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그랬다.
"인생은 우리에게 쉬지 말고 길을 가라고 재촉하지만 우리에게는 멈추어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
또 누군가는 볼멘 목소리로 말한다.
"평소에 멈추어 서서 지난 시간을 되돌아 볼 만큼 우리 삶이 그렇게 여유롭고 목가적인가?" 하지만 모든 이유란 결국 핑계이고 궁극의 문제는 자신의 마음에 있음을 우리는 벌써 알고 있다.
시간이 많아도 마음이 항시 여유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느리게 사는 법과 마음을 비워내는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바쁠
때 흔히 '정신없다'는 말을
한다. 한자(漢字)로 풀어 본 바쁠 망(忙를)이란 마음 심(心)과 없을 망(亡)의 조합. 즉 마음이
없는 상태가 바로 바쁘다는 의미다..
마음이 없다는 건
‘나’라는 실체가 없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모두가 함성과 승리에 도취되어 있고 세상은 기상의 나팔소리와 진군을 알리는 북소리로 가득 차 있다.
행복한가? 가진 것이 많은 당신? 불행한가? 항상 부족함을 느끼는 당신 슬픔과 행복은 언제나 우리의 작은 가슴 안에 있다. 기쁨은 성취와 바쁜 삶 속에서만 머물지는 않는다.. 그림 같은 호숫가에 머물고 있는 고요와 청정 그 옛날 먼산 그루터기에 걸어놓은 순수와 동심은 찾으려 가자 느리게 걸으면서 조용히 따라오는 것들을 만나러 가자 봄이 오는 들판으로
귀연 호남정맥 주유 길동무
호남정맥 제 3구간
산행지 : 호남정맥 제 3구간(영암부락재-오봉산-묵방산-성옥산- 소리개재) 일 자 : 2006년 3월 5일
(일요일) 날 씨 : 흐리고 따뜻하다.
산행거리 : 도상거리 21 km 산행시간 : 약 7시간 30분 동 행 : 청계,나선생님,계백장군,산꼭대기,백종수,새벽안개, 담헌,양반곰,미소,칸 청산,로즈마리,GOODMAN,백운봉,금강초롱,포대,
나선생님친구 (18명) 호남정맥
제3구간 경유지별 시간
영암재출발 :
08:00 제1봉
: 08:21 삼각점(갈담432) :
08:47 제2봉
: 09:03: 이정표
: 09:14 (제2봉 0.6KM , 제3봉 0.5KM) 제3봉
: 09:22 제4봉
: 09:35 이정표
: 09:41 (제4봉
0.2km ,소모마을 2KM , 정상0.3km) 오봉산(제5봉) :
09:48 옥정호순환차도1 :
10:13 옥정호순환차도2 :
10:29 삼각점(갈담434) :
11;03 삼각점(건교부) :
11:12 초당골운암삼거리 :
11:30 들머리
묘소(식사)
모악산분기점 :
12;30 묵방산
: 13:13 여우치
:
13:41 천안전씨묘
: 13:44 삼각점(갈담486) :
13:50 가능정이마을
: 14:04 성옥산
:
15:17 소리개재
: 15;37
눈 아래 서걱 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주화산 등줄기를 오르던 첫 발자국이 엊그제 같은데 우린 세 번 째 진군의 나팔을 울리고 날씨는 벌써 봄을 속삭이고 있다. 비가 온데서 빗속의 백두대간을 떠올렸다. 개구리는 등산화 속에서 울고 판초우의 답답함을 벗어버리고 몸으로 받아내던 빗물이 팬티 까지 적시던 날 이빨을 부닥닥 거리게 하는 바람과 비 때문에 그저 서 있을 수 없어물먹은 솜처럼 지친 채로 쓰라린 사타구니와 욱신거리는 관절의 아픔을 끌고 하염없이 그 먼 길을 갈 때 얼굴에 부딪히던 찬비가 후련하던 그 날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 갈 수 있을까? 조건 없이 새벽의 문을 열고 호남의 능선에서 후련하게 빗물을 그을 수 있을까? 비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때보다 마음이 더 늙었는지 걸음마다 개구리가 울어주는 우중산행이 싫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비가 온 흔적이 없다. 백운봉님과 동승을 하면서도 비가 오지 않는 아침을 다행이라 했지만 하루종일 비가 오지 않을 거란 생각은 언감생심이라 그래서 찬비를 맞기 싫어 접는 우산을 하나 챙기고 여차하면 보온을 위한 1회용 우의를 준비했다. 흐린 날씨로 동터오는 영암 부락재 고갯마루에 섰다. 호남의 등줄기를 따라 가는 세번째 여행길 처음부터 된비알이다. 하나의 공식인 듯 싶다. 처음에 능선에 올라 설 때 까지 힘깨나 써야 하고 마지막 봉우리를 내려서며 베이스 캠프를 기대한 곳에서 번번이 산너머 산을 다시 만나야 한다는 것 잠이 아직 덜 깬 채로 가파른 비탈사면을 차고 오른다. 그래도 낫다 날이 이렇게 훤하니 깜깜한 밤 백두대간에서 꽁지 빠지게 앞사람 불꼬리를 차고 오르던 것 보다는...
