성급히 오늘 산행의 그림을 완성해버리는 무릉할배.

오늘은 어쩌면 생각 보다 수월하게 일정을 마무리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필이 온다.

 

조사장 페이스와는 상관없이 나는 핸드폰으로 풍경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산행을

이어 가다 보니 예상외로 컨디션이 좋아서 대포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었다.

대포 카메라는 목에 걸고 가다가 바로 바로 찍으면 되는데 핸드폰은 앱을 눌러 찍기도

불편하고 또 어깨걸이 가방에 넣고 빼는 데도 시간이 더 소요된다..

 

아무튼 큰 산의 멋진 풍경과 편안한 길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움직이다 보니 산 중턱

금지구역 갈림길 앞에서 조사장이 젊은 친구 둘과 휴식하고 있다.

 

이 친구들도 우리처럼 육구 종주 중이라고 했다.

그런데 젊은 친구 하나는 체력이 고갈되었는지 기진 맥진이다.

~ 배낭 무게도 그리 크지 않은데 젊은 친구들이 1/3 지점에서 이렇게 힘들어 하면

어쩌누?

할배들 보다 먼저 등로에 오르고 초장에 추월 당했으면 문제가 있는데

 

서울에서 왔다고 했다.

둘이 차를 몰고 왔으니 거의 잠을 자지 못하고 왔다는 얘기다.

시간은 충분하니 힘들 때는 너무 무리하지 말고 중간 중간에 휴식을 취하고 가능하면

적당한 바람 길에서 잠시 눈을 붙이면 한결 컨디션이 좋아질 거라고 얘기해 주었다.

그래 니들 때가 좋을 때지 .. 난 그 때 버스에서 칼잠 자고서도 펄펄 날아 댕겼지 

아쉬운 세월은 그렇게 빨리도 흘러 갔고 우린 봄이 와도 다시 꽃을 피우지 못한다,

 

밀납처럼 녹아내리는 조사장은 기가 펄펄 살아 있다.

상황보고 서봉 까지 올라 치겠다고 보무도 당당하게 출발한다.

나는 갈 길이 멀고 산세가 가팔라 지니 너무 무리 하지 말고 50분 넘어 가면 한 번 휴식

하고 올라 치는 게 낫겠다고 했다.

 

가는 중에 계수나무 월계관을 엮어 머리에 쓴 산님을 만났다.

처가집이 영각사 근처러 덕유원 쪽으로 올라 왔다고 한다.

계피를 만드는 계수나무 가지를 머리에 엮어 쓰면 날파리가 달려들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등로의 해발이 높아서 날파리가 많지는 않다.

아니 해발이 높아서 인지 내 앞을 얼쩡거리는 넘들이 거의 없다.

바위에서 휴식하는 데 잠시 얘기를 나누다 갈 길을 재촉한다.

 

오잉!”

보무도 당당히 기세좋게 출발한  조사장이  웬일로 30분 거리에서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경사가 심해져서 너무 무리하지 않으려고 잠시 있는 중이란다.

아까와 달리 힘들어 하는 기색이다.

조사장과 앉아서 휴식하는 사이에 계수나무 산님이 우릴 추월해서 올라 갔고 이후에도

서봉 까지 앞서거니 뒤서 거니 하며 올랐다.

 

시간은 다소 지체 되겠지만 가팔라 지는 오름길이니 무리한 강행군 보다 나을수 있다.

배낭만 내려 놓아도 살 거 같은 이 분위기는 배낭이 노가다 질통보다 더 무겁다는 얘기 ! 

그냥 배낭을 내리는 게  휴식이다. 

조사장은 오늘 무게를 고려해서 간이 의자를 가져오지 않았다.

별로 무거운 것도 아닌데 바닥이 고르지 못하면 휴식의 효율이 떨어지니 가벼운 거 

하나는 가지고 다니는 게 좋다.

이제 서봉만 올라치면  한시름 돌리는 거다. 

조금만 더 고생하면  충분히 휴식하고 재충전할 수 있는  점심시간 이다. 

출발 !

 

휴식하고 먼저 출발한 조사장이 서봉에서 기다릴 걸루 생각했는데 서봉 못 미쳐

바위 위에 지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의기양양 하던 조사장 표정이 완전히 바뀌었다. ! 

왜 안 올라가고 있으냐 물으니 배가 고파 더 못가겠다고 한다.

거기다가 소나기가 예보되어 있고 구름이 몰려 오고 있어서 잘못하다가는 식사

중에 소나기를 맞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

오늘 같은 날 소나기가 내려주면 땡큐지요

 

시간도 11 40분쯤 되었으니 밥 먹을 때도 되었다.

조금만 더 가면 서봉 정상인데 아쉽긴 했지만 우리 그 곳에서 준비한 간식으로

식사를 했다.

