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제
많은 날들도 아니었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또 49일이 쏜살같이 흘러 갔다.
훌쩍 지나간 시간이지만 또한 꿈같이 아득한 시간이었다.
나의 시간은 어머니가 살아계신 시간과 돌아 가신 이후의 시간으로 갈리었고
이제 그 이후의 49일도 지나가 어머니의 시간도 이승과 저승으로 명확히 갈리게 된다.
오늘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머무시던 어머니가 내세의 먼 길을 떠나시는 날이다.
각자 자신이 쌓은 공덕과 지은 업에 따라 또 다른 영혼 계로 돌아가지만 누군가 망자를 많이
생각하고 공덕을 빌어주면 좋은 곳으로 가시는데 도움이 된다고 해서 시작한 추모 글쓰기였다.
뒤늦은 후회와 죄스러운 마음 그리고 살아계실 때 못 나눠 드린 사랑의 아쉬움이었다.
그 때 그 때 떠오르던 생각을 적다 보니 두서의 격식을 갖추지도 못했고 별 내용도 없지만 하루
짧은 시간이라도 글을 쓰면서 잠시라도 어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리고 어머니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자 했다.
어머니를 추모하는 나의 49제 글쓰기는 탈고 되었다.
무위도식 같이 무기력한 나날을 잡아 준 것도 그 짧은 글쓰기와 아쉬운 어머니와의 추억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건 단지 평생 자식들을 위해 사시고 아들의 복을 빌어 주셨던 어머님에 드릴 수 있는 나의
마지막 인사이자 너무 작은 사랑이었다.
어머니 가시는 길이 하얀 국화가 지천이었고 저승으로 떠나는 마지막 날 고산사는 부처님오신날
을 준비하느라 형형색색의 연등이 탑이며 대웅전을 장식하고 있었다.
가장 풍성하고 아름다운 절의 풍경은 부처님 오신 날을 준비하고 기리는 4월과 5월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산도 들도 가장 아름다워지는 봄날이었다.
무릇 수 많은 초목과 꽃들이 피어나 평소 많은 사랑을 베푸시고 부처님전에 독실하셨던 어머니
가시는 길을 쓸쓸하지 않게 위로했다.
90년 삶을 살아오신 어머님이 세상과 이별하는 시간은 삼 일이었다.
그리고 자식들 멀지 않은 곳에 49일을 머무르시며 말없이 지켜보시다가 오늘 부처님의 가피아래
자식들과 마지막 이별을 나누는 시간은 단 세 시간 이었다..
두 분의 스님이 제를 집전을 해주셨다.
어머니 49제가 길일이라 금강경 전체 법문을 독경하는 일자와 겹쳐 어머니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보살핌을 받으며 편안하게 먼 길을 떠나시게 되었다.
리듬을 타는 스님의 불경 독송을 들으며 내 마음도 한결 밝아지고 가벼워졌다.
49제 마지막 인사를 드리며 아버님과 같이 제단에서 웃고 계시는 어머님의 모습을 보니 다시 코
끝이 찡하고 가슴이 먹먹했다.
“엄마 잘가세요 !”
엄마는 힘드셨지만 저는 엄마를 만나 고생도 모르고 행복하게 살았네요.
제가 많이 부족해서 호강시켜 드리지 못하고 그 등짐을 많이 덜어 드리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엄마와 함께 보낸 그 세월과 부족한 가운데서 누렸던 많은 것들이 제겐 살아가는 날의 힘이었고
삶의 기쁨이었습니다.
혹시 다음에 태어나실 때는 이 생애 못다하신 사랑 활짝 꽃 피우시고 한 세상 떵떵거리며 행복한
삶 사시길 빌어 드릴께요..”
그렇게 어머니를 보내드렸다.
어머니는 어렵고 힘겨운 인생을 능히 감당하시며 잘 사셨고 많은 사람의 추모와 영접을 받으며
삶을 마무리하셨다.
그리고 오늘 금강경의 축원아래 자식들의 마지막 인사를 받으며 그렇게 떠나셨다.
자식의 마음은 그런 거였다.
단지 49일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어머니에 대한 슬픔은 그렇게 사그러 들고 일상에 묻혔다.
언제 다시 코끝이 찡한 기억으로 되살아 나기도 하겠지만 세상살이가 그렇게 슬픔 위에 수의를
덮고 머지 않아 늙은 어머니의 시간이 나에게도 덮쳐올 것이다.
어머니가 세상과의 이별을 하기 위해서 분투하고 고뇌했던 아픔들은 또 내가 겪어야 할 시간의
아픔이기도 하다.
그게 삶이고 모든 태어난 생명의 숙명이다..
어머니의 죽음은 잘 죽기 위해서는 정말 잘 살아야 함을 명징하게 깨우쳐 주었다.
죽는다는 건 아무 것도 아닌 것이었다.
가을 바람에 마른 잎새가 찬 바람에 흩날려 가는 것이었다.
그 잎새가 가는 곳이 어디 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잎새가 햇빛을 받으며 눈부신 한 세상을 살았다는 사실 이었다.
짧은 시간 거기 왔다 갔다는 사실을 입증해 줄 그 누군가도 필요치 않다.
누구의 가슴 속에 남아 있다는 것 또한 부질 없는 일일 것이다.
아들도 그 아들의 아들도 또한 바람에 날리어 갈 한 장의 잎새이거늘……
단지 남은 사람들이 그 그리움과 사랑으로 자신의 삶을 정화하며 살아갈 것이다.
부끄러움 없이….
회자정리
죽음은 삶의 안식과 평화였다.
어쩌면 고통 받으시는 어머니가 고통없이 돌아가시기를 빌었던 그 마음이나
태산이 무너지던 꿈 속에서도 담담 했던 것 또한 그런 함께 구르는 삶과 죽음의 수레바퀴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남아 있는 삶이었다.
아프지 않고 온전한 정신으로 누리는 아름다운 세상
어머니의 죽음으로 나의 남은 시간도 이젠 흘러 내리는 모래시계 속으로 빨려 들어 갔다.
내 시간의 모래는 지금도 흘러 내리고 있다. .
죽음을 훌륭하게 만드는 삶이란 단지 살아 있는 동안 스스로 누린 세상의 기쁨과
스스로 충만한 시간의 느낌 속에 머물 뿐이었다.
죽음이 그렇게 무거운 게 아니니 삶도 무거울 이유가 하등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죽음이 내게 말했던 것 보다 어머니의 죽음을 더 뼈아프고 통절한 침묵으로
나의 영혼을 흔들었다.
죽음이 내 등 뒤에 있는데 두려워 할 것이 무엇인가?
살아 있으니 꿈틀거려야 하고 살아 있으니 차가워지기 전에 난 더 뜨거워야 한다.
2024년 4월 29일 (월요일) 천붕 46일 – 소천 49일 째 어머니 49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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