몸도 풀리기 전에 가파른 봉우리 하나를 넘어 안부에서 바라다 보는 607봉과 작은 불재를 지나 넘었던 봉우리들이 아득하다. 봉우리 하나 넘었는데 또 가파른 오름 길이다. 불어난 체중이 하나도 줄지 않았는지 장단지가 뻐근한 정도가 아니라 너무 아프다. 마누라가 항상 맹꽁이 배 같이 불룩하다는 장단지 알집이 터지는 건 아닐까?
1봉에서 바라 본 607봉,작은불재 그리고 산너머 산
어렵게 올라온 510봉에서 사위를 둘러 보니 주변의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오고 언제 고생스러 웠냐는 듯 살며시 불어 주는 봄바람이 감미롭기만 한데 계속 이어질 줄 알았던 능선은 벼락 같이 나락으로 떨어져 비지땀으로 올라온 길을 순식간에 다 까먹어 버린다.
제 1봉을 내려서며 바라본 산골의 아침
그래도 계곡을 내려 서며 바라보는 산골의 고요한 아침이 정겹기만 하다
2봉 가는 길에 돌아본 제 1봉
가는 길 길목을 망자가 막아 서고 뒤로는 내려선 제1봉(510)봉이 우뚝하다. 저렇게 솟구쳤다가 금새 내려섰으니…. 지나는 이 없어 얼마나 쓸쓸했을까? 햇빛 들지 않는 호남의 길목에 누워 뻔데 없이 우두커니 서 있는 앞산만 하염없이 바라보느라…. 언제부턴가 호남정맥 인구가 늘어나고 저 산을 오르내리는 이 많아 졌을 텐데 어느날 갑자기 쇠똥 빠지게 산을 차고 올랐다가 금새 내려오는 희한한 사람들을 보면서 망자는 무슨 생각할까?
오름 길에 삼각점이 있다. 측량과 경계표시를 위해 봉우리에나 설치되는 것으로 알고있는데 생뚱맞게 비탈 길에 서있다.
제 2봉 수호 청솔
2봉 가는 길도 계속되는 오르막이다. 15분쯤 걸어 올랐을까? 제 2봉은 평평한 봉우리 한 켠에 멋진 소나무를 두른 채 나그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된비알을 치고 올랐으니 쉬지 않고 지나칠 수 없는 곳이라 잠시 행장을 푼다.
소나무가 빽빽한 길을 지나고 가면 제2봉,제3봉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오는데 누군가 봉자만 남겨 놓은 지워버렸다. 참 할일 없는 사람도 있다.
제 3봉 전 직벽
멀리 직벽이 보인다. 제3봉은 특이한 단애의 모습을 한 직벽 위에 앉아 있다. 직벽전 바위 위에서 바라 본 포개진 산릉과 분지가 평화롭다.
제 3봉전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풍광
3봉 지난 후 우측 절벽 위에서 바라 본 지나온 2봉과 1봉
3봉을 돌아 가는 길 능선 우측에 소나무 한 그루 서 있다 아래는 깎아지를 절벽이라 간담이 서늘한데 전방이 막힘 없어 훌륭한 전망대로 손색이 없다. 우리가 지나온 1봉과 2봉이 둔중하게 흘러가는 모습이 보인다.
