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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가는 대로

가을 산책

 

태풍 산산이 온다고 했습니다.

가을에 오는 태풍

지난번 철지난 매미의 위력처럼 가을 태풍은

낭만과 추억을 떠올리는 계절의 모퉁이에서  

사치스런 감상을 조롱하고  뼈아프고 잔혹한 현실을 일깨워 주기도 합니다. 

 

 

가을은 온통 산에 대한 상념입니다.

가을산

그 아름다운 사색과 명상을 알기에 2006년 가을은 벌써 자물쇠가 채워져 버렸습니다. 

짧은 가을 날이란 어느날 갑자기 가슴 한구석을 아리게 하다가 훌쩍 떠나 버리기 일쑤라

또 마음만 분주하다  아쉬움으로 소중한 한 계절을 보내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조급한 마음에 떠나고자 하는 곳을 다 정해 버렸습니다.

올 여름처럼 올 가을도 다르게 보내고 싶었습니다.

 

 

벌초를 가야 합니다.

오늘 밖에 빈 휴일이란 남아 있지 않은데

동생들의 빈 날도 마침 오늘이라 비오는 날 벌초를 마무리 하기로 했습니다.

형님은 서울 코엑스 국제 기프트 박람회 참석중이라 삼형제만 갑니다. 

 

 

울산의 동생이 비가 추실거리는 새벽길을 떠나기 싫어 

꼭 오늘 해야하느냐고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강의 일정을 조정하여 대전 어머니 댁으로 내려와 있던 막내는

비오면 당근 안가는 걸로 생각해서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비오는 날  벌초가는 길은 가을 여행길 입니다.

모든 반론을 묵살하고 아직 비가 내리지 않는 새벽길을 떠납니다.

 

내고향은 경상북도 유천면 율현면 교동입니다.

초등학교 시절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을 켰던 내고향   

  

오늘은 용궁으로 갑니다.

내고향에서 멀지 않은 할아버지 고향으로...

 

 

조용히 깨어나는 들판에는 벌써 가을이 내려와  있습니다.

정말 몰랐습니다.

폭염의  기억이 엊그제라 벼가 누렇게 물들어 가고 있으리라곤 생각치 못했습니다.

 

 

 

아침 안개가 산허리를 휘감고 있습니다.

투탁거리던 벼메뚜기를 쫒던 추억은 아직 들판의 허수아비에 걸려 있습니다.  

 

 

 

 

용궁에서 예천으로 가는 국도아래를 지나 덕개리 쪽으로 가다보면 만나는 정자나무 입니다.

신기합니다.

아스발트와 콘크리트에 포위되어 물을 빨아들일 틈새라고는 한 뼘도 채 안되는데 저렇게

푸른 나뭇잎을 피웠습니다.

사람이나  나무나 오래 산다는 것은 모욕이고 굴욕입니다.

 

 

 

 

 

 

 

내 고향 철도가에는 뱀이 흔했습니다.

초록등을 가진 꽃뱀들이  아무렇지도 않개 철길 배수로를 기어다니고 사람들은 별로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기차길에다 못을 갈리는 법은 대전 친구들에게 배웠습니다.

철길 위에 못을 올려놓고

그 위에 침을 잔뜩 뱉어 놓구 침목 한켠에 돌무더기를 쌓아 둡니다.

그리고 멀리 아래로 내려와서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채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립니다.

지금은 철조망이 쳐있고

ktx가 눈이 어지럽게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고 그 시절 친구들은 뿔뿔히 흩어져 버렸습니다.  

 

 

 

 

수량이 줄어버린 개울엔 고기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기를 잡는 아이들도 없습니다.

 

 

 

낮은 산이 바라다 보이고 누렇게 물들어 가는 들판이 보이는 곳은 어디나 다 고향 같습니다.

벌초 가는 길이 마치 가을 여행길을 떠나는 듯한 설레임을 가져다 줍니다. 

 

 

 

길 가에는 메밀 꽃이 피어 있습니다.

 

 

무슨이유인지 수수나무에 봉지를 씌어 놓았습니다.

 

 

 

들판을 물들이는 결실의 색깔이  마음을 푸근하게 합니다. 

 

 

 

덕개리의 풍경입니다.

都家의 집성촌입니다.

도씨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사는 씨족부락인 셈입니다.

 

 

 

마을 입구에 전통가옥이 복원되었습니다.

 

 

마을에서 바라 본 가을 들판의  풍경입니다. 

 

 

 

녀석들 무지 열쓈히 일하고 있습니다.

베짱이 형은 사진 찍으며  여행 기분 내며 가을을 노래하고....

확실한 결단과 의사결정으로 비안오는 선선한 가을날에 벌초를 하도록 해준것 만으로도

가장 큰일(?)을 한 셈 입니다.

 

 

 

 

 

막내녀석 오늘은 농땡이 피지 않습니다.

 

 

 

 

돌아오는 길

구병산이 보이는 국도 변에 가을꽃이 화사하게 피어있습니다.

 

 

가을 꽃을 바라보면서 가까이 다가온 가을을 실감합니다.

문득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어 집니다.

설레임.

멋진 추억과 느낌의 여행길이 기다리고 있을 이 가을은 이렇게 가까이 와 있습니다.

 

 

 

 

 

가을은 쓸데 없는 해묵은 생각 까지도 들춰 내곤 합니다.

그런 걸 가을을 탄다고 합니다.

무언가 그리워 지고

잊혀져간 그림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한적하고 평화로운 곳에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늙어 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가끔 긴 여행길을 떠나고 돌아오면서 자연속에서 꽃과 나무를 심으며 살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적어도 내겐 여행과 은둔이 마치 내 삶에서 찾고자 하는 해답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가을 입니다.

 

 

 

코스모스가 피었습니다.

가을입니다.

 

 

 


가을은 벌써  들판과 가로수를 물들이고 있습니다.

비는 오지 않았습니다.

벌초 가는길이 가을 여행길이 되어 버렸습니다.

올라 온다던 산산이 아직 소식을 보내지 않는 오늘 2006년 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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