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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보문산의 새벽 그리고 늦 단풍

 

 

 

새벽을 찾으러 가야지
내가 잃어버린 새벽  

아침 5시 쯤 눈이 떠졌다ㆍ
이젠 새벽 사우나는 가지 않기로 했다ㆍ
산에 가야지
다치고 나서 4달만에 처음 마눌과 동생들하고 인천 호룡곡산에 올랐다ㆍ
그 바람이 얼마나 시원하고 그 풍경이 얼마나 후련 했는지ㆍ

첫눈이 장하게 내리는 1127일은 치악산에 가고 싶었다ㆍ
근데 정식 산행은 새해 첫 달 덕유산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덕유산 신령님께  먼저 고한 다음 끊어진 매듭을 잇고 다시  출발하는 거다.

바꾸면 되지 않냐고 ?
싫다ㆍ
치악산 신령님은 날 골리는 재미로 산다.

갈 때마다 치악 서바이벌 게임장을 개설하고 나와 게임을 하시자는데.

지나고 나면 재미 있는 추억이지만 파놓은 함정과 설치한 부비트랩을 돌파하는 게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몇 년 전 이기자 전우들을 델고 황골에서 정상 비로봉 까지 올랐다가 구룡사로 하산 했는데
다 내려와서 내 어깨걸이 가방이 없는걸 알았다ㆍ
~

그게 함정이었어~~
정상의 멋진 풍경을 열어주시는 바람에  여기저기 포즈를 잡아가며 사진을 찍은 것 까지는
좋았는데 내 가방을 슬쩍 감추신 거다 ㆍ
그걸 다 내려간 다음에 알았다.


할 수 있나?
지갑에.면허증에.카드에.현금에 중요한 건 거기 다 들어있고 자동차 키까정 거기 있는데

핸드폰이 없으면 회사 출근해도 업무시스템에 접속할 수도 없고  업무 연락도 두절된다.
할 수 없이 다시 올라가서 가방을 찾아서 애초에 올랐던 황점으로 다시 내려 간 거다ㆍ
그날 산신령님 비로봉을 두 번 넘게 하셨다ㆍ

ㅎㅎ 그 뿐이면 말을 안 한다ㆍ
겨울 치악 일출 산행은 당시 벌써 두 번이나 했는데 그 때도 번번히 날  고생 시키셨다ㆍ
한 해는 힘들긴 했지만 9시간 30분 심설종주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사우나 갔다가
코로나에 걸렸다 ㆍ
철계단 낙상사고로 인한 허리부상으로 끔찍하게 아팠던 이후  가장 심하게 앓았던
5
일 이었다ㆍ
두 번째 일출 산행은 네비가 엉뚱한 곳으로 안내하는 바람에 눈 구덩이에 빠져 차를 꺼내느라

달밤에 쌩쑈를 하고 다시 시간 맞춰 일출을 보느라 혀가 컥아래 까지 빠졌다.


덕유산신령님한테 밧데루 먹고 근신중인데  치악산신령님 한테 게임장에서 다시 걷어 차이면
회생 불능이다ㆍ
코 앞에 살면서  발길을 뚝 끊끊었으니 자주 인사 안 온다고 또 심술부리실게 틀림없다ㆍ

일단 덕유부터 가야 한다 ㆍ
덕유 신령님 밧데루부터 사면 받아야지


내가 금요일 대전 내려올 때도 체력단련장인 명봉산은 허연 눈을 뒤집어 쓰고 있었는데
저녁 8시가 넘어 도착한 11 29일 금요일 대전 하늘에는 비가 추실대고 있었다ㆍ

아침 비람이 차긴 해도 강원도에 비하면 양반이지ᆢ
날씨가 좀 흐리긴 해도 12월 겨울에 이만하면 포근한 날이다ㆍ
목재 박물관 아래 주차장에 차를 파킹하고 잠시 달밤에 체조한 다음 산에 오른다 ㆍ

아무도 없는 밤길에 어머니 생각이 불현듯 떠오른다ㆍ
어머니 병세가 악화되시고부터는 원거리 산행은 많이 줄였다
어머니 댁에서 자는 금요일 날 대략 두 번은 이렇게 새벽에 일어나 보문산행을 하고.

어머니와 아침을 먹고 어런저런 얘기 나누며 남북의 창과 황금연못을 시청했다ㆍ

어머니와 함께 보낸 느긋하고 편안한 시간이었다 ㆍ
어머니가 떠나고 나신 지금 그래도 내게 남아 있는 소중한 시간의 기억이고 가슴 따뜻한

추억이다.