제 4봉에서
10분쯤 더 진행하면 4봉이 있다. 노란색으로 색칠한 나무 이정표가 서있다. 마침내 나뭇가지 사이로 오늘 여행길의 테마 옥정호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직진하면 국사봉 가는 길이고 정맥길은 이 4봉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바꾼다. 2개의 나무 사이로 건너편으로 보이는 산이 제5봉 오봉산이다.
정상에서 300m 내려선 안부에서는 2km아래 소모마을로 연결된다. 오봉산을 오르며 가지 사이로 바라보는 옥정호가 그림 같다.
오봉산에서 바라 본 옥정호
멋진 풍광이다. 남도에서 먼저 올라온 봄바람이 목덜미를 간지르고 호수는 다소 흐린 하늘을 물 빛에 조용히 담아내고 있다. 봉우리에는 우리 말고 다른 산객은 없다. 정갈한 고요함 그리고 차분히 가라 앉은 호수의 한가로움과 평화로움이 가슴으로 느껴진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만났던 고리산 같다. 연두의 초록의 능선 사이로 푸른 하늘과 동화되던 비취색 호반 할미꽃 동산을 넘을 때 가지 깨고 싶지 않았던 고요한 감동을 오늘 다시 만난다.
다섯번째 봉우리이니 제오봉인데 오봉산이라 명명되어 있다. 오봉산. 참으로 흔한
이름이다. 봉우리 다섯개라 쉽게 붙인 이름인데 춘천에도 있고 양산에도 있고 경주 여근곡을 를 지나는 낙동 정맥길에도 있다. 그리고 함양과 원산도에도 있으니 전국을 돌면 숱한 오봉산이 있을 터나중에 시간 나면 전국 오봉산 유래에 관한 비교연구 논문이나 한편 써 볼까? 오봉산을 내리자 마자 갈림길이 나온다. 리본이 양쪽에 모두 달려 있는데 우측으로 내려가는 길이 더 넓어 보인다. 잠시 헷갈리기는 하는데 우측 능선은 기운차게 흘러가다 이내 자지러 지고 있다. 내려선 능선이 다시 올려 붙을 만한 능선의 흐름이 보이지 않는다. 이곳이 선두팀이 알바한 역사의 현장이다.
옥정호 순환차도 1 옥정호 순환차도 2
옥정호를 내려다 보며 약 20분을 내려오면 옥정호 순환차도를 만난다. 차도를 건너 다시 산길로 15분 정도 진행하면 휘돌아 내려가는 순환차도를 다시 만나게 된다. 등산로가 두 번 차도에 관통되는 셈이다. 선두팀의 표지기가 보이지 않고 지나간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오랜 산행의 직감으로 선두팀이 열심히 아르바이트하고 있다고 판단한 최선생님이 전화를 때리는걸 보고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여전사와 두 호위병은 호남길을 버리고 지능을 따라 눈썹을 휘날리며 진군 중이다. 불쌍한 포대님. 모처럼 얼굴을 보는가 했는데 후미 포대에서 지원사격이나 하시지…. 우얄라꼬…. 차도에서 접어든 산행로 도입부에서 핑계 겸 잠시 휴식하다 다시 여장을 수습한다. 워낙 준족들이니 어련히 따라 붙을까?.....
239.4봉 삼각점 삼각점2(초당골가는 길)
완만한 길을 따라 가다가 15분 정도 오름 길을 극복한 다음 봉우리에서 휴식한다. 계백장군님이 360봉이라고 하는데 239.4봉 삼각점이 아직 나타나지 않아 잘 모르겠다. 그 봉우리를 지나 3분쯤 가면 능선이 분기하는데 정맥 길은 우측 큰 능선쪽이 아니라 좌측 으로 분기한다. 그렇게 몇 분을 더 가다가 안부십자로를 지나고 오름 길 중에 기다리던 239.4봉 삼각점을 만난다. 도로에서 산길로 접어든지 35분 만이다. 또 하나의 삼각점은 정확히 9분후 초당골 가는 길의 가장 높은 능선 일 것 같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홀연히 나타났다. 그냥 “건교부”라고만 글씨가 새겨져 있다.
