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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 트랜드

북한엔터테인먼트의 의미 - 사설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마담 프레지던트)을 상정한 미국 ABC TV의 드라마 ‘최고사령관’이 곧 한국 지상파 방송에서도 방영될 것이라는 소식이다.

 2008년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부 장관 간의 ‘여성 대통령 대결’을 암시하는 듯한 이 드라마는 매주 특별한 이슈를 내세워 커다란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지난 1월에는 북한 핵을 소재로 한 ‘핵 없는 행복한 세상(No Nukes is Good Nukes)’이라는 에피소드 두 편을 내보냈다.

 이야기는 미국 잠수함이 북한 원산 근처 바다에 좌초되면서 시작한다. 잠수함이 북한 해역에 들어서자 북한은 즉시 ‘미국의 도발’을 선포하면서 전쟁준비에 들어가고 “핵 전쟁을 불사하겠다”며 미국의 목을 조른다. 게다가 잠수함 상태를 조사하러 갔던 미국 정찰기가 북한군 포격으로 파손돼 돌아오면서 긴장은 최고조에 달한다.

 북한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ABC의 황금시간대를 차지한 것처럼 북한(혹은 김정일) 테마는 오락물의 흥행보장 함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듯하다.

지난 2004년에는 미국 패러마운트사가 인형극 영화 ‘팀 아메리카’에 김정일 인형을 등장시켜 큰 인기를 얻었다. 세계평화 유지를 위해 창설된 미국 비밀경찰이 주인공인 ‘팀 아메리카’는 김정일 주축의 대량 살상무기 거래조직 실체를 알아내고 평양 주석궁에 침입해 대량살상무기 확산음모를 저지한다. 이처럼 북한 관련 오락물 등장과 희화화는 미국민 사이에 북한 관심도의 저변 확대(?)에 크게 기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팀 아메리카’는 정치나 외교에 무관심한 미국 젊은이들이 북한 문제로 눈을 돌리게 만들고 10대와 20대의 MTV 시청자를 ‘김정일 팬’으로 만들었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한반도의 이해 당사자인 우리와 미국 지도자들에게는 북한 문제가 너무나 중대하고 심각한 사안이지만, 태평양 건너 대중에게는 ‘동북아적 스릴과 서스펜스’를 만끽할 수 있는 ‘블루칩 엔터테인먼트’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낙담하거나 슬퍼할 이유는 전혀 없다. 골치 아플 정도로 꼬이기만 하고 복잡다단하게 흘러가는 작금의 상황만 보면 언제 그럴 날이 올까 싶지만, 위와 같은 북한 시사풍자 오락물 등이 북한 개방을 앞당기는 순기능을 행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1일은 미국 뉴욕에서 MTV라는 뮤직비디오 채널 방송국이 문을 연 지 25년이 되는 날이었다. MTV를 말할 때 빼놓지 않는 것이 바로 이 음악 채널이 동구권의 붕괴를 촉진했다는 주장이다. 동구권 붕괴는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라는 이념의 우수성에서 촉발된 것이라기보다, MTV 화면에 등장하는 갖가지 자본주의적 오브제가 이념과 억압된 체제를 허물어뜨렸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MTV 화면에 등장하는 멋진 자동차, 아름다운 여성, 감각적인 소비상품, NBA 농구나 야구의 화려함 등등에 매혹된 동구권 인민 사이에 자본주의적인 것에 대한 열망이 자라났고, 드디어는 체제를 전복시키는 동인으로 작용했다는 가설이다. 사소한 일상의 소비문화가 이념과 체제를 전복시키는 거대 담론이 된 셈이다.

 21세기는 일상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적인 것의 공개’가 문화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블로그나 미니홈피에는 ‘브리짓 존스의 다이어리’류의 신상잡기가 넘쳐난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정치와 이념은 더는 상위가치가 되기 어렵다. 이념보다는 당장 내 일상, 내 관심, 내 취미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의 핵심에 인터넷이 자리한다. 컴퓨터 네트워크의 속성은 중심보다 주변, 이념(집단)보다 개인, 폐쇄보다 개방이다. 민주화와 개방은 이념적 대결이나 외교전보다 인터넷의 힘을 빌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북한 정보화를 촉진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가 진정 북한의 민주화와 개방을 원한다면 그 어느 정책보다 북한의 정보격차 해소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손연기 한국정보문화진흥원장
ygson@kado.or.kr

○ 신문게재일자 : 2006/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