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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패밀리

도패밀리 24년 추석 모임 - 2024년 9월 17일~18일

 

 

 

 

 

 

리소방 사진첩

 

 

 

 

 

병든 어머니마저도 곁에 안 계신 추석이다.

새삼 참으로 빠른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는 세상 한 가운데서도 어머님이 돌아가신 건 벌써 

먼 일처럼 아득하다.

그것이 망자와 산 자와의 거리일까?

기호한테 전화 했는데 숙모 산소는 아직 이장하지 않았고  양쪽을 번갈아 벌초하느라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삼촌은 이제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신 땅으로 걸어 오르지 못하신다니 지난 번 뵐 때

보다 더 쇠약해지셨고 치매 증상도 더 악화되셨다.

전화를 걸어 보려 해도 핸드폰이 없어 기호를 통해 대신 안부전화를 전했다.

어머님 돌아가시고 할아버지 할머니 묘소 개장을 서둘러 죄스럽고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지만 그래도 잘한 듯 싶다.

모든 게 순조롭게 마무리 되어 우린 할어버지 할머니 제사를 모시고 묘소는 기호와

기수가 돌보게 되었으니

어머니는 미리 구암사 부처님 전에 두 분이 들어가실 자리를 마련하고 가실 때 입으실

옷까지 다 준비하셔서 자식들이 걱정을 덜어 주셨다.

사실 할아버님 묘소 이장도 4년 전 윤년에도 어머니가 서두르라고 하셨는데 내가

일정을 잡지 못했었다..

앞날을 예견하고 매사 자식들을 배려하신 어머님을 생각하니 또 눈시울이 뜨거워 진다.

 

관섭아지매에게 전화 인사를 올리면서 아차 싶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묘소를 이전하고 아지매에게 그간 묘소를 잘 썼다는 인사로 과일이라도

보내드리자 얘기 했었는데 그러지 못했고 이 번 명절 전에도 생각을 떠 올리지 못했다.

많이 반가워 하시고 이러 저러한 얘기를 오래 나누었다..

어머니 얘기를 하면서 또 목이 메이셨다.

 

인수 아재는 내가 전화를 드리기도 전에 먼저 전화를 하셨다.

똑 같은 안부 전화를 두 번이나 하셔서 혹시 아재도 약한 선망 증상이 온 게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부쩍 전화를 자주 하시고 또 내가 자주 전화해도 되지?’” 하시는  등 평소와는 다른 어조로

말씀하시는 걸 보면 이제 집안의 가장 어른인 아재의 외로움이 묻어 난다.

세월은 그렇게 우리를 길들여 간다.

 

토요일 날은 산으로 떠나지 못했다.

다소 무덥긴 해도 민주지산이나 대둔산 정도는 충분히 새벽에 다녀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덕유 산신령님이 무슨 뜻이 있으신지 한 달여 까지 내 발목을 놓아 주시지

않았다.

초등학교에서 아침 운동을 하고 집 앞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책을 읽는 망중한의

호사를 누렸다.

 

올해 추석은 황금의 5일 연휴였는데 추석은 넷째 날이라 후반부가 경황없이 바쁘게

지났다.

집에서 모시는 마지막 명절 제사 였다.

아침에 삼형제와 가족들이 제사를 올리고 장태산 휴양림으로 이동했다.

 

장을 보고 장태산 휴양림으로 출발 하는데 온도가 38도를 기록했다.

추석날 이런 무막지한 폭염은 난생 처음이다.

앞으로 세상에서 늙은이들 고려장은 폭염이 알아서 할 것이다.

 

너무 무더워서 오늘의 휴양림내 산책 일정은 유보되었다.

함부로 나대 다가는 더위 먹기 딱 좋은 날씨다.

잘 조성된 숲속 산책로와 출렁다리 그리고 스카이워크와 그 외 다양한 놀이시설 등

여러모로 짜임새 있게 구성된 휴양림인데 때늦은 폭염의 서슬이 아쉽긴 하다.

 

휴양림 주차장에 파킹하고 타프며 장비를 내려 아동 수레에 싣고 숲속의집으로 올라

가는데 오르막이 심해서 고생이 많았다.

휴양관 앞 쎈 비탈을 치고 올라 잠시 쉬면서 조감도를 보며 숲속의집 이름을 묻으니

참새실이라고 한다.