가끔 능선 아래에서 운무가 밀려 들었지만 소나기는 내리지 않았다.

우리는 1400고지 구름 그늘 아래서  멀리 푸른 하늘아래 뭉게구름을 바라보면서

또 한편으로는 피어나는 운무의 조화를 감상 하면서 그렇게 산상 만찬을 즐겼다.

바람은 시원하고 경치는 그만이었다.

식사 중에 계수나무 월계관 산님이 체력이 방전되어 너무 힘들다고 하면서 지친

표정으로 우리 곁을 지나 갔다.

가장 빨리 내려 가는 코스를 묻는데 되짚어 덕유 교육원 쪽으로 하산 하는게 가장

빠르고, 되돌아 가기 싫으면 영각사 하산이 최선일 거라고 얘기해 주었다.

 

 

서봉

식사를 끝내고 아무도 없는 고원 망루에 올랐다.

수 많은 고추잠자리가 날고 있었다.

내 인생길에 무던히도 올랐던 서봉이다.

서봉은 십승지 같은 곳이었다.

남덕유가 엄청난 눈 폭풍에 휩쌓여 있을 때도 서봉에 오르면 바람도 눈보라도 없이

고요 했다.

겨울 산행 때 몇 번 이나 느꼈는데 그게 덕유산 신령님이 환영인사가 아니었다면

산의 기운이다.

남덕유와는  마치 음양의 조화로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그래서 겨울 산행 때 늘 식사는 서봉에서 하거나 서봉 오르는 능선 길 중간 완벽하게

바람이 막힌 곳에서 했다.

서봉과는 아마 칠십 중반 까지는 꾸준히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덕유 교육원에서 서봉에 올라 남덕유를 거쳐 영각사로 하산 하는 길은 6시간 정도

걸리는 데 원점회귀가 가능하고 장쾌한 설경을 감상할 수 있어서 내가 겨울 홀로

산행으로 최고 선호하는 코스이다.

그 길을 걷고 나면 늘 뿌듯한 희열과  충만함이 함께 했다.

곤도라를 타고 향적봉에 올라 동엽령이나 구천동으로 내려서도 겨울 눈 가뭄은 해갈

될 것이다.

몸을 잘 관리해서 그 때까지 덕유를 잘 끼고 살아야 건강도 좋고 사는 재미도 잃지

않을 것이다.

외골수 조사장은 겨울 덕유산행은 손사레를 친다..

너무 위험하다고 ….

그의 의견은 존중하지만 

실제적으로 국립공원은 위험할  상황이면 바로 통제에 들어가고 이정표와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오히려 안전하다.

허기사 통제 한다고 되돌아 갈 무릉객은 아니지만... 

 

정상에서 둘이 휴식하고 있는데 부부산님을 만났다.

이분들도 육구 종주 중인데 우리보다 먼저 출발하여 서봉 아래에서 식사를 하고 올라

온 길이 었다.

40대 후반이나 5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데 덩치 큰 남편은 그렇다 해도 한 여름에

겁없이 따라나선 부인도 대단하다.

부인은 어느정도 살집이 있어 산을 많이 타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듁구 종주를 처음 한다는데 힘들지 않냐고 물으니 날이 더워 너무 힘든다고 한다.

이분들도 아까 젊은이들과 같이 삿갓재 대피소 동숙예정인이다.

우야튼 덕분에 조사장과의 기념사진을 챙겼다.

 

고추잠자리 날고 원추리와 야생화가 흐드러진 서봉의 풍경은 낭만적 이었다.

이러한 풍경을 다시 보기 위한 여정 이었다.

조사장은 꼼짝을 안하고 이정표 아래 앉아서 휴식하고 나는 여기 저기 길길이 뛰며

멋진 서봉의 조망을 담기에 여념이 없다.

 

남덕유 가는 길

남덕유 정상은 서봉에서 1.2km 이다.

급격히 고도를 떨어 뜨려 완만한 숲길로 이어지다가 다시 400여 미터 가량 솟구쳐

올라야 남덕유에 도달할 수 있다.

가는 길에는 보라색 초롱 꽃과 수 많은 야생화가 피어 있었다.

초롱꽃은 길 섶 어디서나 보라색 우아한 자태로 손을 흔들며 힘든 여정을 위로해 주었다. .

나는 여러 형태의 초롱 꽃과 야생화를 핸드폰으로 찍으면서 그 길을 걸어 갔다.

 

한동안 평화로운 꽃 길이 계속 되었다.

배낭의 무게가 점점 어깨를 압박해서 조금 힘에 겨운 것 말고는 큰 무리는 없었다.

남덕유 찍고 나면 월성치 까지 내림길이고 월성치에서 두어 시간 산길을 오르락

내리락 하다가 삿갓봉을  지나면 오늘의 목적지 삿갓재로 내려설 것이다..

