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과 포숙
관포지교는 귀가 따갑게 들었다.
시험 문제에 잘 나왔으므로 자세한 내력도 모르고 시점 접수 잘 맞기 위해 달달 외웠던
기억이 난다.
내가 직장에 들어가자 그렇게 열심히 외우고 암기했던 지식은 아무 것도 필요치 않았다.
한국에서 고딩이 때 배운 것은 대학에 들어가면 쓸모 없고
대딩이 때 배운 것은 취업을 하고 나면 또한 아무 쓸모가 없다.
공자왈 맹자왈 하는 것도 그 시대의 이념이고 철학이라
매장 문화가 어느결에 화장 문화로 바뀌듯이 고색창연한 고전의 뜨락에 선 고목일 뿐이다.
마음 보다 형식에 치우친 제사 문화가 간소화되고 또 실질적인 추모와 가족애의 시간
으로 변모하듯이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간다.
게다가 이젠 세상이 손바닥 안에 들어가고 나는 도깨비 방망이를 허리춤에 차고 만물
박사를 데리고 다닌다.
케케묵은 골방의 냄새가 지나간 시절의 향수나 그리움을 자극하는 것 말고는 무슨 의미가
있으랴?
최소한 그렇게 생각했다.
이 시대가 그렇지 않은가?
백과 사전을 찾아 보거나 도서관에 가지 않아도 필요할 때 수행비서에게 물으면 되니
정작 우리 스스로 아는 것은 더 없어 진다. .
딸래미 전화번호도 모르고 산사로 가는 길도 모른다.
넘쳐나는 수 많은 정보는 더 이상 나의 가슴을 흔들지 못한다.
단지 나의 감각세포와 말초신경을 자극할 뿐이다.
내가 단맛에 끌리고 그리고 내 몸이 나빠지는 걸 알고도 또 그 맛을 찾는 것처럼….
그런데 요즘 비자발적인 자유의 혜택을 누리며 고전의 숲을 방황하다 보니 지난날이
공부가 죄다 헛것은 아니다.
우리는 고딩의 시절이 아니면 그 막대한 량의 학습량을 소화할 수 없다.
시간이 물처럼 그렇게 흘러 가고 보니 그 물길 따라 모든 게 다 흘러 갔다고 생각했
지만 마음의 체에는 걸러진 게 많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끔은 망망한 정보의 바다에서 그리운 추억 하나를 건져 올린다,
우리가 삶의 어느 길목에서 낯익은 그 무언가가 반가운 체 하며 손을 흔든다.
“그렇구나 우린 그 때 스쳐지나 갔지….!”.
우리는 낯선 나라의 여행에서 또는 수 많은 영화 아니면 어느 날 문득 눈에 들어오는
한 줄의 시에 서라도 반가운 해후를 한다.
그리고 그 만남은 그 시절의 아련한 향기와 몰고와 우릴 그리움에 젖게 하기도 한다.
관중과 포숙에 얽히 고사는 처음 대학 때 사기열전을 대하면서 참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그 고사를 대하면 잊혀지지 않는 친구들이 생각 난다.
순수하고 해 맑았던 초딩 시절
그 당시 나보다 더 좋아하던 친구들이 있었다.
박충수 , 김재열
소위 단짝이었는데 ‘아마도 내 인생 통 털어 나도 친구도 서로를 그렇게 좋아하던
친구란 없었을 것이었다.
세월은 흐르고 우리는 이별의 의미도 모른 채 그렇게 친구를 떠나 보내고 그렇게
쉽게 까맣게 잊어 버렸다.
그리고 세월과 세상은 나로부터 나보다 더 친구를 좋아할 수 있는 그 마음을 나도
모르게 거두어 간다.
아름다운 우정은 화석이 되었다.
잡종강세의 세상이다.
순결하고 나약한 순수는 거세되고 강인하고 이기적인 사상과 존재가 생존하고
번성해 간다. .
순수했던 그 때 만이 줄 수 있던던 친구라는 선물이었고 그 때만 누릴 수 있었던
아름다운 우정일 뿐이었다.
아마도 그런 마음이 계속 커 나가야 우린 관포지교를 애기할 수 있지 않을까?
마음의 친구란 또 다른 나를 의미하는데 나를 그대로 두고 나 보다 훨씬 큰 도량과
마음을 가진 친구를 내 친구로 삼겠다는 건 어리석은 욕심일 뿐이다.
