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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가는 대로

종삼이 형에게

종삼이 형에게

 

참 인생이 무상하네

몇 개월 전 어머님 댁에서

시장하다고 밥 한 그릇 후딱 비워내면서 넌스레를 떨던 형이 이젠 없다니

어려웠던 그 시절에도 항상 너그럽고 넉넉함을 잃지 않던 형이 왜 그리도 모질게

떠나셨나?

무엇이 바빠 그리 서둘러 가셨나?

 

아직 실감이 안 나는 듯 슬픈 표정 조차 만들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끄덕이던 형수가

가여워서  궁색한 위로의 말도 잊은 채 내게 힘 없이 맡겨진 손을 그저 잡고만 있었네

소식듣고인천으로 올라가는 길에도 괜찮았는데 형의 영정 앞에 향을 드리고 엎드리니

슬퍼 눈물이 나데.

사람이 그렇게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게 형이라는 사실이 이렇게

충격적이네

형수에게 참 매정한 사람이네 형은

남은 세월 어찌 혼자 살아 가라고 그렇게 훌쩍 혼자 떠나셨나?

 

 

 

이제사 세월의 짐 좀 가볍게 하고  훌훌 털고 재미 있게 살 때 아닌가?

아이들 넷 키우느라 좀 고생이 많았나?

아이들 모두 취직하고 이제 모두들 다리 펴고 살만한데

이제 겨우 하고 싶은 것들 돌아볼 날이 왔는데

바보처럼 왜 그리 훌쩍 떠나고 마는가?

이제 교사인 딸 하나 겨우 시집 보내 놓구선.

 

사는 게 그렇게 바쁘네

평일은 직장에 매여 바쁘고

주말엔 돌아다니느라 바쁘고

겨우 형이 영영 볼 수 없는 곳으로 멀리 떠나는 어제사 형을 만나러 갔었네

무정한 사람이라 할까봐 사촌 형제들 볼 낯이 없더군

 

미자와 미숙이도 날 보구 꺽꺽 대며 울더군

하지만 형

우린 어쩌면 형을 금방 잊을지도 모르네

우린 밤늦도록 지나간 세월을 이야기 하면서

깔깔거리며 웃기도 했다네

거기가 형이 잠들어 있는 장례식장인 것도 잊은 채

슬퍼하기 위해 모인 자리란 것도 잊고서 말이네

형이 외삼촌의 죽음을 빨리 잊었듯이

세상과 세월은 떠나간 사람을 곧잘 잊게 만들기도 하네.

 

 

오늘도 지리산엘 가는 날 이었네

형이 겨우 산으로 떠나는 내 발길을 멈추고 사는걸 되돌아 보게 한 셈이네

오후 늦게 겨우 잠에서 깨어 아내와 뒤동산을 거닐었네

덕분에 은비엄마는 생각지도 않던 남편과  뒷동산 산책을 두시간 반이나 했네 

많은 망자의 무덤을 바라보며 다시 형 생각을 했다네.

 

이제 겨우 54세 아닌가?

내가 인생의 짐을 겨우 내리고 혼자 배낭을 메고 더 넓은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려 하는

그 나이 쯤에 형은 세상을 등지고 말았군

 

난 억울해서 그리 못하네

난 아프지 않을 것이네

난 형처럼 어이없이 하루아침에 허물어 지지 않을 것이네

내 어깨가 가벼워 지는 날

더 넓은 세상을 두루 구경하면서 아직 돌아보지 못한 수 많은 아름다움들과 감동들을

죄 가슴에 담아내고야 떠날 것이네

은비와 태현이 시집장가 가서 아들 딸 낳고 잘사는 것 보구

마눌 세상사는 재미 느끼게 해주고

그 때까지도 여전히 짱짱하다가

어느날 자는 듯이 그렇게 세상을 떠날 것이네..

 

 



이미지: 수홍 박찬석님 사진을 등대지기님이 만든 작품.

            무릉객 헌화드린다. 

 

 

미안하네

외사촌 지간이면 그렇게 먼 사이도 아니련만

그 동안 애사나 흉사가 아니면 찾아보지 못해 미안하고

형의 아이들한테 이무럽고 편한 아재가 되지 못해 미안하고

형이 가는 길에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어서 너무 미안하네

 

형 잘가시게

이승의 못다한 한과 미련일랑 훌훌 털어 버리고

저승에서 나마 형수 와 아이들 보살펴 주시고

슬픔도 고통도 없는 세상에서

못다한 홍복 누리시며 기다리시게.                     2006년 9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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