 

남덕유 300미터 아래 지점인 남덕유와 향적봉 갈림길 이정표에도 도착하지 않았는데

쉴 만한 곳도 아닌 좁은 길 한 켠에서 조사장이 다시 휴식하고 있다.

얼굴은 일그러 지고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초장에 그렇게 쌩쌩하고 자신감에 넘치더니 생각보다 많이 힘든 모양이다.

너무 땀을 많이 흘린 탓에 탈수현상이 심한데 충분한 물을 마실 수 없으니 더 지치고 

탈진한 모습이다.

보기드믄 조사장의 모습이고 내심 우려했던 상황이었다.

물도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저 정도 피로감이면 후반부 여정이 만만치 않을 듯하다.

 

 

쉬다가 먼 발치에 부부의 모습이 보이고 계피나무 월계수님의 모습이 보여 빨리

출발하자고 재촉했다.

얼마 가지 않아 갈림길 이정표가 선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가면 남덕유를 거치지 않고 삿갓재로 간다.

남덕유 까지는 300미터 오름길이고  그곳에서 삿갓재 대피소 까지는 4.3km이다.

조사장에게 이제 남덕유 올라치면 내림 길이니 여기다 배낭을 두고 올라갔다

내려와서 삿갓재로 진행 하자고 했다.

 

조사장이 물걱정을 했다.

목은 많이 타서 갈증은 나는데 길이 아직 많이 남아 마시기를 자제 하다 보니 체력

저하로 불안한 모양이다.

비무장으로 삿갓봉에 올라가서  충분히 쉬고 내려오면 삿갓재 가는 길은 내림 길은

훨씬 수월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 라고 위로하고 남덕유를 향해 출발한다.

 

월계관 산님은 남덕유로 가지 않고 곧바로 월성치를 향해 갔다.

체력이 고갈되어서 영각사로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은 모양이다.

아마 월성치에서 황점으로 내려서서 택시를 부를 생각인 게다.

 

뒤 이어 온 부부산님은 그 곳에 배낭을 두지 않았다.

200미터 더 올라간 능선 위에도 갈림길이 있다고 거기까지 간단다.

근데 200미터 오름 길은 거의 수직으로 곧추 서 있어서 무거운 베낭을 지고 오르기가

많이 힘들 텐데

 

 

남덕유산

어쨌든 조사장과 나는 오늘 처음으로 배낭을 내린 가벼운 몸으로 남덕유에 올랐다.

서봉에서 바라 볼 때는 남덕유 봉우리가 운무에 휩싸여 있었는데 어느새 맑은 하늘을

드러 내고 있다.

오늘은 서봉 보다도 바람이 불지 않는다.

이렇게 바람이 없는 1500미터 고봉은 처음이다.

조사장은 괴로운 표정으로 웃통을 벗어 던지고 바람을 기다리고 있다.

내가 가져온 사과를 반 씩 나누어 먹고 덕유 고봉의 거침 없는 조망을 즐기며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예상대로 부부산님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땀이 많이 흐르는 부인이 너무 힘들다고 연신 도리질을 한다.

잠시 비가 올 거 같이 하늘이 으르렁 거리다가 다시 조용해진다.

그들이 충분히 쉬기를 기다려 기념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고 그들의 사진도 찍어 주었다.

오늘 서봉과 남덕유 사진은 모두 이 부부와 서로 교환한 셈이다.

 

사진을 찍고 나서 부부는 소나기가 올 것 같다고 서둘러 내려 간다.

소나기와 오면 좋지요 !” 했더니 좋긴 한데 등산화가 젖으면 내일 일정이 힘들어

진다고 빨리 가야겠다고 한다.

여기서 두시간 반은 더 가야 하는데 소나기가 온다면 도착하기 전 어딘가에서는

맞지 않을까?

아무래도 저 남자 부인을 너무 학대 하는 거 가터 ….”

이 무더위에 같은 크기의 배낭을 메게 하고 토끼 몰이 하듯 마눌을 너무 몰아 대고

있다.

붉게 상기된 얼굴인 채 지쳐 보이는 부인이 안스럽다.

 

다른 때 같으면 벌써 가자고 했을 조사장이 체력이 많이 방전되었는지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ㅎㅎ 오늘 조사장 임자 만났네 !”

 

삿갓재 대피소 가는 길

우린 충분히 휴식하고 이정표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 왔다.

이정표  아래 돌무더기 위에 앉아 배낭을 추스리려 하는데 갑자기 다리 안쪽으로

쥐가 났다.