착하고 마음씨 좋은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좋은 친구들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친구를
갖기엔 스스로 부족함이 너무 많음이다.
이 세상이 현실이라면 우린 유토피아를 꿈꾸고
내 친구들이 이 세상의 친구들이라면 관포지교는 우리가 꿈꾸는 저 세상의 우정일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지금의 나와 지금 나의 좋은 친구들에 만족해야 한다.
그정도면 족하다.
세월과 삶의 역사를 함께 나누며 강가의 돌처럼 둥그러간 친구들 .....
구천으로 난 외로운 길 걸어갈 때 어깨 동무하고 바람좋고 경개 좋은 곳에서 다리쉼
하며 술 한잔 나눌 수 있는 친구.....
이번에 마음을 다잡고 시기 열전 완역본과 세상을 바꾼 책사들의 이야기를 읽어 가면
서 아름다운 시절의 기억을 떠 올리다 아예 그 고사를 정리해 볼 생각을 가졌다..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에 괸중과 포숙이라는 두 사람이 살고 있었다.
관중은 젊은 시절 집안이 가난하여 포숙아가 장사하는 일을 도와서 끼니를 연명했다.
관중은 이익을 공평하게 나누지 않고 자신이 더 많이 가져갔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관중을 비난했지만 관중은 “ 그를 비난하지 말라 관중은 나보다
식구들이 많고 가난하기 때문에 돈이 더 필요한 것이다.”라고 일축했다.
관중은 포숙아의 집에서 일하다가 제나라의 말단 관리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뚜렷한 잘못도 없이 세 번이나 관아에서 쫓겨 났다.
그때도 포숙아는 “ 관중이 부덕한 것이 아니라 그가 천시를 만나지 못한 것일 뿐이다.”
라고 말하며 관중을 두둔했다.
관중은 백수건달이 되어 다시 포숙아 밑에서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관중은 장사를 잘못하여 포숙아에게 많은 손해를 입혔다.
포숙아의 하인들이 들고 일어 났다.
“관중이라는 사람은 셈도 흐리고 장사도 할 줄 모릅니다. 도무지 쓸모가 없는 사람
입니다.”
라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 하며 포숙아가 그와 멀리할 것을 청 했다.
그 때도 포숙아는 “ 관중이 장사를 잘 못한 것이 아니다. 경기가 전체적으로 나쁜데
어떻게 장사로 이익을 남길 수가 있느냐? 그는 운이 나빴을 뿐이다.
관중은 이런 곳에서 계속 이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 언젠가 나라의 큰 일을 할 사람이다.”
라고 말하며 계속해서 관중의 역성을 들었다.
관중은 전쟁이 일어나 군사로 출정하게 되면 항상 맨 나중에 출전하고 돌아올 때는 맨
나중에 돌아 왔다.
이번에도 많은 사람들이 관중을 비난하고 나섰다.
“ 관중은 활을 잘 쏜다고 하는데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늦게 출전하고 가장 나중에 돌아
오니 비겁자가 아닙니까? 그런 사람이 어떻게 관리가 될 자격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포숙아는 이번에도 관중을 두둔하고 나섰다..
“ 관중이 전쟁이 일어났을 때 가장 늦게 출전하는 것은 노모가 걱정하는 것을 염려하여
늦게 출전하는 것이고 가장 일찍 돌아 오는 것은 노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 일찍 돌아
오는 것이다.
노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이 이찌 나랏일을 소홀히 하겠는가 ? 관중은 반드시 이 나라
의 재상이 되어 백성들을 평안하게 할 것이다.”. 라고 말하며 변함없는 신뢰를 보였다.
포숙아와 관중의 신분이 높아진 어느 날 관중이 포숙아에게 말했다.
“지금 제 양공에게는 정실의 아들이 하나 있다.
그런데 제양공이 음란하기 때문에 언제 반란이 일어나 시해될지 모른다.
제양공은 첩실을 사랑하고 있으니 첩실의 아들이 귄위를 이을지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두 공자를 가르쳐 만일에 대비하여야 한다.”
그 말은 둘 중에 하나가 나중에 군위에 오르면 서로를 살리고 또 천거하여 영달을 계속
누리자는 양동계였다.
이 때 이들이 한 약속을 관포지교라 부르며 친구와의 굳은 우정을 표현할 때 쓰이는 고사
성어가 되었다.