오잉?

숲속의집은 감나무 ,참나무 전나무 등 나무 이름이 붙어 있는데

 

참새실은 뭐여?

참새실은 휴양관 건물에도 없어서 수소문해보니 휴양관 옆 숲속수련관 2층에

있는 방이다.

태형모가 숲속수련관을 착각한 모양이다,

 

난리가 버썩 난 거다.

수련관은 식당도 따로 없고 텐트를 칠 곳이나 고기를 구워 먹을 장소도 따로 없다,

놀란 나머지 수련관 사무실로 가서 물으니 장태산은 전체가 청정공원 구역으로 숲속의집

밖 공터에서도 고기를 구을 수가 없다고 한다.

심지어 실내에서도 고기를 구우면서 냄새를 피워서는 안된다고…..

대전시가 인수하고 나서 이 지역을 청정 공원화 했는데 우린 장령산 생각만하고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던 게 불찰이었다.

요즘의 트렌드가 그렇게 변하고 있는 거다.

고기 냄새 풍기지 않는 말그대로 휴식과 힐링의 청정 휴양림

 

~~

근데 우짜냐?”

이 무더운 데 장비와 고기를 바리바리 가지고 왔는데……

이런 날씨라면 야영장 주변에 장소를 물색하더라도 고기 구어 먹다가 사람이 먼저 구이것다.

 

물통골 가든에 전화를 했다.

이렇게 된 이상  돈이라도 주고 개울에 발이라도 담그면서 먹어야지

주인 아줌마왈  명절이라 쉰다고 한다.

게다가 집을 비우고 다녀올 때가 있다고 한다.

쉬더라도 돈은 주고 주인이 없어도 알아서 잘 쓸테니 물가 자리라도  빌려 달라고 했다.

근데 요새 무더위가 심해서 계곡의 물이 다 말랐단다.

~~물통골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네

허기사 요즘 무더위가 보통이 아니다 보니 그 작은 계곡물이 남아 날 수가 없겠다.

우짰든 부탁 끝에 돈을 입금하는 조건으로 부재중 장비와 자리를 쓰는 걸루 합의를 봤다.

아끼비  13만원 ~~~

이쯤 되면 식당에서 삼겹살 사먹는 거나 도찐 개찐 이다.

 

도착하니 야외 열기가 장난이 아니다.

아이들이 너무 더위를 먹을 것 같아서 주인에게 전화를 해서 1층 팬션방에서

에어컨을 틀고 더위를 식히는 것 까지 허락을 받아 냈다.

그래도 야외 식탁에 선풍기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총 참석인원은 시우와 채이 까지 16

인당 300그램 씩 준비했는데 야채도 고기는 꽤 많이 남았다.

삼겹살도 남았으니 제사 지내고 싸온 각종 전들도 손댈 겨를이 없어서 연우네가

싸갔다.

날씨 탓인지 이젠 패밀리 먹성도 예전 같지 않다,

어쨌든 무더운 가운데 모두들 즐겁게 식사를 마무리 했다.

 

다른 형제들의 의견도 있었지만 이젠 도패밀리 음식 문화도 좀 바꾸어야 겠다.

구이문화를 배제한 족발,닭발,돼지머리 눌른 것, 치킨, 피자, 데친 물오징어

정도로 타협하고 쪽파라면과 만두로 식사를 대신 하는 걸루 대체해야 겠다.

 

태형과 윤형이는 각자의 집으로 떠나고 남은 2세들은 태현이가 효동으로 데려가고

숙소에는 어른들만 남았다.

천정 높이가 높이 수련관은 쾌적했다.

시우 광주할배가 보내주신 포도는 두 번에 걸쳐 잘 먹었고 태리모가 가져온 문어

숙회는 윤형이가 가져 온 샤케와 맞춤 안주로 온 가족이 잘 먹었다.

대표 주당 두 명이 심각한 염증 환자라 술을 줄이는 분위기다 보니 사케도 남고 프리

미엄진로도 그대로 남았다.

 

재미 있는 민속놀이였지만 지난 연우네 집들이 때처럼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산의 기운을 받지 못하니 기가 쇠하는 모양이다.

16,000원 큰 거 한방 맞고 판돈이 계속 살살 녹아 내렸다.

계속되던 영태와의 연사 악순환 고리도 리소방 호주머니를 불려 주는 데 한 몫

했다.