돌의 높낮이가 맞지 않아 자세를 엉거주춤하게 취하다 보니 몸이 균형이 흐뜨러

졌는데 그렇다고 그렇게 심하게 쥐가 나다니 해괴한 일이다.…

무거운 무게가 시종 몸을 짓누르다 보니 다리에 너무 많은 부하가 걸려서 그런

이상 증상이 나타난 모양이다.

지난 번  망덕봉 소용아릉에서 바위에서 혼자 누워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 났을 때도

갑자기 다리에 쥐가 났었다.

 

튼튼한 내 다리가 보이코트 하는 걸 보면 오바 페이스가 맞긴 맞는 모양이네

 

무거운 무게가 계속 어깨를 찍어 누르니 머리도 지끈 거린다.

그랴도 허리가 아프지 않은 건 신기한 일이다.

2년 전 홀로 치악산 해돋이 종주를 할 때는 배낭 무게가 더 가벼웠는 데도 허리가

많이 아팠고 그날 사우나를 하는 바람에 지친 몸이 코로나 까지 끌여 들였다.

그리고 코로나는 내 생애 가장 큰 병치레 였다.

 

어쨌든 다리도 괜찮고 허리는 아직 탄탄하다.

이제 4.2km 남았다.

조사장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워낙 단련된 출중한 체력이니 잘 버틸 것이다.

 

조사장은 앞서서 내려 갔다.

조사장 상태를 보니 나 역시 넉넉한 물이 남아 있는 건 아니지만 그 물을 다 마시기는

어려울 것 같다.

갈증에 대한 내성이야 내가 훨씬 강한 편이니 내가 최대한 참아 봐야지.

 

 

1.4 km 지점에 있는 월성치 까지는 일부 너덜 지대가 있었지만  일사천리로 내려갔다.

조사장이 휴식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 곳 익숙한 나무 그늘에는 젊은 친구들 둘

만이 널부러져 있다.

하루 종일 빌빌 대는 친구들 

왜 남덕유에는 오르지 않았냐고 물으니 너무 힘들어서 못 갔다고 했다.

간신히 대답하고 일어 날 줄을 모른다.

젊은 것들이 이거 순 나이롱들이네 육구 종주 하면서 남덕유도 찍지 않고…!”

속으로 만 한 얘기지만 그래도 육구종주에 나선 것만해도 대단한 젊은이들 이다.

월성치 사진을 찍는데 힘들어 하던 친구가 일어나 물이 있으면 좀 나눠 줄 수 없느

냐고 묻는다.

 

여기도 물기근이 심하네 

나도 백두대간 할 때 물이 모자라서 힘든 경험을 몇 번 했기에 그 괴로움을 익히 알고

있다.

불쌍한 그 친구에게 조금이라도 나눠 주고 싶지만 조사장을 생각해서 그럴 수가 없다.

미안하네요 우리도 물이 거의 다 떨어져서 ...

힘든 코스는 다 지났으니 충분히 쉬었다가 천천히 움직이세요…”

 

여기 저기 물 때문에 난리가 아니다.

덕유산과 지리산 종주의 차이는 바로 이 물에 있다.

넉넉한 지리산 능선은 빈통만 가지고 가면 주릉 어디서나 시원한 샘물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덕유산은 큰 계곡을 몇 개를 끼고 있지만 산세가 날카로워 능선에는 샘이라고는

삿갓재 대피소외에는 한 곳도 없다.

예전에 아들과 백두대간 종주를 하던 가을에는 대피소에 생수가 다 떨어지고 샘도

말라서 묻을 얻을 수 없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라면을 끓여 먹고 출발해야 하는데 물이 없어 산장이 이럴 수가 있냐고 항의하니 국공

아자씨 꼬불쳐 둔 물을 한 통 건네 주며 라면 만 끓이고 반납 해달라고 했다.

우린 라면을 끓여 먹고 남은 물을 채워서 방대 놓은 적이 있다.

 

덕유산 여름종주 에서는 대부분 산객들이 배낭무게 때문에 충분한 물을 가져오지 않아

고생을 한다.

오늘 종주자들 모두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도 조사장의 투혼은 대단했다.

조사장은 그 힘든 와중에도 2.5km를 진행하여 대피소 1.7km를 남겨 놓은 곳에서 휴식

하고 있었다.

여전히 물 때문에 지치고 괴로운 표정을 한 채 ...

힘들어서 아무 생각도 없고 저녁에 먹을 오리고기며 술도 다 버리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한다.

~ 오늘 저녁 무드 잡고 일용할 양식까지?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

산장에 도착해서 물을 마시고 샤워하고 쉬다 보면 금방 컨디션이 회복 될 거니 조금만

참자고 했다..

지금까지 등짐져 온 고기와 술까지 버리고 싶다는 건 심한 탈수증상으로 그 만큼 힘든

산행을 했다는 얘기다.