초당골로 내려서며 바라본 옥정호 풍광
초당골과 우뚝선 묵방산
오분을 걸어 내리니 잘 다듬어진 수원 백씨의 문중묘가 나타나고 다시 그림 같은 옥정호 풍광에 눈이 즐거워 진다. 좌측으로 나래산이 우뚝하고 가야 할 길에 묵방산이 처음으로 우람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흐린 날씨에 먼 산들의 실루엣이 아련하고 호수 양편을 연결하는 다리가 평화로운 섬마을의 고즈녁한 상념을 일깨운다. 이 호수가 수도권 인근에 있었으면 호수 주변이 온통 난리 법석일 텐데 다리 옆에 우뚝 서 있는 아파트마저 호수의 풍광에 잘 조화되고 있다.
운암삼거리
5분 남짓 차도를 따라 가면 27번 국도와 만나는 초당골 도로 이정 표에는 운암삼거리라고 적혀 있다. 얼마나 유명한지 지도에는 초당골의 원조어부집이 표시되어 있다. 삼거리에 정차중인 베이스캠프를 지나 좌측 상점에서 식수를 보충 하고 도로 맞은 편 등 로를 올라 호수가 바라다 보이는 묘지 풀밭에서 식단을 차렸다. 원래 1차,2차 구간처럼 중식 전에 묵방산 오름길에서 호된 신고식으로 밥값을 한번 해야 하는데 새벽에 일찍 출발하다 보니 12시가 넘으면 너무 배가 고프다. 식사 준비를 하는 중에 아르바이트 까지 열심히 마무리하고 선두팀이 따라 붙었다. 역시 대단한 인파이터 들이다.
그래도 얼마나 좋은가? 여기 있는 다른 분들이 죽는 날 까지 밟아 볼 수 없을 그 멋진 호남의 지릉을 감돌아 내리고 또 도로구보로 체중까지 관리하고서도 식사시간에 늦지 않았으니…. 붉은 고추장에 찍어 먹는 시뻘건 왕고추가 압권었다. 청계님 지난번에 희한한 고추 까페에 올리시더니 오늘은 또 잘생긴 고추로 입을 즐겁게 해주시네…청계님 고추전문가? 항상 비장의 무기를 감추고 다니는 포대님에게 뿅주 두잔 얻어 먹고 미소님의 과일에 윤선생님의 커피에… 교외 가든에서의 식사는 그렇게 즐거웠다. 식사를 마무리 할 즈음에 나선생님과 친구분 까지 합류했으니 칸을 위시한 낙오조만 빼고 모두 다 온 셈이다.
출발 후 완만한 오름길을 20여분 오르면 등로가 좌우로 분기되는 모악산 분기점이 선다. 정맥은 좌측으로 흐름을 바꾸고 반대편 등로는 402봉을 거쳐 모악산으로 연결된다. 누군가의 정보가 나무 둥치에 매달려 있다. 김제 절봉에서부터 7개의 산을 거쳐 여기 까지 오는데 76km 정도가 된다는… 이 모악지역 완주를 하게 되면 지리산 주릉을 왕복한 정도의 거리가 되고 봉화산,성현산, 두악산,숭인산,천장산,모악산,국사봉등 호남의 산군을 섭렵하게 된다고 한다. 묵방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1차의 만덕산, 2차에 호남의 경각심 경각산이 있었다면 3차에는 묵방산이 있다. 몇 분 내려가는가 싶더니 묵방은 금새 본색을 드러내고 가파른 오름 길에 바람 한 점 불어 주지 않는 날씨 배는 빵빵하고 게다가 뿅주 까지 두잔 걸쳤겠다. 겨울 등산스웨터 안에서 열이 팍팍 나는데 아랫배를 가볍게 할 방구마저 나오지 않는다. 내일이 경칩이라 그런지 이게 겨울산행인지 봄 산행인지 모르겠다.
묵방산 정상
묵방은 이름 값을 하느라고 앞에 전위 봉우리를 앞세우고 두번의 된비알로 체력테스트를 하는데 후덥지근한 날씨에 벌목한 나무로 길을 막아 놓은 것이며 아래서 들리는 벌목하는 전기톱 소리가 기분에 몹시 거슬린다. 그렇게 모처럼 비지땀을 흘리며 묵방산에 올랐다. 묵방산은 치고 올라온 능선에서 100여m 비켜나 있다. 표식 없는 외로운 능선봉 묵방산은 그렇게 수수한 모습으로 이정표 하나 없이 누군가가 남겨 놓은 150산 순례의 전설만 나무등걸에 달아매고 있다. 여우치 마을의 봄
묵방산에서 신나는 내림길을 따라 20여분 흘러 내리면 여우치 마을 축사로 인해 냄새는 좋지 않지만 멀리 옥정호 꼬리가 보이고 산으로 사방이 둘러 쌓인 채 따뜻한 남녘의 햇살을 받아 아늑하고 포근한 모습이다. 군데군데 비어 있는 폐가가 있다. 봄은 벌써 마을 앞 보리밭을 비집고 앉아 있다. 문득 따사로운 봄 햇살과 여우치 마을의 봄이 우울해 진다.
