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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49제

설날 다음날 - 구암사 참배

 

                                     만수산 휴양림 폭설로 설날 집에서 차린 야외 차례상 

 

 

 

 

서해안 인근 과 충청 전라 지역에 폭설이 내렸다.

설날 전날 대전에도 장한 눈이 내렸다.

20년 만에 만난 큰 눈이다.

원래는 새벽 갑하산과 우산봉 산행을 하고 구암사에 들러 부모님 영전에 참배할  계획이었다.

국립 현충원 아래에 차를 파킹하고 계룡산 줄기인 갑하산에 올랐다가 우산봉을 거쳐 계속 능선

산길을 따라가면 구암사로 내려간다.

사람들은 구암사가 계룡산 자락에 있음을 잘 모른다.

젊은 날에 3시간 30분쯤 걸렸는데 지금은 4시간 정도 잡아야 할 것이다.

 

근데 효동에 어제 일찌감치 내려온 영수와 집에서 점심을 하며 술 한 잔 치기로 한데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아침에 식장산을 한바퀴 돌고 내려왔다.

오랜만의 큰 장 !

덕유산을 방불케하는 식장산의 멋진 설경이었다.

 

설날 아침에 만수산 휴양림 측 전화를 받고 동생들과 상의해서 원격지 차례와 모임을 대전으로

바꾸었다.

나는 이 기회에 눈 덮힌 세상을 드라이브하며 멋진 바닷가의 설경을 보고 싶었지만 안전을 우려

하는 동생들 의견과 특히 막내 태형모의 갑작스런 건강문제로 인한 불참을 고려하여 조정을

결정했다.

 

오후 4시경에 모여 태형네를 제외한 모든 가족이 모여 원격지 차림 상 그대로 차례를 모시고 음식을

나누었다.

세배도 받고 덕담도 나누며  전통적인 패밀리 민속놀이를 벌이며 즐거운 명절을 보냈다..

 

 

다음날에 온 가족들이 함께 구암사에 참배 갔다.

경내에 들어서면서 마음이 편안했다.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부처님 옆에 모신 부모님 영전에 머리를 조아리니  다시 가슴이 먹먹하고

코 끝이 찡해진다.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다들 잘 살고 있어요 ….

 

어머니는 살아 계실 때도 늘 자식 걱정하시고 자식들 잘사는 보람과 기쁨으로 살아 가셨다.

그 짧은 투병 기간에도 자식들 고생시키는 걸 안스러워 하셨고 이렇게 당신의 마지막까지

다 준비 하셔서 자식들 힘들지 않게 하셨다.

납골당이 보편화되기도 전이었고  그 당시에는 유해를 모시는 납골장 1기당 450만원이나

되는 거금이었지만 구암사에  머무르실 자리를 미리  마련해 놓으시고 야외 사당에  조상들의

위폐를 새기셨다.

당신께서는 빈주먹 으로 자식들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게 잘  키우시고 할머니 까지 모시고

험한 인생을  사셨으면서도 그렇게  먼길 떠난 이후까지 자식들을 챙기셨다.

아픈 몸으로도 진즉 진행하지 않은 조부모님  묘소 이장을  안타까워 하신 것도  지나고 나니

모두 시대를 앞서가는 어머님의 혜안이고 선견지명이었다.

자식에 대한 끝없는 어머니 사랑 말고는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있을까?.

자식의 어떤 마음으로도 헤아릴 수 없고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절대 사랑이다.

 

어머님이 떠나신 지금은 오히려  내 마음이  평화롭다.

세상에 단 하나의 절대 사랑이 그렇게 갑자기 내 곁을 떠나 갔지만 어머님은 늘 자식들을

위해 등을 거시고 자식들의 행복을 빌던 그 부처님 옆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생각에….

 

동생들이 모두 가고 난 후 똥강아지처럼 날뛰는 시우를 데리고 위폐제단에 가서 증조부님과

조부님 부모님의 이름을 확인 해 본다.

외조부님과 외조모님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

거기에도 뿌리와 가족에 대한 어머님의 사랑이 머물러 있다.

 

 

우리는 한 마리 나비이다.

한 줄기 바람을 타고 이 아름다운 세상을 잠시 스쳐지나 가는 한 마리 나비...

 

영화 빠삐용의 감동은 나비 문신을 한 죄수의 자유를 향한 끝없는 갈망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했지만 계속 실패하고 머리가 허옇게 새고 이빨이 다 빠진 채

마침내 꿈에 그리던 자유를 쟁취한다.

 

다 늙어서 비로소 자유를 찾는 빠삐용의 마지막 씬이 명장면으로 회자 되지만 영화 속에는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인상적인 또 하나의 장면이 있다.

삐삐용은 억울한 살인 누명을 쓰고 번번히 탈출을 실패 헤 절해고도 독방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어느날 꿈을 꾸게 된다.

그 때  그는 꿈 속에서 검사가 나타나고  억울한 빠삐용은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고

큰 소리로 외친다.

그 때  냉정한 검사는 분노한 빠삐용에게  한 마디 말을 던진다. 

맞다.

너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너는 살인보다 더 한 죄를 저질렀다.”

 

빠삐용이 그 죄가 도대체 무어냐고 묻자 검사가  말한다.

네 인생을 낭비한 죄다.

그리고 빠삐용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군다.

나는 내 인생을 낭비했음으로 유죄다 .”

 

Yours is the most terrible crime a human being can commit .

I accuse you … of a wasted life.

 

즐겁게 살아라 !”

정작 당신은 그렇게 남을 위해 희생하며 사신 어머님이 늘 내게 하신 말씀도 그 맥락이

아니었을까?

 

나는 어머니처럼 살지 못했지만  나를 위해서는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았다.

많은 죽음이 내 곁을 스쳐 지나고 어머님의 소천으로 그 죽음이 내게 더 가까워

졌지만 나는 어머님이 원하신 것처럼  늙어가도 내 남은 인생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

 

 

그렇게 어머니의 죽음이 내게 말한다..

죽음이 그렇게 가벼우니 살아가는 것도 이젠 가벼워져야 한다.

그리고 활개 치고 살아갈 수 있는 나의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죽음은 내가슴에 간직한 절대사랑과의 궁극적인 이별이고 구체적인 세상의 종말이다.

인생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단 한 번의 여행길이다.

 

 

                                                                                    2025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