나는 2/3 정도 남아 있는 마지막 물통을 한 모금 마시고 남은 물 모두 조사장에게 건네

주었다.

마지막 삿갓봉 오름길 또한 쉽지 않은 길이라 나보다는 조사장이 물이 더 필요할 것 같다.

 

남덕유에서 멀리 보이던 일대에 걸출한 삿갓봉을 넘어 가는 건 마지막 난관 이었다.

월성치 이후 계속되는 업다운 오름 길이 이젠 본격적으로 올라 치는 구간으로 바뀌면서

마지막 인내와 체력을 요구하는 구간이었다.

 

계속 올라 가는 계단길에서 비가 한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 했다.

마지막에 소나기를 맞아 젖으면 다소 억울하지만 등산화만 젖지 않게 하면 된다.

나는 계단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뜨거운 얼굴을 빗물로 적셔보려 했지만 비는 몇

방울 떨어지다가 그쳐 버렸다.

 

할배 둘의 모험의 길도 서서히 막바지로 접어 들었다.

산행이 8시간을 넘어 서면서 힘이 들기는 하지만 견딜 만 했다.

갈증이 심해지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견딜만 했고 걱정을 많이 했던 허리가 짱짱하게 바쳐

주니 고마운 일이다.

 

조사장은 삿갓봉 갈림 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젠 다 올라 왔다는 얘기다.

이곳에서 300미터 삿갓봉에 올라 갔다가 가거나 아니면 곧바로 패싱하고 내려서면 아래에

젖과 꿀이 흐르는 삿갓재 대피소가 있다.

 

삿갓봉

조사장은 먼저 가겠다고  내려가고 나는 천천히 삿갓봉에 올랐다.

쓸쓸한 표석을 보자 왈칵 반가움이 일어 마치 옛 친구인 듯 표석을 끌어 안는다..

이게 얼마 만인가 ?”

 

그 옛날 첫 종주 길에 시 한수 읊었던 삿갓봉

그 추억의 봉우리에 오르니 감회가 새롭다 .

5년 전 종주 길에도 올라왔었지만 이젠 다시 보기 힘들 것 같다.

세월은 빠르고 사람은 쉬 늙어 간다.

그래도 이 길을 스쳐 지난 간 수 많은 산 객 중에 무릉객이 있었음을 삿갓봉은 기억하리라!

조용한 삿갓봉에는 예전과 다르게 흉물스런 통신탑이 서 있다.

"미안하네 친구!"

그래도 봉우리 한 켠에 이름은 잘 모르겠는데 보라색 야생확가 흐드러지게 피어 나그네의

수심을 덜어 준다.

"안녕 친구!

 다시 못 올지도 모르겠네 !"

 

삿갓재 대피소

삿갓봉에서 길은 심한 낙차로 내리 꽂는다.

삿갓재 대피소 내려가는 길에서 한 번 다리쉼하고  내쳐 대피소에 내려섰다.

조사장과 부부산님이 반갑게 맞아 준다.

 

9시간 걸린 긴 여정은 그렇게 끝이 났다.

10여 분이 지나서 월성치에서 갈증으로 퍼져 있던  젊은 친구들이 내려 왔다.  

 

조사장이 구입한 2리터 생수는 작은 물병에 연거푸 따라 마시고 우리는 생수 빈통을

3개 가지고 우물가로 내려 갔다.

 

거의 수직 계단을 따라 50미터는 내려 가야 한다.

파이프를 통해 흘러나오는 1400고지 샘물을 세 통 받아 먼저 그 차가움에 몸서리

치는 조사장 머리와 몸에 부어 샤워를 시켜주고 그 다음 내가 하려는데 젊은 친구

들이 내려 온다,.

그러 거나 말거나 !”

세 통의 물로 머리와 전신 샤워를 하고 날개 옷을 갈아 입었다.

그리고 빈 통 하나는 젊은 친구들에게 선물했다.

관록이 있어야 이런 것도 하는 거지

그들은 우리를 흉내 내어 홀딱 벗고 샤워를 했다.

그렇게 우리는 고원의 소중한 샘물을 졸지에 목욕탕으로 바꾸어 버리는 악행(?)

저질렀다..

주말 같았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그 때는 멀찌 감치 떨어진 곳으로 물을 가져 가서 샤워를 해야 한다.

 

우린 그렇게 가벼워진 채 다시 대피소 야외 테이블로 돌아 왔고 멋진 풍경과 쾌적한

분위기 속에서 산상 만찬을 준비했다.

 

오리고기를 버리고 싶었다는 조사장은 오리고기를 무지하게 먹어 댔다.

고기를 너무 많이 먹어 라면을 끓여 먹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오리고기 800g에 풋고추

1, 버섯 1, 양파 썰어 온 것 두통 쪽파 한 단 까지  깨끗이 비워 버렸다.