 

어머니 떠나신 지 이제 9개월에 접어드는데 몇 년이 훌쩍 지난 것 같이 아득하다ㆍ
세월은 가도 그리움은 남는다.

그리움은 삶 속에 잠들어 있다가 이렇게 작은 추억의 실마리를 타고 불현듯 찾아 온다.


그 때처럼 아무도 없는 산성에서 대전을 내려다 보고 시루봉에서 붉은 여명의 하늘빛을 

머금고 있는 하늘을 바라 보았다ㆍ
호룡곡산에 이어 두 번 째 재활산행으로 보문산에 오른 것이다 ㆍ
.
다시 기다림이 내게 찾아오고 치유의 시간이 나를 둘러쌌지만
예전처럼 그렇게 안달하고 낙담하지 않았다 ㆍ

신이던 운명이던 세월이던 내 삶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어떤 힘이 개입되었다. 하더라도
거기엔 어떤 의도와 뜻이 있을 것이었다ㆍ
밖으로 표출된 현상 만으로 행,불행을 규정하는 것 또한 부질 없는 일이다.

이미 일어난 일이다.

내 삶이 세월의 강물을 따라 흘러가다가 또 한 구비 거친 여울목을 만났을 뿐이다..

그 소요와 혼란은 늘 그렇듯이 진정되고 수습될 것이다.

울려 퍼지는 비명과 하늘로 솟구치던 불보라의 파동이 훗날 이 우주와 어떻게 공명할지는

신과 세월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강물은 귀결 대로 흘러갈 것이다.

더 많은 것을 잃거나 얻는 것은 결국 나의 생각과 행동에 의해 좌우될 뿐이다.


일종의 예행 연습 같은 개념으로 보면 된다ㆍ
신은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의 생명을 거두어 가기도 하고
어느 날 걷지 못하게 할 수 있다
당연히 산에서 강퇴시키실 수도 있지ㆍㆍ
그 때는 산 없이도 또한 즐겁게 잘 살아야 한다ㆍ

허리부상으로 3년 가까이 고생했던 그 때 얻은 삶이 교훈처럼

이번 사고를 겪은 내가 할 일이란 이렇게 느닺 없이 산에서  내려와 산 없이 사는 날을

생각하면서 내 삶을 좀 더 유익하게 보내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고자 했고 산에서 격리된 그 시간이 못 견딜 만큼 그리 답답한 것도 아니었다.

 

예상대로 시간이 해결의 중재자로 나설 모양새다.

한 달이면 충분히 다시 산을 오르리라 안일하게 생각했다가 많이 당황스러웠지만 조금씩

상황은 호전되고 있다.

 

새벽의 청명한 공기와 새벽 산길의 호젓함에 고무되어 좀더 길게 타고자 했다
능선에서 구름 위로 다소 늦은 시간에 고개를. 내미는 태양을 만났다ㆍ

보문산의 단풍은 한창이었다
문막에는 폭설이 내렸는데 여긴 아직 푸른 나뭇잎을 떨구지 않은 나무들도 많고

물드는 가지는 12월 겨울이 무색할만큼 화려했다ㆍ

보문산도 그리고 보문산의 단풍도  그리움을 일깨워 주었다.

어머니는 천안.독립기념관 단풍길의 마지막 가을을 자식들과   함께하시고
그 겨울을 힘들게 보내셨다ㆍ

어머니가 떠나신 대전의 보문산 단풍도 그 때만큼 고왔다ㆍ
그렿게 단풍은 가을의 상념을 떨쳐내지 못하고 나 또한 그 가을을 아직 보내지 않았다ㆍ

엄마 !
다들 잘 살고 있어ㆍㆍ
보문산에 오면 늘 엄마가 생각날거야ㆍ


돌아가서 아침을 함께할 어머니가 계시지 않으니 서두를 일이 없어 넓게 3시간
30
분 코스를 타고자 했다
아직 시큰거림과 불편함이 있었지만 인천 산행 때보다 더 나아진 느낌이다ㆍ

그런데 예전의  생각에 잠기어 걷다 보니 능선에서 무심코 내려섰다ㆍ
한밭도서관 쪽과 연결된 임도가 보였다
습관처럼 어머니가 계신 날 걷던 그 길을 따라 내려 온 거다ㆍ
두시간 정도 산택 코스

다시 되짚어 올라가 능선을 따라 오월드 동물원 쪽으로 진행했다
그리고 사정골 호수쪽에서 호국공원 능선을 따라올라 청년광장을 거쳐 출발점

으로 돌아 왔다ㆍ

다시 찾은 보문산의 새벽 풍경과 가을 상념과 함께 떠오른 어머니와의 추억으로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 일요일 아침이었다ㆍ

                                                     2024
121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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