봄이 느껴지는 날은 슬픈 시간이다. 부쩍 짧아진 세월 속에 더 빨라진 겨울과 서둘러 이별해야 한다. 아직 봄은 멀었다고 너무 할 일이 많다고 그렇게 나 혼자 겨울을 밀쳐 놓았다가 정작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또 한 해의 겨울을 떠나 보낸다. 하늘 가득 춤추며 내려오는 함박눈을 맞지도 못했는데…. 무릎 까지 빠지는 눈을 밟아 보지도 못했는데… 호수 안에서 쩡쩡거리고 앞이 보이지 않는 눈보라를 앞세우고 날 선 고원의 벼랑을 승냥이 울음으로 기어가던 그 뼛골에 사무치는 후련한 찬 바람을 만나지도 못했는데 난 다시 또 한 겨울을 잃어야 한다. 그래도 다가오는 봄을 어쩌랴 겨울은 가고 나의 역사는 또 몇 가닥의 새치로 흘러가도 다시 그 미향에 혼미해지고 마음은 계절의 교태에 흔들리는 걸. 하늘 빛 호수는 봄 빛에 반짝이고 대지는 소리 없는 바빠진다.. 가지 끝에 푸른 물이 오르고 갈색의 낙엽을 들추면 벌써 간지러운 봄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눈물을 흘리고 겨울이 가고 부드러운 바람을 타고 고양이처럼 봄이 오고 있다.
여우치 풍경 1
여우치 풍경 2
그새 포대님은 또 마을 길 아래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왔다. 부지런 하시기도 하시지…. 좌측능선으로 붙으면 바로 여우치 인데 마을 길을 천천히 둘러 여우치에서 평화로운 마을 풍광에 젖는다. 여우치 우측 길 아래 대나무 군락 뒤로 멋진 송림을 끼고 있는 마을의 모습이 정겨워 보인다.
여우치 풍경 3
여우치를 지나 가면서 봄을 기다리는 벌통을 만난다. 잠자고 있는 벌들은 연초록 봄이 수줍게 다가 오는 것을 느끼고 있을까?
천안 전씨묘 성급한 봄
잘 정돈된 천안 전씨묘를 만나고 아우성치며 피어 오르는 봄을 풀밭을
걷는다.
10여분쯤 뒤에 283.6봉 삼각점을 지나고
가능정이 마을로 내려서며 바라 본 옥정호 풍경
그리고 15분 뒤 다시 시계가 열리고 한적하고 여유로운 모습의 옥정호를 다시 만난다. 선착장이 있는 가능정이 마을이다. 가능정이 마을을 지나며 되돌아 본 마을과 묵방산
옥상에서 고개를 내밀고 무막지하게 짖어 대는 개들을 무시하고 송림숲을 지나 하운암 산장이라는 표석이 서 있는 가능정이 마을 삼거리로 내려선다. 등로는 마을 앞쪽 언덕에 보이는 옥정가든 죄측으로 이어진다. 옥정가든에 올라가면 건물 중앙 앞에 차가운 물이 세차게 쏟아지는 수도꼭지가 있어서 물 보충이 가능하다. 더운 날씨에 제번 거친 구간이 많아 360ml 콜라병에 들이대는 두번째 리필이다.
여우치에서 가능정이 마을 가는 길 그리고 가능정이 마을에서 다시 성옥산 가는 길에는도처에 난이 자생하고 있다. 아직 푸르름이 번지지 않은 갈색의 대지 위에서 푸른 잎으로 남아 있어 눈에 금새 띄는 터라 암만 봐도 꽃집에 의뢰해서 친구 개업식에 보내던 7만원 짜리 난과 똑 같은데 호남의 산허리에서 너무 많은 난을 만나니 난이 가짠지 내 눈이 잘못된 건지 잘 모르겠다. 호남 사람들은 난이 잡풀인 줄 아는 개벼. 다음에 꽃집하는 친구 데리고 한번 와볼까?