중간에 고기가 너무 남을 것 같아서 이웃 테이블 산객 들에게 같이 와서 먹으라 했는데

그들도 준비해온 것 많다고 안 왔기 망정이지 왔으면 큰 일 날 뻔 했다.

우리는 500ml 소주 두 병도 거뜬히 한 개 씩 비워 냈다.

국공 관리인의 당부한 말은 술을 절대 마셔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 물병에는 어느 새 술이 채워져 있었고 우리는 천연덕 스럽게  홀짝 홀짝

물을 마셨다.

힘겨운 시간을 뒤로 하고 낭만적이고 운치 있는 고원의 밤은 그렇게 깊어 갔다.

 

오늘 완전히 체력의 바닥을 경험했던 조사장은 몇 년 전 설악산 중청 대피소 1박 산행

이후 두 번째 덕유 산행에서 자신의 사전에 더 이상 산장 숙박은 없다고 선언했다.

너무 고통스럽고 건강에 엄청난 무리를 가져 온다는 이유에서 였다.

그리고 내일도 향적봉 찍고 곤도라로 내려 가면 좋겠다고 했다.

산행 후 모든 힘겨움이 정리 되었음에도 그렇게 얘기하는 걸 보면 힘들긴 힘들었나 보다.

나는  내일 상황 봐서 결정하지요 하고 대답핬다.

모처럼의 육구 종주를  완성하지 못하는 아쉬움 때문 이었다.

 

그날의 산장 숙박인원은 달랑 8명이 었다.

총수용인원이 26명 인데 덕분에   침상이 위아래로 4개 있는 침상 한 구역을 배정 받아

널널하게 잘 수 있게 되었다.

어두워 지고 대피소 밖에 는 수은 등이 들어와 분위기는 더 목가적으로 변했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 주는 가운데 모기도 없어서 아주 쾌적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소등은 9시 였다.

모기는 없고 1500고지의 아외는 너무 시원하고 능선의 실루엣은 너무 낭만적이어서

들어가고 싶지가 않았다.

덕유의 푸른 밤은 그렇게 깊어 갔다.

 

 

다음날     2일차 

2024년 8월  10일 토요일 

 

 

6시에 일어나  라면을 끓이고 햇반을 데워서 든든하게 아침식사를 하다.   

 

 

싱그러운 아침

 

 

지난 온 능선 길...  

 

 

무룡산 가는 길...  

 

 

무룡산에서 바라 본 삿갓봉과 뒤 남덕유, 서봉...  

 

 

가야 할 능선 길...  

 

 

아쉬움을 뒤로 하고 동엽령으로  하산 하다...  

 

 

 

 

피곤해서 금방 잠이 들 줄 알았는데 대피소 안이 후덥지근 해서 잠 때를 놓치고 뒤척

이다 보니 잠을 푹자지 못했다.

등만 대면 자는 체질에 엄청난 운동량에 당연히  초장에 곯아 떨어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술 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산장에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셔 본 적이 없었으니까….

 

새벽에 실내가 선선 해지면서 잠이 좀 들었는데 웬걸 내가 어제 맞추어 둔 알람이 다시

울리는 바람에 다른 사람까지 깨우고 부족한 잠을 만회하지 못했다.

아쉬움이 남아 자리를 박차지 못하고 한 시간 반 정도 더 뒤척이다 일어나다.

아마도 내 역사상 산장에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최초의 날인 듯 싶다.

 

잠을 충분히 자면서 산의 기운을 받지 못해 머리가 좀 무거웠다.

하지만 쑤시고 아픈 곳은 아무데도 없다.

 

밖에는 나무테이블에  이슬이 가득 내렸다.

어제 우물에서 물을 받아 세탁하고 걸어 두었던 상의는 덕유의 아침이슬을 잔뜩 받아

냈다.

그 이슬을 짜내고 서늘한 산의 기운이 남아 있는 어제의 옷으로 다시 갈아 입었다.

조사장이 햇반 두개를 전자레인지에 돌려 오고 나는 어제 남은 쪽파를 모두 넣고 라면

두 개를 끓였다.

어제 먹은 량이 많아  남을 줄 알았는데 국물 까지도 거의 다 먹어 버렸고 나는 햇반을

조금 남겼다.

 

볼일과 양치를 마치고 어제와 같이 조사장은 물 2.5리터 나는 2리터를 지고 향적봉을

향해 출발했다.

 

황금빛 아침햇살이 쏟아지는 산상 고원은 싱그럽고 아름다웠다.

약간 빛 바랜 오이풀과 아직 행복한 미소를 잃지 않은 원추리가 아침 인사를 했다.

 " 안녕 ! 친구들 !"

 

길은 무룡산 까지 계속 오름 길이다.

