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마지막 날
다 같은 날이지만 우리가 마킹한 그 날의 의미는 각별하다.
지난 시간을 뒤돌아 보고 다시 맞이할 한 해의 계획과 각오를 다진다.
작년 후반부의 슬럼프를 딛고 올해는 다시 비상해야 한다.
세상에 운행되는 우호적인 좋은 기운을 끌어들여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휘닉스파크 가족 모임이 있어 일찌감치 선자령을 낙점했다.
팔도 산신령님들에게 올리는 시산제는 둘째 주 토요일 (11일) 덕유산으로 예정했지만
새해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소망을 말하고 천지를 주관하는 천지신명과 세상의
신들에게 인사를 올리기로 했다.
오만가지 이유 중의 하나로 새해 떠 오르는 태양 앞에 서지 못할 때 그 때 나의
삶은 시들어 갈 것이다.
내게 그 것은 단순히 새 날의 태양을 바라 보는 것을 넘어서 내가 신과 만나고
우주와 교감할 수 있는 성지 순례와도 같은 것이다.
내 안의 열정과 신명은 세상의 기쁨과 감동을 수신하는 안테나 인데 그것이 접히면
천지 광명의 기혈이 막혀 내 마음의 등불만으로 어두운 길을 밝혀야 한다.
야근을 마치고 마트에 들려 막걸리 한 병 그리고 사과와 감을 샀다.
알이 제법 굵은 사과지만 사과 한 개가 6,980원 이다.
망할 석렬이…
준비를 마치고 집안 정리를 하고 나니 시간이 벌써 10 40분이다.
8시간 씩 산을 타던 치악산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나름 헐렁한 여정이라 별 부담도 없다..
3시 30분에 알람을 셋팅하고 잠들다.
Zzz
일순간에 잠들었다가 알람소리에 아직 몽롱한 채 깨어나서 볼일 보구 뜨거운 끓여서
넣고 집을 나섰다. 시방 타임 4시 !
1시간 30분 거리이니 순조로운 출발인데 고속도로에 올라선 순간 “아뿔사 !”
늘 치악산 해맞이를 해 왔던 터라 1월 1일 강원도 길이 이럴 줄은 미쳐 몰랐다.
애도기간으로 곳곳이 해맞이 행사를 취소하였는데 고속도로는 불야성이다.
새벽잠을 설치면서 천지의 상서러운 기운을 나누어 받으려 동해로 가는 사람들이
원래 이렇게 많은 것인가?
일단 만종 분기점 까지 7km은 가다 섰다를 반복하는 지속 정체다.
어짜피 해맞이를 못 볼 거면 오대산으로 바꿀까 하다가 고속도로가 이 정도면 진부
나들목 나가서 상원사 가기 까지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상원사에서 비로봉 까지 등산 시간도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안되면 명봉산으로 되돌아가면 되는데 이러 저런 생각에 잠시 젖다가 마음을 편히
먹기로 했다.
“선자령 산신령님이 부르신 거여 !
안 그러면 내 마음이 그 짝으로 움직였것냐?””
일출은 약 2.4km 지점에 있는 새봉 전망대에서 볼 수도 있고 능선을 따라 가다 보면
군데 군데 포인트가 있을 것이다.
만종을 벗어 나고서는 정체가 많이 풀렸다.
이 후에도 자주 정체가 발생하여 속도가 떨어지곤 했는데 초반처럼 그렇게 오래 지속
되지는 않앗다.
동해가 가까워 지면서 다시 본격적인 차량 정체가 시작되고 얼마 안되어 횡계 나들목
을 벗어 났다.
선자령으로 가는 차량은 생각보다 많지 않아 이후 교통은 수월했다.
목적지를 선자령 등산로 입구로 찍어 놓았더니 네비처녀는 주차장을 지나 익숙한
선자령 표석 바로 앞에 까지 떡허니 바래다 주었다.
아침 6시 !
예전 내 걸음으로 통상 1시간 30분이면 가능한 거리이니 별 문제는 없을 듯하다.
등산화를 갈아 신고 후렛쉬를 밝히며 6시 10분 출발 !
바람은 차갑고 매서웠지만 이 정도면 양반이다.
재작년 치악산 등산할 때는 능선에 오를 때 까지 계속 발이 시렸고 카다란 방한 장갑을
끼었음에도 한 번씩 눈이 번쩍 뜨이는 설경을 만나면 장갑을 벗고 셔터를 누르느라 언 손이
너무 아파 고통스러웠다.
젊은 친구들이 많이 보인다.
애견을 끌고 온 젊은 부부도 있고 친구들과 함께 무리를 지은 친구들도 있다.
가는 길 갈림 길에서 젊은 아가씨 두 명이 서성이다가 길을 묻는데 우측 능선길을 따라
가라고 얘기해 주었다.
참 기특한 친구들이다.
어린 친구들이 이 추운 날 선자령에 오를 생각을 다 했을까?
하늘은 여전히 어둠에 쌓여 있지만 동해안의 불빛이 내려다보이는 새봉 전망대는 그냥
스쳐 지났다.
능선 위의 바람은 한결 거세졌지만 그렇게 매섭고 혹독한 추위는 아니다.
등산쉐터에 경량오리털 파카 하나 걸치고 목두건과 안나푸르나 털모자로 충분히 대적이
가능한 날씨다.
아들에게 생일선물로 받은 방한장갑은 아직 끼지 않았더니 손이 좀 시린 것 말고는 컨디
션도 좋다.