당시 제양공에게는 두 명의 누이가 있었다.
언니가 문강이었고 동생이 선강인데 두 여인이 모두 하늘의 선녀처럼 아름다웠다.
게가가 문강은 문재와 기예가 출중해서 입에서 나오는 일이 모두 시가 된다고 할 정도로
말을 잘했다.
그런데 제양공의 두 동생은 모두 음탕했다.
문강은 올라버니인 제양공과 밀통하고 있었고 선강은 위선공의 아들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으나 미모가 너무 출중하여 시아버지 위선공의 부인이 되었다.
위선공은 아들의 부인이 될 여자를 강제로 취한 뒤에 아들을 죽여버림으로써 나라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누이동생인 문강과 사랑에 빠진 제양공은 정사를 돌보지 않아서 나라의 기강이 문란해졌고
여기저기 쌓인 불만과 원성으로 일찍이 관중이 예견한 바와 같은 역모의 싸가 잉태되고 있었다.
당시 변경에서 수비를 하는 군사들이 교체되지 않아 불만이 많았는데 국정이 해이해지고
민심이 이반된 기회를 틈타 국경수비대장 연창과 과 제나라의공자 공손무지는 의기 투합
하여 거병했다..
연칭은 제양공의 첩인 연비의 오빠였다.
당시 연비는 제양공에게 소박을 맞아 독수공방을 하고 있었다.
연칭은 연비와 은밀히 내통하여 궁안의 비밀과 제양공의 일거수 일투족을 샅샅히 파악했다.
마침내 연칭은 부하장수인 곽지부와 함께 대군을 이끌고 궁으로 들어가 제양공을 시해
하고 공손무지를 군위에 세웠다.
연비는 공손무지의 부인이 되었고 공손무지는 연칭과 관지부의 도움으로 제나라를 다스
리기 시작했다.
그 공손무지가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널리 인재를 모집하던 중 관중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노나라에 가 있는 관중에게 사람을 보내 돌아와 정사를 돌봐 달라고 부탁했다.
“임금을 시해한 공손무지는 한 달도 그 자리에 있지 못할 것이다. 공손무지와 함께 죽으러
제나라에 들어간단 말이냐?”
관중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관중의 예상은 적중하여 제양공의 출신들에 의해 반란을 일으킨 공손무지와 연칭은 살해
되고 연비는 새로운 남편의 품에서 두 달을 채 지내지 못하고 자살했다.
공손무지의 죽음으로 제나라의 왕좌가 공석이 되었다..
당시 빈 임금의 자리를 놓고 대신들은 노나라와 거나라에 사람을 보내 두 아들 중 먼저
오는 사람에게 임금의 자리를 맡기기로 했다.
서열로 따지면 관중이 모시는 공자 규가 장자이므로 당연히 제나라에 군위에 올라야
하지만 그 영민함으로 서출인 소백을 옹호하는 세력도 만만치 않아 대신들에 의해
결정된 사안 이었다.
당시 소백이 제나라와 더 가까이 있었다.
관중은 노나라 제후인 노장공에게 병거 30승을 빌려 번개처럼 말을 달려 제나라로
향하기 시작했다.
노장공은 노환공과 천하의 음탕한 여자 문강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었다.
오빠인 제양공과 패륜을 저질렀던 문강은 노환공에 시잡을 갔고 노환공이 문강과
함께 제나라에 왔을 때도 근친상간의 패륜을 저지르다가 노환공에게 들키고 말았다.
격분한 제양공이 노환공을 죽여 버림으로써 그의 아들이 왕위에 올라 장왕이 되었다.
거나라에 있던 포숙은 거나라 군사를 빌려 소백과 함께 제자라를 향해 질풍과 같이
달려 갔다.
포숙이 제나라 국경근처에 이르렀을 때 관중이 말을 타고 달려와 그의 일행을 제지
했다.
관중은 순리에 따른 왕자 규의 도성 입성을 주장하였으니 포숙의 제지로 받아들여
지지 않자 돌아가는 척하며 활을 쏘아 소백의 가슴을 정통으로 맞추었다.
소백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어수선한 틈을 타 무사히 도망간 관중은 염탐을 보내 다시 소백의 군진을 살핀 결과
군진은 곡을 하며 비탄에 잠겨 있고 거나라 군사들은 해산하여 거나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에 안심한 관중은 공자 규를 데리고 천천히 제나라로 향해갔다.