그래도 배낭의 무게가 좀 가벼우니 어제보다는 훨씬 발걸음이 가볍다.

 

무룡산에 다가 가면서 햇빛이 강렬해졌다.

오늘의 날씨는 어제와 양상이 다를 것 같다.

바람은 없어도 숲 속은 새벽의 찬 기운을 머금고 있어서 여전히 시원했고  햇빛에

노출된 길은 무더웠다.

무룡산 오름길 계단에서는 어제 우리가 흘러온 길이 한 눈에  바라다 보인다.

아무도 없는 고원의 아침 풍경은 아름답고도 장엄했다.

이 구간은 다시 오기 어려운 구간이다..

다시 오는데 5년이 걸렸듯이….

7월 말쯤 안성에서 동엽령으로 올라서서 무룡산에 올라 삿갓재로 내려서서 비등 토옥동

계곡길로 내려가는 것도 7시간쯤 소요될 것이다.

당연히 택시도 불러야 하고……

하지만 원추리 산행을 떠나는 산악회가 있다면 내년 쯤에 다시 오고 싶다.

 

무룡산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가다가 햇빛이 강해져서 모자 채양에 햇빛가리개를 얹고

돌무더기가 있는 무명봉에서 잠시 목을 축이고 동엽령을 향해 간다.

어제 저녁만 해도 이왕 시작한 일이니 조사장을 잘 달래서 향적봉 찍고 구천동으로

하산하자는 생각을 했었지만 간밤에 잠을 설치고 나니 너무 무리할 여정이 될 것 같아

곤도라로 하산하기로  생각을 바꾸었다.

무룡산에서 동렵령 까지는 부드러운 능선길이라 그다지 힘이 들지 않는다.

동엽령에서 휴식하고 두시간 정도면 향적봉에 도착할 수 있다.

그길도 오름길이긴 하지만 수 많은 야생화가 피어나는 천상의 화원이라 그리 힘둘지는

않을 것이다.

 

예기치 않은 사단은 동엽령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곳에서 났다.

사태를 파악할 겨를도 없이 나는 길 아래 비탈로 갑자기 추락하고 말았는데  왼 발이

두개의 나무 가지 사이에 끼어 거꾸로 매달리게 되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발을 헛디딘 것도 아닌데 오른 쪽 발이 너무 길의 갓 쪽을 밟았던지 물기를 머금은 흙이

허물어져 내리고 난 갑자기 80도 경사의 비탈로 흙과 함께 무너져 내렸는데 나무에 낀

다리가 뒤틀리면서 더 이상의 추락을 막아준 격이라 왼 발목에 가해진 충격이 엄청났다.

눈이 불이 번쩍하는 아픔이었고 거꾸로 매달린 채 나무에 낀 채 뒤틀린 발을 빼내는라

꽤나 고생을 했다.

차리리 그냥 추락 했으면 내려가면서 나뭇가지나 풀을 잡았으면 더 나을 뻔 했다.

 

예전 철계단에서 추락할 때는 완전 허리가 절딴나서 병신이 되었을 거란 생각에 참담

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는 않았고 그 와중에도 다만 산을 내려갈 일이 아득했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어서 혼자 타잔처럼 거꾸로 매달린 채 악전 고투하며 간신히 아픈

왼발을 풀고  기어 올라 왔다.

걸어 보니 발을 디딜 때마다 많은 통증이 느껴졌다.

뼈가 부러진 것 같지는 않고 말목을 많이 삔 것 같았다.

 

하여간 통증을 참으면서 동엽령으로 가는데 생각이 착잡했다.

안성으로 내려가는 게 나을까?

아니면 예정대로 향적봉으로 갈 것이냐?

 

동엽령에는 먼저 출발한 부부산님과 조사장 그리고 몇 몇의 산 님이 휴식하고 있었다.

조사장에게 상황설명을 하니 놀라서 당장 동엽령으로 내려 가자고 한다.

배낭 무게도 있으니 아무래도 오름길 보다는 내려 가는 길이 더 나을 것도 같다.

 

아쉽지만 안성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계곡의 수량도 많고 숲이 울창해서 하산 길은 시원 했는데 온통 발에 신경이 쓰이다

보니 몸에서는 계속 진 땀이 났다.

조심 한다고 했는데 물기를 머금은 바위에서 오른 발이 미끄러지면서 무의식적으로

왼발로 강하게 지탱하다 보니 다시 발에 엄청난 충격이 가해져서 한동안 고통스러웠다.

이차 충격은 피해야 했는데 너무 아쉬웠다.

 

조사장은 앞서서 일정 거리를 내려 가다가 내가 내려오기를 기다려 다시 출발했다.