예전에는 선자령하면 장쾌한 눈밭과 서슬푸른 바람으로 유명 했는데 군데 군데 다져진
눈과 숲 속에 쌓인 눈을 제외하고는 거의 눈이 없는 셈이다.
그 언젠가 귀연팀과 함께 선자령 눈풍경과 바람맛을 보기 위해 갔다가 등산로에서 펄펄
날리는 황토 바람만 보고 황당했던 적이 있는데 오늘도 장쾌한 눈 밭은 물 건너 갔다.
문막에도 11월에 이틀간 장하게 눈발이 날리더니 별 소식이 없었는데 선자령 역시 12월
말미에 큰 눈이 없었던 거다.
숲속에 텐트 불을 켠 두 동이 있다.
눈 밭에서 친구와 함께 한해를 마감하며 새날을 맞는 젊은이들 ….
검은 동편 하늘은 여명을 머금기 시작했다.
날이 밝아 오는 풍차의 언덕에 올라서면서 색색의 탠트들이 나타나는데 1000고지 바람
밭에서 새 날의 추억을 만드는 그들의 열정과 젊음이 부러워 진다.
내 잚은 날도 만만치 않았지…..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 다 하면서 즐겁게 살았는데 지금도 강원도 관문에서 수문장을
하면서 건강하게 전국 명산을 넘나들고 있다. (잠시 쉬고 있기는 하지만 ...)
내 삶의 방식이 내 젊은 날과 다른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즐겁고 재미 있게 살았다.
멀리서 사례를 찾을 것도 없이 내 자신이 긍정적인 생각과 우주의 좋은 기운과의 소통의
증거이고 내 생각이 나의 플라시보 였다..
우주의 좋은 기운이 내게 이어지고 늘 팔도 산신령님들의 보살핌과 축복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5시 30분에 선자령 정상에 도착했다.
그렇게 서두른 것도 아닌데 정확히 1시간 20분 걸렸다.
선자령 표석 뒤편에 일단의 무리들이 몰려 있다.
벤치에서 두꺼운 장갑과 외투를 꺼내 착용하고 전열을 재정비 한 다음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니 거짓말처럼 새 날의 태양이 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일부러라도 이렇게 타이밍 맞추기가 힘들겠다.
벌써 선자령 산신령님과는 두 번 째 찰떡 궁합이다.
처음 바라보는 선자령 일출 !
일망무제 트인 하늘 위로 장쾌한 해돋이의 기대와는 달리 먼 산 위로 떠오르는 새해의 태양
이었지만 내가 지금 까지 본 일출 중에 가장 아름다운 꽃분홍빛 일출이었다.
“카메라의 눈은 내 눈을 따라 가려면 아즉 멀었다.”
액정에 머무는 영상은 선자령으로 떠 오른 새해의 오묘한 빛의 조화와 감동을 담아 내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박수와 탄성을 올리는 가운데 누군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라고 외쳤다.
코 끝이 찡하고 울컥했다.
세상을 이끌어 가는 많은 사람들이 욕심과 추태를 보이지만 자연과 사람은 원래 이렇게도
아름답고 따뜻한 거다.
내가 이무기처럼 오랜 세월을 보내고도 그 아름다운 향연의 한 가운에 있으니 얼마나
감동적인가?
찬란하게 떠 오를 새해의 태양을 기대하며 새벽 길을 걷은 것이 삶의 경이이고 기적이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나는 이 땅의 성스러운 곳에 서서 태양과 하늘을 우러르고 내 마음은 천지의 조화로운
기운과 교감하고 있는데…
태양이 바라다 보았던 그 자리에 조초한 제단을 차리고 술잔을 올렸다.
그리고 사위를 돌며 4배를 올렸다.
더 넓고 더 높은 세상을 허락 하소서 !”
아직 남아 있는 세상의 아름다움과 무수한 감동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보살펴 주소서!”
내 사랑하는 세상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복되게 하소서 !
차가운 막걸리를 한 잔 들이키고 돌아 오는 길은 늘 그렇듯이 가슴에서 기쁨이 넘쳐 났다.
그 아침에 바라보는 세상은 그렇게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다.
2025년 1월 1일
핸펀사진
선자령단풍 https://go-slow.tistory.com/17939824
선자령 단풍 -2012 휴가 첫째날
2012년 휴가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원래 마눌과 중국 구체구를 가려 했는데 일정이 정하는 날에 맞아 떨어지지 않아 다시 강원도로 가기로 했습니다. 지난주에 귀연과 설악에 들었었고 홀로 가지
go-slow.tistory.com
4월의 선자령 : https://go-slow.tistory.com/17939718
4월의 선자령
go-slow.tistory.com
1월의 선자령 https://go-slow.tistory.com/17940600
1월의 선자령
2년 반 쯤 전 백두대간 종주 때도 갔고 사계절 안 가 본 때가 없는데 굳이 가보고 싶어서 갔겄어? 송년회 이후 산친구들과도 너무 적조하고 눈도 없는 미지근한 겨울날에 미세먼지만 풀풀 날리는
go-slow.tistory.com
'산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속리산 새해 산행 - 내 가까운 친구들..... (0) | 2025.01.14 |
---|---|
대둔산 새해 일출 산행 (0) | 2025.01.07 |
계룡산 새벽 명상 (0) | 2024.12.21 |
계족산의 만추 (0) | 2024.12.08 |
보문산의 새벽 그리고 늦 단풍 (0) | 2024.12.06 |