하지만 이것은 반드시 관중이 올 것을 예견한 포숙아의 계획이었다.
소백의 가슴에 방채를 넣고 혈랑을 터뜨려 죽음을 가장했고 곡을 하며 거나라 군사
들을 파한 뒤 소백을 시체 싣는 마차에 태워 질풍처럼 제나라로 달려 간 것이다.
관중은 포숙아에게 께끗하게 패배했다.
포숙은 제나라로 돌아가 중신들을 찾아다니며 소백이 규보다 훌륭한 인물임을
설득했고 결국 소백이 군위에 모시니 그가 바로춘추시대 최초의 패자 제환공이다.
포숙아의 꾀에 속은 관중은 노나라 제장공을 설득하여 제나라를 공격하였으나
관중의 책략대로 움직이지 않아 대패 했다.
포숙아는 전쟁에 패한 노나라에게 공자규는 죽이게 했으나 관중은 반드시 살려오라
고 군사들에게 지시했다.
그리고 군사 습봉이 갖은 고초와 우여곡절을 거치고 관중을 살려서 궁으로 돌아 왔다.
제환공이 된 소백이 관중을 죽이려 하자 포숙아가 만류했다.
“ 주공께서 제나라의 군주로 만족하지 않고 천하를 다스리시려면 반드시 관중과
같은 인물이 필요합니다..
관중이 자신을 모시고 있던 공자 규를 위해 주공을 쏘았으나 주공이 그를 등용하면
이번에는 주공을 위해 천하를 활로 쏠 것입니다.”
포숙아의 간곡한 설득에 의해 제환공의 마음이 돌아섰다.
이후 제환공은 관중을 깍듯한 스승으로 모시고 제상의 위치에 올려 주었다.
관중은 이후 지신을 구한 습봉을 비롯한 제나라의 많은 현사들을 등용하여 제나라를
부국강병하게 만들었다.
고죽국의 산융이 연나라를 공격하자 관중이 제환공을 모시고 연을 지나 산용을
정벌하는 대 장정에 나섰다.
당시 제나라른 고죽국의 함정에 빠져 죽음의 사막에서 헤메게 되었다.
사막은 밤이 되자 음산한 바람이 불고 귀곡성이 들리면서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군사들은 길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 하다가 태반이 늪에 빠져 죽었는데 이 때 관중
이 늙은 말 한마리를 풀어 군사들이 그 뒤를 따르게 하여 위험을 벗어나게 하였다.
그로 인해 생긴 고사성어가 노마지지 라고 한다,
관중은 현실에 바탕을 둔 민심의 정치를 펼쳤다.
관중은 노나라의 혼란한 내정을 바로 잡고 형나라와 위나라에 성을 쌓아 주어
적군과 싸우지 쌓고 실리를 챙겼다.
이후 12개국 군사를 거느리고 강대한 당시 초나라를 공격하여 조공를 대가로 화친을
맺어 만천하에 제나라의 위세를 떨치며 명실공히 춘추시대의 패자로 등극했다.
제환공이 천하의 패자가 되자 관자는 귀영화를 누리며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가 집필한 책은 <관자:>로 천하를 경영하고 패자가 되려는 사람들이 필독서가
되어 오늘날 까지 널리 읽히고 있다.
사기를 읽어 보면 관중과 포숙의 우정은 주로 포숙에 의해 주도된다,
포숙은 관중에 대한 조건 없는 이해와 무한 신뢰를 보냈다.
그는 포숙에게 기숙하던 시절에도 관중의 우정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이며 자기
중심적인 생활을 계속했다.
심지어 후계를 다툴 떼 제환공에게 활을 쏘았던 관중을 노나라에서 살려 데려와
재상의 지위와 영화를 누리게 한 것도 포숙이었다.
관중이 출중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를 끝까지 믿어주고 밀어 준 포숙이
없었으면 천하 쟁패의 주역 관중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기열전을 읽으며 작은 문이 남는다.
관중이 모신 큰아들 규가 먼저 도상에 도착해 왕위에 올랐으면 그는 다른 나라로
도망간 포숙을 왕에게 천거하여 부귀와 영화를 누리게 하였을끼?
사기에서는 그 결론을 찾을 수 없지만 어쨌든 관포지교는 춘추시대를 풍미한 출중한
두 인물의 아름다운 우정이야기에는 틀림이 없다 .
2024년 10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