조사장은 빨리 내려 가서 병원에 가보는 게 낫겟다고 애기 했지만 나는 어짜피 시간이

늦었고 알탕을 하고 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오늘은 조사장이 오히려 어제보다  땀이 많이 나지 않았는데 내가 땀이 많이 났다.

안성 계곡물에 몸을 담그어야 통증도 완화될 것 같았다.

계곡은 모두 출입금지다.

조사장은 바깥 쪽 길에서 기다리고 나는 길에서 보이지 않는 계곡으로 내려가 옷을

벗고 꽤 오랫 동안 물속에서 몸을 담그었다.

윗 옷은 짜 입었다.

옷매 무새와 여장을 다시 추스리고 조사장과 합류하여 탐방센터로 내려갔다.

내려 가면서 기사 아저씨한테 연락했는데 아저씨는 먼저 도착하여 탐방로 입구에

기다리고 있었다.

참으로 어이 었는 아쉬운 마무리 였지마  무사히 내려왔으니 다행이다.

우리는 구천동에서 차를 회수하니 1시쯤 되었다..

 

할배 둘의 육구 종구 도전은 그렇게 실패로 끝이 났다.

목표달성과 성취욕에 들뜨던 젊은 시절은 지나갔다.

그 길을 다 걷지 못한 것은 크게 아쉬울 것도 없지만 몸을 다친 것은 참으로 애석했다.

5분 사이에 내 즐거운 걸음은 고통으로 바뀌었다.

내 힘으로 내려왔으니 큰 부상은 아닌 셈이지만 혹여 사고의 후유증이 있을 까봐

걱정이 되었다.

내려오면서 다시 심하게 2차 충격을 가한 것도 많이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 와중에도 향적봉으로 갔으면 더 나았고 그러면 덕유종주는 완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인간은 간사하다.

 

내 생애 거칠고 신나고 멋진 모험을 잃어 버리는 것은 아니겠지 설마?”

내가 좋아 하는 덕유 산신령님이 나를 그렇게 모질게 대하실 리는 없다.

무슨 깊은 뜻이 있으시겠지

너무 무모하게 나대지 말고 당분간은 조신하게 있으라는 말씀이다.

 

무모했지만 어쨌든 긴장감과  잠자던 야생의 본능이 살아났던 신나는 모험의 길이었다.

힘들었지만 아직은 그 정도 무게와 거친 산행을 감당할 수 있다는 뿌듯함과 자신감

도 느꼈다.

조사장은 남은 생애 다시는 산장에서 1박은 없다고 공언 했지만 나는 술과 고기 없이

좀더 가벼운 행장으로 그 길을 다시 걷고 싶다.

고원에서 잠들고 다시 깨어 나고 싶다.

다시 은퇴를 하면  버너와 라면 김치만 가지고 23일 지리산 종주를  홀로 하고 싶고

육구 종주는 훗날 겨울에 홀로 다시 하고 싶다.

물무게도 줄이고 사브작 사브작 …….

겨울에는 눈을 끓여서 물을 만들 수도 있다.

그래야 산 신령님께 혼구녕이 나지 않을 것이다.

내년 여름에는 꼭 수렴동 계곡으로 흘러 내려 봉정암에 들릴 것이다.

 

그래도 조사장은 든든한 내 후견인이다.

산장에서 먹을 준비물 이외에  모든 비용은 조사장이 다 부담했다.

항상 그렇듯이 손수운전에 숙박에 식사비용 까지 ...

대중 교통비도 10만원 이상이 들었다.

 

버섯전골을 먹을 까 하다가 백숙으로 몸보신 하자는데 의기투합하여 기사 아저씨가

추천한 무주 백숙집으로 갔다.

68000원씩이나 받는데 조사장이 토종닭이 아니라고 불평을 했지만 우린 국물 조금

남기고 닭죽까지 다 먹어 버렸다.

산을 타고 나면 보통 수준의 맛은 별미요 특식이다 ..

 

집에 돌아와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다행이 뼈는 이상이 없고 인대가 손상

되어 다리 보호구를 착용해야 한다고 한다.

한 달은 차고 다녀야 하고 무리하면 덧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주사 맞고 물리치료하고 약을 타가지고 돌아 오다.

 

                                                     2024 8월  9일 ~10일    1박 2일 덕유 종주 

 

 

 

 

 

 

 

 

 

 

차량을 회수하고 백숙으로 몸 보신 ...  

둘이 닭죽까지 다 먹어 버림 !

 

 

다행이 뼈는 이상없고  인대가 손상되고  왼 쪽 발복과 장딴지가 붓다..

한달 이상 깁스 보호기 차라고 하는데   한주 정도 쉬면 회복 되것지 그렇게 까지야 가것어?..  

 

 

덕유 산신령임이 주저앉힌 이유가 있지 않을까?...  

더 나대면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당분간은 조신하게 근신하라시는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