성옥산 가는 길 옥정호
성옥산 오름 길에 좌측 능선 아래 조망이 좋은 곳에서 바라보는 옥정호의 모습이 아름답다. 단조로운 길을 따라오며 가끔 가지 사이로 수줍게 고개를 내미는 모습이 자꾸 궁금해지는 걸 보면 하루 종일 보고도 새색시 자태가 또 그리워지는 영락없는 새신랑 마음이다. 날씨가 더워 물이 많이 먹힌다. 바람기가 한 점 없는데다 무거운 겨울 옷 담헌님처럼 한 거풀 벗고 얇은 여름 셔츠를 입으면 좋은데 난 겨울 옷을 벗으면 그대로 가죽이 노출되니….
성옥산 가는 길 벌목지대에서 뒤돌아 본 묵방산
3,4분 가파르게 올라 챈 봉우리에서 다음 봉우리를 바라보며 진행
했는데 정상을 500여m 남겨두고 등로는 우측 산허리를 돌아
나간다. 인삼 밭을 만들려고 하는지 산비탈의 나무를 죄 벌목해 놓은 능선 길을 지나고 오르막을 한번 더 치고 올라 능선에서 휴식한다. 산꼭대기님이 아직 지도상 두 시간 이상 남았다고 하는데 높은산님 산행기에 따르면 성옥산은 이제 30분 거리에 있다.
성옥산 정상
산꼭대기님과 담헌님과 한 조가 되어 부지런히 가면서 짧은 오름길 봉우리 몇 개를 극복하고 나니 성옥산 전위봉이 나타나고 12분쯤 더 가면 아무런 표식 없는 정상 같지 않은 봉우리에 도착한다. 성옥산이란 증거는 어디에도 없는데 백운봉님이 10분전에 써 놓은 성옥산 이란 휘호가 십자 표석 위에 난짝 올라가 있다. 오늘 알바의 주역이신데 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가 가능정이 출발 후 1시간 10분쯤 경과된걸 보면 성옥산이 틀림 없을 것 같다. 그러면 오늘의 목표하산점 방성골 차도까지는 10여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얘기… 어째 마무리가 너무 시시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방성골 차도에서 2시간 30분 정도 더 걸어 예덕리 고개 너머 구절재에서 3구간을 마무리 하는 모양이다. 막판에는 항상 산 너머 산이라는 공식이 어이없이 깨지고 나서 두어 시간 더 치고 나가도 되는 시간에 산행이 마무리 된다고 생각하니 허탈함이 밀려 온다. 쉬는 중에 담헌님 왈 “ 이렇게 힘들는 일을 왜 하는 지 가끔 회의가 든다” 왠 고수의 투정
? 마치 “산에 가지 못해 안달났어요” 하는 말과 같은 산꾼들의 역설
아닐까? 산행에서 얻는 것은 많아도 하루 10시간 가까이 하염없이 걷기만 하는
단조로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겠고 우문에 대한 현답 또한 궁색하다.. 수 많은 이유 중에서도 산이란 잊고 지내던 자신과 만나는 가장
허허로운 시간 아닐까? 공자(孔子)가 여러 나라를 돌아보고 돌아와 태수 애공(哀公)에게 귀국인사를 하러 왔을 때 애공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선생이 이곳을 비우고 여행 중일 때 내 부하 중 이웃 나라로 이사해 간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자는 대단히 건망증이 심해 자기의 부인을 깜빡 잊고 집에 그대로 두고 갔습니다. 한참을 가다가 비로소 부인이 없다는 것을 알았지요. 그래서 먼 길을
다시 되돌아와 데리고 가지
않았겠습니까.” 물론 태수는 그 건망증이 심한 사람 얘기를 함으로써 공자를 즐겁게 해주려 한 것인데, 공자는 웃지 않고 정색을 하고 말했다.