오늘도 부조금 냈다고 생각해야지.

오늘 장태산 대전의 승자는 단연 태형부

초장에 어리버리한 행보로 거의 파산 상태에 놓여 모두들 우습게 알고 개무시했던

태형부가  뒤늦게 쓰나미를 일으키며 판 돈을 휩쓸었다.

기술이 들어간다고 옆에서 패를 쳐 주면 더 크게 먹었다.

그래도 나 말고는 큰 피해자가 없었던 국지전이었다.

그렇게 11시 반쯤에 패밀리 혈전은 마무리되고 연우부와 테리네는 효동으로

떠났다.

파란만장하고 우여곡절이 많았던  하루의 일과가 끝이 나고 우리는 비로소  잠자리에

들었다.

살도 예전에 비해 좀 빠졌고 혼자 생활하다 보니 나의 밤문화가 어떤지를 내가 잘

르겠는데 난 여전히 코를 많이 골았던 모양이다.

 

 

 

추석 다음날  - 대청호반 산책

다음날 아침에는 5시에 일어나 숙소를 정리하고 자연생태관에서 테리 모자와 합류

하여 대청호반 산책길에 올랐다.

자연생태관에서 명상공원에 이르는 대청호 500리길 중 가장 아름다운 4구간

아침 날씨는 선선했고 인적 없는 호반 풍경이 워낙 출중해서 즐거운 산책길이었다.

여유롭게 3시간을 호반 길을 따라 걷고 햇빛이 다시 기운을 차릴 때쯤 일정을 마무리

하고 돌아오다.

자주 가던 판암 방일해장국이 내부 수리중이라 가양동 까지 흘러 가서 조선순대국을

먹고 헤어졌다.

여전히 날씨는 뜨거운 가운데 그렇게 다이나믹 했던 2024년 추석연휴가 바람 같이 

지나갔다.

 

 

에필로그

한 달이 지나도 왼쪽 발 인대 손상은 별 차도가 없었다.

아무래도 이젠 적응훈련을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연휴 첫 날 토요일 아침에 용운

초등학교 운동장을 맨발로 30바퀴를 돌았다.

둔증한 통증이 계속 느껴졌지만 참고 걸었고 점심 때는 내친 김에 보호대도 풀고 시장을

오갔다.

추석날에는 아픈 발이라 손수레를 끌지 말아야 하는데 혼자 고생하는 영수가 안스러워

한 구비 오르막을 끌고 올랐더니 발에 무리가 갔다.

그리고 추석 다음날에는 형제들과 함께 새벽트레킹을 했다.

후반부에는 통증과 불편함의 강도가 많이 커졌다.

 

한 번도 다친 적이 없던 인대 손상은 나의 상식과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한 달 이면 벌써 나아야 했고 적어도 트레킹 정도는 원활해야 하는데 놀멍쉬멍 걸었던

평지 세 시간도 이렇게 힘들어 하고 있다.

  

걱정이되어 통증의학과 전문의인 산친구에게 연락을 하니 그러고 댕기는데 나을 수가

있냐는 거다.

환자가 의사냐고요?”.

다른 경미한 병들과 같은 방법으로 안일하게 접근한 내 탓 이란다.

증상으로 보면 수술까지는 할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환자가 자의적인 판단을 개입시켜

치료와 투약 그리고 보호대 착용을 게을리한 게 가장 큰 문제란 지적이다..

문막에서 다시 정형외과에 가서 그동안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원점에서 상담해서

의사가 시키는 대로 끽소리 말고 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아무런 통증이 느껴지지 않을 때 까지 보호대 차고 치료하란 거다.

필요하면 MRI도 찍고 …..

그리고 마지막 처절한 한마디~~~

인대 손상을 우습게 보고 대처 했다가는 영영 산에 못 갈 수도 있다.”

이건 경고가 아니라 간담을 서늘케하는 협박 이었다.

"인대란 녀석이 그렇게  무시무시한 넘이었어 ?"

코로나도 안그랬는데  인대로 인해 인내와 유배기간이  마냥 길어진다.

인고의 폭염이 지나 쾌청한 가을이 돌아 오는데 ....

덕유산 신령님이 소맷부리에 감추고 있는  패가 자못 궁금해지는 한가위 였다.   

 

 

20249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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