“자기 부인을 집에 둔 채 잊고 갔을지라도 다시 생각이 나 데리러 올 테니 그건 크게 걱정할 게 못됩니다. 정작 걱정해야 할 것은 소중한 자기 자신을 어딘가에 버려둔 채
잊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공자의 이
말은 시공을 넘어 오늘을 사는 우리의 폐부를 찌르는 촌철살인의 한 마디가 아닐까? 요란한 세상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존재를 잊고 정신을 놓고 사는 불쌍한 사람들을 향한 天上天下 唯我獨尊
오만불손한 사람을 비아냥할 때 쓰는 말이지만 이 한마디야 말로 세상이
아무리 넓어도 우주의
중심은 나라는 불교철학의 진수가 아닌가? 내가 없으면 세상 삼라만상의 존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인식의 주체로서의 나 내가 세상의 중심이고 우주의
주인이다. 참다운 나를 찾아가는 것이 도인들의 얻고자 하는 궁극적인 깨달음의
길이었고 사유의 본질 이었다. 凡人들이 자신을 한번쯤 돌아볼 수 있을 만한 장소가 산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담헌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궁색할 답변에 대해 이리저리 생각 하다 보니
자연 속에서 소요하는
스스로를 잊고 쓸데 없이 머리를 무겁게 하고 있는 나를 보며 슬며시 웃음이 난다. 허기사 부인을 두고 간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면 요즘은 뼈도 못
추릴 일이다.
소리개재,방성골 풍경
7분여 부드러운 내림길을 하산하면 잘 정돈된 파평윤씨 묘소가 나타나고 방성골 도로와 함께 넓은 밭이 내려다 보인다. 아늑한 전원 풍경이다. 아래 도로가에 우리의 이동베이스 캠프가 보인다.
봄을 기다리는 평화로운 전원
아직 봄 빛에 쌓이지 않은 산골의 들판 한 쪽에 마지막 까지 따라와 준 옥정호의 푸른 물이 보면서 말년에 유유자적하게 세월을 보낼 만한 곳에 관한 한가롭고 푸근한 몽상에 잠겨본다. 비도 오지 않은 산행하기 좋은
날
소리개재 베이스 캠프
오늘 출발할 때 얼굴보고 통 만나지 못했던 분들의 얼굴이 먼저 보인다. 금강초롱님,칸님,청계님 점심때 만난 나선생님과 친구분도 모두들 지름길로 질러와서 후미를 위한 성찬을 준비하며 반색을 해주는 모습이 정겹다.. 어째 돼지갈비를 넣고 푹푹 삶다가 양념에 김치를 무막지하게 우겨 넣길래 영낙 없는 꿀꿀이 죽 먹나 했는데 이게 완죤히 뚝배기 보다 장맛이다. 족보에도 없는 줄 알았던 돼지갈비 김치찌개가 그렇게 맛이 있을 줄 예전엔 미쳐 몰랐다. 처음 먹어보는 돼지 갈비 김치찌개와 처음 마시는 왕주 이거 셋트로 해서 체인점 하나 내도 되겠다. 그 맛 그대로 재현 할 수 있다면… 체인점 이름은 내가 지어준다. “갈비가 김치탕에 목욕한날” 갈비 두대에 김치찌개 3그릇 왕주 세 잔에 뿅 간 하루 왕주 먹으니 내가 왕입니다요…
배부르고 유쾌한 기분으로 밭에서 바라보는 냉이 캐는 일행들이 모습이 밀레의 저녁종 같아 보이는 건 슝늉처럼 술술 넘어가던 술기가 오르는 것인지 봄이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는 건지 모르겠다. 봄이 오긴 오는 모양이다. 술드럼이 바닥을 보이고 또 김치찌개에 끓인 라면이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사라진 다음에야 떠날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기분 좋은 하루는 봄의 향기와 감칠맛 나는 김치찌개 맛 그리고 한잔의술에 띄운 푸근한 정과 함께 저물어 갔다.
흔들리는 버스 속에서의 유쾌한 대화와 술이 가져다 주는 가벼운 흥분에 들뜬 채 노을이 물들어 가는 호남의 들판을 바라보면서 수 많은 날들 중의 또 하루의 특별한 날을 추억의 책갈피에 접었다. 봄이 오는 허허로운 호남의 길목을 함께 걷고 또 멋진 가든파티를 준비해주신 분들께 감사한다. 벌써 3번의 장정을 마무리한 오늘 하루 하루 가슴에 쌓아 가는 즐겁고 유쾌한 기억이 봄빛 가득할 호남 주유의 희망과 기대로 날린다. 자연 ! 그 살아가는 날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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